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의 밤과 정적의 종소리
광장을 가득 채웠던 찬란한 황금빛 안개가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며 흩어진 직후, 축축하고 매캐한 바람이 빈민가의 좁은 골목길을 타고 안전가옥 안쪽까지 밀려들었다.
단상 위에서 바닥으로 쏟아져 내린 ‘루나 드롭(Luna Drop)’의 달콤하면서도 찌르는 듯한 인위적인 약물 향기가 여전히 대기 중에 미세하게 잔존해 있었다. 레온은 그 기묘한 향기를 코끝으로 음미하며, 턱끝으로 흘러내리는 끈적한 핏줄기를 손끝으로 가만히 닦아냈다. 청각을 초활성화하여 주교 바르샤의 사기극을 폭로한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과 함께, 마력 1성이라는 최약체의 육체는 이미 한계에 달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신부님, 제발 더는 움직이지 마세요.”
에밀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다가와 물수건으로 그의 귀밑과 턱에 묻은 피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그녀의 어깨는 바르가스에게 다쳤던 타박상의 여파로 여전히 뻣뻣하게 굳어 있었지만, 레온을 보살피는 손길만큼은 지극히 정성스러웠다. 에밀리의 영혼 오라는 레온을 향한 신앙에 가까운 청색(경외심)과 가슴 아픈 동정심이 뒤섞여 복잡한 파동을 그리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에밀리 수녀. 광장의 사기극이 깨졌으니 주교 바르샤는 이제 코너에 몰렸습니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이빨을 드러내는 법이지요.”
레온은 절대 정적 영역의 여파로 멍해진 가르시아의 어깨를 가만히 짚어주었다. 가르시아는 어깨의 자상과 손바닥의 화상 흉터를 움켜쥔 채, 레온의 곁에서 묵묵히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바르가스의 가학적 지배에서 벗어나 오직 레온만을 향한 단단한 자아의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때, 잭이 바닥의 판자를 들어 올리며 하수도 통로에서 급박하게 솟구쳐 올랐다. 그의 오라는 극도의 황색(공포)으로 물들어 있었다.
“신부님! 큰일났습니다! 주교 바르샤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기극이 폭로되자, 요새 내의 극단적 광신도 집단인 ‘빛의 정화단’을 선동했습니다! 그들의 교주 토마스가 수백 명의 폭도들을 이끌고 이 빈민가 치료소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빛의 정화단…….”
에밀리가 공포에 질려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은 이단 척결이라는 명분 아래 어린아이마저 화형대에 올리는 광신적인 무장 폭도들이었다.
우우우우—!
멀리서 땅을 울리는 수백 명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기괴한 광신의 찬송가가 빈민가 골목을 타고 흘러들기 시작했다. 레온은 정밀 청각 분석을 가동했다. 거친 숨소리, 횃불이 타오르는 매캐한 소리, 그리고 쇠파이프와 낫이 돌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이단의 소굴을 불태워라!”
“악마의 하수인을 화형대에 올려라!”
광신도 교주 토마스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레온이 심안(心眼)을 개방하자, 안전가옥 벽 너머로 수백 개의 횃불이 뿜어내는 이글거리는 적색(분노)과 황색(광기)의 아우라가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드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영혼은 주교 바르샤의 거짓 선동과 루나 드롭의 잔여 중독 증세로 인해 완벽한 집단 최면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내가 막아서겠습니다.”
가르시아가 찌그러진 강철 방패를 고쳐 잡으며 문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의 어깨 상처에서 붉은 피가 다시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레온은 가르시아의 방패를 부드럽게 내리눌렀다.
“그만두십시오, 가르시아. 폭도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물리적인 방패로는 저 집단 광기의 해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대들의 목숨만 위태로워질 뿐입니다.”
“하지만 신부님, 저들이 치료소에 불을 지르려 합니다! 이대로 가만히 계실 겁니까?”
에밀리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바로 그 순간, 콰창! 하는 소리와 함께 안전가옥의 낡은 유리창이 깨지며 불타는 횃불 하나가 방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지붕 위에서도 불길이 타오르는 매캐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토마스가 던진 횃불이 치료소 지붕의 마른 짚단에 옮겨붙은 것이었다.
“불을 질러라! 단 한 마리의 악마도 살아남지 못하게 해라!”
외부에서 들려오는 토마스의 광기 어린 포효와 폭도들의 함성이 최고조에 달했다. 가옥 내부의 공기가 급격히 뜨거워지며 연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레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회색 안대 아래로 맑은 눈물이 아닌, 차가운 이성의 빛이 심안을 통해 번뜩였다.
[정신 인지 지수: 100% - 절대 이성 상태 유지 중]
그는 도망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물리적 무력은 전혀 없었지만, 그의 자아는 그 어떤 성기사의 갑옷보다 단단했다. 레온은 품 안에서 은빛 복원의 흔적이 아름답게 빛나는 ‘낡은 은색 청동 종’을 꺼내 들었다.
“에밀리 수녀, 가르시아. 안심하고 제 뒤에 서십시오.”
레온은 안전가옥의 무너진 문을 밀치고, 홀로 붉은 불길과 연기가 치솟는 광장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나왔다! 장님 이단자 놈이다!”
