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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용광로, 차가운 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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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뿜어진 조웅의 살기는 한 가닥 실바람조차 허용하지 않을 만큼 매섭고 정교했다.


백광검파의 정예 첩자답게 조웅의 손목 스냅은 소리도 없이 비틀렸고, 그의 넓은 소매 사이로 벼려진 은빛 비수가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목표는 소운의 목덜미였다. 혈련초의 약력으로 이제 막 기혈을 다스린 소 소년의 목을 단숨에 꿰뚫어 숨통을 끊겠다는 잔혹한 일격이었다.


카강!


의무실 뒤편의 어두운 대장간 폐허에 기괴한 쇠울음소리가 낮게 울렸다. 조웅의 비수 끝이 소운의 목에 닿기 직전, 소운은 왼팔을 들어 올렸다. 스스로 먼저 주먹을 내지르거나 적을 타격할 수는 없었으나, 십 년간 모루질을 보며 자란 소운의 눈은 조웅의 비수 궤적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포착해 냈다.


두꺼운 삼베와 미세한 한철 실을 꼬아 만든 소운의 무쇠 실 붕대가 조웅의 비수 칼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


조웅의 안광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허공을 찌르는 듯 부드럽게 침투하던 자신의 비수가 마치 천 근 무게의 철판을 때린 것처럼 튕겨 나간 것이다. 비수를 타고 역류한 충격은 조웅의 손목 관절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하지만 조웅 역시 수많은 사선을 넘나든 일류급 첩자였다. 그는 튕겨 나가는 반동을 이용해 신형을 허공으로 띄우며 오른발로 소운의 가슴을 차고 들어왔다. 발끝에 백광검파 특유의 예리한 예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소운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이유가 없었다.


소운은 단전을 비워내며 아버지가 가르쳐 준 모루 호흡법을 전개했다. 전신의 뼈마디를 일렬로 단단히 밀착시키고, 조웅의 발끝이 가슴팍에 닿는 찰나의 순간 피부와 근육의 긴장을 완전히 풀었다.


‘피막 저장(皮膜 貯藏).’


조웅의 발길질에 담긴 운동 에너지가 소운의 가죽과 근육 사이의 틈새로 고스란히 흡수되었다. 소운의 가슴팍이 순간적으로 붉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그 충격이 배가 되어 조웅의 발끝을 향해 고스란히 되돌아갔다.


콰아앙!


“크헉!”


조웅은 자신이 내지른 힘의 두 배에 달하는 반탄력을 정면으로 얻어맞았다. 그의 발끝 뼈가 으스러지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조웅의 거구가 대장간 벽면의 낡은 철판 더미 위로 처참하게 처박혔다. 쇠붙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요란한 소음을 냈다.


조웅은 깨진 무릎을 움켜쥐고 신음하며 소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단순한 경악을 넘어선 깊은 공포가 서려 있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 스스로 기를 뿜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런 힘을…….”


소운은 흩날리는 백발 사이로 고요한 눈빛을 빛내며 조웅에게 다가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무거웠으나 흔들림이 없었다. 소운은 바닥에 떨어진 조웅의 비수를 발로 차서 치워버린 뒤, 그의 품속을 거칠게 수색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독고용 장로에게 보낼 보고 서찰의 원본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웅이 피 섞인 웃음을 흘리며 조롱하듯 중얼거렸다.


“쿨럭…… 이미 늦었다. 소가 가문의 생존자가 이곳에 있다는 밀서는…… 이미 해질녘에 다른 전령을 통해 수안성으로 출발했다. 독고용 장로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는 순간, 우각촌의 네 이모놈은 물론이고 너와 관련된 모든 자들이 가루가 될 것이다.”


소운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아버지를 죽이고 가문을 몰살한 원수, 독고용의 이름이 조웅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억눌린 분노의 불길이 일렁였다. 하지만 소운은 이내 석정 스님에게 배운 관조 명상법을 떠올리며 그 뜨거운 감정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분노는 거울을 흐리게 할 뿐이었다.


이때 소란을 듣고 의무실 뒷문을 열고 나온 설아가 차가운 얼굴로 은침을 쥐고 다가왔다. 설아는 조웅의 전신 혈도를 순식간에 제압하여 그를 완벽한 가사 상태로 만들어 대장간 지하 폐갱도 구석에 숨겼다.


