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갱도와 어린 마음의 감옥
정적을 깨뜨리는 은색 종소리의 가냘픈 울림이, 새로운 악몽의 시작을 알리며 안전가옥 내부를 서늘하게 감싸 안았다.
“성자님! 제발, 제발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광산 노동자들의 대표인 톰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 미카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처참했다. 아이의 작은 몸안에서 제어되지 못한 붉은 마력 기류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와 주변의 공기를 비정상적으로 달구고 있었다. 아이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목이 졸리는 듯 사지를 비틀며 꺽꺽대는 괴성을 질렀다. 핏줄이 불거진 아이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입가에는 마른 거품이 가득했다.
‘마력 과부하성 인지 장애 초기 단계. 하지만 어린아이의 미약한 육체로는 이 폭주하는 파동을 감당할 수 없다. 이대로 두면 뇌 미세혈관이 전부 터져 폐인이 되거나 자폭할 터.’
레온은 즉각적으로 판단을 내렸다. 그는 사제복 안쪽 주머니에서 바르톨로메오가 방금 건네준 정제 마력석 중 하나를 꺼냈다. 투명하게 빛나는 푸른색 마력 결정이 레온의 손끝에서 낡은 은색 청동 종의 표면에 닿았다.
스으으으.
결정이 지닌 고순도의 마력이 종의 표면에 새겨진 고대 룬 문자를 따라 스며들자, 방전되어 침묵하고 있던 은색 종이 찬란한 은빛 광채를 내뿜으며 고동치기 시작했다. 맥박처럼 뛰는 종의 진동이 레온의 손바닥을 타고 그의 영혼 주파수를 강하게 자극했다.
“에밀리, 가르시아를 도와 아이를 침대에 눕혀라. 카일 경은 문 앞을 경계해주십시오.”
레온의 차분하고 단호한 지시에 일행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거구의 가르시아가 창백해진 안색으로 미카의 발작하는 사지를 단단히 붙잡았고, 에밀리는 아이의 머리맡에서 수면 유도용 약초 가루를 가볍게 흩뿌렸다.
레온은 미카의 이마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은색 청동 종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종의 테두리를 가볍게 세 번 튕겼다.
딩-. 딩-. 딩-.
맑고 장엄한 은빛의 동심원 파동이 좁은 안전가옥 내부를 가득 채웠다. ‘몽환 인도 술식’의 주파수가 미카의 흥분된 뇌파를 알파파 대역으로 강제로 끌어내렸다. 발작하던 미카의 사지에서 힘이 서서히 빠져나갔고, 이내 아이는 깊고 무거운 잠 속으로 침몰하듯 빠져들었다. 폭주하던 붉은 마력 기류도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지금부터 무의식 침투를 시작하겠다. 에밀리, 내 현실의 육체를 부탁한다.”
“네, 신부님. 부디 조심하십시오…….”
에밀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레온의 차가운 손을 꼭 쥐었다. 레온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의 이성이 현실의 감각을 완벽히 차단하는 순간, 영혼의 유체 이탈이 시작되었다.
‘몽계 강제 진입 (Dream Dive).’
시야가 완벽한 어둠에서 회색빛의 소용돌이로 전환되었다. 현실과 무의식의 경계인 회색 안개 바다를 레온의 정신체는 은색 종소리의 주동 파동을 나침반 삼아 무서운 속도로 관통해 내려갔다. 그리고 안개가 완전히 걷히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지독한 폐쇄감이 그의 전신을 덮쳐왔다.
“……여기는 광산 내부인가.”
미카의 정신 심층부는 지옥 같은 어둠과 매캐한 흙먼지로 가득 찬 무너진 갱도였다. 사방의 돌벽은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고, 천장에서는 날카로운 흙더미와 거대한 돌덩이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쿵! 콰아앙! 돌들이 바닥에 부딪칠 때마다 대지가 거칠게 요동쳤다.
그 돌덩이들은 단순한 광물이 아니었다. 광산 붕괴 사고 당시 아이가 느꼈던 절대적인 공포와 죽음에 대한 강박이 기괴한 형상으로 구체화된 ‘하급 환영 (기억의 파편)’들이었다. 돌더미 괴물들은 붉은 마력의 안광을 번뜩이며 갱도 입구를 완전히 가로막은 채, 아이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었다.
‘공감적 오감 공유 규칙.’
그 순간, 환자가 느끼는 공포와 신체적 통증이 동일한 농도로 레온의 정신체에 전이되었다. 허파를 찌르는 듯한 매캐한 철광석 먼지 냄새, 산소가 결핍되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극심한 질식감이 레온의 목을 조여왔다. 영혼의 고통은 현실의 육체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현실의 안전가옥에서, 누워 있던 레온의 몸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코와 입가에서 미세한 마른 거품이 일었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에밀리는 비명을 지르며 물수건으로 그의 이마를 닦아내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이대로 질식할 수는 없다. 먼저 이 공간의 주파수를 정화해야 한다.’
