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된 독마침
달빛을 가르는 검은 은침의 궤적이 소운의 가슴판을 향해 짓쳐 드는 순간, 그의 심장 혈도에 박혀 있던 금침들이 기이하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슁―!
소리조차 삼켜버린 밤안개 속에서 날아든 세 자루의 독마침(毒魔針)은 지독하리만큼 정교한 곡선을 그리며 쏘아져 내렸다. 시각을 거의 잃어버린 소운의 흐릿한 시야 속에서는 오직 차가운 은빛 아지랑이와 같은 궤적만이 간신히 포착될 뿐이었다. 그러나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적의 살기까지 가둘 수는 없는 법. 소운의 전신 신경망을 백 배로 증폭시키는 초감각 통각(超感覺 痛覺)이 뺨을 스치는 미세한 공기의 파동과 독침 끝에 발린 음한한 사독의 썩은 내를 귀신같이 감지해 냈다.
‘위에서 아래로 세 자루. 노리는 곳은 가슴의 삼생금침 혈도다.’
잠든 상태에서도 본능적으로 발동한 소운의 수면 반사막(睡眠 反射幕)이 전신 피부 표면에 투명한 거울 같은 은빛 장막을 팽팽하게 드리웠다. 하지만 귀면(Gwi Myeon)의 독침은 단순한 물리적 타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백광검파의 장로 독고용이 소운의 반사 무공을 무력화하기 위해 고안해 낸 파맥침술(破脈針術)의 결정체였다.
팅! 팅! 쩌적!
첫 번째와 두 번째 독마침이 소운의 가슴팍을 가로막은 무명 모루 가슴판에 명중했다. 황달의 백 근 도끼 타격을 흡수하느라 이미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득했던 정철 내갑은 날카로운 독침의 침투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비참한 마찰음과 함께 쪼개져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독마침이 가슴판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소운의 가슴 정중앙, 즉 전중혈(膻中穴) 피부에 정확히 닿았다.
“흐읍……!”
침 끝이 가죽을 뚫고 들어가자마자, 얼음처럼 차가운 마비독 기운이 혈도를 타고 순식간에 기경팔맥으로 침투했다. 뜨겁게 달아올라 있던 소운의 뒤틀린 단전이 이질적인 독기의 침입에 격렬하게 반발하며 팽창하기 시작했다. 단전 입구가 굳어지며 반사 기류의 흐름이 일시적으로 정체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대로 독기가 심장에 도달하면 삼생금침의 구명 회로마저 얼어붙어 즉사할 터였다.
바로 그 순간, 소운의 무릎 옆에 누워 잠들어 있던 설아(Seol Ah)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의원으로서의 천생적인 감각이 소운의 급격한 기혈 하락과 심장 고동의 정체를 즉각적으로 감지한 것이다.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붉은 가면의 괴인과 소운의 가슴에 박히기 직전인 검은 독침을 보는 순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춤에서 은침 통을 낚아챘다.
“소운 씨! 단전을 비우고 제 기류를 받아들이세요!”
설아의 가냘픈 손가락 끝에서 인술심법(仁術心法)의 푸른 진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녀는 소운의 가슴팍에 남아 있던 자오삼침(子午三針)을 움켜쥐고, 소운의 심장 주변 혈도인 거궐혈(巨闕穴)과 신문혈(神門穴)을 향해 깊숙이 밀어 넣었다. 자오신침 구법(子午神針 灸法)의 극의가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두 우우웅―!
소운의 뼈마디가 설아의 침 끝에서 흘러나온 진기와 공명하며 장엄한 쇠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설아는 자신의 내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소운의 뒤틀린 단전 입구를 강제로 봉인하고, 기맥의 흐름을 역방향으로 유도하는 기혈 역전(氣血 逆轉) 조율기를 가동했다.
“으욱……! 쿨럭!”
소운의 입과 코에서 한 줌의 검붉은 피가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체내에서 정상적으로 흐르려던 진기와 설아가 강제로 역전시킨 기류가 뒤틀린 단전 입구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며 발생한 마찰열 때문이었다. 뼈 속의 골수가 통째로 용광로 속에 던져진 듯한 지독한 고통이 척추를 타고 뇌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전신의 핏줄이 검붉게 솟아올랐고, 이미 하얗게 세어버린 그의 백발 머리카락이 고통의 진동에 맞춰 밤바람 속에 미친 듯이 흩날렸다.
하지만 이 처절한 고통은 완벽한 기적의 밑거름이 되었다.
