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가면의 침술사
콰아아앙!
백 근 무게의 무쇠 도끼가 자아내던 파괴적인 하강 궤적이 찰나의 순간 은빛의 거대한 동심원을 그리며 역류했다.
황달이 내리친 도끼 자루의 가장 단단한 중심부로 파고든 소운의 가슴팍에서, 그가 가한 힘의 정확히 두 배에 달하는 반탄력이 폭발한 것이다. 무쇠 도끼날이 쩌적 갈라지며 수십 개의 파편으로 산산조각 났고, 그 반동을 이기지 못한 황달의 손목뼈가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완전히 으스러졌다.
“크아아악!”
황달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지자, 공포에 질린 도적떼는 무기를 버려둔 채 밤안개 속으로 비참하게 흩어졌다. 유랑민들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채 수안성 방향으로 달아났고, 소운은 전신의 뼈마디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 속에서 설아의 부축을 받아 깊은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 * *
바람 소리조차 잦아든 험준한 산길 협곡의 밤은 깊고도 차가웠다.
아름드리송림이 빽빽하게 우거진 숲 한구석, 거대한 바위 그늘 아래에 소운과 설아는 간신히 임시 숙영지를 마련했다. 불을 피우면 백광검파의 추격대에게 위치가 노출될 터였기에, 두 사람은 오직 밤안개의 서늘한 냉기만을 가림막 삼아 어둠 속에 웅크려 있었다.
“하아…… 하아……”
소운은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신체 상태는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임칠에 이어 살풍, 그리고 황달의 무쇠 도끼까지 연이은 강자들의 파괴적인 물리력을 맨몸으로 받아낸 대가는 참혹했다. 전신의 골격이 고속 공명하며 골수가 바짝 마르는 듯한 극심한 피로가 뼈마디마다 누적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시야였다. 소운이 눈을 뜨고 있었으나, 그의 은빛 눈동자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온통 흐릿한 회색빛 아지랑이로 가득 차 있었다. 사물의 윤곽조차 제대로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시력이 일시적으로 상실된 상태였다. 오직 공기의 흐름과 미세한 소리만이 그의 유일한 이정표였다.
설아가 찢어진 도포 자락을 소운의 가슴팍에 덧대며 두꺼운 삼베로 단단히 동여맸다. 그녀의 가냘픈 손길이 소운의 가슴에 닿을 때마다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골밀도 피로가 한계를 초과했어요. 이대로 한 번만 더 뼈의 공명을 억지로 사용하면, 다음에는 경맥이 아니라 뼈 자체가 가루가 되어 부서질 거예요. 제발…… 제발 몸을 사리세요.”
설아의 차가우면서도 애틋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소운은 대답 대신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이모의 은반지를 가만히 매만졌다. 차가운 은의 감촉이 거칠어진 가죽 표면을 타고 흐르며, 황달의 잔혹한 만행을 목격하고 단전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던 붉은 살성을 차갑게 정화해 주었다.
“우각촌 사람들과 유랑민들은 무사히 피했소. 그것으로 내 모루의 의리는 다했소.”
소운의 목소리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완전히 하얗게 세어버린 그의 백발 머리카락이 밤바람에 쓸쓸히 흩날렸다.
설아는 소운의 심장 주변 혈도를 짚으며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제가 소운 씨의 심장 주변 세 혈도에 시술해 둔 삼생금침(三生金針)이 아니었다면, 이미 심장이 마비되어 멈췄을 거예요. 이 금침은 생명선을 억지로 유지해 주지만, 발동할 때마다 수명을 깎아 먹는 극단의 약제예요. 수안성에 진입하면 가장 먼저 약방에서 자오삼침(子午三針)을 동원해 기혈을 완전히 재정렬해야 해요.”
소운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시야가 흐려진 대신, 그의 전신 신경망을 극도로 활성화하는 초감각 통각(超감각 통각)이 더욱 예리하게 벼려지고 있었다. 주변 십 장 내의 미세한 풀잎 흔들림, 밤이슬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심지어 설아의 고른 호흡 소리까지 그의 피부 세포 하나하나에 실시간으로 각인되었다.
