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뱀, 보이지 않는 살기
마독의 안구가 파열되는 기적이 일어난 직후, 철석곡의 연무장은 광포한 살기로 뒤덮였다. 쓰러진 교관의 비명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수십 명의 간수들이 창검을 세우고 소운을 옥죄어 왔다. 소운은 등뒤에 숨은 어린 철이를 조심스럽게 밀어내며, 가만히 두 팔을 내밀었다. 스스로 먼저 주먹을 휘두를 수 없는 몸이었기에, 불필요한 저항으로 철이와 다른 노예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이 사술을 부리는 악독한 노예 놈을 당장 지하 3층 독사굴(毒蛇窟)에 처넣어라! 고통 속에서 살점이 녹아내리며 죽어가게 만들어라!”
간수장의 표독스러운 외침과 함께 묵직한 쇠사슬이 소운의 목과 두 팔을 사정없이 감아쥐었다. 소운은 묵묵히 그 구속을 받아들였다. 그의 왼쪽 뺨에는 어제 광견과의 비무로 생긴 찰과상 딱지가 검푸르게 앉아 있었고, 가슴팍에는 마독의 채찍질이 남긴 붉은 화상 자국이 선명했다. 간수들의 거친 손길에 이끌려 연무장을 나서는 소운의 등뒤로, 철이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형, 꼭 살아남아야 해.’
그 간절한 눈빛을 마지막으로, 소운은 철석곡에서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떨어졌다.
쿵!
장정 수십 명이 달라붙어 철제 빗장을 열어젖히자, 지독한 악취와 음습한 한기가 가득한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간수들은 자비 없이 소운의 등을 밀쳤다. 십 장 아득한 나락 아래로 소운의 몸이 사정없이 추락했다.
바닥에 닿는 순간, 소운은 전신의 관절을 유연하게 접어 낙하의 충격을 사방으로 분산시키는 ‘철벽 낙법’을 전개했다.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바닥의 썩은 흙더미가 사방으로 튀었으나, 강철 가죽 경지에 이른 그의 신체는 뼈가 부러지는 치명상을 피할 수 있었다.
지하 3층 독사굴.
이곳은 빛 한 점 허용되지 않는 완벽한 허무의 공간이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오직 끈적한 어둠만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썩은 시체의 냄새와 축축한 곰팡이 향이 코끝을 찔렀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소운의 예리한 청각을 자극하는 기괴한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슥…….
마른 낙엽이 스치는 듯한,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규칙적이고 음산한 마찰음이었다. 수십, 수백 마리의 비늘들이 차가운 돌바닥을 쓸며 기어 다니는 소리. 만독문 변방 분타(萬毒門 邊方 分舵)에서 철석곡의 노예들을 처형하고 독물 실험을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공급하는 칠점사(七點蛇) 무리들이었다.
소운은 차가운 바위벽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주저앉았다. 아직 연무장에서의 매질 여파로 전신 골격이 삐걱거렸고, 가슴의 채찍 상처가 쓰라렸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시각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때, 머리 위 허공에서 미세한 파공음이 일었다.
쉬이익!
어둠 속에서 독사 한 마리가 소운의 노출된 왼쪽 목덜미를 향해 소리 없이 날아올랐다. 소운은 반응하려 했으나, 좁은 공간의 한독과 전신의 피로 때문에 찰나의 순간 신형이 무거워졌다.
툭!
예리한 이빨이 소운의 왼쪽 팔목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차갑고 음한한 독기가 핏줄을 타고 순식간에 체내로 유입되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오한이 전신을 엄습했다. 일류 살수들이 쓰는 기습 독침만큼이나 치명적인 사독(蛇毒)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감각을 열어야 한다.’
소운은 눈을 감았다. 아니, 이미 눈을 뜨고 있어도 어둠뿐이었기에 마음의 눈을 열었다. 그는 석정 스님에게 배웠던 관조 명상법을 떠올렸다. 통증과 죽음의 공포를 제3자의 시선으로 묵묵히 바라보는 심법. 그 고요함 속에서, 소운은 자신의 신경망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초감각 통각(超感覺 痛覺)’을 활성화했다.
아아아아아!
전신의 신경이 일반인보다 백 배 이상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왼쪽 팔목의 뱀 독이 퍼져나가는 고통, 등뒤의 화상 상처가 바위에 쓸리는 쓰라림이 뇌리를 찌르는 지옥 같은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극심한 고통의 파도가 소운의 뇌세포를 극한으로 깨워놓았다.
