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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가의 사냥개들과 눈먼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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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 지붕 위에 도사린 붉은 오라는 미동조차 없었다.


손가락에 기괴한 붉은 실을 감은 채 안전가옥을 내려다보는 거구의 사내, 주교 바르샤의 사냥개이자 5성급 암살자인 킬러 고르도였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탁한 핏빛 살기와 코끝을 찌르는 매캐한 ‘데몬 브레스’의 잔향이 가느다란 창문 틈새를 타고 안전가옥 내부로 스며들고 있었다.


레온은 가만히 양장 노트를 덮었다. 가죽 표지가 맞물리는 둔탁한 소리가 좁은 방 안에 울렸다. 그의 곁에서 문고리를 쥔 채 숨을 죽이고 있던 검왕 카일의 손가락이 대검 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카일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빛 마력이 당장이라도 지붕을 뚫고 올라갈 기세로 들끓었다.


레온은 보이지 않는 눈 대신 정밀 청각을 가동해 카일의 미세한 근육 수축 소리를 포착했다. 그는 나지막이 고개를 저으며 카일의 손등 위로 자신의 창백한 손을 얹었다.


“기다리십시오, 카일 경. 지금 저 자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빈민가 한가운데에서 5성급 암살자와 마력 8성의 검왕이 충돌한다면, 조금 전 구원한 미카와 광부들의 가족들이 가장 먼저 휩쓸려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부님, 저 사냥개의 이빨이 이미 우리의 목덜미를 조여오고 있습니다. 소인에게 명을 내려주신다면 단 일격에 저 자의 목을 베어 침묵시키겠습니다.”


카일의 목소리에는 레온을 향한 절대적인 충성과 적을 향한 서늘한 살의가 공존하고 있었다. 레온은 실크 안대 아래의 눈을 가만히 감은 채, 안전가옥 바닥에 누워 있는 가르시아와 에밀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르가스의 채찍에 어깨를 깊게 찔려 창백해진 가르시아는 에밀리의 응급 처치를 받아 간신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무쇠 빗장을 맨손으로 비틀어 열 때 입었던 가르시아의 손바닥 화상 흉터가 붉게 진물러 있었다. 에밀리 역시 오른쪽 어깨의 피멍 통증을 참아내며 가죽 가방에서 진정 약초를 꺼내 가르시아의 상처 위에 덧바르고 있었다.


두 조력자 모두 만신창이였다. 기동력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무모한 전투는 파멸을 자초할 뿐이었다.


그때, 안전가옥 바닥의 낡은 나무 판자가 삐걱거리며 들어 올려졌다. 어둠 속에서 날렵한 실루엣이 소리 없이 솟구쳤다. 헤이븐 뒷골목 정보망 ‘쥐굴’의 우두머리이자 레온의 정보 참모인 잭이었다.


“신부님, 큰일났습니다.”


잭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소적인 태도를 잃고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고, 영혼의 오라는 극도의 황색(공포)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붕 위의 고르도 놈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방금 요새 정문을 통과해 영주 저택으로 들어간 자들이 있습니다. 그레이 백작가에서 보낸 진짜 사냥개들…… 수색대장 가레스와 가문 전속 의관 로버트가 기사단을 이끌고 이곳 헤이븐에 당도했습니다.”


가레스와 로버트.


그 이름이 잭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레온의 육체 깊은 곳에서 본능적인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 안구 뒤편의 신경망이 바늘로 찌르는 듯 격렬하게 요동치며 전신에 오한이 서렸다.


가레스는 어릴 적 눈먼 레온을 오물 더미에 던지며 가문의 수치라 조롱하고, 마차에 강제로 태워 이곳 변방의 수용소로 유배 보냈던 난폭한 기사였다. 그리고 의관 로버트는 가주의 매수를 받아 레온의 실명을 ‘신의 징벌로 인한 영혼의 마비’라고 허위 진단하여 유배의 추악한 의학적 명분을 제공했던 가문의 원수였다.


그들이 마침내 레온이 일으킨 기적적인 치유 소문을 입막음하고, 가문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 직접 요새를 사냥하러 온 것이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레온의 목소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차분했다. 정신 인지 지수 100%의 절대 이성 상태. 전생의 환자를 구하지 못했던 죄책감과 가문의 냉혹한 배신이 뇌리에서 교차하며, 그의 내면에서 거대한 분노의 불꽃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영주 저택의 비밀 사교실에서 주교 바르샤와 접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르샤 주교는 그들에게 수용소 화재 사고를 가장해 신부님을 공식적으로 ‘소멸’시키겠다고 제안한 모양입니다. 고르도가 이곳을 감시하는 것도 그들의 지시를 기다리기 위함입니다.”


잭의 보고를 들은 레온은 얇은 입술을 살며시 올렸다. 비열한 자들의 위선적인 음모. 하지만 이것은 위기인 동시에, 정보의 비대칭성을 역이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적들은 여전히 자신을 무력 없는 하찮은 장님 수습 사제로만 여겨 경계심을 낮추고 있을 터였다.