토마스가 횃불을 치켜들며 레온을 가리켰다. 하얀 정화단 로브를 입은 토마스의 눈동자는 이성을 잃고 핏빛으로 충혈되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주교 바르샤가 하사한 ‘정화의 불씨’ 마도구가 붉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수백 명의 폭도들이 횃불과 무기를 꼬아쥐며 레온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 기세를 취했다.
레온은 그들의 폭력적인 기세 앞에서도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고요하게 서 있었다. 그는 정밀 청각으로 폭도들의 호흡과 심박수를 실시간으로 계산했다. 그들의 뇌파는 극도의 흥분 상태인 베타파를 넘어 자아 붕괴 직전의 감정적 폭주 대역에 도달해 있었다.
‘집단 광기는 논리나 무력으로 억누를수록 더 불타오르는 법. 뇌의 감정 중추를 자극하는 가장 부드러운 평온의 주파수로 그들의 뇌파를 동조시켜야 한다.’
레온은 은색 종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1성급의 미약한 마력을 종의 표면에 새겨진 알베르트의 룬 문자에 미세하게 흘려보냈다.
딩————.
맑고 장엄한, 그리고 극도로 나른한 은색 종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퍼져 나갔다. ‘뇌파 안정 동조(Brainwave Stabilization Synchrony)’ 스킬의 광역 발현이었다.
그 소리는 고막을 자극하는 물리적인 소음이 아니었다. 공간의 파동을 타고 폭도들의 뇌 신경망에 직접적으로 침투하는 영혼의 저주파였다. 종소리가 한 번 울릴 때마다, 레온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던 폭도들의 머릿속에서 불타오르던 붉은색 분노의 오라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수작이냐! 귀를 막아라! 악마의 종소리다!”
토마스가 이성을 유지하려 비명을 지르며 횃불을 레온을 향해 던지려 했다. 하지만 레온은 두 번째로 종을 더 깊고 느린 템포로 튕겼다.
딩————.
‘뇌파 안정 공명 주파수’가 광장 전체에 해일처럼 퍼져 나갔다.
그 순간, 횃불을 던지려던 토마스의 팔이 허공에서 스르륵 멈춰 섰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이글거리던 정화의 불씨 마도구의 불꽃이 힘없이 사그라졌다. 토마스는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려 발악했으나, 종소리가 만들어낸 거대한 ‘정적의 파동’에 의해 그의 목소리는 공기 중으로 녹아내리듯 소멸해 버렸다.
“어…… 어째서…….”
토마스의 핏빛 충혈되었던 눈동자가 서서히 풀리며, 깊은 나른함과 평온함의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종소리는 멈추지 않고 잔잔한 물결처럼 수백 명의 폭도들의 영혼을 어루만졌다. 폭도들이 쥐고 있던 쇠파이프와 낫이 바닥으로 툭, 툭 떨어지며 둔탁한 금속음을 냈다. 그들의 손에 들려 있던 횃불들이 하나둘 바닥의 흙먼지 위로 떨어져 힘없이 꺼져갔다.
“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 했던 거지?”
“왜 여기에 무기를 들고 서 있는 거야…….”
집단 최면에서 깨어난 폭도들의 눈동자에서 광기가 씻겨 내려갔다. 그들의 영혼 오라는 더 이상 포악한 적색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저지르려 했던 무자비한 방화와 학살에 대한 자각, 그리고 깊은 수치심과 청색(슬픔)의 눈물로 씻겨 내리고 있었다.
툭. 툭.
폭도들이 하나둘 바닥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들은 횃불이 꺼진 어두운 광장 바닥에 엎드려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수백 명의 폭도가 레온의 발치 아래에서 흐느끼는 기이하고도 장엄한 정적이 요새 전체를 지배했다. 오직 소리의 공명만으로 집단의 광기를 잠재운, 위대한 정신적 구원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기적의 대가는 레온에게 가혹했다.
광역으로 공명 주파수를 방출한 여파로 레온의 1성급 마력은 완전히 방전되어 바닥을 드러냈다. 그의 눈앞이 캄캄해지며 전신이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신부님!”
뒤에서 대기하던 에밀리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쓰러지는 레온의 몸을 간신히 부축했다. 레온의 코에서 붉은 선혈이 울컥 뿜어져 나와 그의 하얀 사제복 깃을 붉게 적셨다. 극심한 마력 결핍과 뇌 신경 과부하로 인해 그의 육체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가사 상태에 임박해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참회하는 군중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차가운 살기가 솟구쳤다.
스으으으.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었다. 참회하며 흐느끼는 주민들의 그림자 틈새에서, 키가 2미터에 달하는 기괴한 거구의 형체가 안개처럼 솟구쳐 올랐다. 바르샤 주교가 보낸 진짜 살인 병기, 암살자 고르도였다.
그의 손에는 스치기만 해도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사의 송곳니 단검, 그리고 어둠 속에서 푸른 빛을 발하는 쇠사슬이 쥐여 있었다. 고르도는 마력이 완전히 방전되어 쓰러진 레온의 등 뒤를 향해, 단 한 치의 소음도 없이 무서운 속도로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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