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의 그림자, 정파의 첩자
독사굴의 무거운 철문이 삐걱거리며 열리자, 한 줄기 차가운 달빛과 함께 은침 통을 쥔 설아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철문 밖에 서 있던 간수들은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와 지독한 뱀 썩는 냄새에 저마다 코를 쥐며 뒤로 물러섰다. 횃불을 높이 든 간수장 팽호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 독사굴의 음습한 돌바닥에는 수십 마리에 달하는 칠점사들이 머리가 터지고 비늘이 뒤틀린 채 시체가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피의 제단 한가운데, 회색 장포를 걸친 소년이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이, 이 기괴한 놈……! 이 독사 구덩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은 거냐?”
팽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마독을 불구로 만든 사술도 모자라, 만독문에서 공수해 온 최독의 뱀들을 맨손 하나 대지 않고 몰살시켰다. 간수들이 공포에 질려 창검을 움켜쥐었으나, 선뜻 소운에게 다가서는 자는 없었다.
설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팽호를 쏘아보며 앞서 걸어 나갔다.
“비켜라. 체내에 유입된 사독이 단전을 옥죄고 있어 당장 맥이 끊어지기 직전이다. 방주께서 이 자를 다음 도박판의 샌드백으로 쓰려 하신다면, 지금 당장 의무실로 옮겨 기혈을 잡아야 한다. 숨이 끊어지면 너희가 방주실의 노여움을 감당할 텐가?”
의원으로서의 서슬 퍼런 일갈에 팽호는 마지못해 길을 열었다. 소운은 설아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왼쪽 팔목에는 독사에게 물린 선명한 이빨 자국이 검푸르게 죽어 있었고, 가슴팍에는 가시 채찍의 화상 흔적이 진물과 함께 굳어 있었다. 겉으로는 굳건해 보였으나, 소운의 체내는 이미 칠점사의 음한한 사독과 역류한 진기가 뒤엉켜 폭발하기 직전의 화약고와 같았다.
의무실의 무거운 목조 문이 닫히고 빗장이 걸리자마자, 소운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설아는 그를 침상에 눕히고 서둘러 품속에서 작은 옥병을 꺼냈다. 옥병을 열자 짙은 자색을 띤 알약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향긋하면서도 톡 쏘는 약향이 좁은 의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마셔라. 아버님이 수안성에서 인술당을 운영하시는 백의원이다. 흑호방의 삼엄한 눈을 피해 초희의 상단을 통해 은밀히 보내온 통락환(通絡丸)이다. 체내의 사독을 정화하고 뒤틀린 경맥의 통로를 일시적으로 소통시키는 유일한 영약이다.”
소운은 말없이 약을 받아 삼켰다. 약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단전 입구에 닿는 순간, 지옥 같은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으윽……!”
소운의 입에서 억눌린 비명이 새어 나왔다. 뒤틀린 기형 단전이 통락환의 강력한 약력을 침입자로 인식하고 팽창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전의 탄성이 요동치며 체내에 침투해 있던 칠점사의 사독을 사방으로 밀어냈다. 기혈 역전의 흐름이 극에 달하며 소운의 모공에서 검붉은 피가 땀처럼 뿜어져 나왔고, 그의 머리카락 끝이 한층 더 하얗게 세어 들어갔다.
설아는 긴장한 얼굴로 자오삼침을 쥐고 소운의 가슴 전중혈과 거궐혈을 정밀하게 타격했다. 침 끝에 실린 푸른 진기가 소운의 폭주하는 맥박을 강제로 동조시키며 기맥의 파열을 막아섰다.
“참아라, 소운. 마음을 비우고 모루가 되어라.”
소운은 석정 스님에게 배운 관조 명상법을 발동했다. 전신이 불타는 듯한 작열통과 뼈 속까지 얼어붙는 한독의 고통을 제3자의 시선으로 묵묵히 바라보았다. 고통을 거부하지 않고 온전히 수용하자, 통락환의 약력이 사독을 응축하여 하체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소운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준비된 놋대야에 검붉은 혈뇨(血尿)를 쏟아냈다. 지독한 독기가 섞인 핏물이 대야 바닥을 탁하게 물들였다.
