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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振動)의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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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무덕의 거대한 신형이 링 바닥을 차고 소운을 향해 폭풍처럼 쏘아져 나왔다.


바닥의 모래먼지가 양갈래로 찢어지며 돔형 경기장의 허공으로 흩날렸다. 그 기세는 단순한 돌진이 아니었다. 배무덕이 내딛는 발걸음마다 전해지는 초고속의 미세한 진동이 제2투기장의 단단한 청석 바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을 새겨 넣고 있었다.


금빛 누각에 앉아 가면을 쓴 채 베팅을 즐기던 강남의 거물들과 명문 정파의 원로들이 숨을 죽였다.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링 중앙에 홀로 서 있는 왜소한 백발의 소년, 소운에게 쏠렸다.


소운은 움직이지 않았다. 왼쪽 뺨에 남은 가시 철조망의 붉은 찰과상 딱지 위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우측 귀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검붉은 피 한 방울이 턱끝을 타고 링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조웅과의 대결에서 입은 내상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배무덕이 뿜어내는 기괴한 파쇄진동공(破碎震動功)의 기세는 소운의 고막과 기혈을 사정없이 뒤흔들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품속 가슴팍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무명 모루 가슴판이었다. 조웅의 살광 검초를 맨몸으로 막아내느라 가죽 끈은 완전히 끊어졌고, 철판 표면에는 거미줄 같은 미세한 균열이 가 있었다. 고정이 불완전하여 조금만 움직여도 둔탁한 쇳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가슴 보호대는 배무덕의 일격을 정면으로 받아내기엔 너무도 위태로워 보였다.


“죽어라, 샌드백!”


코앞까지 육박한 배무덕이 야수처럼 포효하며 오른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손목에 감긴 강철 아대에서 흘러나오는 초록색 광채가 기괴한 안광을 발했다. 아대에 박힌 녹정석(綠晶石)들이 서로 마찰하며 일으키는 무성의 진동파가 공기를 왜곡시켰다. 웅- 하는 둔탁한 파동이 소운의 안면을 향해 짓쳐 들어왔다.


소운은 본능적으로 상체를 미세하게 비틀어 주먹의 궤적을 받아낼 준비를 했다. 그동안 수없이 반복해 온 피막 저장(皮膜 貯藏)의 감각이었다. 가죽과 근육을 순간적으로 이완하여 적의 물리적 충격을 가두고, 그것을 되돌려주는 역천경력의 기초 초식.


퍼어억!


배무덕의 주먹이 소운의 왼쪽 어깨 정중앙에 작렬했다.


그 순간, 소운의 은빛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충격이 흡수되지 않았다. 보통의 타격이라면 가죽 표면에 닿는 순간 근육의 탄성에 막혀 에너지가 고스란히 가두어져야 했다. 하지만 배무덕의 주먹에 실린 파쇄진동공은 피부를 스치듯 지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뼈와 장막을 관통하는 고속의 초음파가 되어 소운의 어깨 관절을 통과해 가슴 깊은 곳으로 침투했다.


“크헉……!”


소운의 입에서 억눌린 비명과 함께 한 줌의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진동파가 어깨뼈를 사정없이 흔들며 오장육부를 뒤흔들었다. 심장이 기괴하게 요동치며 기혈이 역방향으로 폭주하려 했다. 피부 표면은 멀쩡했으나, 뼛속 깊은 곳에서 전해지는 타는 듯한 통증에 소운의 무릎이 꺾이며 뒤로 서너 걸음 밀려났다. 청석 바닥에 닿는 발끝이 덜덜 떨렸다.


“하하하! 내 말이 맞지 않느냐!”


배무덕이 링 위를 짓밟으며 광기 어린 폭소를 터뜨렸다.


“네놈의 그 기괴한 맷집 장막은 내 진동을 가두지 못한다! 가죽이 아무리 질겨보았자 뼛속을 직접 흔들어 정수를 녹여버리면 그만이지! 단전이 기형적으로 뒤틀린 불구 놈이 어디서 사술을 부리려 드느냐!”


