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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학의 우리와 영혼의 주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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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단순히 빛이 부재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끈적끈적한 타르처럼 온몸을 조여오는 무겁고 축축한 압박감이었다.

하지만 그 질식할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레온의 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게 깨어나 있었다.


낡은 은색 종을 만지는 순간, 레온의 머릿속에 이세계의 소리와 감정의 파동이 기하학적인 선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실명한 눈앞을 가득 채우던 암흑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그것은 시각의 회복이 아니었다. 소리의 미세한 떨림과 공간을 떠도는 마력의 파동이 뇌 신경을 타고 들어와 입체적인 윤곽선으로 재구성되는, 영혼의 지각력에 가까운 초감각이었다.

이것이 바로 자료에 언급되어 있던 ‘영혼의 빛을 읽는 심안(心眼)’의 개방이었다.


‘보인다…….’


레온은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안대 너머의 세상은 회색빛의 선과 다채로운 감정의 오라로 가득 차 있었다. 기도실 벽면에 낀 축축한 이끼의 결, 쇠창살의 녹슨 표면, 그리고 바닥의 갈라진 틈새까지도 소리의 반사음을 통해 정교한 3D 가상 현실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 회색빛 선들 위로, 복도 너머에서 다가오는 존재들이 내뿜는 기분 나쁜 색채의 감정 오라가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찰랑.


무겁고 오만한 발자국 소리였다. 가죽 장화가 축축한 돌바닥을 거칠게 짓밟는 불규칙한 리듬, 그리고 허리춤에서 요란하게 흔들리는 철제 열쇠 꾸러미 소리.

레온은 침착하게 손안의 은색 청동 종을 사제복 안쪽 깊숙한 주머니에 숨겼다. 아직 이 기적의 도구를 저들에게 들킬 수는 없었다. 스승 조셉의 경고대로, 사제가 아닌 자가 무의식이나 영혼의 주파수를 조율하는 것은 성황청의 율법에 따라 즉시 화형에 처해질 이단 행위였으니까.


쾅!


지하 기도실의 낡은 나무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열렸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탁한 공기 속에서 싸구려 기름진 향수 냄새와 피비린내 나는 가죽 냄새가 뒤섞여 풍겼다.


"아직 살아 있군, 그레이 백작가의 눈먼 쓰레기 녀석."


조롱 섞인 쉰 목소리가 좁은 방 안을 울렸다.

레온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의 머릿속 기하학적 시야에 두 남자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비쳤다.


한 명은 기름진 갈색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겼지만, 주위로 황색의 비열한 공포와 자색의 탐욕스러운 오라가 지저분하게 뒤섞여 뿜어져 나오는 사내. 수용소의 소장, 크로이츠였다. 그의 손에는 끝부분이 갈라진 가죽 채찍이 들려 있었고, 그 채찍 끝은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툭툭 치고 있었다.


그의 뒤를 든든하게 받치고 선 또 다른 사내는 거구에 온몸이 흉터투성이인 사내, 간수장 바르가스였다. 바르가스의 오라는 검붉은 살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레온의 ‘정밀 청각 심리 분석’이 포착한 것은 그들의 거친 기세만이 아니었다. 바르가스의 뒤편에 서서 무거운 철제 곤봉을 들고 서 있는 하급 간수, 가르시아의 미세한 호흡 변화가 레온의 귀에 걸려들었다.


‘……가르시아.’


가르시아는 바르가스의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의 심박 음은 비정상적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호흡은 얕고 불규칙했으며, 바르가스가 채찍을 휘두르거나 소리를 지를 때마다 가르시아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은 단순한 복종이 아니었다. 강압적인 폭력과 가학적인 통제 아래 억눌린 자가 품는 깊은 불만과 분노,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살의의 전조였다.

현대 정신분석학 전문가로서 수많은 환자의 내면을 해부해온 준우의 감각이 속삭였다. 저 사내의 내면에는 이미 성황청의 가학적인 시스템에 대한 회의감이 임계점까지 쌓여 있다고. 이 작은 심리적 틈새는 훗날 이 지옥 같은 수용소를 탈출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터였다.


