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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을 끊은 영웅과 흔들리는 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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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의 장벽이 무너지며, 소리가 폭포수처럼 현실로 역류했다.


지하 감옥의 축축한 냉기 속에서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가죽 채찍이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열음이었다. 간수장 바르가스의 채찍 끝이 바닥에 쓰러진 수습 수녀 에밀리의 어깨를 향해 무자비하게 떨어지려던 그 찰나, 온 세상을 짓누르는 듯한 압도적인 침묵이 공간을 지배했다.


철컥-! 쿠구구구궁!


그것은 사슬이 끊어지는 소리였고, 동시에 거대한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세의 해방이었다. 카일의 거구에 채워져 있던 묵직한 마력 억제용 강철 구속구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폭주하던 검붉은 마력 검강 대신, 오직 단단하게 조율된 전성기의 순수한 기세가 최하층 감옥 전체를 빈틈없이 압착했다.


“……어, 어?”


채찍을 내리치려던 간수장 바르가스의 손이 허공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3성 무투가로서 헤이븐 요새의 수많은 폭동을 제압해 왔던 그의 비대하고 흉포한 육체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목덜미를 잡힌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그의 오라는 이미 panic에 질린 지저분한 황색과 광포한 분노의 암적색으로 뒤섞여 요동치고 있었다.


카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흐트러진 흑발 사이로 번뜩이는 그의 눈동자는 더 이상 광기에 찌든 붉은빛이 아니었다. 서늘할 정도로 맑고 투명한 은빛 서광. 그것은 대륙 최강의 검왕이 자신의 자아를 완벽하게 회복했음을 알리는 각성의 개안이었다.


레온은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진 채, 장님 안대 너머로 그 모든 파동을 입체적으로 가시화하여 읽어 들였다. 그의 현실 육체는 마력 1성의 한계로 인해 코와 입가에 묻은 피가 채 마르지 않은 탈진 상태였지만, 정신 인지 지수는 100%, 즉 흔들림 없는 ‘절대 이성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동조 해제 완료. 환자의 자아 복원율 100%.’


현대에서 수많은 정신 질환 환자들을 다루며 단련된 준우의 냉철한 뇌가 실시간으로 전황을 분석했다. 카일의 부활은 완벽했다. 하지만 레온 자신의 물리적 육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마모되어 있었다. 이 상황에서 바르가스와 간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악한다면 에밀리와 자신의 목숨이 위험했다.


물리적 무력이 전무한 지금, 레온이 취해야 할 행동은 단 하나였다. 적들의 결속을 내부에서부터 찢어발기는 것.


레온은 심안(心眼)을 개방하여 바르가스의 등 뒤에 서 있는 하급 간수, 가르시아를 조준했다. 가르시아의 영혼 오라는 지독한 혼란 속에서 황색(공포)과 청색(슬픔)의 주파수로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가르시아. 네놈의 내면적 균열은 이미 임계점이다.’


레온은 가슴팍에 품은 은색 청동 종을 미세하게 만지며, 오직 가르시아만을 향해 지향성 정적 파동을 약하게 흘려보냈다. 외부에는 들리지 않는, 오직 가르시아의 뇌파만을 자극하는 고요한 공명음이었다. 동시에 레온은 ‘정밀 청각 심리 분석’을 가동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가르시아의 심박 음이 귓가를 찔렀다. 분당 145회. 호흡은 극도로 얕고 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쥐고 있는 철제 곤봉의 금속 마찰음이 그의 손가락 미세 떨림을 고스란히 대변했다.


“가, 가르시아! 뭘 멍하니 서 있는 거냐!”


바르가스가 침을 튀기며 포효했다. 카일의 압도적인 기세에 짓눌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자, 부하를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비열한 본능이 발현된 것이다.


“저 장님 이단자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하다! 당장 저 맹인 신부 녀석의 목을 쳐라! 소장님의 명령이다!”


바르가스의 다그침에 가르시아가 곤봉을 쥔 채 삐걱거리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레온이 아닌, 바닥에 쓰러져 피멍이 든 채 신음하는 에밀리 수녀의 어깨에 고정되어 있었다. 가르시아의 오라 속 청색의 슬픔과 죄책감이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레온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거친 감옥의 소음을 관통하는, 극도로 차분하고 성스러운 Clinician의 어조였다.


“가르시아. 네 심장이 비명을 지르고 있군. 분당 145회. 네 이성은 이미 알고 있는 거다. 네가 지금 들고 있는 그 곤봉이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시, 시끄럽다! 이단자 놈이 감히……!”


가르시아가 목핏대를 세우며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 끝은 심하게 흔들렸다. 레온은 그의 인지적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바르가스의 가학적인 통제 아래서 무고한 영웅들을 고문하고, 굶기고, 급기야 죄 없는 어린 수녀의 어깨를 짓밟는 것을 도우며…… 너는 매일 밤 거울 속의 자신을 향해 침을 뱉지 않았나? 네 영혼이 흘리는 눈물의 색깔이 내 눈에는 똑똑히 보인다, 가르시아.”


“닥쳐…… 닥치란 말이다!”


“네가 구하지 못했던 과거의 가족들. 그들을 향한 죄책감을, 왜 이 차가운 감옥에서 무고한 이들을 짓밟는 것으로 속죄하려 하지? 그것은 속죄가 아니라, 바르가스라는 괴물에게 네 영혼을 통째로 헌납하는 비겁한 도망일 뿐이다.”


