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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감옥의 붉은 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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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바닥에 떨어진 철제 열쇠가 차가운 돌바닥을 구르며 둔탁한 금속음을 냈다. 핏빛이 도는 기괴한 형상의 열쇠. 헤이븐 요새 수용소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가 갇혀 있다는 ‘붉은 사슬의 방’으로 향하는 열쇠였다.


레온은 허리를 굽혀 열쇠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철의 냉기가 뇌 신경을 타고 올라와 안구 뒤편의 만성적인 통증을 찌릿하게 자극했다. 이미 소장 크로이츠와의 심리전에서 ‘심안(心眼)’과 ‘정밀 청각’을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고 있었지만, 레온은 얇은 실크 안대 아래로 가만히 숨을 골랐다.


우웅, 우우웅.


기도실 바닥을 통해 희미한 진동이 전해졌다. 그것은 수용소 지하 수십 미터 아래, 가장 깊고 음침한 나락에서부터 올라오는 짐승의 포효였다. 물리적인 소리라기보다는 마력의 파동이 대지를 흔드는 기괴한 울림이었다.


“신부님…… 정말로 내려가실 생각입니까?”


기도실 구석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약제 수녀 에밀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품에는 약초 주머니가 위태롭게 안겨 있었다. 에밀리의 오라는 황색의 두려움과 청색의 걱정으로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려가야 합니다.”


레온은 차분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아래에서 울부짖는 영혼이 나를 부르고 있으니까요.”


레온은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소리의 반사음과 미세한 마력 흐름을 읽는 심안 덕분에,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지하 계단을 내려가는 몸짓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에밀리는 그의 기이할 정도로 담대하고 흔들림 없는 뒷모습에 홀린 듯, 침을 삼키며 그 뒤를 따랐다.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공기는 급격히 차가워졌고, 썩은 피와 비린내 나는 마력의 악취가 코를 찔렀다. 사방의 돌벽에는 수없이 많은 긁힌 자국과 도검의 흔적들이 깊게 패어 있었다. 전쟁의 영웅이었으나 마력 폭주로 미쳐버린 자들이 자아를 잃고 날뛰며 남긴 절망의 손톱자국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최하층 복도 끝.


콰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강철로 된 감옥 문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붉은색 마력의 폭풍이 통로를 쓸어내리며 돌가루와 먼지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쇠사슬이 거칠게 끊어지며 사방으로 튀는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울렸다.


“크아아아악!”


그것은 인간의 목청에서 나올 수 없는 포효였다.


먼지구덩이 속에서 거대한 실루엣이 걸어 나왔다. 흐트러진 흑발 사이로 번뜩이는 붉은 안광, 전신에 수많은 사투의 흉터를 지닌 거한. 대륙 최강의 검왕이자 구국의 영웅이었던 카일이었다.


그의 몸 주변으로는 피처럼 붉고 탁한 마력 검강(劍강)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8성급 강자의 절대적인 무력이 자아를 잃고 폭주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마력 과부하성 인지 장애의 극단적인 형태.’


레온은 심안을 통해 카일의 오라를 관찰했다. 그의 정신은 이미 완전한 암적색의 광기와 칠흑 같은 절망으로 뒤덮여 있었다. 정상적인 이성의 영역은 단 1%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카일의 찢어진 피부 틈새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바라보던 레온의 청각과 후각이 기묘한 왜곡을 감지했다. 카일의 피가 바닥의 차가운 돌에 닿는 순간,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하고 기분 나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마력 과부하가 아니다.’


레온의 뇌릿속에 현대 의학적 분석 능력이 번개처럼 스쳤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인지 장애라면 피에서 저런 독성 반응이 나올 리 없었다.


‘데몬 브레스(Demon Breath). 뇌의 마력 미세혈관을 강제로 확장시켜 피아 식별 불가의 광증을 유발하는 극독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카일에게 이 독약을 투여해 폭주를 유도했다.’


성황청이 영웅들을 도구로 쓰고 버리기 위해 자행한 추악한 음모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곱씹을 시간은 없었다.


“이단자 놈들! 모두 베어버리겠다!”


카일이 포효하며 대검 ‘아수라의 심장’을 치켜들었다. 붉은 검기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지하 감옥의 두꺼운 돌벽들을 무차별적으로 분쇄하기 시작했다. 무너져 내리는 돌더미 속에서 에밀리는 비명을 지르며 약초 가방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퇴로가 막힌 채 감옥 구석에 완벽히 고립되고 말았다.


“성광의…… 진정 수, 술식이여……!”


에밀리가 떨리는 손으로 성황청 정통의 진정 주문을 외우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녀의 2성급 신성 마력이 채 형상화되기도 전에, 카일이 내뿜은 8성급 광기 어린 포효가 공기를 찢고 에밀리의 마력 회로를 직격했다.


콰앙!


“아악!”


주문 캐스팅이 산산조각 깨어지며 에밀리는 뒤로 나자빠졌다. 마력 역류로 인해 그녀의 입가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카일은 자아를 잃은 붉은 눈동자로 에밀리를 쏘아보더니, 거대한 대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대로 내리친다면 에밀리는 흔적도 없이 으스러질 터였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타닥, 타닥.