"소장님께 인사를 올리지 않고 무엇을 멍하니 서 있는 거냐, 장님 녀석."


바르가스가 쇠사슬 채찍을 바닥에 가볍게 내리치며 으르렁거렸다.

레온은 얇은 실크 안대 너머로 그들을 응시하며, 차분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눈이 멀어 소장님의 존엄하신 모습을 뒤늦게 인지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크로이츠 소장님."


"흥, 말만 번지르르한 그레이 가문의 낙오자 녀석."


크로이츠가 성큼성큼 다가와 가죽 채찍 끝으로 레온의 턱을 툭툭 건드렸다. 채찍에서 풍기는 오래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듣자 하니, 네놈의 가문에서 이번 달 수용비로 보내온 은화가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더군. 그 고귀하신 그레이 백작께서도 이제 이 눈먼 오물 덩어리를 완전히 포기하신 모양이지? 하긴,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장님 사제 녀석에게 더 이상 은화를 낭비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겠지."


크로이츠의 오라 중 자색의 탐욕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비열한 쥐새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레온의 주머니 부근을 훑어보았다. 무언가 값나가는 유품이라도 숨겨두지 않았는지 확인하려는 심산이었다.


"너 같은 맹인 수습 사제 하나를 먹여 살리는 데도 주교님께 바칠 헌금이 모자라단 말이다. 게다가 저 아래 최하층에 갇힌 미치광이 전사 놈들이 매일 밤 질러대는 비명 때문에 수용소의 평판이 말이 아니야. 그 미치광이 영웅 놈들을 악마 들림이라며 가두어 두는 것도 한계가 있단 말이지."


"그들은 광증에 걸린 것이 아닙니다."


레온이 나직하지만 명확한 어조로 반박했다.


"……무어라?"


"과도한 마력 사용으로 인해 뇌 신경망의 미세 혈관이 마력에 오염되어 발생한 인지 왜곡일 뿐입니다. '마력 과부하성 인지 장애 법칙'에 따르면, 이것은 악마의 속삭임이나 신의 징벌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고문이나 약물 억압, 혹은 성황청의 가학적인 채찍질로는 결코 치료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환자의 방어기제를 자극해 광증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하! 1성 마력짜리 장님 사제 녀석이 어디서 주워들은 이단적인 학설을 지껄이는 거냐?"


크로이츠가 비웃으며 채찍을 치켜들었다.


"그들이 미친 것은 신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주교 바르샤 님께서도 그들을 악마 들린 자들로 규정하고 이단 심판을 선포하셨지. 우리는 그저 그들의 더러운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 합당한 고통을 줄 뿐이다. 물론, 그들의 가족이 보내오는 막대한 치료비와 영지는 성황청의 성스러운 사업을 위해 주교님께 고스란히 상납되고 있지만 말이다."


레온의 심안이 크로이츠의 오라를 더 깊이 파고들었다. 황색의 공포가 자색의 탐욕 뒤편에서 미세하게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정밀 청각 분석 역시 크로이츠의 호흡이 미세하게 떨리고, 심장 박동 수가 급격히 상승했음을 알려왔다.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주교 바르샤에게 상납한다는 헌금의 내역…….’


준우는 직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성황청이 전쟁 영웅들의 광증을 빌미로 그들의 가족에게서 착취한 막대한 은화와 영지. 그리고 그 자금을 관리하는 수용소 소장 크로이츠.

이 탐욕스러운 사기꾼이 주교 바르샤의 이름을 팔아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소장님."


레온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주교님께 상납하는 헌금의 내역과, 실제 백작가들이 보내온 치료비의 장부 수치가 일치하지 않는 모양이군요."


"……이, 이 무슨?!"


크로이츠의 신체 오라가 일순간 황색으로 폭발하듯 번졌다. 그것은 극심한 당황과 감출 수 없는 공포의 빛깔이었다. 채찍을 쥐고 있던 그의 손가락이 눈에 띄게 떨렸다.


"소장님께서 주교 바르샤 님께 바치는 상납금의 이면에, 개인적인 영지 매입을 위한 이중 장부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뒷골목 상단을 통해 들려왔습니다. 만약 성황청 본청의 이단심문관들이 이 유배지에 들이닥쳐 장부를 검수한다면…… 그들이 가장 먼저 화형대에 세울 진짜 이단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 이 미친 장님 녀석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감히 성황청의 신관인 나를 모함하려 들다니!"