“소운, 시간이 없다.”


설아의 목소리에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다.


“첩자의 서찰이 수안성에 도달하면 백광검파의 추격대인 장포대(長袍隊)가 이곳으로 몰려올 것이다. 게다가 흑호방 방주 흑태풍 역시 조만간 너를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무서운 음모를 꾸밀 터. 지금 네 육체의 그릇으로는 그들의 일류 고수들이 뿜어내는 절대적인 파괴력을 견뎌낼 수 없어.”


소운은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조웅의 이류급 발길질을 반사해 냈음에도, 전신의 뼈마디가 미세하게 삐걱거리며 둔탁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가죽과 근육 사이에 기운을 저장하는 피막 저장의 경지만으로는 적들의 예리한 검기나 뼈를 관통하는 진동공을 받아낼 수 없었다.


뼛속까지 무쇠처럼 단단하게 다지지 않는다면, 다음 비무에서 적의 강타를 맞는 순간 온몸의 골격이 산산조각 나 폭사할 터였다.


“지하 대장간으로 가겠다.”


소운의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단단한 쇠 냄새가 묻어났다.


“그곳에서 뼈를 제련하겠다.”


* * *


철석곡 지하 3층 대장간(鐵石谷 地下 大鍛冶).


이곳은 숨이 턱턱 막히는 유독한 열기와 사방으로 튀는 붉은 불똥, 그리고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둔탁한 망치 소리로 가득 찬 지옥의 축소판이었다. 하루 열두 시간 동안 거대한 철퇴를 휘두르고 뜨거운 쇳물을 날라야 하는 가혹한 노역지였기에, 일반 노예들은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폐병에 걸려 죽어 나가는 곳이었다.


소운은 스스로 이 지옥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화로 앞에서 그을린 뺨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한철 광석을 연마하고 있던 대장간 보조 덕구(德九)가 소운을 발견하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소, 소운 형님? 이 몸으로 왜 여기를 오셨습니까? 의무실에서 쉬셔야 할 분이 왜 이런 험한 곳에…….”


덕구는 소운의 팔에 감긴 무쇠 실 붕대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소운은 묵묵히 다가가 화로 옆에 놓인 거대한 쇳덩이와 가공되지 않은 한철 광석(寒鐵 鑛石) 더미를 가리켰다.


“덕구야. 한철을 제련할 때 발생하는 반동력을 내 몸으로 받겠다.”


“예? 그게 무슨…… 한철 광석을 두드릴 때 나오는 반동은 무쇠 망치마저 부러뜨릴 정도로 강합니다! 그걸 맨몸으로 받으시겠다니요? 뼈가 가루가 될 겁니다!”


덕구가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소운의 투명한 은빛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소운은 조용히 상반신의 무복을 벗어 던졌다. 가시 채찍에 맞았던 상처와 독사굴에서 입은 교상의 흔적이 전신에 피딱지로 가득했으나, 그의 골격만큼은 곧고 단단하게 서 있었다.


“망치가 모루를 때릴 때, 모루는 단 한 번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덕구야, 나를 모루라 생각하고 사정없이 내리쳐라.”


소운의 단호한 기세에 압도된 덕구는 마른침을 삼키며 거대한 쇠망치를 쥐었다.


소운은 화로 옆, 열기가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용광로 핵심부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가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인적인 열독(熱毒)이 소운의 온몸을 붉게 달구기 시작했다. 피부 표면이 타들어 가는 듯한 작열통이 덮쳐왔으나, 소운은 단전을 완전히 비워낸 채 가문의 비법인 모루 호흡법을 전개했다.


풀무질의 리듬에 맞춰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전신의 206개 뼈마디가 미세하게 수축하며 서로 단단히 밀착되었다. 뼈와 뼈 사이의 틈새를 없애고 전신 골격을 단 하나의 거대한 철판처럼 결합하는 과정이었다.


“간다, 형님!”


덕구가 기합 소리와 함께 붉게 달아오른 한철 광석 위에 망치를 내리쳤다.


깡!


무지막지한 타격음과 함께 한철 광석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반동 기류가 대기를 찢으며 소운의 정면으로 들이쳤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쇠와 쇠가 부딪히며 발생하는 초고속의 진동 파동이었다.