“잭, 영주 저택 지하로 이어지는 하수도 통기구가 아직 살아 있습니까?”


“예? 살아는 있습니다만…… 설마 그곳으로 가시려는 겁니까? 기사단의 마력 감지 트랩이 깔려 있을 텐데요!”


“가야 합니다. 적들이 나를 어떻게 죽이려 하는지, 그리고 가문이 숨기고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내 귀로 직접 들어야겠습니다. 카일 경은 이곳에 남아 에밀리와 가르시아를 호위하십시오. 절대 무력을 먼저 드러내지 말고 그림자 속에 숨어 계십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신부님.”


카일은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깨물었으나, 레온의 단호한 눈빛에 이내 고개를 숙였다.


레온은 잭의 안내를 받아 안전가옥 지하의 축축한 하수구 통로로 내려갔다. 어둡고 썩은 오물의 악취가 사방에 진동하는 비좁은 통로. 앞이 보이지 않는 레온에게 이 어둠은 오히려 익숙한 영토였다. 그는 낡은 은색 청동 종을 품 안 깊숙이 고정하고, 벽면의 미세한 마찰음과 진동만을 의지해 소리 없이 전진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머리 위쪽에서 따뜻하고 기름진 공기가 내려앉는 쇠창살 환기구가 나타났다. 영주 저택 비밀 사교실의 바로 아랫부분이었다.


레온은 환기구 바로 아래에 멈춰 서서 가만히 숨을 죽였다. 그는 얇은 실크 안대 위로 손을 얹으며, 자신의 특수 권능을 개방했다.


‘심안의 감정 색상 감지, 그리고 정밀 청각 심리 분석.’


지이이잉.


레온의 머릿속 어둠이 순식간에 회색빛의 입체적인 기하학적 선들로 재편되었다. 머리 위의 쇠창살 너머, 화려한 벨벳 카펫이 깔린 사교실 내부의 정경이 소리와 온도의 파동을 타고 3D 입체화면처럼 그려졌다.


그곳에는 세 명의 영혼 오라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한 명은 주교 바르샤의 추악한 자색(탐욕) 오라였고, 다른 두 명은 각각 거칠고 포악한 적색(폭력) 오라와, 기름진 황색(위선)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가레스와 로버트가 분명했다.


사각거리는 고급 와인 잔의 마찰음과 함께, 가레스의 거칠고 거만한 목소리가 하수구 밑바닥까지 떨어져 내렸다.


“주교, 일 처리가 너무 늦는 것 아닌가? 본청의 이단심문관 발렌티노가 요새로 오고 있다는 정보가 있네. 그 무시무시한 사냥개가 도착하기 전에, 백작가에서 버린 그 눈먼 오물 녀석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놓아야 가문에 누를 끼치지 않아.”


“허허, 가레스 단장님. 너무 조급해하실 것 없습니다.”


바르샤 주교의 가식적인 웃음소리가 뒤따랐다.


“이미 제 정예 암살자 고르도가 녀석의 쥐굴 은신처를 완벽하게 포착해 감시하고 있습니다. 녀석은 마력 1성의 나약한 장님 사제일 뿐입니다. 오늘 밤, 빈민가에 가벼운 실화(失火) 사건을 일으켜 녀석을 흔적도 없이 태워버릴 계획입니다. 본청의 이단심문관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타버린 잿더미만 남아있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확실하겠지?”


이번에는 로버트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는 냉혹하면서도 정교한 메스처럼 차가웠다.


“그 눈먼 녀석이 변방에서 마력 폭주 영웅들을 치료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대성당까지 흘러들어왔을 때, 가주 데미안 님께서 얼마나 노하셨는지 아는가? 특히…… 그 최하층에 갇혀 있던 검왕 카일의 광증이 완화되었다는 소문은 가문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네.”


레온은 쇠창살 바로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정밀 청각 분석이 로버트의 목소리 끝에 서린 미세한 떨림을 포착했다. 분당 98회의 심박수. 그것은 단순한 경멸이 아니었다. 무언가 감추고 있는 비밀이 들통날까 두려워하는 극도의 불안과 초조함의 발현이었다.


바르샤 주교가 잠시 사교실 문을 열고 기사들의 경비 상황을 확인하러 밖으로 나간 순간, 사교실 내부에는 가레스와 로버트 단 둘만이 남게 되었다.


레온은 청각의 감도를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뇌의 청각 중추가 비정상적으로 과열되며 관자놀이에 지독한 편두통이 고개를 들었으나, 그는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소리를 빨아들였다.


가레스가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로버트, 자네가 어릴 적에 그 쓰레기 녀석의 눈을 확실하게 망가뜨려 놓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떻게 그 장님이 영혼의 주파수를 읽고 기적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도는 거지? 가주님께서는 자네의 허위 진단과 봉인 술식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닌지 의심하고 계시네.”