크로이츠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뒤집혔다. 그의 호흡 주기는 완전히 무너져 가쁘게 헐떡이고 있었다. 레온의 예리한 심리 분석이 그의 가장 아픈 치부인 '장부 횡령과 그로 인한 파멸의 공포'를 정확하게 후벼 판 것이다.

그는 자신의 범죄가 들통날까 봐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바르가스! 이 건방진 장님 놈의 주둥이를 당장 찢어버려라! 주머니를 뒤져서 가진 것들을 모조리 빼앗아! 저 안대 속에 숨겨진 쓸모없는 눈알마저 뽑아버려!"


크로이츠의 광기 어린 비명에, 간수장 바르가스가 흉포한 검붉은 오라를 뿜어내며 허리춤의 거대한 철제 도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살기가 좁은 기도실의 공기를 물리적으로 짓눌렀다. 3성 무투가인 바르가스의 완력은 마력 1성의 레온을 단숨에 고기반죽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위기였다. 레온은 본능적으로 체내의 미세한 성력을 끌어올려 방어벽을 치려 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 중앙에서 깜빡이던 마력 핵은 불꽃을 피우기도 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1성 마력의 한계였다. 억지로 성력을 방출하려다가는 오히려 뇌 신경의 영적 저주와 충돌해 스스로 자아가 붕괴할 판이었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레온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는 사제복 안쪽 주머니에 손을 밀어 넣어, 숨겨두었던 낡은 은색 청동 종의 표면을 손가락 끝으로 미세하게 튕겼다.


딩-


극도로 미세하고 나직한 종소리가 기도실 바닥을 타고 수평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은 일반적인 인간의 청각으로는 거의 들리지 않는 극저주파의 진동이었다. 하지만 그 진동은 공기를 매개로 바르가스와 크로이츠의 뇌파에 직접적으로 간섭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뇌가 가장 평온함을 느끼는 특정 주파수 대역, 즉 '뇌파 안정 공명 주파수'였다.


스우우우…….


일순간, 칼을 치켜들었던 바르가스의 거친 호흡이 멈칫했다. 그의 검붉은 오라 주변을 감싸던 사나운 살기가 눈 녹듯 이완되며, 검을 쥔 팔의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 으윽?"


바르가스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지독한 나른함과 평온함에 그의 투지가 꺾이고 있었다.

크로이츠 역시 채찍을 쥔 손에 힘이 빠져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뇌파 안정 주파수가 그들의 흥분된 자아 방어선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미세한 마력 조율과 심안, 그리고 정밀 청각을 동시에 개방한 탓에 레온의 눈 뒤편에서 바늘로 뇌수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발생했다. 안대 너머로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레온은 평정심을 유지한 채 더욱 단호한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소장님, 저는 가문에서 버림받은 눈먼 사제일 뿐입니다. 저를 화형대에 세운다고 해서 소장님의 이중 장부 혐의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조용히 내버려 두시는 것이, 그레이 가문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소장님의 비밀을 영원히 묻어두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레온의 목소리에는 흔들림 없는 절대적 이성이 깃들어 있었다.


크로이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종소리의 미세한 진동이 뇌를 흔들어 놓은 탓인지, 눈앞의 장님 사제가 단순한 약자가 아닌, 자신의 영혼 전체를 들여다보고 있는 초월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지독한 인지 왜곡과 공포가 그의 이성을 장악했다.


"……으, 으윽."


크로이츠는 떨리는 손으로 품속을 뒤적였다. 그리고는 녹이 슬어 붉은 빛이 도는 기괴한 형상의 철제 열쇠를 꺼내 들었다. 수용소 최하층, 가장 위험한 미치광이가 가두어진 '붉은 사슬의 방' 열쇠였다.


"좋다, 네놈의 그 건방진 주둥이가 어디까지 통하는지 지켜보지."


크로이츠가 비열하고도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레온의 발밑으로 열쇠를 던져주는데...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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