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 향하는 발걸음
지하 갱도로 향하는 비밀 문을 여는 순간, 어둠 속에서 수색견들의 기괴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운 흙먼지와 썩은 하수구의 악취가 뒤섞인 공기가 레온의 코끝을 스쳤다. 앞을 보지 못하는 레온의 세계는 암흑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주변의 미세한 소리와 진동, 그리고 생명체들이 뿜어내는 영혼의 파동이 기하학적인 선과 오라의 색깔로 정교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레온은 ‘영혼의 빛을 읽는 심안 (心眼)’을 개방했다.
그의 시야에 동료들의 오라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로 곁에는 전성기의 이성과 8성급 무력을 완벽하게 복원한 검왕 카일이 묵직하고 거대한 은빛과 검붉은색의 오라를 품은 채 침묵의 파수꾼처럼 서 있었다. 그 뒤편에는 노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따뜻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오라의 에밀리가 서 있었고, 가르시아는 어깨의 깊은 자상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오라를 억누르며 단단한 녹색의 오라로 레온의 후방을 지탱하고 있었다. 가르시아의 붕대를 감은 손바닥에는 아까 녹슨 무쇠 빗장을 비틀다 입은 화상 흉터가 여전히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었다.
“지하 수로의 물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레온이 낮게 속삭였다. 그의 예리한 정밀 청각이 하수도 통로 너머에서 들려오는 불규칙한 첨벙거림을 잡아냈다. 단순한 물울림이 아니었다. 발렌티노 단장이 이끄는 ‘성황청 본청 이단심문소 제3추적대’의 신성 탐지견들이 빈민가 구석구석을 수색하며 포위망을 좁혀오는 소리였다.
“가르시아 경, 길을 안내하십시오. 지상의 도로가 완전히 차단된 지금, 우리에게 남은 퇴로는 오직 광산 노동자 대표 톰이 전해준 비밀 광도뿐입니다.”
“예, 신부님. 저를 따르십시오.”
가르시아가 무거운 철제 곤봉을 고쳐 잡으며 앞장섰다. 전직 간수였던 가르시아는 요새 내부 경비병들의 순찰 프로토콜과 취약 시간대를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일행은 하수도의 어둡고 축축한 미로를 신속하게 관통해 나갔다. 에밀리는 바르가스의 공격으로 입은 오른쪽 어깨의 타박상 통증 때문에 신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이빨을 악물며 참아내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가르시아가 멈춰 선 곳은 하수도 벽면의 무너진 돌벽 틈새였다. 그 안쪽으로 거칠게 깎인 천연 암반 통로가 이어져 있었다. 헤이븐 광산 지대의 외곽 갱도로 연결되는 비밀 통로였다.
통로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대기의 질감이 급격하게 변했다. 공기는 고농도의 천연 마력석들이 내뿜는 불규칙하고 둔탁한 진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레온의 심안에 비친 주변 암벽들은 온통 은은한 푸른빛과 보랏빛의 마력 잔향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톰이 일러준 대로, 이 지하 광산 내부의 거대한 천연 마력석 기류는 성황청의 정밀 신성 감지기와 마력 나침반을 교란하는 완벽한 잡음 장벽이 되어줄 터였다.
하지만 위기는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으르렁—.
하수도 입구 방향에서 들려온 기괴한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동굴 벽면을 타고 메아리쳤다.
레온의 정밀 청각이 사냥개들의 거친 호흡음과 함께, 금속 갑옷이 미세하게 쓸리는 소리를 포착했다. 본청의 정예 정찰병, 레오폴드 주니어였다. 그는 흔적을 추적하는 데 특화된 3성급 정찰 기사로, 신성 탐지견 부대를 이끌고 일행이 방금 통과한 지하 입구의 미세한 마력 흔적을 감지한 것이 분명했다.
“쉿, 모두 멈추십시오.”
레온이 손을 들어 일행을 정지시켰다. 심안을 통해 하수도 입구 쪽을 바라보자, 날카롭고 예리한 녹색의 수색 오라가 갱도 내부를 향해 빠르게 뻗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레오폴드 주니어의 사냥개들이 기민하게 냄새를 맡으며 갱도 분기점까지 턱밑까지 쫓아오고 있었다.
“젠장, 벌써 쫓아왔군.”
가르시아가 이를 갈며 무거운 곤봉을 치켜들었다.
“신부님, 제가 입구의 바위를 무너뜨려 길을 막겠습니다. 곤봉으로 저 지지대를 강타하면 입구가 완전히 매몰될 겁니다.”
“멈추십시오, 가르시아 경.”
레온이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가르시아의 팔을 제지했다.
“돌이 무너지는 거대한 굉음은 이 좁은 갱도 내부에서 적들에게 우리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될 뿐입니다. 발렌티노 단장의 대부대가 요새 전체를 메우고 있는 상황에서, 소음으로 위치를 노출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입니다.”
가르시아는 레온의 논리적인 지적에 즉각 수긍하며 곤봉을 내렸다.
그 사이, 토비가 재빨리 움직였다. 소년은 광산 바닥에 널려 있던 헤이븐 특산 철광석 가루와 매캐한 석탄 먼지를 양손 가득 움켜쥐고는, 일행이 걸어온 발자국 위에 정교하게 뿌리기 시작했다. 고농도 철광석의 낮은 마력 전도율을 이용해 아군의 신성력 잔향과 체취를 일시적으로 덮어버리는 기민한 위장이었다.
“이쪽입니다. 더 깊은 사각지대로 숨어야 합니다.”
레온은 톰의 광도 지도를 머릿속으로 되뇌며, 심안으로 적들의 수색 오라가 미치지 않는 어두운 갱도 막다른 길목의 좁은 틈새를 찾아내 일행을 이끌었다.
차가운 바위벽 뒤에 몸을 밀착시키는 순간, 갱도 모퉁이 너머로 불길하고 붉은 횃불의 그림자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신성 탐지견들의 발톱이 젖은 돌바닥을 긁는 소리가 귓가를 바짝 조여왔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에밀리는 숨을 죽였고, 카일은 대검의 자루를 쥔 채 레온의 신호만을 기다리며 온몸의 마력을 극도로 수축시켰.
레온은 귀를 기울였다. 그의 예리한 청각은 벽 너머 레오폴드 주니어의 움직임을 세포 단위로 해부하고 있었다.
정찰 기사의 가슴팍 부근에서 기묘한 고주파의 진동음이 들려왔다.
‘치리릭, 치리릭…….’
그것은 마력을 원거리로 송신하는 성황청 본청의 마도구, ‘마력 발신 수정’이 작동할 때 발생하는 특유의 마찰음이었다. 레오폴드 주니어는 일행의 정확한 좌표를 발신하여 지상에 대기 중인 발렌티노의 정예 성기사단을 이 지하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만약 저 수정이 완전히 활성화되어 성황청 본청의 대부대가 이 좁은 갱도로 들이닥친다면, 아무리 검왕 카일이라 할지라도 부상당한 동료들을 지키며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극도의 압박감이 어두운 갱도 안을 무겁게 짓눌렀다.
어두운 갱도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멀리서 탐지견들의 기괴한 으르렁거림과 횃불의 붉은 그림자가 벽면을 타고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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