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개의 이빨과 부활한 검왕
공중에서 하강하는 고르도의 단검이 레온의 목덜미에 닿기 직전, 안전가옥의 철문이 폭풍 같은 검압과 함께 산산조각 나며 떨어져 나갔다.
“신부님!”
가르시아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던졌다. 어깨의 깊은 자상에서 붉은 피가 울컥 뿜어져 나왔지만, 그는 자신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찌그러진 강철 방패를 고르도를 향해 무섭게 던져 올렸다. 가르시아가 무쇠 빗장을 비틀며 입었던 손바닥의 화상 흉터가 붉게 달아오르며 방패가 허공을 갈랐다.
카강—!
날카로운 쇳소리가 밤공기를 찢었다. 공중에서 하강하던 고르도는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기민한 반사 신경으로 쇠사슬 단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방패를 쳐냈다. 방패는 힘없이 튕겨 나가 돌바닥에 박혔고, 고르도의 신형은 가볍게 회전하며 착지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 레온의 등 뒤를 노리던 고르도는 착지와 동시에 쇠사슬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촤르르륵! 뱀처럼 꿈틀거리는 강철 사슬이 쓰러진 레온을 부축하고 있던 에밀리와, 그 옆에서 사르르 떨고 있던 고아 소년 토비의 목덜미를 순식간에 옭아맸다.
“앗……!”
“읍……!”
에밀리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고, 토비는 질식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손으로 사슬을 붙잡았다. 고르도는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쇠사슬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독사의 송곳니라 불리는 푸른 단검의 날카로운 끝이 에밀리의 가냘픈 목덜미를 살짝 스쳐 지나갔다. 얇은 선혈 한 줄기가 수녀의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에밀리는 오른쪽 어깨의 타박상 피멍 통증까지 겹쳐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움직이지 마라, 쥐새끼들아.”
고르도가 흉포한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 5성급 암살자의 오라는 지독한 자색(가학성)과 회색(살기)의 파동을 그리며 주변의 공기를 차갑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장님 신부 녀석. 네놈이 광장의 기적을 폭로하고 저 어리석은 폭도들을 종소리로 가라앉혔을 때는 제법 대단해 보였다만, 결국 현실에서는 촛불 하나 켤 마력도 없는 껍데기였군. 네놈의 손등에 쥔 그 낡은 은색 종을 이리 던져라. 그리고 주교님을 모독한 죄를 참회하며 내 발밑으로 기어와라. 그렇지 않으면 이 년과 꼬맹이의 목을 이 자리에서 도려내 주마.”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광장의 폭도들은 은색 종의 정화 파동에 의해 마음을 진정시키고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있었지만, 그들은 평민에 불과했다. 무자비한 살인 병기인 고르도의 살기 어린 기세 앞에 그들은 공포에 질려 숨을 죽일 뿐이었다. 가르시아는 어깨의 출혈과 탈진으로 인해 무기를 들 힘조차 잃고 바닥에 주저앉아 이빨을 갈았다.
레온은 에밀리의 품에서 벗어나 차가운 돌바닥 위에 무릎을 꿇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귀와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 끝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마력은 완벽하게 고갈되었고, 전신은 납덩이를 얹은 듯 무거웠다.
하지만 레온의 내면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고요했다.
[정신 인지 지수: 100% - 절대 이성 상태 유지 중]
레온은 심안(心眼)을 개방했다. 시각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 기하학적 시야에는 고르도의 영혼 오라와 그가 쥐고 있는 쇠사슬의 연결 주파수가 정교한 선으로 그려졌다. 고르도의 오라 중심부, 그가 방심하고 있는 마력의 흐름이 보였다. 암살자는 레온을 무력한 장님으로 여겨 경계심을 완전히 풀고 있었다.
‘고르도. 네놈의 오만함이 바로 네 무덤이 될 것이다.’
레온은 느슨해진 손바닥 안에서 은색 청동 종을 가만히 만졌다. 비록 마력은 방전되었지만, 종 내부에는 아까의 공명 주파수의 잔향이 미세하게 남아 있었다. 레온은 손끝으로 종의 테두리를 아주 조용히, 외부에는 들리지 않는 미세한 진동으로 가볍게 튕겼다.
그것은 치료소 지하 깊은 곳, 묵묵히 전성기의 무력을 회복하고 대기하고 있던 대륙 최강의 검왕에게 보내는 무언의 정신 신호였다.
‘카일 경. 때가 되었습니다. 그대의 검을 보여주십시오.’
바로 그 순간.
쿠구구구구궁—!
안전가옥 지하에서부터 시작된 지진과도 같은 거대한 진동이 빈민가 광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안전가옥의 낡은 나무 문과 벽면이 폭풍 같은 검압에 밀려 일시에 사방으로 찢겨 나가며 폭발했다. 콰아아앙! 돌가루와 나무 파편이 밤하늘로 솟구치는 가운데, 어둠을 가르고 은빛의 안광이 찬란하게 솟구쳤다.
“……무엇이냐?!”
고르도가 경악하며 고개를 돌렸다.
먼지구덩이 속에서 걸어 나오는 거대한 실루엣. 흐트러진 흑발 사이로 번뜩이는 차갑고 장엄한 은빛 눈동자. 전신에 수많은 검투 흉터를 지닌 거한, 검왕 카일이었다.