봉인 술식.


그 단어가 레온의 고막을 때리는 순간, 그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로버트가 신경질적으로 안경테를 만지는 금속성 마찰음과 함께 낮게 속삭였다.


“쉬잇! 목소리가 크네, 가레스! 주교의 귀에 들어가서 좋을 게 없어.”


로버트의 음성은 극도로 낮아졌으나, 하수구의 파이프 라인을 타고 레온의 귀에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증폭되어 꽂혔다.


“내 신성 의술과 가문의 비전 봉인술은 완벽했네. 어릴 적 그 녀석에게 열병이 찾아왔을 때, 가주의 명령을 받아 내가 직접 녀석의 안구 뒤편 마력 통로에 영적 저주를 내렸지. 그것은 단순한 실명이 아니야. 성황청의 위선적인 과거 비밀 실험…… 그 추악한 ‘성녀 선발 의식’의 실패작들을 은폐하기 위해 가해진 절대적인 영적 봉인이란 말일세.”


레온의 호흡이 멎었다.


[세계관 비밀: 레온이 눈이 먼 진짜 이유 파악 완료]


실크 안대 아래로 감춰진 레온의 눈먼 눈동자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어릴 적 열병으로 시력을 잃고 가문에서 버림받은 비운의 사제 레온. 그것은 자연적인 불행이 아니었다. 성황청이 자행했던 추악한 인체 실험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가문과 성황청이 결탁하여 어린 레온의 안구에 강제로 가해진 추악한 영적 저주이자 봉인이었다.


자신이 눈을 뜨려 할 때마다 안구 뒤편에서 뇌수까지 찢어발기던 그 끔찍한 통증의 실체는, 신의 징벌이 아닌 탐욕스러운 기득권층이 채워놓은 가학적인 쇠사슬이었다.


“그 봉인 때문에 녀석의 마력은 평생 1성에 머물러야 했고, 시력을 잃어 영혼의 비명만을 듣는 처지가 되었지.”


로버트가 비열하게 낄낄거리며 말을 이었다.


“가주 데미안 님께서도 동조하셨던 실험이네. 녀석의 아비인 아서 그레이가 죽은 진짜 이유도 그 비밀을 눈치챘기 때문이었지. 그러니 그 장님 녀석은 살려둘 수 없네. 녀석이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우리 그레이 백작가와 성황청의 가장 어두운 치부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니까.”


가레스가 칼집을 툭툭 치며 잔인하게 웃었다.


“그렇군. 그럼 오늘 밤 주교의 사냥개 고르도를 시켜 녀석의 목을 베고 은신처를 불태우는 것으로 완벽하게 입막음을 끝내지. 장님의 비참한 유배 생활이 화재 사고로 종지부를 찍는 꼴이 되겠군.”


레온은 하수구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를 느꼈다.

눈물이 아니었다.


도청을 위해 뇌의 청각 중추를 한계까지 활성화하고 영적 주파수를 쥐어짠 대가였다. 그의 양쪽 귀에서 붉은 선혈이 가늘게 흘러내려 턱끝을 적셨다. 머릿속에서는 수만 개의 금속 바늘이 뇌세포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이명과 만성 두통이 폭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 인지 지수는 여전히 100%였다. 가문과 성황청을 향한 거대한 분노가 차가운 얼음처럼 그의 이성을 완벽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데미안 그레이…… 로버트…… 그리고 성황청.’


그들은 자신을 소모품으로 버린 것도 모자라, 부모를 죽이고 눈을 멀게 한 뒤 이제는 목숨까지 앗아가려 하고 있었다.


레온은 피 묻은 손으로 품 안의 은색 청동 종을 꽉 쥐었다. 각성한 은빛 종 표면의 룬 문자가 그의 차가운 분노와 공명하며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때, 쇠창살 너머로 로버트가 가레스에게 더 가까이 밀착하며 은밀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가레스, 만에 하나라도 녀석이 살아남아 자신의 눈먼 저주를 풀려 한다면…… 그 봉인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가레스가 멈칫하며 물었다.


“어디에 있는데?”


로버트가 기괴할 정도로 낮고 음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황청 본청이 있는 성도 루미나스. 그 거대 지하 감옥 최심부에 설치된 백성들의 정신 세뇌 장치…… ‘빛의 심장’ 결계의 마력 핵과 연동되어 있네. 결계가 파괴되지 않는 한, 레온의 눈먼 저주는 죽어도 풀리지 않지. 그러니 녀석은 평생 장님으로 살다 죽을 운명이라네.”


성도 지하의 결계와 연동된 실명의 저주.


레온은 귀에서 흐르는 피를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그의 보이지 않는 눈동자가 실크 안대 너머에서, 성황청의 심장부가 있는 먼 하늘을 향해 서늘한 은빛 광채를 뿜어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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