“설아 소저, 먼저 쉬시오. 내 기척을 지우고 경계를 서겠소.”
설아는 밤샘 치료와 피난길의 고단함에 지쳐 있었다. 그녀는 소운의 굳건한 태도에 안심하듯, 그의 무릎 옆에 기대어 조용히 잠이 들었다. 소운은 석정 스님에게 배운 관조 명상법을 전개하며, 심장 박동을 극한으로 낮추고 호흡을 지웠다.
숲은 지독한 고요 속에 침잠해 들어갔다. 오직 서리 안개만이 차갑게 대지를 흐를 뿐이었다.
* * *
지독한 어둠이 숙영지를 지배하는 자오시(子午時) 부근.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던 소운의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공기가 변했다.
바람 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 기괴한 침묵이 숲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 정적을 뚫고, 지극히 은밀하면서도 기괴한 약초 냄새가 밤바람을 타고 스며들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약재의 향이 아니었다. 사람의 신경을 마비시키고 뼈를 흐물흐물하게 녹여버리는 음한한 독물의 성질을 띤 냄새였다.
‘살기(殺氣)다.’
소운의 초감각 통각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잠든 것처럼 누워 있던 소운의 피부 표면에 수면 반사막(睡眠 反射幕)의 은은한 은빛 서리가 미세한 물결을 그리며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의 육체는 다가오는 죽음의 기척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방어막을 가동한 것이다.
서걱…….
머리 위 송림 가지를 가볍게 밟는 소리조차 허용하지 않는, 유령 같은 기척이 소운의 정수리 위쪽에서 포착되었다.
소운은 흐려진 시야 속에서도 머리 위의 나뭇가지 틈새로 비치는 밤하늘의 달빛을 느꼈다. 그 달빛을 가로막으며, 한 줄기 검붉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붉은 귀신 가면을 얼굴에 쓴 사내.
백광검파의 장로 독고용이 소운의 뒤틀린 경맥을 완벽히 해체하고 반사 능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파견한 사악한 의술 살수, 귀면(Gwi Myeon)이었다. 귀면의 손가락 끝에는 달빛을 받아 검푸른 광채를 내뿜는 세 자루의 얇은 독마침(毒魔針)이 쥐어져 있었다.
귀면은 붉은 가면 뒤에서 음산한 안광을 빛내며 침묵 속에서 소운을 내려다보았다.
‘소문으로 들은 역천경력의 괴물 놈이 결국 이 가녀린 의원 계집 뒤에 숨어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군. 하지만 내 독마침은 타격이 아니다. 전신 경맥의 혈도를 관통하여 흐름을 강제로 뒤틀어버리는 침술이지. 때리지 않고 오직 침을 꽂아 넣는 내 파맥침술 앞에서도 그 반사막이 작동할 수 있을까?’
귀면은 소운의 가슴 정중앙, 즉 삼생금침이 박혀 기혈을 억지로 지탱하고 있는 전중혈과 거궐혈을 정확히 조준했다. 그곳만 뚫어낸다면 소운의 단전은 그 탄성을 잃고 스스로 폭사할 터였다.
슈우욱!
파공음조차 허용하지 않는 극도로 은밀한 암습이었다. 귀면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세 자루의 검은 독마침이 밤안개를 소리 없이 가르며 소운의 가슴을 향해 짓쳐 들어왔다.
그 순간, 소운의 은빛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비록 시야는 흐릿했으나, 초감각 통각을 통해 날아오는 독마침의 미세한 궤적과 공기의 마찰력이 그의 전신 피부에 실시간으로 감지되었다. 수면 반사막의 은빛 기류가 소운의 가슴팍 위에서 거울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귀면의 붉은 귀신 가면이 달빛 아래 기괴하게 드러나고, 그가 쥔 세 자루의 검은 독마침이 소운의 가슴을 향해 소리 없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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