카일의 전신에서는 피처럼 붉고 탁했던 광기의 마력이 아닌, 서슬 퍼런 투명함과 은빛 광채를 뿜어내는 마력 8성급(대륙 최강의 검왕)의 절대적인 오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가 내뿜는 압도적인 무력의 기세만으로 주변의 공기가 물리적으로 압착되어 숨이 턱 막히는 위압감을 선사했다.
“카, 카일…… 경? 네놈은 분명 미쳐서 사슬에 묶여 있었을 텐데……!”
고르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거칠게 떨렸다. 그의 심박수가 급격히 요동치는 소리가 레온의 정밀 청각에 포착되었다.
카일은 대검 ‘아수라의 심장’을 느슨하게 쥔 채, 대지 전체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풍기며 고르도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은빛 눈동자에는 과거 동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생존자 죄책감이나 PTSD의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자신을 구원해 준 유일한 군주이자 선지자인 레온을 수호하겠다는 단단하고 숭고한 충성심만이 가득 차 있었다.
“성황청의 사냥개 놈이 감히 어느 분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냐.”
카일의 목소리는 지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거대한 쇠울림처럼 무거웠다.
“히, 익! 오지 마라! 오면 이 년들의 목을 즉시 베어버리겠다!”
고르도가 비명을 지르며 에밀리의 목을 향해 쇠사슬 단검을 강하게 당기려 했다. 암살자의 비열한 본능이 작동하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력 8성급 대륙 최강의 검왕의 속도는 인간의 인지 능력을 초월해 있었다.
“아수라 참도(Asura's Strike).”
카일의 신형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공간 자체가 일순간 가로로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균열이 일어났다.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공간을 돌파한 카일은 고르도의 눈앞으로 순간 이동하듯 나타났다.
“참천검격(Heaven-Cleaving Slash).”
장엄하고 붉은 은빛 검강(劍강)이 밤하늘을 일도양단하듯 뿜어져 나왔다.
서걱—!
단 한 번의 검격이었다. 어둠 속에서 푸른 빛을 발하던 고르도의 쇠사슬과 독사의 송곳니 단검들이 무형의 검압에 밀려 단숨에 바스러져 가루가 되었다. 고르도가 비명조차 지르기 전, 카일의 대검은 암살자의 쇠사슬을 부수고, 그의 두 팔을 가차 없이 분쇄한 뒤, 그의 목덜미를 정교하게 스쳐 지나갔다.
스으으윽.
찰나의 정적이 광장을 감쌌다.
툭. 데구르르.
키가 2미터에 달하던 거구의 암살자, 고르도의 거대한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차가운 cobblestone 돌바닥 위를 굴렀다. 목이 잘린 그의 거구는 단 한 방울의 피도 레온 일행에게 튀기지 않은 채, 뒤편으로 쿵 하고 쓰러졌다. 카일이 검압으로 상처를 즉시 태워버리며 피의 궤적마저 완벽하게 제어한 일격 필살이었다.
“아…….”
에밀리가 사슬에서 풀려나 목을 움켜쥔 채 헐떡였다. 그녀의 목에는 가벼운 찰과상 흔적만이 남았을 뿐, 상처는 깊지 않았다. 토비 역시 재빨리 에밀리의 품으로 파고들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가르시아는 부활한 검왕의 압도적인 일격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경외감에 찬 숨을 몰아쉬었다.
광장에 가득했던 군중들이 일제히 경외감과 공포가 뒤섞인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대륙 최강의 검왕이 완벽한 전성기의 기세를 품고 부활했다는 사실은, 요새 전체의 권력 구도를 일시에 파괴하는 신화적인 사건이었다.
카일은 대검에 묻은 보이지 않는 먼지를 털어내듯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쓰러진 고르도의 시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바닥에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장님 신부 레온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철컥.
육중한 강철 갑옷 소리와 함께, 대륙 최강의 검왕 카일이 장님 사제 레온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깃든 거대한 대검 ‘아수라의 심장’의 검자루를 양손으로 정중히 받쳐 들고, 고개를 숙여 레온에게 바쳤다.
“나를 지옥의 악몽에서 구원해 주신 나의 군주이시여. 이 카일의 검과 영혼은 이제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을 해하려는 모든 위선을 내 검으로 베어버리겠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소서.”
카일의 장엄한 충성 맹세가 밤하늘에 묵직하게 메아리쳤다.
레온은 가쁜 호흡을 고르며, 심안을 통해 카일의 영혼 오라를 읽었다. 그의 오라는 이제 흔들림 없는 절대적인 백은색의 빛으로 레온을 향해 공명하고 있었다.
‘부활했군요, 검왕 카일 경.’
레온은 미소를 지으며 카일의 대검 자루 위에 손을 가만히 얹었다. 마력 1성의 나약한 장님 사제와, 마력 8성의 대륙 최강의 검왕이 완벽한 운명의 인과율로 묶이는 순간이었다.
그때, 쓰러진 고르도의 품 안에서 무언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독한 피비린내를 풍기는 검붉은색의 기괴한 약물 병, 그리고 성황청 본청의 상징이자 이단심문관 단장 발렌티노의 핏빛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비밀 지령서였다. 레온은 심안의 마력 추적으로 그것들의 존재를 즉각 인지했다.
그 지령서의 붉은 인장 주파수가 레온의 은색 청동 종과 불길하게 공명하며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요새 외부에서 더 거대하고 광신적인 성황청의 진짜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위험한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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