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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모래와 전우들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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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레온의 창백한 입술 사이로 뜨거운 김이 새어 나왔다.


지하 감옥의 한기가 폐부를 찔렀지만, 그의 전신은 이미 식은땀과 미세혈관이 터져 흘러내린 피로 젖어 있었다. 손에 쥔 낡은 은색 청동 종은 카일의 심층 무의식에서 꿈틀거리는 몽마의 맥박과 공명하며, 기분 나쁜 검은 점액질 같은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어두운 파동이 레온의 손가락 끝을 타고 올라와 영혼을 잠식하려 했다.


정신이 오염되는 극심한 통증 속에서도 레온의 이성은 얼음처럼 차갑게 빛났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현대의 수면 장애 치료 전문가이자 정신분석의였던 서준우. 이세계의 장님 사제 레온의 몸에 빙의한 그가 살기 위해 잡은 첫 번째 동줄이 바로 눈앞에 쓰러진 검왕 카일이었다. 카일을 구하지 못하면 자신 역시 이 음침한 수용소 지하에서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할 운명이었다.


“신부님……! 손이, 손이 검게 물들고 있어요!”


에밀리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레온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녀의 주위로 황색의 공포와 청색의 불안이 뒤섞인 오라가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에밀리, 내 말을 잘 들으세요.”


레온은 안대를 벗은 창백한 얼굴을 에밀리 쪽으로 돌렸다. 그의 흐릿한 회색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지만, 목소리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부터 나는 카일 경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갑니다. 일종의 ‘몽계 강제 진입(Dream Dive)’입니다. 내가 그 안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현실의 내 육체를 지켜주어야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카일 경의 호흡과 맥박을 계속 살피세요. 만약 그의 신체에 흐르는 마력이 다시 폭주하려 한다면, 그대의 약초 가방에 있는 은신초 가루를 그의 코끝에 대어 진정시켜야 합니다. 내 육체가 일시적인 가사 상태에 빠지더라도 절대 당황하지 마십시오.”


에밀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깊은 경외감이 깃들어 있었다. 레온은 그녀의 반응을 정밀 청각으로 확인한 뒤, 검게 진동하는 은색 종을 가슴께로 가져갔다.


‘동조 주파수 설정. 대상의 뇌파 대역, 델타파 하향 고정.’


레온이 마음속으로 연산을 시작했다. 그의 1성급 미약한 마력이 은색 종의 고대 룬 문자를 자극했다.


딩-.


장엄하고 맑은 종소리가 지하 감옥의 정적을 찢었다. 그 소리는 고막이 아닌 영혼의 고막을 울리는 파동이었다. 종소리가 퍼져나감과 동시에, 레온의 자아 정신체가 현실의 나약한 육체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시야가 완벽한 어둠에서 회색빛의 소용돌이로 전환되었다. 현실과 꿈의 경계선인 ‘회색 안개 바다’였다. 아무런 형태도, 소리도 없는 침묵의 바다를 레온의 자아는 은색 종소리의 진동을 나침반 삼아 무서운 속도로 관통해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안개가 걷히며 카일의 심층 무의식 세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옥이군.”


레온의 정신체 입에서 나지막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곳은 하늘마저 핏빛으로 물든 황량한 사막이었다. 하늘에서는 붉은 피가 가늘게 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고, 대지에는 수천, 수만 개의 검날과 부서진 방패들이 무덤의 비석처럼 꽂혀 있었다. 찌는 듯한 열기와 함께 썩은 철분 냄새가 공기 중에 가득했다.


치익, 치익.


하늘에서 내리는 핏빛 비가 레온의 정신체 어깨에 닿을 때마다 영혼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고개를 들었다. 정신체 표면에 미세한 붉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감적 오감 공유 규칙.’


환자의 무의식에 침투한 치유사는 환자가 느끼는 고통과 공포를 동일한 농도로 공유하게 된다. 지금 레온이 느끼는 지독한 두통과 호흡 곤란은, 카일이 평생 안고 살아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물리적 통증이었다. 가슴이 철제 조여개로 압착당하는 듯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레온은 흐트러짐 없이 똑바로 걸어 나갔다.

