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의 자객, 되돌아간 독침
어둠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철석곡의 밤은 죽음보다 고요했다. 지하 3층 폐광의 축축한 한독(寒毒)과 용광로의 지독한 열기가 뒤섞여 만들어낸 밤안개가 노예 막사 주변을 유령처럼 휘감고 있었다.
막사 구석의 낡은 짚단 침상 위, 소운은 가만히 누워 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호흡은 지극히 느리고 고요했다. 아버지가 가르쳐 준 모루 호흡법과 석정 스님에게 배운 관조 명상법이 그의 무의식 속에서 물 흐르듯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낮 동안 대장간에서 덕구와 함께 한철 광석을 제련하며 온몸의 뼈로 받아냈던 거대한 진동의 여파가, 차가운 한철 모루 위에서 단련된 골격 흡수(骨格 吸收)의 경지를 통해 서서히 가라앉는 중이었다.
웅웅웅…….
소운이 미세하게 숨을 내쉴 때마다 그의 206개 뼈마디가 단단히 맞물리며 아주 깊은 곳에서 은은한 무쇠 종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스로 기를 방출할 수 없는 기형적인 단전이었지만, 한철 모루의 한기를 머금은 뼈들은 이제 적의 어떠한 진기 타격이라도 내부에 가두어 둘 수 있을 만큼 굳건한 모루의 성질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소운의 머리카락 끝은 하얗게 세어버린 백발이 되어 어둠 속에서 쓸쓸히 흩날리고 있었다.
그 고요한 어둠을 깨뜨린 것은 장외의 탐욕이 부른 보이지 않는 살기였다.
최근 철석곡 투기장에서 벌어진 소운의 기적적인 연승은 사설 도박판의 판도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특히 소운이 절대 쓰러지지 않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매번 반대편에 전 재산을 걸었던 사파의 거물 도박꾼, 금손(金仙)은 이번 비무로 인해 가문이 휘청거릴 정도의 천문학적인 은자를 잃었다. 돈을 잃으면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금손의 편협한 성정은 결국 장외의 비열한 암살이라는 파멸적인 선택을 내리게 만들었다.
‘그 백발 샌드백 놈을 소리 소문 없이 숨통을 끊어라. 머리를 가져올 필요도 없다. 단전만 녹여서 폐인으로 만들든, 시체로 만들든 알아서 해라.’
금손이 만독문 변방 분타(萬毒門 邊方 分舵)에 거액의 황금을 던져 고용한 자는 일류 살수 중에서도 기습과 암살의 대가로 이름 높은 독사 칠랑(毒蛇 七狼)이었다.
스스스스슥…….
노예 막사의 낡은 지붕 위로 밤안개를 가르며 소리 없는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독사 칠랑은 전신을 비단처럼 부드러운 검은 복면으로 감싼 채, 잠령심법(잠령심법)을 극한으로 전개하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에는 기척도, 소리도 없었다. 지붕의 썩은 기와를 밟는 순간조차 미세한 먼지 하나 일지 않았다.
독사 칠랑은 기와 틈새로 시선을 내리꽂았다. 짚단 위에 무방비하게 누워 잠들어 있는 백발의 소년, 소운이 보였다. 살수의 입가에 비열하고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소문만 무성한 괴물이라더니, 결국 천한 노예 샌드백일 뿐이군. 자면서 경계조차 서지 못하다니.’
독사 칠랑은 소매 속에서 길쭉하고 얇은 황금 통을 꺼냈다. 그 내부에는 만독문 변방 분타에서 오직 그를 위해 특별히 제련한 암살 무기, 독사칠랑의 은침(銀針)이 장전되어 있었다. 은침의 끝부분에는 인체의 경맥을 흔적도 없이 녹여버리고 기혈을 즉시 마비시키는 음침한 사독(사독)이 발라져 있었다. 일단 스치기만 해도 단전이 부식되어 영구히 무공을 잃고 폭사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물이었다.
독사 칠랑은 손가락 끝에 진기를 모았다. 그의 잠령 진기가 은침 통의 보이지 않는 발사 장치에 스며들었다. 목표는 소운의 무방비하게 드러난 목덜미의 아문혈(啞門穴)이었다.
슈우욱!
대기를 가르는 파공음조차 허용하지 않는 극도로 은밀한 기습이었다. 밤안개 속을 뚫고 한 줄기 은빛 실선이 소운의 목을 향해 소리 없이 날아갔다.
