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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골의 거울벽 (1단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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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골의 안개는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장막 같았다. 절벽 틈새로 불어오는 밤바람이 괴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계곡 깊숙한 곳의 안개를 이리저리 휘감았다. 축축하고 차가운 습기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소운은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이모의 손때 묻은 은반지의 은근한 감촉을 느꼈다. 그 작고 소박한 은빛 고리는 가슴속에서 요동치던 복수심과 살성을 차갑게 가라앉혀 주는 유일한 이정표였다.


소운은 가만히 서서 숨을 들이쉬었다. 새로 제련해 가슴에 단단히 묶은 무명 모루 가슴판이 묵직한 무게감으로 그의 심장을 덮고 있었다. 늙은 천씨와 명수의 혼이 담긴 이 정철 내갑은 대장간의 뜨거운 열기를 여전히 머금은 듯 묘한 신뢰감을 주었다. 양 팔목에 촘촘히 감긴 무쇠 실 붕대 역시 팽팽한 긴장감으로 그의 가죽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미 ‘강철 가죽’의 외공 경지를 완성한 그의 육체는 어떠한 타격도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스락.


안개 너머에서 회색 장포를 걸친 사내들의 실루엣이 서서히 드러났다. 서른 명에 달하는 백광검파의 정예 추격대, 장포대였다. 그들의 선두에는 얼굴에 깊은 칼자국이 새겨진 사내, 임칠이 사냥개 같은 안광을 빛내며 서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이미 허리에 찬 검자루를 쥐고 있었고, 그 끝에서 예리한 회색 검기가 안개를 찢으며 흘러나왔다.


“흐흐흐, 천한 광산 노예 샌드백 놈이 도망친 곳이 고작 이 귀신골 계곡이더냐?”


임칠이 검을 천천히 뽑아 들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류 고수 특유의 오만함과 잔인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십 년 전, 네놈의 가문이 왜 멸문당했는지 아느냐? 네놈의 가보이자 아비였던 소대장은 무림맹의 무기 제작 요청을 거절한 오만한 대장장이였지. 한철 광맥의 위치를 끝까지 숨기려 하기에, 독고용 장로님의 명을 받들어 내가 직접 그 목을 쳐 가루로 만들었다. 네 어미와 병약한 누이동생 소유진이 울부짖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그때 마을을 습격했던 도적떼의 정체가 바로 우리 장포대였다는 사실을 알면 저승에서 아비가 참으로 기뻐하겠군!”


그 순간, 소운의 뇌리가 번개에 맞은 듯 팽팽하게 굳어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십 년 동안 묵혀왔던 붉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극심한 분노가 일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가문을 몰살한 진짜 범인이 바로 눈앞의 사내와 그의 수하들이었다니. 살성이 단전을 뒤흔들며 그의 전신을 마성으로 물들이려 했다.


하지만 소운은 이를 악물었다. 새끼손가락의 은반지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석정 스님에게 배운 관조 명상법을 떠올렸다.


‘마음의 거울을 닦아라. 분노는 거울을 흐리게 할 뿐, 적의 검날을 비추지 못한다.’


소운은 깊은 호흡을 들이쉬며 끓어오르는 살기를 차갑게 얼려버렸다. 그의 눈동자는 이내 맑고 투명한 은빛 서리로 가득 찼고, 완전히 하얗게 세어버린 백발이 밤바람에 흩날렸다. 그는 스스로 공격할 수 없는 역천경력의 제약을 지닌 몸. 오직 적이 가해오는 가장 강력한 폭력의 무게로 적을 자멸시켜야 했다.


“원수들의 사냥개여.”


소운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 없는 모루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네놈들이 가한 폭력이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칼날이 될 것이다. 덤벼라.”


“오만한 놈! 그 혓바닥을 가장 먼저 잘라주마!”


임칠이 포효하며 신형을 날렸다. 일류 초입의 강맹한 진기가 그의 검날에 집중되며 백광검파의 비전 검초인 살광선이 안개를 일직선으로 가르며 소운의 심장을 향해 짓쳐 들어왔다. 검기가 가르는 파공음이 계곡의 돌벽에 반사되며 웅웅거리는 굉음으로 변했다.


소운은 피하지 않았다. 그의 발끝이 기괴한 곡선을 그리며 지면을 미끄러졌다. 무위보였다.


그는 검 끝의 예리함을 피하는 대신, 검기가 가장 촘촘하게 뭉치는 중심부, 즉 임칠의 검날 정면을 향해 스스로 가슴을 내던졌다.


콰아앙!


임칠의 날카로운 검 끝이 소운의 가슴에 장착된 무명 모루 가슴판에 정확히 작렬했다. 정철로 주조된 가슴판 표면에서 은빛 불꽃이 사방으로 튀며 기괴한 쇳소리가 계곡을 뒤흔들었다.


“무엇이……!”


임칠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검기에 실린 예리한 관통 파괴력이 소운의 뼈를 으스러뜨리지 못하고, 가슴판의 정철 탄성에 가로막혀 사방의 공기 중으로 흩어져 나간 것이다. 소운의 ‘강철 가죽’과 ‘골격 흡수’ 경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충격을 온몸으로 흡수해 내고 있었다.