처절한 해독 과정이 끝나자, 소운의 피부 표면에 은은한 백색 윤기가 흐르며 강철 가죽의 기틀이 한층 더 단단하게 가라앉았다. 설아는 그가 흘린 핏물을 은밀히 닦아내며, 백광검파를 향한 조용한 분노를 드러냈다.
“백광검파 장로 독고용…… 그 위선자가 뒤로는 이 철석곡의 인신매매를 묵인하고 자금을 세탁하고 있다. 내 가문을 멸문시키고 내 아버지를 쫓아낸 자 역시 그자다. 소운, 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몬 배후도 결코 그자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운은 품속의 부러진 대장간 망치를 꽉 쥐었다. 살생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면서도, 그 위선자들의 목을 조여 가겠다는 투지가 그의 맑은 눈동자 속에서 얼음처럼 빛났다.
한편, 의무실 밖의 어두운 복도 구석에서는 한 사내가 벽에 기대어 숨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평범한 철석곡 간수의 옷을 입고 있었으나, 그의 기형적으로 고요한 호흡은 일반 사파 무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의 정체는 백광검파 수안지부에서 보낸 정예 첩자, 조웅(趙雄)이었다.
조웅은 어둠 속에서 의무실 내부의 미세한 진동과 기류 변화를 탐지하고 있었다. 그가 익힌 잠행기공은 미세한 인기척마저 완벽히 지워냈지만, 소운이 지닌 초감각 통각과 백광검파 초식 분석법을 완전히 속일 수는 없었다.
침상에 누워 있던 소운의 귀에 아주 미세한, 규칙적인 호흡의 흔들림이 걸려들었다.
‘백광검파의 잠행기공 리듬이다.’
어릴 적, 자신의 대장간을 습격해 가족들을 학살하던 자들이 내뿜던 그 기분 나쁜 호흡의 잔향이 소운의 뇌리를 스쳤다. 소운은 머릿속으로 백광검파의 초식 궤적을 그리며 조웅의 위치를 정확히 역분석해 나갔다.
조웅은 속으로 생각했다.
‘마독의 채찍이 되돌아간 궤적, 그리고 독사굴의 뱀들이 외상 하나 없이 뇌수가 터져 죽은 흔적…… 이것은 스스로 때리지 않고 충격을 되돌려주는 소가(蘇家) 가문의 전설적인 외공 무학이다. 십 년 전 멸문당한 줄 알았던 소대장의 핏줄이 살아있었던 것인가. 확실한 물증이 필요하다.’
조웅은 소운이 지니고 있을 소가 가문의 유품을 탈취해 독고용 장로에게 보고하기로 결심했다. 보고 서찰이 백광검파 본산에 전달되는 순간, 우각촌의 이모와 소운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될 터였다.
깊은 밤, 자오시(子午時)의 달빛이 의무실 뒤편의 낡은 대장간 폐허를 쓸쓸히 비추었다.
조웅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의무실 창문을 넘어 소운의 피 묻은 무복이 쌓여 있는 구석으로 접근했다. 그의 목표는 소운이 품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소가 가문의 유품, 부러진 대장간 망치였다. 조웅의 얇은 손가락이 낡은 천에 싸인 무쇠 망치 머리에 닿으려는 찰나였다.
스윽.
어둠 속에서 시체처럼 차갑지만, 무쇠처럼 단단한 손아귀가 조웅의 손목을 벼락같이 움켜쥐었다. 소운이었다. 그의 백발이 밤바람에 흩날렸고, 거울처럼 투명한 은빛 눈동자가 가면 뒤 조웅의 눈을 정면으로 비추었다.
“훔치려던 것이…… 이것인가?”
조웅의 심장이 순간 얼어붙었다. 정파 첩자의 숨겨진 살기가 어둠 속에서 예리하게 뿜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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