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검날
두두두두둥―!
지하 수로의 석벽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천장에서 낙하한 거대한 무쇠 회전 칼날이 수면을 갈라치며 돌진했다. 한철로 제련된 거대한 톱니바퀴는 회전할 때마다 하얀 물보라와 함께 뼈를 으스러뜨릴 듯한 굉음을 토해냈다.
소운의 시야는 이미 흐릿한 안개와 왜곡된 빛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피부 세포 하나하나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초감각 통각(超감각 통각)은 그 거대한 철기의 괴멸적인 운동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피할 곳은 없다. 수중의 마찰력을 회전력으로 바꾼다.’
오른쪽 팔꿈치 관절이 탈구되어 쓸 수 없었기에 소운은 오직 왼쪽 상체와 전신 골격의 탄성만을 이용해 몸을 비틀었다. 거대한 무쇠 칼날이 그의 가슴 정면을 들이받는 찰나, 소운은 물속에서 신체를 팽이처럼 회전시키는 철벽 낙법(鐵벽 낙법)의 궤적을 전개했다.
콰아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수로를 가득 메웠다. 살풍의 참격과 귀면의 독침을 막아내며 이미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득했던 무명 모루 가슴판이 거대한 칼날의 직격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쇳가루가 폭풍처럼 밤안개 속으로 흩어지는 와중에도, 소운은 칼날이 전해오는 수백 근의 파괴적인 질량을 자신의 강철 가죽과 전신 뼈마디로 고스란히 흡수했다.
“크아아악!”
소운의 입에서 억눌린 비명과 함께 검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이미 파열되어 가던 명치 부근의 경맥들이 연이은 충격에 찢어지는 듯한 극통을 토해냈고, 수중의 차가운 한독(寒毒)이 옆구리의 열상 상처를 타고 침투해 들어가 뼛속을 얼려버릴 듯이 요동쳤다.
하지만 소운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이모의 은반지를 꽉 쥐며 끓어오르는 살성을 억누르고, 흡수한 파괴력을 두 배로 증폭시키는 쌍배 반사(雙배 반사)의 기틀을 가동했다.
콰르르릉! 콰아앙!
소운의 왼손 끝에서 폭발한 은빛 반사 폭풍이 수면을 뚫고 거대 회전 칼날의 축을 역방향으로 때렸다. 자신이 뿜어낸 파괴력의 두 배에 달하는 반동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거대 무쇠 칼날이 비참하게 쩍 갈라지며 공중 회랑의 벽면을 들이받았다. 무너져 내리는 석벽의 잔해들이 수로를 가로막았고, 그 충격파에 공중 회랑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기어이 장치를……!”
비밀 퇴로 문틈 새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은손은 혼비백산하여 품속에 우각촌 토지 강탈 위조 서류를 챙겨 쥔 채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그가 다급히 도망치며 흘린 가죽 주머니가 붕괴하는 잔해 더미 위로 떨어졌다.
“도망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요! 저 자가 수안성 출구를 지키는 백광검파의 비밀 병기에게 비상을 걸었습니다요!”
천길이 소리치며 무너진 수문 틈새로 날렵하게 몸을 던졌다. 설아 역시 물속에서 소운의 젖은 백발 어깨를 부축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소운 씨, 정신 차리세요! 옆구리의 출혈이 심해요. 이대로 수류를 타고 내려가야 해요!”
소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떨어진 은손의 가죽 주머니를 왼손 끝으로 낚아채 품속에 밀어 넣었다. 세 사람은 거세게 쏟아져 내리는 하류의 물줄기에 몸을 싣고 어두운 수로 내부를 향해 신속하게 휩쓸려 내려갔다.
* * *
수안성 서부 운하와 연결되는 지하 수로의 최종 탈출구 직전.
사방을 가로막은 석벽 구석구석에서 스며든 밤안개가 지독하게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하수구 오수가 운하의 맑은 물과 섞이는 이곳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물소리마저 벽면에 부딪혀 가늘게 죽어버리는 음산한 침묵이 수로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수로 한편의 젖은 석판 위로 기어오른 소운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의 전신은 물과 피에 젖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탈구된 오른쪽 팔꿈치 관절은 여전히 쓸쓸하게 늘어져 기괴한 통증을 유발했다. 옆구리의 열상 상처에서는 붉은 선혈이 연신 흘러내려 회색 장포를 어둡게 물들였다.
설아는 다급히 은침 통을 열어 소운의 가슴 전중혈을 짚으려 했다.
“소운 씨, 움직이지 마세요. 삼생금침의 기류가 다시 정체되고 있어요. 기맥을 재정렬해야…….”
“멈추시오.”
소운이 가만히 왼손을 들어 그녀의 움직임을 제지했다. 그의 흐릿한 시야 너머, 최종 출구의 아치형 석문 아래 짙은 밤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는 기괴한 기류의 왜곡이 느껴지고 있었다.
초감각 통각(超감각 통각)이 경고하고 있었다. 피부 세포 하나하나가 얼음송곳에 찔린 듯 예리한 살기를 감지해 내고 있었다.
“거기 누구냐요? 똥지게꾼 천길이 지나가는데 길을 막는 놈이 누구냐요!”
앞서 나가던 천길이 목소리를 높여 어둠 속을 향해 소리쳤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직 서걱거리는 기괴한 옷자락 마찰음만이 차가운 석벽을 타고 음산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스스슥.