꿈속의 레온은 가슴팍에 품은 은색 청동 종을 들어 올려 크게 울리려 했다. 장엄한 소리로 갱도 전체를 한꺼번에 정화하려는 전술이었다.
딩-! 콰아아앙!
하지만 그것은 실책이었다. 좁고 밀폐된 갱도 지형 때문에 종소리의 파동이 돌벽에 부딪쳐 사방으로 굴절되고 증폭되어 레온 자신의 정신체 고막을 직격했다. 머릿속이 깨질 듯한 이명과 영혼의 통증이 역류하자 레온은 신음하며 종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좁은 밀폐 공간에서의 광역 소리 정화는 오히려 시전자에게 치명적인 정신적 타격을 입혔다.
“흐윽…… 살려주세요! 아빠! 갇혔어요! 어두워요!”
갱도 저편, 무너진 돌더미 구석에 작은 실루엣이 보였다. 미카의 어린 자아가 머리를 감싸 쥔 채 울부짖고 있었다. 아이의 주변으로 거대한 돌더미 괴물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다가가고 있었다. 몽계의 물리 법칙 불일치율에 따라, 아이가 두려워할수록 돌더미 괴물들의 크기와 파괴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었다.
‘진정해야 한다. 내 정신 인지 지수는 100% 절대 이성 상태다. 저 돌덩이들은 실제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레온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회색 눈동자가 차갑고 이성적인 빛을 발했다.
“인지 부정 방벽 (Cognitive Denial Barrier), 전개.”
레온이 나지막이 선언했다. 거대한 돌더미 괴물 하나가 레온의 머리 위로 무거운 바위를 내리쳤다. 콰앙! 거대한 폭음이 울렸지만, 바위는 레온의 머리 위에 닿는 순간 투명한 은빛 장벽에 가로막혀 마른 모래성처럼 스르륵 부서져 내렸다. 레온의 절대적인 이성적 확신이 공포의 허상을 완벽하게 무력화한 것이다.
레온은 부서지는 모래 먼지를 뚫고 미카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아이의 떨리는 작은 손을 따뜻하게 맞잡았다.
“미카, 내 목소리가 들리니? 장님 신부 레온이란다. 이제 괜찮아. 숨을 깊게 들이쉬렴. 들이쉬고, 내쉬고.”
“신부님……? 어두워요…… 숨이 안 쉬어져요…….”
“그건 네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란다. 내가 너를 위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방을 만들어주마.”
레온은 눈을 감고 자신의 뇌리 깊은 곳에 남아 있는 현대 지구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차가운 이세계의 돌벽이 아닌, 순백의 페인트로 칠해진 깨끗하고 밝은 현대식 무균 심리 상담실.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풍기고, 부드러운 가죽 소파와 따뜻한 주황색 조명이 켜진 안락한 공간.
‘꿈속 투사체 형상화 (Subconscious Projection).’
레온이 마음속으로 그 풍경을 정교하게 설계하며 마력을 집중했다.
지이이잉-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미카의 손을 잡은 레온의 몸에서 눈부신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오더니, 사방의 뒤틀린 갱도 돌벽을 거칠게 밀어내기 시작했다. 무너져 내리던 흙더미들이 은빛 벽면에 닿자마자 하얀 먼지가 되어 증발했고, 그 자리에는 정육면체의 깨끗하고 하얀 현대식 상담실 벽면이 스르륵 솟아올랐다.
축축하고 매캐했던 흙먼지 냄새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공간을 채웠다. 미카는 울음을 터뜨리던 것을 멈추고, 신기한 듯 하얗고 따뜻한 방 안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호흡이 급격히 안정을 찾았고, 질식할 것 같던 레온의 가슴 통증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완벽한 정신적 격리와 안전지대가 구축된 것이다.
“우와…… 하얗고 따뜻해요…….”
미카가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레온의 품으로 안겨왔다. 레온은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마법적인 상상력과 이성의 힘으로 꿈속 지형을 완전히 뒤바꾸어낸 쾌감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이이이익-!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아늑한 상담실 내부의 평화를 깨뜨렸다.
레온은 심안을 개방하여 소리가 나는 방향을 응시했다. 방금 구축한 순백의 벽면 한구석에 검붉은색의 탁한 마력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그 틈새로 지독한 악취가 풍겨왔다.
스으으으…….
하얀 벽면의 균열을 찢고, 흙더미 속에서 붉은 눈을 기괴하게 번뜩이는 거대한 형체가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아이의 마력 핵 깊은 곳에 기생하며 절망을 빨아먹고 자라난 초기 몽마의 유충이었다. 녀석은 날카로운 검은 발톱으로 깨끗한 상담실의 하얀 벽을 거칠게 긁어내리며, 레온과 미카를 향해 침을 흘리며 기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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