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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인도(雷刃道)의 급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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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처럼 차가운 심연이 전신을 집어삼켰다.


철석곡 지하 3층의 대붕괴가 내뿜은 굉음이 수면 너머로 둔탁하게 멀어졌다. 사방을 집어삼킨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소운은 허파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빙하의 한기를 느꼈다. 등 전체가 무너지는 낙석을 맨몸으로 받아내느라 갈기갈기 찢겨 나간 상태였다. 차가운 지하 수맥의 오수가 상처 벌어진 살결에 닿을 때마다 온몸의 가죽을 소금으로 문지르는 듯한 작열통이 뇌리를 후벼 팠다.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


소운은 어둠 속에서 품 안의 감촉을 확인했다. 설아였다. 그녀의 가냘픈 신체가 한기에 덜덜 떨리며 소운의 젖은 장포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소운은 전신의 이백여섯 개 뼈마디를 미세하게 진동시키는 골격 공명(骨格 共鳴)을 가동했다. 시각이 완벽히 차단된 암흑 속에서, 오직 수류의 파동과 수압의 변화만이 그의 피부 세포를 통해 슬로우 모션처럼 읽혀 들어왔다.


푸하학!


소운이 물 밖으로 머리를 치켜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방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거센 물살 소리가 동굴 벽을 때리며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이곳이 바로 철석곡 최악의 금역이자, 지하 광산 깊은 곳을 관통하는 죽음의 수로 ‘뇌인도(雷刃道)’였다.


“설아, 정신 차려라.”


소운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설아가 연신 기침을 토해내며 물을 뱉었다. 그녀의 하얀 도포는 소운의 등에서 흘러내린 선혈로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소…… 소운…… 등뒤의 상처가……!”


“상관없다. 버틸 수 있다.”


소운은 차가운 물속에서 한쪽 팔로 설아를 단단히 안은 채, 다른 한 손으로 수면 위를 더듬었다. 늙은 광부 칠성(칠성)이 탈출 직전 일러주었던 비밀 수맥의 지리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뇌인도 초입의 거센 물길 오른쪽, 이끼 낀 암반 뒤편에 우리가 준비해 둔 뗏목이 묶여 있을 걸세. 한철 실로 묶어둔 뗏목이니 거센 물살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을 거야.’


소운은 초감각 통각을 극대화하여 물살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세한 철기(鐵氣)의 진동을 포착했다. 오른쪽이었다. 수류가 암벽에 부딪혀 소용돌이치는 음산한 그늘 너머, 참나무 판자들을 촘촘히 엮어 만든 날렵한 형태의 ‘뇌인도 탈출용 뗏목’이 흔들리고 있었다. 광부들과 대장간의 덕구가 흑호방의 눈을 피해 극비리에 주조해 둔 마지막 희망이었다.


소운은 필사적으로 물살을 헤쳐 뗏목 위로 설아를 먼저 밀어 올렸다. 뒤이어 자신의 거구를 뗏목 위로 끌어올리는 순간, 왼쪽 어깨에서 욱신거리는 독기의 통증이 솟구쳤다. 비밀 금고에서 독고용의 친필 사주 서찰을 확보할 때 스쳤던 독화살의 마비 열독이 차가운 물길 속에서 서서히 기혈을 타고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 하아……”


소운이 뗏목 바닥에 엎드린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리카락 전체는 삼생금침의 강제 활성화 여파로 인해 눈부시게 하얀 백발로 변해 있었고, 그 끝자락에는 물과 피가 섞여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소운, 움직이지 마세요! 어깨의 마비독이 심장으로 가고 있어요. 제가 침을…….”


설아가 떨리는 손으로 은침 통을 열려 하자, 소운이 가만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시간이 없다. 칠성 영감이 말한 수류의 급류 구간이 시작된다. 뗏목을 묶은 한철 실을 풀어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뗏목이 요동치며 무서운 속도로 하류를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수로 사방에서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구친 수중 암석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뗏목의 참나무 측면을 들이받았다. 쿠구궁! 뗏목이 크게 비틀거리며 설아가 비명을 질렀다.


