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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루와 쇠사슬, 그리고 가시 채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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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아침 공기가 철석곡 연무장(鐵石谷 演武場)의 척박한 흙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매서운 모래바람이 불 때마다 노예 격투가들이 흘린 피와 땀이 뒤섞인 흙먼지가 부옇게 피어올랐다. 소운은 연무장 한구석에 가만히 서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왼쪽 뺨에는 어제 광견(狂犬)의 철조망 가시에 긁힌 깊은 찰과상이 검푸른 피딱지로 굳어 있었다. 설아가 정성껏 달여 준 혈련초의 약력 덕분에 갈비뼈의 실금은 기적처럼 붙었으나, 전신 골격에는 여전히 둔탁한 피로감이 모래처럼 무겁게 쌓여 있었다.


탁. 탁. 탁.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 나오는 발소리가 무겁게 대지를 울렸다. 한쪽 눈에 검은 가죽 안대를 쓴 거구의 사내, 교관 마독(馬毒)이었다. 그의 손목에는 굵은 한철 가시를 촘촘히 박아 넣은 특수 가죽 채찍이 단단히 감겨 있었다. 채찍이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가시들이 서로 부딪치며 쇳소리를 냈다. 마독의 하나 남은 눈동자에는 소운을 향한 지독한 의심과 독기가 가득 차 있었다.


구철에 이어 투기장 2위인 광견마저 손목이 부러진 채 실려 나갔다. 마독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스스로 내력을 방출할 구멍조차 없는 기형적인 단전을 지닌 샌드백 노예가 어떻게 일류에 준하는 격투가들을 연이어 파멸시킬 수 있단 말인가. 분명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교묘한 사술이나 방어구를 숨겨두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마독은 오늘 이 연무장에서 소운의 맷집 한계를 시험하고, 그 기괴한 비밀을 완전히 찢어발기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천한 놈. 어제 도박판에서 방주님의 배당금을 아주 개판으로 만들어 놓았더구나.”


마독이 채찍을 가볍게 털었다. 파아앙! 대기를 찢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연무장을 싸늘하게 얼렸다. 주위에 서 있던 하급 간수들과 노예 격투가들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마독의 채찍질은 한 번 시작되면 살점이 통째로 뜯겨 나가고 뼈가 드러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마독의 눈빛을 응시할 뿐이었다. 스스로 먼저 공격하지 않고 오직 가해지는 충격을 거울처럼 비추어 되돌려준다는 역천경력(逆天鏡力)의 절대 금기. 소운은 품속 깊은 곳에 보관된 부러진 대장간 망치를 의식하며, 아버지가 가르쳐 준 모루의 이치를 가슴 깊이 새겼다.


그때였다. 연무장 중앙에서 낡은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모래를 쓸던 가냘픈 소년이 마독의 발걸음에 걸려 바닥으로 넘어졌다. 이마에 노예 낙인이 찍힌 열두 살의 어린 노예, 철이(鐵伊)였다.


“악……!”


철이가 들고 있던 빗자루가 부러지며 마독의 가죽 장화 위로 흙먼지가 튀었다. 마독의 눈썹이 흉측하게 꿈틀거렸다. 안 그래도 소운의 기괴한 연승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있던 마독에게, 철이의 실수는 아주 좋은 화풀이 대상이었다.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냐,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마독이 포효하며 손목에 감겨 있던 한철 가시 채찍을 높이 치켜들었다. 채찍 끝에 박힌 가시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붉고 번뜩이는 살기를 뿜어냈다. 저 채찍이 철이의 마른 등덜미에 내리쳐진다면, 뼈가 으스러지고 목숨을 잃을 것이 자명했다. 철이는 두려움에 질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바닥에 웅크렸다.


쉬이이익!


마독의 가시 채찍이 대기를 가르며 철이의 등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쳐졌다. 살육의 쾌감에 젖은 마독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바로 그 순간, 흙먼지 속에서 회색빛 그림자가 바람처럼 움직였다. 소운이었다. 그는 철이의 앞을 가로막아서며 자신의 넓은 등을 채찍의 궤적을 향해 내던졌다. 스스로 먼저 주먹을 날릴 수는 없었으나, 억압받는 약자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의 육신을 방패로 삼은 것이다.


찰아아악!


가시 채찍이 소운의 어깨와 등덜미를 정면으로 후려쳤다.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찢어지는 비명 소리 대신, 깡! 하는 기괴한 쇳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무쇠 모루를 강철 망치로 내리칠 때 나는 둔탁한 울림이었다.


소운은 채찍이 닿는 찰나, 몸의 관절을 유연하게 접어 충격을 흘려보내는 ‘철벽 낙법 및 유연술’을 응용했다. 동시에 뼈를 단단히 밀착시켜 충격을 전신 골격으로 고르게 분산하는 모루 호흡법을 전개했다. 채찍 끝에 박힌 한철 가시들이 소운의 등 가죽을 찢으려 발악했으나, 지골초와 한철 모루의 냉기로 다져진 ‘강철 가죽(鋼鐵 皮) 형성기’의 단단한 방어막에 가로막혀 붉은 자국만 남긴 채 튕겨 나갔.


“으윽……”


소운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새어 나왔으나, 그의 발걸음은 단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엎드린 철이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자신의 등뒤로 숨겼다. 철이는 맑은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자신을 지켜선 소운의 백발 덮인 뒷모습을 경외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 천한 샌드백 놈이 감히 내 매질을 가로막아?”


마독의 하나 남은 안구가 핏발로 붉게 충혈되었다. 노예 주제에 자신의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내고도 멀쩡히 서 있는 소운의 모습은, 마독의 오만한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마독은 소운이 숨겨둔 사술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전신의 내력을 가시 채찍 끝으로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채찍 표면의 가시들이 검붉은 기류를 뿜어내며 기괴하게 요동쳤다.


