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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촌(牛角村)의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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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암흑의 심연에서 눈을 뜬 순간, 코끝을 찌른 것은 비릿한 강물이 아닌 매캐하고 쓴 약초 향이었다.


소운은 거친 숨을 내쉬려 했으나, 허파를 가르는 듯한 통증에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등뒤 전체가 칼날 바위에 긁히고 낙석에 짓눌려 살점이 뜯겨 나간 상처가 불덩이를 얹은 듯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왼쪽 어깨는 흑호방 비밀 금고에서 스쳤던 독화살의 마비 열독이 여전히 잔류해 있어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굳어 있었다.


“정신이 드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고요한 어둠 속에서 들려온 것은 설아의 갈라진 목소리였다.


눈을 흐릿하게 뜨자, 낡은 들보와 흙벽으로 둘러싸인 허름한 약방의 풍경이 들어왔다. 철석곡을 탈출해 팔봉의 마차를 타고 다다른 곳, 우각촌 외곽의 비밀 약방이었다. 설아는 소운의 머리맡에 앉아 화로 위에서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그녀의 고결했던 하얀 의원 도포는 소운의 등에서 흘러내린 피로 군데군데 붉고 검게 물들어 있었다. 밤새 잠 한 숨 자지 못한 듯, 그녀의 맑은 눈가에는 짙은 피로가 서려 있었다.


“등뒤의 낙석 자상이 너무 깊어 살점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어요. 뇌인도의 오수가 상처에 스며들어 그대로 두면 전신에 독이 퍼져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지금부터 상처를 소독해야 해요.”


설아는 화로 위에서 펄펄 끓는 무쇠 솥을 내려놓았다. 솥 안에는 하얀 결정들이 가득 우러나 있었다. 우각촌 정제염(牛角村 精製鹽)이었다. 이 가난한 광산 마을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순도가 극도로 높아 상처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탁월하지만, 살을 찢어발기는 듯한 극통을 수반하는 지독한 물질이었다.


설아는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뜨겁게 달구어진 소금물을 두꺼운 삼베천에 적셨다. 삼베천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지독한 짠내가 약방 안을 가득 메웠다.


“참으셔야 해요. 비명을 질러도 좋습니다.”


설아가 조심스럽게 소운의 등뒤 찢어진 살점 위로 뜨거운 소금물 삼베천을 지그시 눌렀다.


치이이익!


찰나의 순간, 소운의 전신이 활처럼 팽팽하게 꺾였다. 살가죽이 통째로 용광로 속에 던져진 듯한, 뼈를 깎아내는 듯한 극심한 작열통이 척추를 타고 뇌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등뒤의 모공들이 비명을 지르며 수축했고, 상처 부위에서 검붉은 진물이 소금물에 녹아내리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왼쪽 어깨의 마비 열독이 그 극통에 반응해 요동치며 소운의 목덜미를 타고 검은 핏줄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으…… 윽!”


소운의 이빨 사이로 피 섞인 신음이 새어 나왔다. 전신의 모공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이미 눈부시게 하얗게 세어버린 백발 머리카락이 땀과 피에 젖어 이마에 무겁게 달라붙었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거나 비명을 질렀을 터였다.


하지만 소운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주먹을 꽉 쥔 채 마음속의 거울을 닦았다. 석정 스님에게 배웠던 관조 명상법(觀照 瞑상법)이었다. 등뒤를 난도질하는 지옥 같은 고통을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육체에 가해지는 현상인 양 제3자의 시선으로 묵묵히 바라보았다. 마음을 비우고 고통의 흐름을 그대로 수용하자, 요동치던 심장 박동이 서서히 평정을 찾기 시작했다.


설아의 눈동자에 경탄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이 고통을 맨몸으로 버텨내다니…… 정말 괴물 같은 인내력이군요.”


