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水路)의 칼날 덫
어둡고 축축한 흙내가 코를 찔렀다. 발밑으로 흐르는 수안성 지하 수로의 물은 뼈 속까지 얼려버릴 듯이 차가웠고, 사방에서 스며드는 탁한 습기는 허파 깊숙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흐읍…….”
소운은 나지막이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을 들썩일 때마다 벌어진 무릎 자상에서 검붉은 선혈이 배어 나와 차가운 오수(汚水) 속으로 흘러들었다. 완전히 하얗게 세어버린 백발은 물과 땀에 젖어 이마에 무겁게 달라붙어 있었고, 살풍의 쌍월도를 받아내느라 탈구된 오른쪽 팔꿈치는 무력하게 늘어져 고통을 더했다. 설상가상으로 전신의 뼈마디가 고속 공명한 여파로 인해 시야는 흐릿한 빛과 그림자의 왜곡으로만 겨우 형체를 분간할 수 있을 뿐이었다.
소운은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이모의 은반지를 가만히 매만졌다. 차가운 은의 감촉이 거친 가죽 표면을 타고 흐르며, 단전 깊은 곳에서 들이치는 복수심과 살성을 정화했다. 그는 석정 스님에게 배운 관조 명상법(觀照 瞑상법)을 전개했다. 고통과 추위, 그리고 옥죄어오는 신체적 한계를 제3자의 시선으로 묵묵히 비추어 흘려보내는 부동의 심경이었다.
“소운 씨, 상처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요. 물속의 한독(寒毒)이 뼈 속으로 침투하면 정말 위험해요.”
옆에서 소운의 왼팔을 부축한 채 걷던 설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 역시 밤샘 치료와 탈출 보조로 인해 내력이 바닥나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괜찮소. 조금만 더 가면 되오.”
소운은 목소리를 낮추어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들의 앞을 인도하던 천길이 구부정한 등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벽면의 이끼를 손끝으로 훑었다.
“나리, 조금만 더 가면 장로각 하부와 연결된 최종 수문이 나옵니다요. 제 아비와 형제들이 쇠사슬에 묶여 한철을 나르다 죽어간 원한의 장소지요. 하지만 그곳만 돌파하면 백의원 어르신의 약방 지하 비밀 통로로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습니다요.”
천길의 영악한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그가 머릿속에 외우고 있는 지하 수로의 수문 개폐 주기는 소운이 칼날의 회전 타이밍을 계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다.
철커덕! 쿵!
갑자기 그들의 등뒤와 전방에서 웅장한 무쇠 마찰음이 수로 전체를 진동시켰다. 흙먼지와 함께 수톤에 달하는 거대한 무쇠 수문 두 개가 연이어 가로막으며, 소운 일행이 서 있는 좁은 석실 구간을 완벽한 밀실로 폐쇄해 버렸다. 순식간에 수류가 막히며 오수가 무릎 위를 넘어 허벅지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수로 천장의 석판 틈새로 횃불들이 일제히 켜지며 어둠을 몰아냈다. 철창 너머 높은 석조 catwalk(공중 회랑) 위로 은실로 수놓아진 화려한 도포를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호방과 결탁해 폭리를 취하던 사악한 고리대금업자, 은손(Eun Son)이었다. 그의 야비한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하하하! 철석곡의 무적 샌드백 놈이 쥐새끼처럼 하수구로 기어들어 올 줄 알았다! 독고용 장로님의 황금 인장을 훔치고 장포대를 몰살한 대가가 겨우 이 더러운 똥통 속에서의 질사(窒死)라니, 참으로 어울리는 종말이구나!”
은손의 외침과 함께, 그가 서 있는 수문 조종대 옆의 수중 경비병들이 거대한 한철 회전 칼날 장치의 작동 레버를 힘껏 당겼다.
쿠구구구궁―!
수로 바닥과 석벽 틈새에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기괴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수면 아래에서 날카로운 한철(寒鐵) 칼날 수십 자루가 장착된 거대한 회전 바퀴들이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칼날이 차가운 물살을 가르며 흰 거품을 일으켰고, 수로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갈아버릴 살인적인 소용돌이 덫으로 변해갔다.
“소운 씨! 물속의 마찰력 때문에 보법을 전개하기 어려워요!”
설아가 소운의 소매를 잡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물살의 회전력이 소운의 부상당한 무릎을 사정없이 뒤흔들며 신체 균형을 무너뜨리려 했다. 시야마저 흐릿한 상태에서 회전하는 칼날의 정확한 궤적을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스스로 때리지 않고, 적이 가해오는 물리적 충격의 회전력을 역용한다.’
소운은 차가운 오수 속에서 오히려 온몸의 긴장을 완벽히 풀었다. 오른쪽 팔꿈치가 탈구되어 쓸 수 없으니, 오직 왼쪽 상체와 전신 골격의 탄성만을 이용해야 했다.
