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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 밖의 야수, 챔피언 배무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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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창고의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며, 철석곡 투기장 방향에서 거대한 북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둥! 둥! 둥!


심장 박동을 강제로 쥐어짜는 듯한 둔탁한 쇳소리가 석벽을 타고 흘러와 소운의 발밑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었다. 철석곡의 지배자, 흑태풍과 책사 염지공이 자신들의 모든 판돈과 권력을 걸고 기획한 마지막 도살극의 서막이었다.


소운은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조웅에게서 빼앗은, 붉은 비단에 싸인 독고용의 친필 사주 밀서가 손끝에 닿았다. 아버지를 대장간 사고사로 위장해 무참히 살해하도록 사주한 원수 독고용. 그리고 그 뒤를 조종한 무림맹의 보이지 않는 손. 가문의 참혹한 비극을 증명하는 물증을 품에 안은 소운의 눈빛이 밤서리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여기 있었군, 이 쥐새끼 같은 놈!”


지하 창고의 무너진 철판 더미 너머로 횃불을 든 흑호방 무사 수십 명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선두에는 철석곡의 대진표를 기획하는 책사, 염지공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염지공은 바닥에 뼈가 부러진 채 쓰러져 피를 토하고 있는 정파 첩자 조웅을 힐끗 보더니, 이내 소운의 하얗게 세어버린 백발과 그의 가슴팍에 남은 검푸른 흔적을 매서운 눈빛으로 훑어내렸다.


“과연…… 조웅 그자가 네놈의 정체를 파헤치려다 역으로 당한 모양이군. 하지만 상관없다. 네놈이 아무리 기괴한 반사 사술을 부린다 한들, 오늘 이 링 위에서 영구히 매장될 테니까.”


염지공이 주판을 가볍게 튕기며 무사들에게 손짓했다.


“방주님께서 기다리신다. 귀빈들이 모두 모였으니, 철석곡 제2투기장으로 이 괴물 샌드백을 압송하라!”


무사들이 살기 서린 병기를 세우며 소운의 사방을 포위했다. 소운은 그들을 향해 단 한 줌의 살기도, 반발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을 보호하던 무명 모루 가슴판은 이미 조웅의 살광 검초를 정면으로 받아내느라 가죽 끈이 툭 끊어진 채 무복 품속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고, 표면에는 미세한 균열이 가 있었다. 전신의 뼈마디 역시 조웅의 검기를 뼈 속으로 가두어 상쇄하느라 미세한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


‘스스로 때리지 않고 받아낸다.’


소운은 마음을 비우는 석정 스님의 관조 명상법을 되새기며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이들에게 반발해 힘을 쓰면 몸을 완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경맥이 파열될 터였다. 차라리 저들이 기획한 판의 중심부로 걸어 들어가, 그들이 가하는 가장 강력한 폭력의 무게로 그들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것이 모루의 이치였다.


무사들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며 도달한 곳은, 평소 노예들이 드나들던 거칠고 피비린내 나는 제1투기장이 아니었다. 지하 수로의 비밀 석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한 밀실 돔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석곡 제2투기장.


수안성의 부패한 현령과 관청 관리들, 화려한 비단 도포를 걸친 명문 정파의 원로들, 그리고 강남 암시장을 지배하는 사파의 거물들이 가면을 쓴 채 금빛 누각에 앉아 도박판의 열기에 취해 있었다. 그들이 베팅한 거액의 철제 투전패들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돔 천장을 가득 메웠다.


누각 한편에서 흑호방 방주 흑태풍이 거대한 가죽 의자에 기대어 소운을 비웃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양심적 도박꾼 조풍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조풍은 이미 소운의 승리에 자신의 전 재산에 달하는 고액 투전패를 걸어 흑호방의 재정을 안팎으로 뒤흔들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링 아래 어두운 그늘 속, 하얀 의원 도포를 단정히 입은 설아가 은침 통을 움켜쥔 채 소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아의 맑은 눈동자가 소운의 끊어진 가슴판 가죽 끈과 그의 백발 머리카락 끝에 닿는 순간,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소운의 신체 한계량이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했음을 직감한 것이다.


둥! 둥! 둥!


마지막 북소리가 울려 퍼지며 링 반대편의 거대한 무쇠 철창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그 어둠 속에서 대지를 울리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온몸에 무수한 칼자국과 맹수에게 찢긴 듯한 흉터가 가죽처럼 단단하게 덮여 있는 거구의 격투가. 눈빛에는 오직 강자와의 싸움과 살육에 미쳐 있는 야수 같은 광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철석곡의 무패 챔피언, 배무덕(裵武德)이었다.


배무덕은 링 위로 올라서며 소운의 왜소한 체구와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의 양 손목에는 기괴한 모양의 강철 손목 보호대가 채워져 있었다. 그 아대 표면에는 희미한 초록색 안광을 내뿜는 정밀한 광물, 녹정석(綠晶石)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만독문의 기술자를 통해 특수 제련되었다는 배무덕의 진동 아대였다.