“오냐, 네놈이 얼마나 잘 버티는지 오늘 끝을 보장하마! 간수들은 저 꼬맹이 놈을 꼼짝 못 하게 잡아두어라!”


마독의 명령에 하급 간수들이 철이를 강제로 끌고 가 연무장 구석의 쇠창살 벽에 밀쳤다. 철이가 울부짖으며 소운의 이름을 불렀으나, 간수들의 거친 손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소운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마독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깊고 맑은 은빛 서리를 머금은 채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뺨에 흐르는 한 줄기 핏방울이 그의 얼굴을 더욱 비장하게 만들었다. 소운은 전신의 관절을 이완한 채, 마독이 가장 강력한 일격을 정직하게 내지르도록 유도하기 위해 가만히 서서 대치했다.


“네 채찍이 겨우 그 정도냐. 아버지를 죽인 백광검파의 개치고는 무척이나 유약하군.”


소운의 나지막하고 고요한 목소리가 연무장의 적막을 깨뜨렸다. 아버지를 죽인 배후의 실태를 언급하는 소운의 도발에 마독은 이성을 상실했다.


“죽여주마! 이 버러지 같은 놈이!”


마독이 지면을 차고 도약하며 채찍을 허공에서 크게 회전시켰다. 웅웅거리는 기괴한 파공음이 연무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마독은 전신의 근력을 폭발시키는 조잡한 내공 심법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채찍 끝의 회전력을 소운의 심장 정중앙을 향해 수직으로 들이부었다. 채찍이 그리는 궤적은 피할 수 없는 거대한 검은 뱀처럼 소운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소운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는 적의 가시 채찍이 지닌 회전 장력과 운동 에너지가 정점에 달하는 찰나의 순간을 정확히 계산했다. 머릿속에서 채찍의 궤적이 은빛 선으로 정밀하게 그려졌다.


‘지금이다.’


채찍이 소운의 가슴 보호대와 피부 표면에 닿는 바로 그 0.1초의 찰나, 소운은 단전을 완벽히 비워내며 역천경력의 수용 장막을 가동했다.


퍼어어억!


가시 채찍이 소운의 전중혈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엄청난 파괴력과 가시의 회전 장력이 소운의 피부막을 찢고 골격 속으로 침투하려 발악했다. 그러나 소운은 모루 호흡법을 통해 그 충격을 전신의 206개 뼈마디로 고르게 분산하여 저장했다. 그의 피부 표면이 순간적으로 눈부신 은백색 광채를 내뿜으며 거울처럼 번뜩였다. 강철 가죽 형성기의 내구도는 마독이 가한 삼류 하위 수준의 내력을 완벽히 가두어 두는 그릇이 되어 주었다.


마독의 얼굴에 승리의 희열이 스쳐 지나가는 찰나, 소운은 가두어 두었던 채찍의 회전 에너지를 기혈 반류 제어를 통해 역방향으로 강하게 밀어냈다.


‘쌍배 반사(雙倍 反射).’


두 우우웅!


소운의 가슴에서 터져 나온 두 배의 폭발적인 은빛 반사 충격파가 가시 채찍의 장력을 타고 역방향으로 고속 역류했다. 채찍의 가죽 줄이 역류하는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팽팽하게 당겨진 장력의 반동으로 인해 채찍 끝이 채찍을 쥔 마독의 얼굴을 향해 번개처럼 휘어져 날아갔다.


그 찰나의 순간은 기괴할 정도로 느리게 흘러갔다.


마독의 하나 남은 안구가 공포로 크게 확장되었다. 자신의 손목에서 시작된 파괴력이 채찍을 타고 거꾸로 돌아와, 채찍 끝에 박힌 날카로운 한철 가시들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무자비하게 짓쳐 드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채찍이 꺾여 돌아오는 속도는 마독이 반응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푸학!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한철 가시 채찍의 끝자락이 마독의 하나 남은 오른쪽 눈동자를 정확히 관통했다. 가시가 안구를 뚫고 들어가 안쪽의 뼈를 타격하는 둔탁한 소리가 연무장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아아아아아악! 내 눈! 내 눈이!”


마독은 채찍을 놓치며 바닥으로 쓰러져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 반쪽이 순식간에 붉은 선혈로 물들었고, 안구가 파열된 극심한 고통에 전신을 비틀며 비참하게 울부짖었다. 그가 평생 남을 고문하며 즐기던 가혹한 가시 채찍이, 결국 자신의 가장 소중한 눈을 파괴하는 단죄의 칼날이 되어 돌아간 것이다.


연무장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간수들과 노예 격투가들은 스스로 때리지 않고 가만히 서서 마독의 눈을 멀게 만든 소운의 기괴한 방어력 앞에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교관님이 당했다! 이 노예 자식이 반역을 저질렀다!”


연무장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하급 간수장이 비명을 지르며 허리의 무쇠 도를 뽑아 들었다. 그 외침과 동시에, 철석곡 연무장 사방의 철문들이 굉음과 함께 열리며 무기를 쥔 수십 명의 간수들과 흑호방 무사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


챙강! 챙강! 챙강!


날카로운 쇠사슬과 창검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서슬 퍼런 살기를 뿜어내며 소운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왔다. 퇴로는 완전히 차단되었고, 전신에 가벼운 골격 피로를 느끼는 소운의 등뒤에는 여전히 두려움에 떠는 어린 철이가 서 있었다.


소운은 품속의 부러진 대장간 망치를 꽉 쥐며, 몰려드는 적들을 향해 차갑고 고요한 은빛 안광을 빛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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