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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주먹, 꺾인 광견(狂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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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서걱.


지하 3층 뇌인도 절벽 위쪽에서 울리는 가죽 장화 소리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게 울려 퍼졌다.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절벽 중간에 매달린 설아의 손가락 끝이 하얗게 굳어갔다. 붉은 횃불의 불빛이 그녀가 딛고 있는 바위 틈새를 사정없이 핥고 지나갈 때마다, 설아는 전신의 기 숨결을 극한으로 낮추며 바위 벽에 몸을 밀착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야 한다.’


그녀의 손끝이 향한 곳에는 어둠 속에서 은은한 붉은빛을 뿜어내는 혈련초(血蓮草)가 피어 있었다. 거센 물살이 울부짖는 심연의 냉기가 그녀의 얇은 의원 도포를 뚫고 뼈 속까지 시리게 만들었지만, 설아는 입술을 깨물며 손을 뻗었다.


같은 시각, 철석곡 의무실 침상에 누워 있던 소운의 전신 신경망이 기괴하게 요동쳤다. 머릿속에 각인된 ‘초감각 통각(超感覺 痛覺)’이 뇌인도 계곡의 미세한 공기 진동과 횃불의 파공음을 실시간으로 읽어 들이고 있었다. 단전은 설아의 침술로 임시 봉인되어 한 치의 내공도 부릴 수 없었지만, 소운은 온몸의 촉각을 벼리며 설아가 처한 위기를 감지했다.


‘설아가 위험하다.’


소운은 감은 눈 속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에 집중했다. 아버지가 가르쳐 준 풀무질 호흡법을 아주 미세하게 비틀어, 의무실 내부의 공기 흐름을 흔들었다. 그 기류의 변화를 감지한 약방 조수 장칠이 황급히 의무실 뒷문을 열고 뇌인도 상부로 달려갔다. 장칠이 수색 중이던 간수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주방 쪽의 낡은 자재 더미를 무너뜨려 굉음을 냈다.


쿵! 콰르릉!


“무슨 소리냐! 주방 쪽이다! 그리 가자!”


절벽 위를 서성이던 간수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찰나, 설아는 밧줄을 강하게 잡아당기며 마침내 혈련초의 줄기를 꺾어 품속에 넣었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줄사다리를 타고 신속하게 절벽 위로 올라와, 밤안개 속을 뚫고 의무실로 복귀했다.


의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전신이 한기로 가득 찬 설아가 들이닥쳤다. 그녀는 곧바로 화로를 켜고 혈련초를 탕약으로 달여 끓이기 시작했다. 탕약이 붉은 김을 내뿜으며 끓어오르자, 설아는 소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 뜨거운 약즙을 그의 입술 사이로 흘려 넣었다.


“마셔라. 네 뒤틀린 경맥을 이어줄 유일한 생명선이다.”


혈련초의 뜨겁고 쓴 약력이 목구멍을 타고 단전으로 흘러드는 순간, 소운은 전신의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듯한 극심한 작열통을 느꼈다. 임시 봉인되었던 단전의 문이 거칠게 요동쳤으나, 약력은 순식간에 파열 직전이던 기경팔맥의 미세한 핏줄들을 강하게 수축시키며 접합해 나갔다. 갈비뼈의 실금 부위가 가려운 통증과 함께 메워졌고, 피부 표면에 맺혀 있던 검붉은 어혈들이 땀구멍을 통해 검은 진액으로 배출되었다.


이것이 바로 역천경력의 기초를 다지는 ‘피막 저장(皮膜 貯藏) 경지’의 완성이었다. 소운은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전보다 한층 더 맑고 깊은 은빛 서리를 머금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철석곡 제1투기장(鐵石谷 第一鬪技場).


웅장한 함성과 피비린내 나는 비명 소리가 철석곡 전체를 진동시켰다. 사슬로 둘러싸인 거대한 피의 링 위로 수백 명의 관중들이 쏟아내는 탐욕스러운 야유가 들이쳤다. 흑호방 방주 흑태풍과 그의 책사 염지공이 기획한 사설 격투 도박판은 소운의 기적적인 생환 소식으로 배당판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의 비무! 절대 쓰러지지 않는 무쇠 샌드백 소운! 그리고 그의 가죽을 찢어발길 투기장의 야수, 서열 2위 광견(狂犬)!”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링 반대편의 철창이 열렸다. 헝클어진 머리에 붉게 충혈된 눈을 한 사내, 광견이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링 위로 걸어 나왔다. 그의 상반신은 스스로 가한 자해 흉터로 가득했고, 가장 끔찍한 것은 그의 양손이었다. 그의 굵은 주먹과 손목 위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rusted 철조망이 촘촘하고 단단하게 감겨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통째로 뜯겨나갈 무시무시한 사파의 병기였다.


“키히히…… 뼈를 발라주마. 네놈이 아무리 잘 버틴다 해도, 이 철조망 독니 앞에서도 가죽을 유지할 수 있을까?”


광견이 철조망 감은 손을 서로 맞부딪치며 쇳소리를 냈다. 챙강, 챙강 하는 거친 마찰음이 투기장을 싸늘하게 얼렸다.


소운은 조용히 링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두 팔에는 설아가 특수 제작해 준 두꺼운 삼베 붕대가 꼼꼼히 감겨 있었고, 무복 안쪽에는 부러진 대장간 망치가 그의 심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소운은 스스로 먼저 공격할 수 없는 역천경력의 절대 금기를 가슴 깊이 새기며, 오직 적의 살기가 뿜어내는 궤적을 응시했다.


스아아악!