설아는 서둘러 소운의 어깨와 명치 부근의 기혈 흐름을 확인했다. 배무덕과의 사투와 대붕괴의 낙석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소운의 뒤틀린 단전은 그 탄성의 한계를 초과해 팽창해 있었다. 삼생금침이 심장 주변 혈도를 억지로 뚫어 숨통을 붙여놓았으나, 기맥은 거꾸로 흐르며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설아는 허리춤에서 은침 통을 열고 푸른 진기가 서린 자오삼침(子午三針)을 꺼냈다.


“단전의 문이 열려 기가 역류하면 전신 경맥이 폭사합니다. 삼생금침의 위치를 재조정하여 단전의 입구를 다시 완전히 가두어야 해요.”


설아는 손가락 끝에 인술심법의 진기를 모아 소운의 가슴 전중혈과 거궐혈에 꽂혀 있던 금침을 미세하게 비틀어 깊숙이 밀어 넣었다.


두 우우웅!


소운의 이백여섯 개 뼈마디에서 다시 한번 둔탁한 쇠울음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단전 입구가 굳게 닫히며 폭주하던 기혈이 수축되었고, 전신의 맥박 소리가 소운의 등뒤 대기 중으로 흘러나갔다. 기맥의 역류가 차단되는 대가로 소운의 전신 감각이 일시적으로 무뎌지며 거동할 수 없는 가사 상태에 빠졌으나, 파열 직전이던 생명선은 기적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소운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침상에 쓰러지듯 누웠을 때, 약방의 낡은 나무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운아……! 내 새끼야!”


문틈으로 들어온 것은 빛바랜 무명치마를 입고 얼굴에 깊은 수심이 가득한 노여인이었다. 소운의 이모, 소씨 부인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순박한 인상의 이종사촌 소지훈이 약초 바구니를 든 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서 있었다.


소씨 부인은 침상으로 달려와 소운의 하얗게 세어버린 백발을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 듯 눈물을 쏟아냈다.


“어쩌다 머리가 이리 되었느냐…… 그 지옥 같은 철석곡에서 얼마나 매질을 당했으면 이 고운 머리가 백발이 되었어…….”


그녀는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으로 소운의 이마와 뺨을 어루만졌다. 소운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차갑게 굳어 있던 복수의 독기와 살성(殺性)이 이모의 따뜻한 눈물과 온정에 서서히 녹아내렸다. 아버지를 죽인 독고용을 향한 분노가 가라앉고, 약자를 지키겠다는 숭고한 약속만이 마음의 거울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소씨 부인은 품속에서 낡은 목함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아주 작고 소박한 은반지 하나를 꺼냈다. 이모의 손때 묻은 은반지(이모의 손때 묻은 은반지)였다. 소운의 어머니가 생전에 소가 가문에 시집올 때 가져왔던 유일한 유품이었다.


“이것은 네 어머니가 남기신 마지막 보물이다. 내가 흑호방 놈들의 수색 속에서도 목숨처럼 지켜냈다. 이제 주인을 찾아가는구나.”


소씨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소운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은반지를 조심스럽게 끼워주었다. 은반지가 손가락에 닿는 순간, 소운의 가슴속에서 일렁이던 마지막 미세한 통증마저 씻은 듯이 사라지며 깊은 정신적 안식과 평정 상태가 찾아왔다. 뼈와 가죽은 여전히 상처투성이였으나, 그의 영혼만큼은 단단한 방패가 되어 가문의 신념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요한 안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서걱. 서걱.


약방 마당 너머, 우각촌 고갯길 방향에서 가죽 장화가 흙바닥을 거칠게 짓밟는 둔탁한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쾅! 쾅! 이 쥐새끼 같은 우각촌 놈들아! 상단 세금을 낼 시간이 지났다! 당장 기어 나오지 못할까!”


창밖으로 흑호방 잔당들의 거친 고함 소리와 민초들이 핍박당하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약방 안을 사정없이 흔들기 시작했다. 소운은 이빨을 악물며 창밖의 어둠을 주시했다. 부러진 골격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몸은 거동할 수 없었으나, 적들의 폭력은 이미 문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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