“이 물길은 사람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바위에 부딪히면 뗏목째로 쪼개질 거예요!”


소운은 이빨을 악물고 뗏목 중앙에 비치된 묵직한 한철 노를 잡았다. 왼쪽 어깨의 마비독 때문에 왼팔의 감각이 절반쯤 둔화되어 있었으나, 그는 모루 호흡법을 전개해 전신의 뼈마디를 단단히 밀착시켰다. 뗏목이 고속으로 하류로 내달릴 때마다, 전방의 짙은 안개 속에서 수십 개의 날카로운 바위 틈새가 기괴한 형상으로 다가왔다.


바로 그때였다.


피리리릭!


머리 위 수십 장 높이의 절벽 암반 위에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운이 초감각 통각을 가동해 위쪽을 주시하자, 자욱한 수증기 너머로 횃불의 붉은 불빛들이 연이어 켜지는 것이 보였다.


“거기 뗏목이 있다! 쏴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철석곡 대붕괴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흑호방의 정예 살수들과 추격대원들이 수로 양안의 절벽 길을 따라 뗏목을 추격해 온 것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무거운 강철 활과 쇠사슬 갈고리가 들려 있었다.


슈우우웅!


무지막지한 쇳소리와 함께 거대한 강철 갈고리가 매달린 쇠사슬이 허공을 날아와 뗏목의 후방 참나무 판을 깊숙이 찍어 눌렀다. 콰직! 갈고리가 뗏목을 파고들며 고속으로 전진하던 뗏목의 속도가 순간적으로 뚝 떨어졌다. 절벽 위의 살수들이 일제히 사슬을 잡아당기며 뗏목을 암벽 쪽으로 강제로 끌어당기려 했다.


“크윽……!”


뗏목이 급격히 기울며 우측 지지대가 수중 암석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설아의 몸이 뗏목 밖으로 튕겨 나가려 하자, 소운은 전속력으로 몸을 던져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등뒤의 찢어진 상처에서 다시 한 번 뜨거운 선혈이 울컥 뿜어져 나와 설아의 도포를 적셨다.


피리릭! 쉭! 쉭!


동시에 절벽 위에서 수십 발의 강철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화살들이 물 표면을 뚫고 들어가며 기괴한 물기둥을 일으켰고, 몇 발은 뗏목의 바닥에 꽂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피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쇠사슬에 묶인 뗏목은 찰나의 순간 제어력을 잃고 전방의 거대한 칼날 바위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이대로 부딪힌다면 뗏목은 완전히 파괴되고, 물속의 암석들에 온몸이 찢겨 즉사할 터였다.


‘스스로 공격할 수 없다면, 적이 가해오는 물리력을 역용한다.’


소운의 머릿속에서 역천경법의 기하학적인 반사 궤적이 실시간으로 그려졌다. 그는 품 안의 설아를 뗏목 바닥에 안전하게 눕힌 뒤, 백발을 휘날리며 뗏목 전면으로 가만히 걸어 나갔다. 무명 모루 가슴판은 이미 파괴되어 소실된 상태. 그는 오직 양 팔목에 감겨 있는 두꺼운 무쇠 실 붕대(무쇠 실 붕대)만을 앞으로 교차해 들어 올렸다.


“저 백발 놈의 가슴을 뚫어라! 쏴라!”


절벽 위의 살수들이 소운의 맨몸을 보고 광기 서린 비명을 지르며 강철 활시위를 한계까지 잡아당겼다. 시위를 떠난 열여섯 발의 강철 화살이 소운의 전신 혈도를 향해 보이지 않는 쾌속의 궤적으로 쇄도했다.


타타타타탕!


