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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치유사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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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같이 가요. 어둠 속은 너무 외로워요.”


차가운 타일 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피 묻은 손들이 레온의 발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바닥은 순식간에 끝을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진흙 늪으로 변해 그의 하반신을 삼켜 가고 있었다. 목을 조여오는 검은 점액질 촉수의 질식감은 영혼의 호흡을 막아버렸다.


‘공감적 오감 공유 규칙’에 의해 전생의 환자가 자살하는 순간 느꼈을 극심한 공포와 기도가 막히는 고통이 레온의 정신체로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정신체 표면에 새겨진 붉은 균열들이 비명을 지르며 벌어졌다.


눈앞에서는 의사 가운을 입은 전생의 자신, 서준우의 환영이 차갑게 내려다보며 비웃고 있었다.


“위선자 놈. 사제복 뒤에 숨어 눈먼 성자 행세를 하니 기분이 어떠냐? 너는 단 한 명의 영혼도 구원할 수 없다. 너는 도망자이자 살인자일 뿐이다.”


머릿속을 짓밟는 자책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정신 인지 지수: 35% - 경고: 자아 붕괴 임계점 돌파 직전]


반투명한 경고창이 붉게 점멸하며 눈앞을 가렸다. 바닥에 떨어진 낡은 은색 청동 종은 시커먼 안개에 뒤덮인 채 맑은 울림을 잃고 침묵했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어 종을 쥘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영혼의 심연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무력감 속에서, 레온의 자아는 완전히 쪼개져 흩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멀고 아득한 세계의 틈새를 뚫고, 가늘지만 지독할 정도로 따뜻한 온기가 레온의 왼손 손등을 적셨다.


축축하고 차가운 어둠을 찢고 내려온 것은 한 줄기 은빛 실타래였다. 그것은 이세계의 그 어떤 마법보다도 순수하고 간절한 인간의 감정이 자아낸 영적 사슬, ‘영혼 인양의 쇠사슬’이었다.


귓가에 현실의 목소리가 에코처럼 울려 퍼졌다.


- 신부님…… 제발 돌아오세요. 저 같은 길거리의 하찮은 수녀도 구해주셨으면서, 왜 스스로를 지옥에 버려두려 하십니까…….


에밀리였다.


현실에서 그녀가 흘린 눈물이, 월광초의 미세한 푸른 가루와 융합되어 레온의 식어가는 현실 육체의 손등을 적시고 있었다. 그 눈물겨운 기도가 영혼의 주파수를 타고 꿈속 심층부까지 흘러들어와, 늪 속으로 가라앉던 레온의 정신체를 단단히 붙잡아맸다.


“에밀리……”


레온은 짓눌린 목구멍을 열어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되뇌었다.


그 따뜻한 온기가 영혼의 맥박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릴리스의 환영이 뿜어내던 지독한 한기가 에밀리의 눈물 자국에 닿아 미세하게 증발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레온은 자신을 짓누르던 거대한 죄책감의 정체를 객관적으로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거지?’


그는 현대의 수면 장애 치료 전문가이자 정신분석의였다. 타인의 무의식을 해부하고 방어기제를 분석하는 데 평생을 바쳤던 사내였다. 그런 그가 정작 자기 자신의 마음의 병을 직면하지 못하고 도망치고 있었다.


그의 트라우마는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가장 정교한 방어기제였다.


의사라는 오만한 자부심에 갇혀, 자신을 찾아온 모든 환자를 완벽하게 구원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렇기에 단 한 번의 실패를 스스로 용서하지 못했다. 릴리스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결국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 무의식 저편에 묻어두었던 비겁한 회피의 산물이었다.


“그래…….”


레온이 무겁게 닫혀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맑은 회색 눈동자가 눈앞에서 자신을 비웃는 전생의 환영, 서준우를 똑바로 응시했다.


“나는 완벽한 신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정신분석의 특유의 어조가 꿈속 공간에 울려 퍼졌다.


“나는 모든 사람을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구원할 수 있는 초월자가 아니다. 그저 상처받은 이들의 곁에 서서,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발버둥 치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완전히 인정하는 순간, 내면을 지배하던 완벽주의의 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어지기 시작했다. 과거의 실패를 억지로 부정하려 버둥거릴 때는 몽마의 독기가 그의 영혼을 좀먹었지만, 자신의 불완전함 자체를 온전히 안아주고 수용하자 몽마가 기생할 수 있는 ‘자책감의 토양’ 자체가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내가 구해야 할 진짜 영혼이 있다.”


레온은 가슴팍을 조여오던 릴리스의 촉수를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적대적인 힘이 아닌, 깊은 연민과 자기 자비(Self-Compassion)가 담긴 손길이었다.


그 순간, 릴리스의 환영이 고통스러운 비명 대신 멍한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휘감고 있던 검은 몽마의 점액질이 하얀 빛의 파편으로 변해 흩날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레온의 내면 깊은 곳에서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하얗고 차가운 현대의 병실 벽면이 무너지며, 그 이면에 잠들어 있던 순수한 무의식의 영역이 개방되었다.


그의 무의식 한가운데에, 어떠한 오염도 침투할 수 없는 완벽한 가상의 무균 치료실이 우뚝 솟아올랐다. 이세계의 마법적 법칙과 현대 정신의학의 정수가 결합하여 탄생한 절대적인 자아 보존 영역, ‘정신적 격리실’이 완벽하게 재구축된 것이다.


이 내적 통합에 호응하듯,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낡은 은색 청동 종이 스스로 허공으로 떠올랐다. 종 내부에 잠들어 있던 전대 대현자 알베르트의 영혼 파편이 레온의 위대한 깨달음에 반응하여 공명하기 시작했다.


징-!


그것은 이세계의 물리적 마력 수치를 비웃는,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순수하고 장엄한 파동이었다. 은색 종 표면에 가 있던 시커먼 균열들이 은빛 액체로 메워지며 이전보다 훨씬 단단한 형태로 복원되었다.


[정신 인지 지수: 100% (절대 이성 상태) 도달]

[은색 종의 주파수 동조 법칙 가동 - 공명율 극대화]


레온의 정신체 등 뒤로 눈부신 은빛 날개와 같은 거대한 영적 아우라가 활짝 펼쳐졌다. 현실의 마력은 여전히 1성에 불과했으나, 이 무의식의 세계에서만큼은 그 어떤 8성급 영웅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지배자, ‘몽중의(夢中醫)’의 격이 완전히 완성된 순간이었다.


릴리스의 환영은 마지막 순간, 서준우가 평생 그리워했던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완전히 맑은 은빛 파편으로 산화하여 사라졌다. 몽마가 심어놓았던 전생의 저주가 완벽하게 성불한 것이다.


레온은 허공에서 내려온 은색 종을 가만히 움켜쥐었다. 손끝을 타고 흐르는 종의 진동은 그의 영혼과 완벽한 일체감을 이루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검은 늪지대 너머에서 자신을 향해 공포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는 기생 몽마 그리드의 본체를 바라보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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