레온의 언어적 메스가 가르시아가 수년간 쌓아 올린 가혹한 방어기제를 단숨에 도려냈다. 가르시아의 숨이 턱 막혔다. 그의 머릿속에서 바르가스가 자행했던 온갖 악행들과, 자신이 방조했던 비극의 순간들이 에밀리의 멍든 어깨와 겹쳐지며 폭풍처럼 소용돌이쳤다.


[정신 인지 지수: 100% (절대 이성 상태)]를 유지하는 레온의 눈빛은 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르시아의 영혼 깊은 곳을 투시하는 것처럼 맑고 단단했다. 가르시아는 그 기묘한 성스러움과 흔들림 없는 이성의 파동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그의 손에 쥔 철제 곤봉이 바닥을 향해 힘없이 내려앉았다.


“이 쓸모없는 반역자 놈이 기어코 미쳤구나!”


부하의 배신을 직감한 바르가스의 오라가 완전한 암적색의 광기로 뒤틀렸다. 그는 허리춤에서 무자비한 강철 검을 뽑아 들었다. 3성 무투가로서의 마력이 검날에 주입되며 붉은 검기가 이글거렸다.


“이단자와 함께 지옥으로 떨어져라!”


바르가스가 레온의 목을 베기 위해 일직선으로 폭주하며 검을 휘둘렀다. 레온은 마력 1성의 최약체였기에 그 물리적인 검격을 피할 힘이 없었다. 레온이 미세한 성력 장벽을 치려 했으나, 1성 마력의 한계로 인해 장벽은 형상화되기도 전에 바르가스의 살기에 허공에서 깨져 나갔다.


바로 그 순간, 가르시아가 결단을 내렸다.


“안 돼……!”


가르시아가 포효하며 자신의 거구를 레온의 앞방향으로 던졌다.


깡-! 콰아앙!


가르시아가 치켜든 철제 곤봉이 바르가스의 검날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무지막지한 마력의 충격파가 지하 감옥의 돌벽을 때렸다. 가르시아는 4성급 중장 전사의 완력을 지녔으나, 준비되지 않은 급작스러운 방어였기에 바르가스의 붉은 검기가 그의 어깨를 깊게 베고 지나갔다.


“크아아악!”


가르시아의 어깨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레온과 에밀리의 앞을 거대한 방패처럼 가로막고 서서, 바르가스를 향해 곤봉을 겨누었다. 그의 오라에서 황색의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자신의 존엄을 되찾은 자의 투명한 청색과 결연한 녹색의 오라가 찬란하게 뿜어져 나왔다.


“간수장…… 더 이상 신부님과 수녀님을 다치게 두지 않겠다. 내 검은 이제 악마들의 채찍이 되지 않는다.”


“이 배신자 새끼가 기어이 화형대에 서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바르가스가 다시 검을 치켜들며 가르시아의 목을 베려던 그 순간.


스으으으으…….


감옥 최하층의 공기가 일순간 영하로 떨어진 것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바르가스의 검날 위에 이글거리던 붉은 검기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압력에 눌려 힘없이 스러졌다.


카일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아직 자신의 대검 ‘아수라의 심장’을 뽑지도 않았다. 오직 전성기의 마력 8성급 검왕으로서 지닌 기세, ‘무극검결’의 무의식적 검막 파동만을 사방으로 방출했을 뿐이었다. 그 웅장하고 파괴적인 은빛 오라가 지하 감옥의 천장과 벽면을 짓누르며 굵은 돌가루들을 비처럼 떨어뜨렸다.


“……내 구원자의 몸에 손을 대려 하지 마라, 사냥개 놈들아.”


카일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동굴 같은 감옥 내부를 울렸다.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거역하는 즉시 영혼까지 베어버리겠다는 절대 강자의 선포였다.


툭. 투두둑.


바르가스의 뒤편에 서서 벌덜 떨고 있던 하급 간수들이, 카일이 풍기는 비현실적인 위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무기를 떨어뜨렸다. 그들의 다리는 이미 풀려 있었고, 일부는 바닥에 주저앉아 오줌을 지리기 시작했다.


바르가스 역시 검을 쥔 손이 마비된 것처럼 굳어졌다. 마력 3성의 무투가인 그에게, 8성 검왕의 기세는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거대한 장벽이었다. 그의 오라는 이제 완전한 흙빛의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이, 이 괴물 녀석들이…….”


바르가스는 비틀거리며 뒤로 걸음을 옮겼다. 가르시아의 배신과 카일의 부활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현실 앞에서, 그의 잔혹했던 지배력은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바르가스의 비열한 눈동자가 공포 속에서도 벽면에 설치된 놋쇠 레버를 향해 고정되었다. 최하층 감옥의 비상 경보 장치였다.


“이단자 놈들…… 요새 전체가 너희의 무덤이 될 것이다!”


바르가스가 광기 어린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온몸을 던져 벽면의 레버를 아래로 거칠게 잡아당겼다.


철컥-! 위우우우웅-!!!!!!!


감옥 최하층 벽면의 거대한 놋쇠 종들이 일제히 요동치며,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롭고 매캐한 경보 종소리가 지옥의 비명처럼 요새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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