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가르는 그림자
멀리 수안성의 지상 성문들이 완전히 폐쇄되는 소리가 안개를 뚫고 메아리치자, 설아는 전신 기력이 방전된 소운의 어깨를 부축하며 험준한 산길 협곡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상의 모든 통로가 백광검파의 삼엄한 가호 수색대로 가로막힌 지금, 그들에게 남은 퇴로는 오직 우각촌 외곽의 귀신골이라 불리는 험준한 절벽 산길뿐이었다.
“조금만 더 버텨내셔야 해요, 소운 씨.”
설아의 목소리는 차가운 밤이슬에 젖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걷는 소운의 상태는 그야말로 사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가면 살수 귀면과의 처절한 침술 암투 끝에 독마침을 반사해 내긴 했으나, 그 대가는 너무도 가혹했다. 단전의 기맥을 강제로 역전시키며 기혈 반류를 제어하느라 전신의 경맥은 불타는 용광로처럼 달아올라 있었고, 머리카락 전체는 눈부시게 하얀 백발로 변해 밤바람 속에 쓸쓸히 흔들렸다.
더욱이 임칠과의 결전에서 극심한 골격 공명을 펼친 후유증으로 소운의 시야는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일시적으로 흐려져 있었다. 눈앞의 나무와 절벽의 형체가 둔탁한 그림자로만 보였기에, 그는 오직 전신 신경망을 백 배로 증폭시키는 초감각 통각에 의존해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뎠다. 가슴팍에 장착된 무명 모루 가슴판은 귀면의 독침을 정면으로 받아내느라 표면의 거미줄 같은 균열이 한층 더 깊어져 있었고, 양 팔뚝에 단단히 감아둔 무쇠 실 붕대만이 희미한 철기를 내뿜으며 그의 유일한 물리적 방패막이 되어주고 있었다.
소운은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이모의 은반지를 가만히 매만졌다. 차가운 은의 감촉이 피부를 타고 흐르자, 가문의 비극적인 진실을 마주하며 단전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던 붉은 살성이 차갑게 정화되는 듯했다.
‘스스로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오직 모루처럼 받아내어 그들이 가한 폭력의 무게로 자멸하게 만든다.’
아버지가 남긴 부러진 대장간 망치의 의지를 되새기며, 소운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마음의 거울을 투명하게 닦아냈다.
귀신골의 산길은 갈수록 좁아지고 음산해졌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들이 양옆으로 솟구쳐 하늘을 가렸고, 짙은 밤안개가 계곡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 기괴한 침묵 속에서, 오직 두 사람의 거친 호흡 소리만이 축축한 흙바닥에 스며들었다.
그때였다. 소운의 초감각 통각이 대기 중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했다. 피부 세포 하나하나가 바늘에 찔린 듯 예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안개 너머, 절벽 위쪽의 기류가 아주 미세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바람의 흐름이 아니었다. 극도로 기척을 지운 살인귀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기류의 왜곡이었다.
‘온다.’
소운은 흐려진 시야 속에서도 고개를 들어 절벽 위를 향했다. 눈으로 형체를 볼 수는 없었으나, 귓가를 스치는 미세한 파공음과 뼛속을 자극하는 차가운 살기가 적의 위치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쉬이익!
찰나의 순간, 절벽 위 안개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낙하했다. 흑호방의 교활한 여살수, 흑묘였다. 그녀는 고양이 같은 매서운 눈빛을 빛내며, 예리하고 얇은 단검인 묘아도를 쥔 채 소운의 목덜미를 향해 일직선으로 낙하 참격을 내지르고 있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 흑묘신법의 극의였다.
소운은 당황하지 않고 타격 각도 계산술을 가동했다. 적의 낙하 속도와 단검이 지닌 물리적 질량, 그리고 자신의 골격이 이루는 각도를 순식간에 뇌릿속으로 계산해 내어 단검의 예리한 관통 궤적을 비껴내려 상체를 미세하게 회전시켰다.
그러나 흑묘는 철석곡의 삼류 격투가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일류의 살수였다. 그녀는 공중에서 소운이 신형을 비틀어 반사각을 조율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신체를 비틀며 단검의 공격 궤적을 소운의 사각지대인 옆구리 방향으로 급격히 수정했다. 공중에서 참격의 각도를 바꾸는 변칙적인 흑사단검술이었다.
‘치명적인 엇박자다.’
시야가 흐려진 탓에 흑묘의 공중 궤적 변화를 완벽하게 예측하지 못한 소운은, 찰나의 순간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는 무리하게 몸을 피하는 대신, 명수가 한철 실로 촘촘히 보수해 준 무쇠 실 붕대를 감은 왼쪽 팔뚝을 옆구리 앞으로 강하게 가로막아 세웠다. 단검의 예리한 관통 충격을 정면으로 받아내어 흡수하겠다는 계산이었다.
깡!
날카로운 쇠붙이가 부딪히는 굉음과 함께 흑묘의 단검이 소운의 무쇠 실 붕대에 명중했다. 한철 실의 질긴 탄성이 단검에 실린 낙하 파괴력을 사방으로 분산시켰고, 소운은 골격 흡수 경지의 공명을 가동해 장기로 침투하려는 미세한 진동을 뼈 속으로 가두었다.
하지만 흑묘의 변칙적인 연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단검이 막히는 순간, 왼발 끝으로 소운의 무릎 관절을 매섭게 차고 들어왔다. 소운은 미처 하체의 방어막을 완전히 조율하지 못했고, 흑묘의 예리한 신발 끝에 장착된 칼날이 그의 무릎 가죽을 스치며 깊은 자상을 입혔다.
“윽……!”
무릎에서 뜨거운 선혈이 뿜어져 나오며 소운의 신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체의 자상으로 인해 보법의 신속함과 지면의 마찰력을 이용한 균열 제어가 일시적으로 제한되는 치명적인 제약이 걸린 것이다. 흑묘는 가볍게 지면을 딛고 뒤로 물러나며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천한 샌드백 놈, 시야가 흐려진 상태에서도 내 묘아도를 막아내다니 제법이구나. 하지만 부방주 장로님의 월도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면 어떨까?”
흑묘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협곡에 울려 퍼지는 순간, 소운의 등뒤 절벽 도로 모퉁이에서 거대한 횃불 무리들과 함께 붉은 머리띠를 두른 거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호방의 부방주, 살풍이었다. 그는 양손에 기괴한 혈색 아지랑이를 내뿜는 쌍월도를 치켜든 채 광포한 살기를 품고 서 있었다.
“백발 괴물 놈! 감히 내 방파를 무너뜨리고 도망치려 했느냐! 오늘 이 귀신골의 안개 속에서 네놈의 뼈와 가죽을 통째로 다져서 쇳물 속에 처넣어 주마!”
살풍의 포효가 좁은 절벽 협곡 전체를 진동시켰고, 그의 쌍월도가 가르는 광폭한 참격의 기세가 소운의 정면을 향해 짓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운은 무릎의 자상으로 인해 보법이 묶인 최악의 한계 속에서, 설아의 앞을 가로막아서며 묵묵히 무쇠 실 붕대를 감은 두 팔을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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