“이놈이 사술을 부리는구나! 장포대, 전원 검초를 전개하라! 다 함께 저놈을 다져버려라!”


임칠의 명령에 서른 명의 정예 검수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소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날카로운 백광검초의 기류가 좁은 계곡 안을 가득 메우며 소운의 전신을 옥죄어 왔다.


소운은 눈을 감았다. 그의 ‘초감각 통각’이 극대화되며 공기의 흐름과 미세한 진동이 실시간으로 뇌리에 그려졌다. 그때, 계곡의 좁은 돌벽 위쪽에서 미세한 모래먼지가 흘러내리며 바위들이 흔들리는 파동이 감지되었다. 수십 명의 일류 검수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검기 여파와 계곡의 울림이, 지형적으로 불안정했던 귀신골 상부의 낙석 절벽을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다.’


소운은 머릿속으로 찰나의 기하학적 타이밍을 계산했다.


쿠구구구궁!


계곡 위 절벽에서 집채만 한 바위들과 날카로운 낙석들이 엄청난 질량과 운동 에너지를 품은 채 소운과 장포대 무사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방을 경계하라! 낙석이다!”


장포대 무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하는 사이, 임칠은 광기에 찬 눈빛으로 소운의 목을 향해 최후의 절명검을 내질렀다.


“죽어라, 소운!”


소운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떨어지는 거대한 낙석의 직격 경로와 임칠의 검초가 교차하는 중심점에 굳건히 버텨 섰다.


콰아아아앙!


수만 근의 낙석 질량과 임칠의 필살 검기가 소운의 무명 모루 가슴판과 양 팔목의 무쇠 실 붕대에 동시에 격돌했다. 그 순간, 소운은 자신의 단전을 완벽히 비워내고 기혈 반류 제어를 가동했다. 전신의 206개 뼈마디가 고속으로 공명하며 웅웅거리는 쇳소리를 내뿜었다.


그는 가해진 모든 파괴적인 물리력을 찰나의 순간 온몸으로 가두어 들였다. 그리고 이내 역천경력의 극의인 ‘쌍배 반사’를 터뜨렸다.


“쌍배 반사(雙倍 反射)!”


소운의 가슴판에서 찬란한 은빛 거울 같은 광막이 번쩍이며, 낙석의 거대한 질량과 임칠의 검기가 지닌 파괴력의 두 배에 달하는 거대한 충격파가 역방향으로 폭발했다.


쿠콰콰콰쾅!


은빛 반사 폭풍이 계곡 안을 사정없이 휩쓸었다.


임칠의 검은 찰나의 순간 수천 개의 파편으로 산산조각 나며 흩날렸고, 그가 뿜었던 검기의 두 배 반동이 그의 가슴뼈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크아아아악!”


임칠은 가슴뼈가 완전히 함몰되는 처참한 고통 속에서 핏물을 쏟아내며 뒤로 날아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운의 반사 충격파에 밀려 궤적이 뒤틀린 거대한 낙석들이 장포대 무사들을 덮쳤다.


“악! 살려다오!”


서른 명의 정예 무사들은 자신들이 가한 힘의 무게와 무너져 내리는 돌더미에 깔려 비참하게 으스러졌다. 그들의 거구는 거대한 낙석들과 함께 계곡 아래의 깊은 천 길 낭떠러지 속으로 추풍낙엽처럼 추락해 갔다.


임칠 역시 부러진 검 자루를 쥔 채,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소운을 바라보며 깊은 어둠 속으로 쓸쓸히 낙하했다. 가문을 멸문시켰던 장포대의 비참한 자멸이었다.


스우우우…….


자욱했던 안개가 반사 폭풍의 여파로 걷히며 계곡에는 기괴한 정적이 찾아왔다.


소운은 홀로 서 있었다. 하지만 그가 치른 대가 역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질량의 충격을 뼈로 받아낸 여파로 인해, 전신의 골밀도가 피로에 달하며 그의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형체들이 사라지고 오직 흐릿한 기의 흐름만이 희미하게 보였다. 등뒤의 아물었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며 붉은 선혈이 무복을 적셨다.


스스슥.


안개 속에서 하얀 도포를 입은 설아가 다급하게 뛰어와 소운의 비틀거리는 몸을 부축했다.


“소운! 시력이…… 경맥이 또 뒤틀리고 있어요!”


설아의 목소리에는 깊은 걱정과 애틋함이 서려 있었다. 소운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가슴속에 고이 보관된 백광검파의 황금 인장과 독고용의 친필 사주 서찰을 지그시 만지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원수들의 사냥개는 치웠소. 이제…… 배후의 목을 벨 차례요.”


지상의 성문은 이미 백광검파에 의해 철저히 봉쇄되었을 터. 그들이 향할 곳은 오직 하나, 수안성의 삼엄한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음침한 지하 수로뿐이었다.


부러진 임칠의 검날을 뒤로하고, 소운은 회색 장포를 걸친 채 설아와 함께 안개 자욱한 수안성 수로 입구를 향해 묵묵히 발걸음을 옮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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