금빛 누각의 도박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배무덕의 압도적인 일격에 소운이 피를 토하자, 판돈의 흐름이 급격히 배무덕의 승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조풍은 주먹을 꽉 쥔 채 소운을 주시했고, 링 아래 어둠 속의 설아는 은침 통을 움켜쥔 손에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긴장했다.


소운은 입가에 묻은 피를 거칠게 닦아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명치 부근의 경맥이 미세하게 파열되어 지독한 오한이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피부막으로는 막을 수 없다. 진동은 뼈를 타고 흐른다.’


소운은 아버지가 가르쳐 준 모루의 이치를 떠올렸다.


‘쇠를 이기는 것은 망치가 아니다. 어떠한 망치질도 묵묵히 받아내는 대장간의 무거운 모루다. 모루가 깨지지 않는 이유는 틈새가 없는 단단한 통철이기 때문이지.’


소운은 심호흡을 하며 전신의 힘을 완전히 뺐다. 그리고 가문의 비전 호흡법인 모루 호흡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습- 하-


풀무질 리듬에 맞춰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 전신의 기경팔맥을 닫고, 뒤틀린 단전의 탄성을 벽 삼아 숨을 멈추었다. 그 순간, 소운의 신체 내부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느슨하게 풀려 있던 전신의 이백여섯 개 뼈마디가 미세하게 정렬되며 서로 빈틈없이 단단하게 밀착되기 시작했다. 골격을 하나의 무쇠 통철처럼 연결하는 과정이었다.


이것이 바로 골격 흡수(骨格 吸收) 경지였다. 피부막에 가두지 못한 적의 진동파를 뼈의 공명을 통해 골격 전체로 분산시켜 상쇄하는 외공의 극의.


배무덕은 소운이 가만히 서서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을 보며 콧방귀를 꼈다.


“허튼수작을 부리는군. 단전을 으스러뜨려 영구히 숨통을 끊어주마!”


배무덕이 다시 한 번 신형을 날렸다. 이번에는 양손의 진동 아대를 서로 세차게 마찰시켰다. 아대에 박힌 녹정석들이 마찰열에 반응하여 눈부신 초록색 기류를 뿜어내며 진동의 주파수를 세 배로 증폭시켰다.


우우우우웅!


귓가를 찢는 듯한 기괴한 무성의 파동이 투기장 돔 내부를 가득 메웠다. 관중석의 일부 약한 무인들이 귀를 막으며 고통을 호소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배무덕의 오른 주먹이 소운의 심장 혈도, 즉 가슴 정중앙을 향해 일직선으로 파고들었다. 끊어진 가죽 끈 때문에 고정이 불완전하여 덜렁거리던 무명 모루 가슴판의 바로 위였다.


소운은 피하지 않았다. 스스로 먼저 주먹을 내지를 수 없다는 역천경력의 금기를 지키며, 오직 마음의 거울을 맑게 닦는 관조 명상법에 집중했다. 귀와 뺨에서 피가 흐르고 전신이 진동의 공포에 휩싸였으나, 그의 은빛 눈동자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뼛속의 미세한 공명 주파수를 적의 진동 속도와 동조시키는 찰나의 계산이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배무덕의 녹정석 아대가 박힌 주먹이 소운의 가슴 보호대 정중앙에 정면으로 작렬했다.


콰아아앙!


기루 전체를 흔들 정도의 둔탁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소운의 가슴에 걸쳐져 있던 무명 모루 가슴판에 거대한 균열이 가며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 파괴적인 진동공의 충격이 소운의 가슴뼈를 통과하는 순간, 소운의 몸속 깊은 곳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괴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슁-! 웅-!


그것은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사찰의 무쇠 종을 쇳덩이로 때렸을 때 울려 퍼지는 장엄하고 둔탁한 쇠울음소리, 즉 금명(金鳴)이었다.


소운의 이백여섯 개 골격이 완벽히 밀착되어 배무덕의 파쇄진동공 주파수와 공명하며 충격을 골격 전체로 분산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


배무덕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경악과 공포로 물들었다. 주먹을 통해 전해지는 반동이 심상치 않았다. 적의 몸이 단순한 인간의 신체가 아니라, 어떠한 타격도 흡수해 버리는 대장간의 단단한 무쇠 모루 그 자체로 변해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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