쿠우웅!


소운의 가슴팍이 크게 흔들렸다. 전신의 가죽과 근육이 진동에 의해 사정없이 떨렸으나, 소운은 몸을 이완한 상태에서 그 진동 에너지를 피부막 내부로 온전히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 기운을 단전으로 보내는 대신, 기경팔맥의 역방향 경로를 통해 뼈마디 속으로 밀어 넣었다.


‘기혈 역전(氣血 逆轉).’


“끄으윽……!”


소운의 이가 악물렸다. 적의 타격을 뼈 속으로 직접 밀어 넣는 고통은 가죽이 찢어지는 고통과는 차원이 달랐다. 골수가 타들어 가고, 관절 마디마디가 맷돌에 갈리는 듯한 극심한 마찰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다. 소운의 백발이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었고, 그의 모공에서 미세한 핏방울이 배어 나와 붉은 줄기를 그렸다.


하지만 소운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라!”


깡! 깡! 깡!


덕구의 망치질이 빨라질 때마다, 철석곡 지하 대장간의 무거운 공기가 소운의 전신을 압박했다. 용광로의 살인적인 열독이 소운의 체내로 침투하여 그의 단전과 장기들을 붉게 달구었다. 열기와 진동이 체내에서 결합하며 소운의 경맥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내장이 타버리거나 경맥이 폭사할 위기였다.


소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으나, 정신만큼은 관조의 경지 속에서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한철 모루로 가겠다.”


소운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대장간 뒤편, 간수들도 발을 들이지 않는 지하 폐광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수십 년 전 가문의 조부 소정태가 도피 당시 숨겨두었던 전설적인 한철 모루(寒鐵 鑛石)가 깊은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만지기만 해도 뼈 속까지 시리는 극한의 냉기가 흘러나오는 푸른 빛의 쇳덩이였다.


소운은 달아오른 몸을 이끌고 차가운 한철 모루 위에 전신을 밀착해 누웠다. 그리고 대장간 보조 덕구가 길어온 얼음처럼 차가운 지하 냉천수(地下 冷泉水)를 자신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끼얹었다.


치이이이익!


붉게 달아오른 소운의 가죽과 뜨거운 쇳덩이 같던 뼈마디가 한철 모루의 극한의 냉기와 부딪히는 순간, 기괴한 수증기가 폐광 깊은 곳의 어둠을 가득 메웠다.


급격한 온도 차이로 인해 소운의 전신 피부와 가죽이 순식간에 수축했고, 뼈마디가 깎여나가는 듯한 극심한 오한과 통증이 엄습했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멈추는 듯한 동상의 위기 속에서, 소운은 정신을 집중하여 가슴속 부러진 대장간 망치의 형상을 떠올렸다.


‘모루는 깨지지 않는다. 열기를 품고, 냉기를 견디며, 오직 단단해질 뿐이다.’


소운은 숨을 멈추고 뼈 속의 미세한 진기들을 동조시키기 시작했다. 용광로에서 흡수한 뜨거운 진동 에너지가 한철 모루의 냉기와 만나는 순간, 뒤틀린 경맥 속에서 기이한 공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소운의 전신에서 은은한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단순한 피부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의 몸 안쪽 깊은 곳, 206개의 뼈마디가 일렬로 정렬되어 서로를 때리며 내뿜는 쇠울음소리(금명)였다. 뼛속의 골밀도가 무쇠처럼 단단해지고, 적의 진기 공격마저 뼈의 진동으로 가두어 둘 수 있는 새로운 경지가 열리고 있었다.


‘골격 흡수(骨格 吸收) 경지.’


마침내 수련을 마친 소운이 한철 모루 위에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온몸에서 백색의 서리 같은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그의 가죽 표면에는 은은한 백색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소운을 걱정하여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지켜보던 덕구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소운이 가만히 숨을 내쉴 때마다, 그의 몸속 깊은 곳에서 은은한 무쇠 종소리가 웅웅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구는 경탄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섞인 눈빛으로 소운을 바라보았다.


“형님…… 당신의 몸에서…… 무쇠 소리가 납니다.”


소운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투명한 은빛 눈동자는 세상의 모든 악의와 폭력을 비추는 거울처럼, 맑고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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