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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의 계약과 광산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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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은은한 주황빛이 바르톨로메오의 화려한 실크 모자 깃털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비밀 안전가옥의 퀴퀴한 지하 공기 속에서, 촛불 하나가 밝힌 영역은 그리 넓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작은 빛무리 속에서 풍기는 거상의 압도적인 존재감은 사방의 어둠을 밀어내기에 충분했다. 열 손가락마다 가득 찬 보석반지들이 주황색 불빛을 받아 기괴하면서도 탐욕스러운 광채를 산란하고 있었다.


레온은 자리에 앉은 채 보이지 않는 눈을 가만히 내리깔았다. 사제복 안대 아래로 가벼운 현기증이 스쳤지만, 그의 정신 인지 지수는 여전히 100% 절대 이성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대에서 수많은 정신 질환 환자들과 심리전이 오가는 상담실을 지휘했던 서준우로서의 이성이 차갑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안전가옥 한편에서는 에밀리가 가르시아의 찢어진 어깨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거구의 간수 가르시아는 어깨의 자상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참으며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에밀리가 지혈용 약초 가루를 뿌리고 붕대를 감는 동안, 그녀의 손길이 가르시아의 오른손바닥에 닿았다.


가르시아의 손바닥에는 붉게 부풀어 오른 화상 흉터가 남아 있었다. 아까 수용소의 마지막 철문을 잠그기 위해 무쇠 빗장을 맨손으로 비틀어 뭉개버릴 때, 마찰열로 인해 입은 상처였다. 에밀리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 화상 자국에 차가운 진정 비약을 발라주었다. 레온은 그 모든 과정을 예리한 청각으로 인지하며,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 충직한 수하의 상처를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과연, 대륙 최강의 검왕을 맨손으로 치유하고 요새의 감옥을 통째로 뒤흔들었다는 소문이 단 한 자의 허언도 아니었군, 장님 신부여.”


바르톨로메오가 나지막이 웃으며 침묵을 깨뜨렸다. 그의 목소리는 나이에 걸맞게 중후하면서도, 상인 특유의 날카로운 계산이 깔려 있었다. 레온은 심안(心眼)을 개방하여 그의 영혼 오라를 관찰했다. 거상의 주위로 황금빛의 탐욕과 보랏빛의 강렬한 호기심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는 레온의 능력을 동정이나 기적이 아닌, 철저히 ‘돈과 권력’의 가치로 저울질하고 있었다.


“기적은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는 상품이지.”


바르톨로메오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보석반지가 낀 손가락을 가볍게 두드렸다.


“하지만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의 지속성이라네. 장님 신부여, 자네가 행한 치유가 일시적인 환각술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어떻게 증명할 텐가? 만약 저 검왕이 며칠 뒤 다시 미쳐 날뛰기라도 한다면, 내 투자는 허공으로 날아가는 꼴이 되니 말이야.”


그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성황청의 고위 치유 사제들조차 고치지 못해 악마 들림이라 규정했던 마력 과부하성 인지 장애다. 그것을 변방의 눈먼 수습 사제가 완치했다는 사실을 날카로운 상인이 곧이곧대로 믿을 리 없었다.


레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나지막이 돌렸다.


“카일 경.”


레온의 부름에, 문 옆의 어둠 속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거대한 실루엣이 천천히 빛무리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은빛 눈동자를 고요하게 빛내며 우뚝 선 카일의 존재감은 그 자체로 안전가옥 내부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폭주하던 붉은 마력 검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오직 대륙 최강의 영웅이 지닌 묵직하고 냉철한 이성의 기세만이 방 안을 채웠다.


바르톨로메오의 눈동자가 카일의 은빛 눈동자와 마주하는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심박수가 분당 110회로 급상승하는 소리가 레온의 정밀 청각에 포착되었다.


“카일…… 경? 정말로 이성이 완벽히 돌아왔군.”


“바르톨로메오 상단주.”


카일의 목소리는 서서히 끓어오르는 쇳소리처럼 무거웠으나,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내 영혼을 옭아맸던 지옥 같은 악몽은 완전히 걷혔다. 지금 내 검이 향하는 곳은 오직 나를 구원해 준 레온 신부님의 의지뿐이다. 이것으로 증명이 부족한가?”


대륙 최강의 검왕이 한낱 눈먼 수습 사제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전설의 이 완벽한 자아 복원 상태야말로 그 어떤 웅변보다 확실한 물증이었다. 바르톨로메오는 침을 꿀꺽 삼키며 손가락의 보석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놀랍군. 정말 놀라워. 이건 성황청의 신성 마법조차 초월한 진짜 기적이야.”


상인의 눈에 탐욕의 황금빛 오라가 더욱 짙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이내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찻잔을 만졌다.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네. 자네들은 요새 전체에 공식 현상수배령이 떨어진 도망자들이야. 성황청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자네들을 지원하는 건, 아무리 나라도 목숨을 건 도박이지. 상인은 위험한 거래에는 손을 대지 않는 법이라네.”


바르톨로메오가 한 발 물러서며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레온의 가치를 깎아내려 더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려는 상인의 얄팍한 방어기제였다.


그때, 가죽 코트를 걸친 잭이 벽에 기댄 채 단검 ‘섀도우 팽’을 가볍게 만지며 서늘한 살기를 흘렸다.


“말이 너무 길잖아, 영감님. 그냥 여기서 목줄을 따버리고 상단의 금고 열쇠를 뺏는 게 빠르지 않겠어?”