장님의 낡은 나무 지팡이가 돌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기이할 정도로 차분하게 울려 퍼졌다.


레온은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카일이 내뿜는 파괴적인 붉은 마력 폭풍의 한가운데를 향해, 한 걸음씩 똑바로 걸어 나갔다.


“신부님! 안 돼요! 도망치세요!”


에밀리가 절규하듯 소리쳤지만, 레온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장님 사제용 실크 안대’를 천천히 풀어 내렸다.


드러난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흐릿하고 창백했다. 하지만 그 흐릿한 눈동자 너머의 심안은, 카일의 전신에 얽혀 있는 폭주하는 마력의 미세한 흐름과 독소의 주파수를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카일 경.”


레온의 목소리는 폭풍 속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대의 칼날이 향해야 할 곳은 이 무고한 아이가 아닙니다. 그대를 이 어둠 속에 가둔 진짜 적들을 보십시오.”


“크아아악! 죽어라!”


카일이 타겟을 바꾸어 레온을 향해 돌격해 왔다. 대지를 뒤흔드는 거구의 질주와 함께, 대검 ‘아수라의 심장’이 뿜어내는 피비린내 나는 검강이 레온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마력 1성의 최약체 사제가 8성급 검왕의 참격을 맨몸으로 마주하는 상황. 정면으로 맞선다면 뼈도 남지 않을 자살 행위였다.


하지만 레온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사제복 안쪽 주머니에서 낡은 은색 청동 종을 꺼내 들었다.


‘절대 정적 영역 (Silent Zone).’


딩-


레온이 마력을 주입하여 종을 아주 미세하게 거꾸로 흔들었다.

그 순간, 레온을 중심으로 반경 5미터 이내의 모든 소리와 진동이 기적처럼 소멸했다. 카일의 대검이 뿜어내던 파괴적인 검기의 진동, 대지를 뒤흔들던 발자국 소리, 심지어 울부짖던 포효 소리마저 완벽한 무음(無音)의 장벽 속에 갇혔다.


소리의 진동이 상쇄되자, 검기가 지니고 있던 물리적인 파괴 에너지 역시 갈 길을 잃고 일시적으로 이완되며 흩어졌다.


“으윽……?!”


갑작스럽게 찾아온 지독한 정적과 감각의 차단에 카일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둔화되었다. 자아를 잃은 뇌가 외부 자극을 잃고 일시적으로 인지적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이다.


투두둑, 투둑.


하지만 대가는 끔찍했다. 8성급 무력의 무시무시한 물리적 기세를 마력 1성의 나약한 육체로 맨몸으로 버텨내는 과정에서, 레온의 전신 피부에 걸려 있던 마력 미세혈관들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회색 사제복의 깃 위로, 그리고 안대를 벗은 창백한 뺨 위로 붉은 피가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극심한 고통이 영혼을 찢는 듯했지만, 레온은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은색 종을 다시 한번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카일의 흐릿한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종을 일정한 리듬으로 세 번 울렸다.


딩. 딩. 딩.


‘1단계: 공명 (몽환 인도).’


그것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었다. 은색 종소리의 주파수가 카일의 폭주하는 뇌파 대역에 강제로 동조하며, 그의 무의식의 방어벽을 낮추는 영적 파동이었다. 레온의 목소리가 무음의 영역을 뚫고 카일의 이성에 직접적으로 도달했다.


“카일 경, 전쟁은 끝났습니다. 전우들은 더 이상 그대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 무거운 검을 내려놓고…… 깊은 잠에 드십시오.”


현대의 정신분석학적 최면 기법과 이세계의 고대 공명 유물이 만들어낸 완벽한 ‘몽환 인도 술식’이었다.


스우우우.


붉은 검기를 두른 카일의 거대한 검날이 레온의 이마 바로 위, 단 몇 밀리미터의 거리에서 멈추어 섰다. 날카로운 검풍이 레온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뒤흔들었으나, 칼날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카일의 눈동자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광기 어린 붉은 안광이 거짓말처럼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대검을 쥐고 있던 그의 거대한 팔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쿵.


아수라의 심장이 돌바닥에 떨어지며 깊은 궤적을 남겼고, 카일의 거구가 무너지듯 레온의 발치에 쓰러졌다. 그의 거친 호흡이 평온한 수면의 리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강제 수면 유도가 성공한 것이다.


“아…….”


구석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에밀리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레온을 바라보았다. 마력 1성의 장님 사제가, 대륙 최강의 괴물을 말 한마디와 종소리 하나로 잠재웠다. 그것은 성황청의 가학적인 정화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영혼을 어루만지는 진짜 기적이었다. 에밀리의 눈동자에 레온을 향한 깊은 경외감과 신뢰의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온은 승리를 만끽할 여유가 없었다.


지하 감옥 바닥에 쓰러진 카일의 몸을 심안으로 들여다보던 레온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 카일의 호흡은 안정되었으나,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검은 파동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카일의 가슴팍에서 기분 나쁜, 기생적인 심장 박동 소리가 레온이 쥔 은색 종의 금속 표면을 타고 역류해 들어왔다. 그것은 카일의 트라우마를 갉아먹으며 자라나고 있는 고대 몽마의 맥박이었다.


종을 쥔 레온의 손가락이 기괴한 진동과 함께 검게 물들려 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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