밤안개를 뚫고 아치형 석문 아래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대나무 삿갓을 깊게 눌러쓰고 있었으며, 삿갓 아래로 드러난 두 눈은 두꺼운 검은 천으로 단단히 가려져 있었다. 허리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낡은 가죽대를 차고 있었고, 그의 오른손에는 칼집이 없는 기괴한 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공기를 가를 때조차 아무런 마찰음을 내지 않도록 정밀하게 고안된 특수 검, 무성검(無聲劍)이었다.
그 사내가 바로 백광검파의 장로 독고용이 은밀히 키워낸 비밀 병기이자, 두 눈이 먼 대신 천하의 모든 소리를 읽어내는 맹인 검객 검노(劍奴)였다.
“…….”
검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의 삿갓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소운이 서 있는 방향을 향했다. 그의 귀가 삿갓 아래에서 아주 미세하게 쫑긋거렸다.
쿵. 쿵. 쿵.
수로의 차가운 침묵 속에서, 오직 소운의 명치 부근에서 요동치는 느리고 둔탁한 심장 고동 소리만이 검노의 심안(心眼)에 붉은 표적으로 선명하게 각인되고 있었다.
소운은 숨을 죽이며 적의 기세를 분석했다.
‘눈이 먼 자로군. 하지만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이 완전히 거세된 살인 인형인가.’
소운은 이성을 잃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는 스스로 먼저 공격할 수 없는 역천경력의 제약을 지닌 몸. 적이 냉정함을 잃고 전력의 일격을 가하도록 유도해야만 반사 무공을 펼칠 수 있었다. 소운은 목소리를 낮추어 허초 유도 도발(虛招 誘導)을 시도했다.
“백광검파의 사냥개여. 독고용의 위선적인 명령을 따르기 위해 이 더러운 똥통 속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인가.”
보통의 무인이라면 가문의 명예나 장로의 권위가 모욕당했을 때 분노하여 기세가 흔들렸을 터였다. 하지만 검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붉은 가면 같은 무표정한 얼굴에는 미세한 미동조차 일지 않았고, 호흡의 리듬 역시 단 1회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스으읍.
검노는 오직 소운의 심장 박동 소리와 젖은 무복에서 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만을 쫓아 천천히 검 끝을 들어 올렸다. 검이 움직이는 순간조차, 대기를 가르는 바람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완벽한 무성(無聲)의 궤적이었다.
“도발이 통하지 않소. 감정이 거세되어 있소.”
소운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순간, 검노의 신형이 밤안개 속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쉬이익!
파공음이 전혀 없는 기괴한 침묵 속에서, 검노의 무성검 끝이 소운의 심장 정중앙 혈도인 거궐혈을 향해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왔다. 검기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예리한 암습이었다.
소운은 흐려진 시야 속에서 오직 초감각 통각을 통해 가슴 피부에 닿는 미세한 공기 압력의 변화만을 감지하고, 발걸음을 미세하게 비틀며 무위보(無爲步)의 기틀을 전개했다. 적의 검초가 지닌 가장 촘촘한 중심부로 파고들어 충격을 흡수하려는 역발상이었다.
하지만 검노의 심안은 소운의 움직임을 한 발 앞서 읽어내고 있었다.
사각.
소운의 젖은 가죽신 끝이 수로 청석 바닥의 모래를 미세하게 짓밟는 마찰음이 검노의 귀에 귀신같이 포착되었다. 검노는 소운의 보법 궤적을 읽어내고, 찰나의 순간 검 끝의 방향을 부드럽게 꺾어 검로를 수정했다.
서걱! 카가가각!
소리가 나지 않는 예리한 검기가 소운의 양 팔목을 감싸고 있던 무쇠 실 붕대(무쇠 실 붕대)의 표면을 사정없이 스쳐 지나갔다. 대장간의 천씨가 한철 실로 촘촘하게 보수해 두었던 두꺼운 삼베 붕대의 절반이 기괴한 마찰음과 함께 단숨에 잘려 나가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검기의 잔여 여파가 소운의 왼쪽 어깨 가죽을 깊숙이 베고 지나갔다.
“윽……!”
소운의 왼쪽 어깨에서 분수처럼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검기에 실린 백광검파 특유의 예리한 관통 진기가 어깨뼈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 뒤틀린 경맥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전신의 뼈마디가 다시 한번 쇠울음을 토해내며 흔들렸고, 소운은 극심한 피로감 속에 수로 구석의 절벽 벼랑 끝으로 서너 걸음 밀려났다.
그의 발밑으로 수십 장 아래의 어두운 수안성 운하 물줄기가 거세게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낭떠러지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소운 씨!”
설아가 비명을 지르며 수거해 두었던 은침 하나를 검노의 측면 석벽을 향해 힘껏 던졌다. 은침이 돌벽에 부딪히며 ‘칭-’ 하는 맑은 마찰음을 냈다. 검노의 청각을 순간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필사적인 장외 조력이었다.
하지만 검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벽면에 부딪힌 은침의 소리를 가볍게 무시한 채, 오직 소운의 왼쪽 어깨 상처에서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와 가쁜 호흡 소리만을 향해 검 끝을 고정했다.
검노가 가볍게 검을 털어내자 바람 소리조차 나지 않는 예리한 검기가 소운의 목을 향해 보이지 않는 궤적으로 덮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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