신기하게도, 이 꿈속 세계에서는 현실의 실명 저주가 통하지 않았다. 레온은 자신의 맑은 회색 눈동자로 붉은 전장의 지형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몽계의 물리 법칙 불일치율.’


현실의 물리 법칙과 마력 등급은 이곳에서 무의미했다. 오직 자아의 단단함과 상상력의 깊이만이 힘이 되는 세계. 마력 1성의 최약체인 레온이 이 지옥 같은 공간을 똑바로 걸을 수 있는 이유였다.


레온은 전장의 중앙, 거대한 단두대의 형상을 한 바위 언덕 아래에서 카일을 발견했다.


대륙 최강의 검왕이라 불리던 거한은 어디로 가고, 그곳에는 피 묻은 가죽 갑옷을 입은 채 머리를 감싸 쥐고 웅크려 떨고 있는 초라한 영혼만이 있었다. 카일의 정신 인지 지수는 이미 20% 이하, 완전한 자아 붕괴 직전의 상태였다.


“카일 경.”


레온이 다가가려던 그 순간, 붉은 모래바닥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대지가 갈라지며, 그 틈새에서 피 묻은 녹슨 갑옷을 입은 해골들이 무리 지어 솟아올랐다. 하나같이 가슴팍이 뚫려 있거나 목이 잘려 나간 참혹한 몰골이었다. 그들의 썩어 문드러진 해골 투구 아래, 텅 빈 눈 안쪽에서 기괴한 보랏빛 안광이 번뜩였다.


그 보랏빛 안광의 틈새로, 징그러운 검은 점액질 촉수들이 기어 다니는 모습이 레온의 심안에 포착되었다.


‘기생 몽마의 흔적이다. 이 트라우마를 조종하고 있어.’


그 해골들은 과거 전쟁터에서 카일이 구하지 못하고 죽어간 그의 옛 전우들이었다. 죄책감이 만들어낸 최악의 방어기제이자 ‘망령 군단’이었다.


“왜 우리를 두고 혼자 살아남았지?”

“카일 대장…… 당신이 우리를 죽인 거야!”

“이 비겁한 도망자 놈!”


수백 명의 망령들이 내뿜는 원망의 비명이 붉은 하늘을 뒤덮었다. 그 소름 끼치는 음파가 레온의 정신체를 직격했다.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으며 숨이 완전히 막혔다. 카일이 느끼는 생존자 죄책감의 무게가 오감 공유를 통해 레온의 영혼을 짓눌렀다.


“으아아아악! 저리 가! 오지 마라!”


카일이 비명을 지르며 spectral 대검 ‘아수라의 심장’을 뽑아 들었다. 그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장엄한 붉은 검기가 대지를 가르며 수십 명의 해골 망령들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콰아아앙!


하지만 소용없었다. 부서진 뼈 마디들은 검은 점액질 촉수들에 의해 순식간에 다시 이어 붙여지며 무한히 재생되었다. 오히려 모래바닥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뼈 손들이 카일의 발목을 옥죄며 그를 늪처럼 붉은 모래 속으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검으로는 이들을 벨 수 없다, 카일 경! 검을 거두십시오!”


레온이 소리쳤지만, 공황 상태에 빠진 카일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때, 레온의 목소리를 들은 망령 군단이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수백 개의 텅 빈 해골 구멍들이 일제히 레온을 향했다. 그들의 눈동자 속 검은 촉수들이 침입자를 향해 굶주린 듯 요동쳤다.


“방해꾼이 나타났다…….”

“너도 함께 이 피의 모래 밑에 묻어주마!”


망령 군단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뼈로 된 창날과 녹슨 도끼를 치켜들었다. 대지를 짓밟는 무수한 뼈들의 마찰음과 함께, 그들이 레온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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