“네놈이 마독의 안구를 터뜨리고 광견의 손목을 부러뜨린 그 샌드백이군.”


배무덕이 굵고 둔탁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가 가볍게 주먹을 쥐자, 양팔의 근육이 터질 듯 팽창하며 진동 아대 내부에 장착된 녹정석들이 서로 미세하게 마찰하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으…….


그 순간, 공기가 기괴하게 떨리는 무성(無聲)의 파동이 링 전체를 잠식해 들어갔다. 그것은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피부막을 통과해 등뼈와 골막을 직접 자극하는 기괴한 고속 진동이었다. 배무덕이 평생을 연마해 온 사파의 비기, 파쇄진동공(破碎震動功)의 기세였다.


“내 무공은 가죽을 찢지 않는다. 뼈와 가죽을 아무리 단단하게 단련해 보았자, 내 주먹이 닿는 순간 네놈의 오장육부와 전신의 뼈마디는 고속 진동에 공명하여 스스로 녹아내릴 것이다. 네놈의 기괴한 반사막이 내 진동파마저 받아낼 수 있을지 아주 기대되는군.”


배무덕이 링 중앙에서 몸을 풀며 가벼운 정권으로 허공을 툭 쳤다.


휘이이익! 웅!


단순히 주먹을 내지른 것에 불과했으나, 주먹 끝에서 발생한 초고속 진동파가 공기를 왜곡하며 보이지 않는 파동의 장벽이 되어 소운을 향해 쏘아져 왔다.


파공음조차 삼켜버린 진동의 폭풍이 소운의 전신을 휩쓸었다. 소운은 무위보의 기틀을 잡고 버텼으나,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 미세한 진동의 여파만으로도 살갗이 찌르르하게 울리며 왼쪽 뺨의 찰과상 딱지 주변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가며 붉은 선혈이 한 방울 베어 나왔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적 타격이 아니다.’


소운의 은빛 눈동자가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구철이나 광견, 심지어 조웅의 검초는 모두 명확한 타격의 방향과 물리적 질량을 지닌 일직선의 힘이었다. 그렇기에 피부막에 가두어 되돌리는 피막 저장 경지만으로도 두 배의 반사가 가능했다.


하지만 배무덕의 진동공은 달랐다. 타격이 닿는 순간 에너지가 고속으로 분산 진동하며 세포와 골격을 관통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피부막으로만 막으려 들면, 반사 회로가 가동하기도 전에 진동파가 가죽을 통과해 심장과 단전을 으스러뜨릴 것이 자명했다.


‘뼈를 써야 한다.’


소운은 아버지가 가르쳐 준 모루 호흡법을 전개했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전신의 206개 뼈마디를 촘촘하게 밀착시켰다. 뼈와 뼈 사이에 틈새를 없애고, 하나의 거대한 무쇠 모루처럼 골격을 동조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는 체내에 전해지는 배무덕의 미세한 진동 주파수를 자신의 뼈마디 마찰 진동과 맞추기 위해 골격 공명 탐색(骨格 共鳴 探索)을 예비 기동했다.


웅웅웅웅…….


소운의 몸속 깊은 곳에서 아주 은은하고 둔탁한 무쇠 종소리, 즉 금명(金鳴)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배무덕의 진동 아대에서 흘러나오는 초록색 기류와 소운의 뼈에서 일어나는 은빛 파동이 공기 중에서 미세하게 충돌하며 불꽃을 일으켰다.


배무덕의 기세에 실린 미세한 파동의 흐름을 억지로 흡수해 분석하려 하자, 소운의 뒤틀린 단전이 강하게 수축하며 기혈 역전의 경로를 자극했다. 귀 안쪽의 고막이 진동의 주파수를 견디지 못하고 강한 이명과 함께 소운의 오른쪽 귀에서 검붉은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려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하하하하!”


배무덕이 소운의 귀에서 흐르는 피와 그의 하얗게 세어버린 백발을 보며 야수처럼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큼은 소운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보며 기괴한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보통 놈들은 내 진동 기세만 맞닥뜨려도 전신이 마비되어 무릎을 꿇거늘, 네놈은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마치 대장간의 무거운 무쇠 모루처럼 한 치의 흔들림도 없구나. 과연 내 뼈를 깎아낼 만한 가치가 있는 샌드백이다!”


배무덕이 양손을 움켜쥐었다. 그의 진동 아대에 박힌 녹정석들이 일제히 눈부신 초록색 안광을 내뿜으며 링 전체를 음산한 기류로 가득 채웠다.


우우우우웅!


소운의 뼈마디가 그 기괴한 공명 주파수에 반응하여 제멋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전신의 뼈 분쇄와 즉사로 이어질 수 있는, 일생일대의 절대적인 사투가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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