단전 입구에서 기가 역방향으로 팽팽하게 압축되자, 소운의 몸은 거대한 무쇠 모루를 넘어 적의 힘을 거꾸로 쏘아내는 탄성 고무 주머니처럼 변모했다. 기혈 반류 제어(氣血 反流 制御)가 완벽하게 발동한 것이다.
귀면은 붉은 가면 뒤에서 승리를 확신하며 음산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걸려들었구나. 침술로 혈도가 막힌 이상, 네놈의 그 괴물 같은 반사막은 기가 막혀 작동하지 못할 터…….’
그러나 그것은 귀면의 치명적인 오판이었다.
소운은 고통 속에서도 석정 스님에게 배운 관조 명상법을 유지하며 마음의 거울을 투명하게 닦아냈다. 은반지의 차가운 온정이 그의 뇌리를 식혀주자, 소운은 귀면의 독마침이 지닌 기맥 봉쇄 에너지를 자신의 피막 속에 온전히 가두었다. 그리고 단전 입구에 압축되어 있던 역방향의 기류를 손가락 끝과 가슴 혈도를 통해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역(逆)――!”
소운의 나지막한 외침과 함께, 가슴팍에서 찬란한 은빛의 동심원 파동이 거울처럼 번쩍였다. 경맥 역류 반사(經脈 逆流 反射)의 극의였다.
콰아아아앙!
귀면이 주입하려 했던 파맥의 진기와 마비독 기운이 정확히 두 배의 물리적 충격파가 되어 독마침의 궤적을 타고 역방향으로 뿜어져 나갔다. 밤안개가 사방으로 찢겨 나가며 은빛 충격파가 귀면의 손가락 끝을 타고 그의 전신 기맥으로 사정없이 침투했다.
“크으으윽……!?”
귀면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소운의 경맥을 끊기 위해 쏟아부었던 파맥의 힘이 고스란히 두 배가 되어 자신의 손가락을 타고 역류해 들어온 것이다. 손끝의 뼈마디가 순식간에 으스러지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반사된 은빛 기류는 귀면의 가슴을 지나 그의 머리 정중앙인 백회혈(百會穴)을 관통했다.
스스로 내지른 파맥의 위력에 자신의 전신 경맥이 역으로 폐쇄되어 버린 것이다.
툭, 투두둑.
귀면의 거구가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의 양손은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고, 전신의 근육은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처참한 상태였다. 귀면은 붉은 가면 뒤에서 피 섞인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전율했다.
“어…… 어떻게, 스스로 기를 쓰지 못하는 불구 놈이…… 내 침술의 극의를 역류시킬 수 있단 말이냐…….”
소운은 흐려진 시야 속에서도 초감각 통각을 통해 쓰러진 귀면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는 완전히 하얗게 세어버린 백발을 휘날리며, 굳건하고 무거운 걸음걸이로 귀면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은반지가 달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였다. 소운은 스스로 때리지 않는다는 불살의 규칙을 지키며, 가만히 귀면의 목덜미 근처 바닥에 부러진 대장간 망치 자루를 들이밀었다.
“원수들의 사냥개여.”
소운의 목소리는 밤바람처럼 서늘하고 묵직했다.
“내 아버지를 죽이고, 소가 가문을 몰살한 진짜 배후가 독고용 장로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가 숨겨둔 위선의 장부, 백광비록(百光秘錄)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라. 거절한다면 네놈이 내지른 독기가 네 심장을 먼저 녹일 것이다.”
귀면은 전신 경맥이 폐쇄되어 호흡이 가빠오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 소운의 은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백발 소년은 인간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가한 모든 악의와 폭력을 그대로 비추어 파멸시키는 지옥의 거울이었다.
“바…… 백광비록은…… 수안성 백광검파 장로각 지하 밀실(長路閣 地下 密室)에…… 독고용 장로님의 비밀 궤짝 속에 보관되어 있다…….”
귀면은 사지가 마비된 채 비명을 지르며 독고용의 '백광비록'이 숨겨진 지하 밀실의 지도를 털어놓았다. 그의 붉은 가면 틈새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독마침에 발려 있던 사독이 역류하여 그의 심장을 향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귀면은 기괴한 grimace를 지으며 이내 숨을 거두었다.
소운은 비록을 찾아 수안성으로 향해야 하는 명확한 이정표를 확보했으나, 그의 몸 역시 삼생금침의 무리한 공명 여파로 전신 기력이 완전히 방전된 상태였다. 설아는 소운의 흔들리는 몸을 부축하며 수안성 방향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멀리 수안성의 지상 성문들이 횃불 빛과 함께 완전히 폐쇄되며 삼엄한 경계가 시작되는 소리가 미세한 공기의 흔들림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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