소운은 주먹을 내지르지 않았다. 오직 화살이 날아오는 정확한 찰나의 순간, 몸을 미세하게 비틀며 무쇠 실 붕대를 감은 양팔로 화살의 강렬한 운동 에너지를 정면으로 받아냈다. 강철 화살촉이 무쇠 실의 탄성에 가로막혀 찌그러지며 튕겨 나갔다.


하지만 화살에 실린 강력한 물리적 충격과 적들의 내력 기운은 고스란히 소운의 가죽과 피막을 통과해 이백여섯 개의 뼈마디 속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두 우우웅!


소운의 전신 뼈마디에서 장엄한 금명(金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들이 가한 열여섯 발의 화살 충격이 소운의 골격 속에서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공명 파동을 일으켰다. 왼쪽 어깨의 마비독 상처가 진동하며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소운은 관조 명상법으로 고통을 완벽히 지워냈다.


‘되돌려준다. 하지만 적이 아닌, 물길을 향해.’


소운은 골격 속에 저장된 두 배의 반사 충격파(쌍배 반사)를 양팔을 통해 쥐고 있던 한철 노로 순식간에 흘려보냈다. 그리고 한철 노를 뗏목 왼쪽의 거대한 칼날 바위 정면 수면 속으로 깊숙이 찔러 넣었다.


콰아아아아앙!


폭발적인 은빛 충격파가 한철 노 끝에서 뿜어져 나오며 지하 수류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수면이 마치 폭약을 터뜨린 듯 수십 장 높이의 거대한 물기둥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그 가공할 만한 반사 충격의 반동력이 뗏목 전체를 오른쪽으로 강하게 밀쳐냈다.


스으으윽!


뗏목은 전방의 치명적인 칼날 바위를 불과 몇 촌 차이로 스치듯 우회하며 기적적으로 빠져나갔다. 동시에 그 엄청난 반동의 여파가 뗏목을 붙잡고 있던 쇠사슬을 팽팽하게 당기더니, 이내 절벽 위 살수들의 손목을 강타했다.


“으아아악!”


사슬을 쥐고 있던 살수들이 반사된 두 배의 인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절벽 아래 차가운 급류 속으로 연이어 추락하며 비명을 질렀다. 뗏목을 옭아매던 쇠사슬 갈고리가 툭 끊겨 나가며 자유를 얻은 뗏목이 다시 한번 거센 물살을 타고 고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추격대원들의 횃불 불빛이 저 멀리 어둠 속으로 빠르게 멀어졌다. 마침내 흑호방의 끈질긴 추격망을 완벽히 따돌린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뗏목의 우측 지지대가 부서진 여파로 균형이 극도로 무너진 상태였다. 설아는 뗏목 참나무 판을 잡은 채 간신히 버티고 있었고, 소운은 등뒤의 출혈과 어깨의 마비독 여파로 서서히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소운…… 정신 잃으면 안 돼요! 거의 다 왔어요……!”


설아의 절박한 목소리가 물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백발을 늘어뜨린 소운을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 그의 상처 입은 등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뒤틀린 단전의 진동이 그녀의 가슴팍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선을 함께 넘나드는 두 사람의 심장 고동 소리가 거센 물결 속에서 하나로 포개어졌다.


그때, 전방의 어둠 속에서 기괴하고 웅장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물살 소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심연이 입을 벌리고 울부짖는 듯한, 대지가 쪼개지는 듯한 수중 폭포의 굉음이었다.


“폭포예요……! 소운, 꽉 잡으세요!”


설아의 비명 소리와 함께 뗏목의 전면이 허공을 향해 급격히 기울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암흑의 나락. 거대한 수중 폭포 아래로 뗏목 전체가 통째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소운은 마지막 남은 전신의 힘을 쥐어짜 설아를 자신의 가슴팍으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차가운 허공의 낙하감과 함께, 소운의 의식은 암흑 속으로 완전히 침잠해 들어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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