그는 발끝으로 물의 흐름을 느끼며 무위보(無爲步)의 기틀을 전개했다. 물살의 회전 주기를 온몸의 피부 세포로 느끼는 초감각 통각(超感覺 痛覺)이 활성화되었다. 소용돌이의 가장 맹렬한 중심점, 즉 칼날이 회전하는 궤적의 한가운데로 스스로 몸을 던져 파고드는 역발상이었다.
쉬이이익! 콰르릉!
첫 번째 회전 칼날이 소운의 목덜미를 향해 초고속으로 회전하며 물살을 가르고 짓쳐 들어왔다.
소운은 지면의 마찰력 대신 수중의 마찰력을 회전 탄성력으로 전환하는 철벽 낙법(鐵벽 낙법)의 회전력을 전개했다. 물속에서 신체를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칼날의 회전 주파수와 자신의 골격 진동을 완벽히 일치시켰다.
카강! 카가가각!
날카로운 한철 칼날이 소운의 무쇠 실 붕대를 감은 왼팔과 무명 모루 가슴판에 정면으로 부딪히며 기괴한 은빛 파동을 일으켰다. 엄청난 물리적 회전 운동 에너지가 소운의 가죽과 근육 사이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물속의 저항력 때문에 회전 낙법의 타이밍이 찰나의 순간 미세하게 지체되었다.
서걱!
회전하는 칼날 끝이 소운의 왼쪽 옆구리 무복을 찢고 들어가 가죽 표면에 깊은 열상을 입혔다. 선홍빛 피가 물속으로 번져 나갔고, 차가운 오수 속의 한독(寒毒)과 세균들이 상처를 타고 침투해 들어가 경맥에 지독한 한기 통증을 유발했다. 소운의 목덜미에 검붉은 핏줄이 툭 불거져 나왔고, 입가로 비릿한 선혈이 흘러내렸다.
“크윽……!”
극심한 통증 속에서도 소운은 관조 명상법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뼈 속 깊숙이 가두어 둔 회전 칼날의 파괴적인 운동 에너지를 전신 골격으로 저장했다. 그의 206개 뼈마디가 은은한 무쇠 종소리(금명)를 토해내며 터질 듯이 진동했다.
“지금이다!”
소운은 전신 골격에 저장된 두 배의 충격파를 수문을 가로막고 있는 두꺼운 무쇠 철창을 향해 왼손 바닥을 밀착시키며 그대로 뿜어냈다.
콰아아아앙―!
소운의 가슴판과 왼손 끝에서 찬란한 은빛 반사 폭풍이 수중을 뚫고 폭발했다. 회전 칼날이 가했던 수백 근의 파괴력이 두 배로 증폭되어 수문 철창에 정면으로 작렬했다. 쩍 갈라지는 굉음과 함께 두꺼운 무쇠 철창의 하부 지지대와 톱니바퀴들이 산산조각 나며 흩날렸다. 부서진 쇳조각들이 수중 경비병들의 다리를 관통했고, 수문 하부가 크게 일그러지며 갇혀 있던 물줄기가 폭포처럼 하류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무쇠 철창을 맨손으로 부수다니!”
수문 위 공중 회랑에서 비열하게 웃고 있던 은손의 안색이 순식간에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소운의 기괴한 반사 위력에 경악한 은손은 조풍의 상단을 강탈하기 위해 위조한 가짜 계약서 문서를 품속에 챙겨 넣고, 수로 안쪽의 비밀 퇴로를 향해 황급히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요! 저 자가 수안성 출구를 지키는 백광검파의 최종 비밀 병기에게 신호를 보낼 겁니다요!”
천길이 소리치며 부서진 수문 틈새로 몸을 던졌다. 설아 역시 소운의 젖은 백발 어깨를 부축하며 급류의 흐름을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
바로 그 순간, 은손이 도망치며 당긴 비상 레버의 마찰음이 지하 석벽 내부를 타고 울려 퍼졌다.
쿠구구구궁―!
수로 천장의 중심 석판이 갈라지며, 이전의 칼날들과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크기의 거대한 무쇠 회전 칼날(Giant Spinning Blade)이 굉음을 내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한철로 제련된 거대한 칼날 톱니바퀴가 수면을 집어삼킬 듯한 백색 포말을 일으키며, 균열이 극심한 소운의 무명 모루 가슴판 정면을 향해 무자비하게 짓쳐 들어왔다. 은손은 수문 위 비밀 퇴로 문틈 새로 소운을 내려다보며 비열하고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 거대한 무쇠 회전 칼날이 소운의 가슴 보호대를 향해 굉음을 내며 돌진하고, 은손이 수문 위에서 비열하게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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