이제 소운의 귀에는 뱀들의 미세한 심장 박동 소리, 독니에서 독이 뿜어져 나오기 전 근육이 수축하는 미세한 진동음까지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피부 표면의 솜털들이 공기의 미세한 기류 변화를 물결처럼 감지해 냈다. 어둠 속의 뱀들이 어디서 몸을 웅크리고, 어느 각도로 튀어 오를지가 머릿속에 은빛 궤적으로 정밀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스스슥, 팟!
정면 삼 척 거리에서 또 다른 독사가 소운의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
소운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독사의 이빨이 가슴 보호대 무명옷 표면에 닿기 직전의 0.1초의 찰나, 소운의 체내에서 잠들어 있던 ‘수면 반사막(睡眠 反射幕)’이 자율적으로 발동했다. 의식이 흐려진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살기를 감지하면 스스로 작동하는 역천경력의 수호막이었다.
웅!
소운의 가슴 표면에서 미세한 은빛 장막이 거울처럼 번뜩였다. 독사의 주둥이가 장막에 부딪히는 순간, 뱀이 돌진하며 품었던 무자비한 운동 에너지가 갈 곳을 잃고 고스란히 저장되었다. 그리고 기혈 반류 제어를 통해 그 에너지가 두 배의 파괴력으로 역류했다.
퍼억!
기괴한 마찰음과 함께 독사의 머리가 스스로의 돌진력을 견디지 못하고 허공에서 산산조각 나며 파열되었다. 붉은 핏방울과 뱀의 뇌수가 어둠 속에서 소운의 얼굴로 흩뿌려졌다.
하나가 깨지자, 사방에서 피비린내를 맡은 독사들이 광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쉬이익! 쉬익!
동시다발적으로 대여섯 마리의 뱀들이 소운의 얼굴, 목덜미, 어깨를 향해 사방에서 덮쳐왔다. 소운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모루 호흡법’을 전개했다. 전신의 206개 뼈마디를 단단히 밀착시켜 거대한 무쇠 모루처럼 버텨내는 가문의 비기.
초감각 통각을 통해 날아오는 모든 뱀들의 물리적 궤적이 소운의 피부에 실시간으로 분석되어 입력되었다.
깡! 깡! 팍! 팍!
뱀들이 소운의 어깨와 팔목에 부딪힐 때마다 둔탁한 쇳소리가 연무장의 모루처럼 울려 퍼졌다. 뱀들의 이빨은 지골초와 한철 모루의 냉기로 단련된 소운의 강철 가죽을 뚫지 못했고, 그들이 가한 무자비한 돌진 에너지는 소운의 가죽과 근육 사이에 고스란히 갇혔다.
‘돌려준다.’
소운이 전신을 미세하게 튕겨내며 쌍배 반사(雙倍 反射)의 기류를 사방으로 방출했다.
콰아아앙!
은빛 충격파가 소운의 몸 주변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공중에서 소운을 물려던 독사들이 두 배의 반탄력을 정면으로 맞고 전신 비늘이 뒤틀리며 사방의 석벽에 부딪혀 사체가 되어 떨어졌다.
독사굴 바닥에 뱀들의 사체가 겹겹이 쌓여갔다. 소운은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왼쪽 팔목을 바라보았다. 처음에 물렸던 칠점사의 사독이 체내의 뒤틀린 경맥 속에서 기혈 역전의 기류와 충돌하고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미 심장이 굳어 즉사했어야 할 맹독이었다. 그러나 소운의 기형적인 단전은 독기를 밖으로 방출하지 않고 내부에 가두어 두는 기이한 탄성을 지니고 있었다. 소운은 관조 명상법을 극대화하여 독기의 음한한 성질을 역천경력의 반사 회로에 강제로 태우기 시작했다.
독을 독으로 제어하는 것이 아닌, 독이 지닌 침투 압력 자체를 자신의 내력과 동화시키는 기예였다.
스으으으…….
소운의 전신 피부 표면에서 검붉은 모공의 어혈들이 정화되며, 뱀의 맹독이 푸른색 기류로 변해 모공 밖으로 서서히 배출되기 시작했다. 독사들의 공격을 완벽히 흡수하고 반사해 낸 소운의 전신에서 푸른 독기와 함께 미세한 진기의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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