그 찰나의 순간, 잠들어 있던 소운의 육체가 기적적으로 반응했다.
소운의 의식은 깊은 수면 상태에 빠져 있었으나, 그의 신경망은 석정 스님과의 명상 단련과 독사굴에서의 처절한 사투를 통해 일반인보다 백 배 이상 예민해진 초감각 통각(超感覺 痛覺)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밤안개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비틀린 공기의 진동, 그리고 은침에 실려 온 독사 칠랑의 미세한 살기(殺氣)가 소운의 피부 세포에 닿는 순간, 그의 체내 기맥이 스스로 요동쳤다.
스스로 때리지 않으나 가해지는 모든 악의를 비추는 거울의 이치.
소운의 단전 입구를 봉인하고 있던 삼생금침의 기운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그의 전신 표면에 은은한 백색 서리 같은 기류가 물결치듯 일어났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살기를 감지하면 육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기맥을 역전시키는 무의식의 방어막, 수면 반사막(睡眠 反射幕)이 가동된 것이다.
위이이잉!
소운의 몸 표면 위로 투명한 거울과 같은 은빛 장막이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깡!
소리 없이 날아온 독사칠랑의 은침 끝이 소운의 목덜미 피부에 닿기 직전, 은빛 수면 반사막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은침이 지닌 가벼운 질량과 독사 칠랑의 일류급 침투 진기가 반사막의 표면에 닿는 순간, 역천경력의 기경 반류(氣경 반류) 법칙이 무자비하게 작동했다.
받은 충격을 그대로 흡수하여 두 배의 위력으로 되돌려준다.
은침의 관통 에너지가 수면 반사막의 거울 같은 경계면에서 순식간에 두 배로 증폭되며 튕겨 나갔다. 방향은 은침이 날아왔던 정확한 역방향, 즉 지붕 위 독사 칠랑의 위치였다.
슈우우웅!
“……!”
지붕 위에서 소운의 죽음을 확신하고 있던 독사 칠랑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찢어질 듯 커졌다. 자신이 날린 독침이 믿을 수 없는 속도와 파괴력을 지닌 은빛 광선이 되어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고 있었다. 속도가 너무 빨라 피할 틈조차 없었다.
푸학!
“크아아악!”
어둠 속에서 뼈가 뚫리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독사 칠랑 자신의 맹독이 발라진 은침이 그의 오른쪽 허벅지 뼈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단순히 침이 박힌 수준이 아니었다. 소운의 반사막에 의해 두 배로 증폭된 관통력이 독사 칠랑의 대퇴골을 산산조각 내며 관통해 버린 것이다.
“이, 이 무슨…… 으윽!”
독사 칠랑은 허벅지를 움켜쥐고 지붕 위로 쓰러졌다. 은침 끝에 발라져 있던 음한사독이 그의 산산조각 난 뼈와 경맥 속으로 급속도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다리가 순식간에 시퍼렇게 변하며 마비가 올라왔다. 살수로서 평생을 단련해 온 전신 기맥이 자신의 독에 의해 스스로 녹아내리는 기괴한 자멸의 순간이었다.
독사 칠랑은 전율했다. 침상 위를 내려다보니, 방금 전까지 잠들어 있던 백발의 소년이 언제 일어났는지 가만히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소운의 투명한 은빛 눈동자가 고요하게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살기도, 분노도 없는 거울 그 자체의 눈빛이었다.
‘괴물…… 진짜 괴물이다!’
독사 칠랑은 공포에 질려 부러진 다리를 이끌고 전신 진기를 폭발시켰다. 그는 허벅지의 혈도를 급히 봉인한 뒤, 밤안개가 자욱한 철석곡의 어둠 속으로 비틀거리며 신형을 날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스스슥.
소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상 옆 바닥에는 튕겨 나간 독사칠랑의 은침 하나가 뿜어낸 독기로 인해 짚단 일부가 검게 녹아내려 있었다. 만약 반사막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뒤틀린 경맥은 그대로 녹아내렸을 터였다.
소운은 품속의 부러진 대장간 망치를 한 번 만져본 뒤,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은 채 밤안개 속으로 비틀거리며 도망치는 살수의 흔적을 쫓아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배후를 캐내어 가문의 원한을 풀 단서를 잡아야 했다.
어둠과 안개로 가득 찬 철석곡의 밤거리,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일류 살수와 그 뒤를 고요히 뒤쫓는 백발 소년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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