비무를 알리는 징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광견이 사파 광견권법(狂犬拳法)의 기괴한 신법을 펼치며 정면으로 짓쳐 들어왔다. 그의 몸이 낮게 깔리며 모래바람을 일으키더니, 순식간에 소운의 얼굴을 향해 철조망 감은 주먹을 사선으로 크게 할퀴어 왔다.


파공음조차 거친 쇳소리로 변해 귓가를 때렸다. 소운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자국 정면으로 디디며, 머릿속으로 적의 주먹이 그리는 기하학적 궤적을 그렸다.


‘타격 각도 계산술(打擊 角度 計算術).’


소운은 적의 주먹이 자신의 얼굴 피부에 닿기 직전, 목과 어깨 관절을 오른쪽으로 미세하게 7도 비틀었다. 사선으로 들어오는 할퀴기 타격을 자신의 뼈 구조와 완벽한 수직을 이루도록 충격의 방향을 인위적으로 조율한 것이다.


끼이이이익!


광견의 철조망 손톱이 소운의 왼쪽 뺨을 사정없이 긁고 지나갔다. 살점이 찢겨나가며 피가 분수처럼 터져야 할 찰나, 기괴한 마찰음이 투기장에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무쇠 모루를 강철 끌로 긁어내리는 듯한 둔탁하고 날카로운 쇳소리였다.


피막 저장 경지의 기운이 가동되며, 철조망의 맹렬한 마찰 에너지가 소운의 피부와 가죽 사이에 일시적으로 갇혔다. 소운의 왼쪽 뺨이 순간적으로 은백색 광채를 뿜으며 붉게 상기되었다. 그러나 광견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폭렬했다. 미세하게 각도 계산이 어긋난 틈을 타, 철조망 가시 하나가 소운의 뺨 가죽을 찢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뚝, 뚝.


소운의 왼쪽 뺨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관중석에서 광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피다! 무쇠 샌드백의 가죽이 찢어졌다! 광견! 뼈를 씹어 삼켜라!”


광견은 피 냄새를 맡자 더욱 광포해졌다. 그는 소운이 주춤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남은 왼손 주먹을 휘둘러 소운의 관자놀이를 향해 두 번째 사선 할퀴기를 날렸다. 첫 번째 타격으로 충격 허용 한계량이 아슬아슬해진 상황, 이번 일격을 그대로 허용하면 경맥이 다시 흔들릴 위기였다.


소운은 뺨의 통증을 느끼면서도 눈동자를 고요히 유지했다. 그는 아버지가 남겨준 모루의 이치를 되새겼다.


‘흔들리지 마라. 적의 힘이 강할수록, 내 방패는 더 단단해진다.’


소운은 왼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반 바퀴 회전시켰다. 광견의 왼 주먹이 날아오는 궤적의 가장 강렬한 중심점, 즉 힘의 정점으로 스스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주먹이 닿는 찰나, 전신의 뼈마디를 단단히 밀착시키며 숨을 멈추었다.


퍽!


광견의 주먹이 소운의 어깨와 목덜미 사이에 정확히 박혔다. 엄청난 파괴력이 소운의 골격을 뒤흔들었으나, 소운은 그 물리적 충격을 피막 저장 경지의 장막 속으로 완벽히 빨아들였다. 그의 어깨 표면에서 찬란한 은빛 물결이 사방으로 번개처럼 번져 나갔다.


“키히히! 잡았다! 이제 끝이다!”


광견이 승리를 확신하며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순간, 소운의 비워진 단전 입구가 굳게 닫혔다.


‘기혈 반류 제어(氣血 反流 制御).’


소운은 가죽과 근육 사이에 가두어 두었던 광견의 두 차례에 걸친 모든 타격 에너지를 역방향으로 강하게 밀어냈다. 적의 힘이 정점에 달해 소운의 몸에 완전히 밀착된 바로 그 찰나였다.


은빛 거울 같은 장막이 소운의 어깨에서 번쩍였다.


콰아아앙!


광견의 주먹이 맞닿아 있던 소운의 어깨에서 두 배의 위력으로 증폭된 역탄력(쌍배 반사)이 폭발했다. 그 파괴력은 광견이 가했던 사나운 할퀴기 힘의 정확히 두 배였다. 역류하는 충격파는 광견의 철조망 감은 손목을 타고 그의 뼈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우드득! 파작!


기괴한 골절음이 투기장의 소음을 단숨에 찢어발겼다. 광견의 손목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철조망들이 스스로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사방으로 비산하며 링 바닥에 박혔다. 동시에 광견의 오른 주먹뼈와 손목 관절이 완전히 으스러지며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아아아악! 내 주먹! 내 뼈가!”


광견은 자신이 내지른 힘의 두 배에 달하는 반동을 고스란히 맞고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링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으스러진 손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쇠사슬 링을 붉게 적셨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이내 의식을 잃고 조용해졌다.


스스로 때리지 않고, 적의 힘만으로 적을 꺾은 완벽한 반사무쌍의 승리였다.


순간, 수백 명의 관중이 몰려 있던 투기장 전체가 기괴한 정적에 휩싸였다. 아무도 소운이 손을 휘두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저 매질을 당하던 노예가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인데, 투기장 2위의 강자가 스스로 주먹이 부러져 쓰러진 것이다. 침묵이 지옥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침묵 속에서, 저 멀리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 손가락마다 옥반지를 낀 사내, 대도박꾼 조풍(趙風)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예리하고 깊은 안광이 링 중앙에 홀로 서 있는 백발의 소년, 소운의 전신을 꿰뚫듯 가라앉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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