안전가옥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하락했다. 바르톨로메오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그의 주위로 황색의 공포 오라가 흘러나왔다.


레온은 차분하게 손을 들어 잭의 돌출 행동을 제지했다.


“잭, 상업적인 대화는 칼날이 아닌 가치로 나누는 법이다. 물러서라.”


레온의 단호한 한마디에 잭은 어깨를 으쓱하며 단검을 거두었다. 레온은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바르톨로메오가 앉은 방향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상단주여. 상인은 위험을 기피하는 자가 아니라, 리스크의 크기를 정확히 계산하여 남들이 보지 못하는 독점적 이익을 취하는 자가 아닙니까?”


“독점적 이익이라니? 무슨 뜻인가?”


“성황청이 왜 영웅들의 광증을 고치지 못하고 이단으로 몰아 처형하는지 아십니까?”


레온의 질문에 바르톨로메오가 침묵했다. 레온은 카일의 피에서 발견했던 독소 파동과 몽마의 결착 상태를 떠올리며, 준비해 둔 결정적인 정보의 미끼를 던졌다.


“그들은 전쟁 영웅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게 아닙니다. 일부러 미치게 방치하는 것이지. 영웅들의 영혼이 광증으로 붕괴할 때 발생하는 절망의 에너지를 수확해 고농축 마력 배터리인 ‘슬픔의 결정’을 정제하기 위함입니다. 성황청은 인류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영웅들의 영혼을 착취하는 거대한 흡혈 기관에 불과합니다.”


“……!”


바르톨로메오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가득 찼다.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신성한 성황청의 추악한 이면이다. 상인으로서 그는 이 정보가 가진 파괴적인 가치를 즉각적으로 이해했다.


“내 치유법은 단순한 기적이 아닙니다. 마력 과부하로 무너지는 인간의 뇌 신경망과 인지 왜곡을 객관적으로 조율하는 이세계의 학문, ‘정신의학’입니다. 이 기술의 독점권을 상단주여, 자네에게 넘기겠네. 성황청의 위선이 무너지고 새로운 이성의 시대가 올 때, 대륙 전체의 정신 치유 보급망을 장악할 기회를 말일세.”


바르톨로메오의 호흡이 완전히 멎었다. 그의 영혼 오라는 이제 공포를 넘어 거대한 탐욕과 야망의 빛깔로 타오르고 있었다. 성황청의 독점 체제를 깨뜨리고 대륙 최고의 거상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위험하지만, 성공한다면 가문을 대륙의 지배자 반열에 올릴 수 있는 도박이었다.


“장님 신부여…… 자네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


바르톨로메오가 떨리는 손으로 품 안에서 골든 패스 통행증과 정교한 룬 문자가 새겨진 벨벳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좋네. 계약을 맺지. 이 주머니 안에는 자네의 은색 종을 충전할 수 있는 고순도 ‘정제 마력석’ 다섯 개가 들어있네. 그리고 이 골든 패스는 성황청의 일반 검문소를 우회할 수 있는 상단의 최고 통행증이지. 자네들이 도망치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물자와 자금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네. 그 대가로, 자네가 말한 그 ‘정신의학’의 독점 거래권을 내게 약속해주게.”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상단주여.”


레온이 손을 뻗어 골든 패스와 마력석 주머니를 품 안으로 거두어들였다. 방전되었던 은색 종의 에너지를 다시 충전할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 확보되는 순간이었다. 협상은 완벽한 레온의 지적 승리로 끝났다.


바로 그때였다.


쿵! 쿵! 쿵!


안전가옥의 두꺼운 철제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흔들렸다. 잭이 번개처럼 움직여 단검을 치켜들었고, 카일 역시 대검의 손잡이를 꽉 쥐며 문 앞을 가로막았다.


“누구냐!”


잭의 서늘한 외침에, 문 너머에서 갈라지고 절박한 남성의 비명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자님! 제발 문을 열어주십시오! 요새 감옥에서 기적을 일으키신 장님 성자님이 이곳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제발 제 아들을 구원해주십시오!”


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이닥친 사내는 얼굴과 옷자락이 시커먼 철광석 먼지로 뒤덮인 거친 가죽 옷의 사내였다. 헤이븐 광산 노동자들의 대표인 톰이었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며 레온의 발치를 향해 기어왔다.


“성자님…… 제 어린 아들이 마력 폭주로 인해 미쳐가고 있습니다! 온몸에서 붉은 마력이 뿜어져 나오며 눈앞의 사람들을 적으로 보고 물어뜯고 있습니다! 성황청 사제들은 악마가 들렸다며 아이를 화형대에 올리려 합니다! 제발…… 제발 제 아들을 구원해주십시오!”


톰의 절박한 절규가 안전가옥 내부의 정적을 찢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존엄을 완전히 내려놓은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현대에서 자신이 구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첫 환자 릴리스의 비극이 레온의 뇌리를 스치며, 의사로서의 숭고한 양심과 구원 의지가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우우웅…….


빈민가 골목 너머, 광산 지대의 어두운 하늘 아래서부터 기괴하고 불길한 고주파의 진동이 밤공기를 타고 안전가옥 내부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미약한 육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폭주하는 마력 진동이었다.


레온의 품 안에서, 방전되어 침묵하고 있던 낡은 은색 청동 종이 그 불길한 진동에 반응하여 미세하고 차갑게 떨리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딩…….


정적을 깨뜨리는 은색 종소리의 가냘픈 울림이, 새로운 악몽의 시작을 알리며 안전가옥 내부를 서늘하게 감싸 안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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