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질 속에서 눈을 뜨다
쿵! 쿵! 쿵!
지하 삼층의 사방을 가로막은 거친 암벽이 진동할 때마다, 녹슨 쇠창살 너머에서 광포한 함성이 쏟아져 내렸다. 사방에 흩뿌려진 핏자국이 뜨거운 횃불 열기에 말라붙어 기괴한 비린내를 풍기는 곳. 이곳은 철석곡 제1투기장이었다.
“오늘도 저 무쇠 샌드백 놈이 버텨낼 수 있을까?”
“버텨내긴 개뿔! 저번 비무에서 갈비뼈가 서너 대는 나갔을 텐데, 오늘이야말로 저승길로 가겠지. 내 삼십 냥은 저 독사 같은 구철의 주먹에 걸었다!”
도박꾼들의 탐욕스러운 외침이 귀를 찢었지만, 링 중앙에 무릎을 꿇고 선 소운의 눈빛은 지극히 고요했다. 열일곱 살의 왜소한 체구, 검푸른 피멍과 피딱지로 뒤덮인 전신은 마치 가혹한 매질을 견디다 못해 버려진 한 조각 썩은 고기 같았다. 양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거칠게 감아올린 두꺼운 삼베 붕대만이 그가 살아 있는 격투 노예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소운의 단전은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범인들이라면 내공을 쌓아 손끝으로 강기를 뿜어내겠지만, 소운의 경맥은 기를 방출하는 통로가 완전히 막혀 있었다. 스스로는 단 한 줌의 장풍도, 검기도 내지를 수 없는 몸. 무림의 법칙대로라면 평생 약자로서 짓밟히다 죽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소운의 품속, 더러운 무명옷 안쪽 깊은 곳에는 낡아 빠진 비급 한 장이 숨겨져 있었다. 과거 지하 뇌옥에서 간수들의 모진 매질 끝에 숨을 거둔 무명 노인이 전해준 유품, ‘무명 노인의 가죽 신발’ 밑창을 찢어 얻어낸 ‘역천경법 구결’이었다.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의 두 배가 된다. 기를 뿜지 마라. 적이 가하는 폭력의 파도를 네 가죽과 뼈에 가두어라.’
무명 노인의 쉰 목소리가 뇌리를 스칠 때, 소운의 맞은편에서 침을 뱉으며 걸어 나오는 거구의 사내가 보였다. 흑호방의 하급 격투사, 구철이었다. 그의 두꺼운 손목에는 멧돼지 가죽으로 만든 억센 아대가 채워져 있었고, 주먹을 쥘 때마다 굵은 힘줄이 꿈틀거렸다.
“이 천한 기어 다니는 놈아. 오늘도 개처럼 맞아 주면 내 도박 판돈이 올라가겠지.”
구철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소운의 정면으로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링 바닥의 모래가 사방으로 튀었다.
소운은 도망치지 않았다. 피하는 순간, 링 주변을 감시하는 교관 마독의 채찍이 날아올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소운은 가만히 호흡을 들이마시며 ‘피격자 단계’의 외공 기틀을 가동했다. 쇠를 두드리는 대장장이였던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 그의 뼛속에 새겨져 있었다.
‘칼을 이기는 것은 칼이 아니다, 운아. 어떠한 망치질도 묵묵히 받아내고도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대장간의 모루가 되어라.’
모루. 그것이 소운이 평생 배워온 유일한 무학의 철학이었다.
쉬이익!
구철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온 묵직한 권풍이 대기를 갈랐다. 그의 오른 주먹이 소운의 가슴 정중앙을 향해 일직선으로 짓쳐 들어왔다. 일류 무사의 강기는 아니었으나, 뼈를 으스러뜨리기에는 충분한 파괴력이 실린 정권이었다.
소운은 주먹이 닿는 찰나의 순간, 상체를 미세하게 비틀었다. 주먹의 궤적과 자신의 뼈가 완벽한 수직을 이루도록 각도를 계산한 것이다. 주먹이 가슴뼈에 부딪히는 순간, 소운은 전신의 근육을 순간적으로 이완했다. 팽팽하게 긴장한 가죽은 찢어지지만, 부드럽게 풀린 가죽은 충격을 머금는다.
퍽!
둔탁한 파공음과 함께 구철의 주먹이 소운의 가슴에 박혔다. 엄청난 물리적 타격력이 소운의 가죽과 근육 사이로 스며들었다. 소운은 그 에너지를 등뒤로 흘려보내려 전신 세포를 열었으나, 내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충격을 다 분산하지 못한 여파가 골격을 때렸다.
우득.
갈비뼈에 실금이 가는 예리한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다. 입안 가득 뜨겁고 비린 선혈이 울컥 솟구쳤다. 소운의 몸이 뒤로 크게 흔들렸다.
“하하하! 쥐새끼 같은 놈, 겨우 한 대 맞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는구나!”
구철이 승리를 확신하며 광포하게 포효했다. 관중석의 도박꾼들은 광적으로 환호하며 더 잔인한 타격을 요구했다.
소운은 입가에 흐르는 검붉은 피를 삼베 붕대로 닦아내며 눈을 부릅떴다. 고통은 예리했으나 그의 정신은 오히려 얼음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갈비뼈의 실금조차 적의 힘을 측정하는 척도에 불과했다.
‘지금이다.’
소운은 가슴속으로 무명 노인의 구결을 읊조렸다.
‘단전의 문을 닫아라. 기혈을 거꾸로 흐르게 하라.’
그는 뒤틀린 단전의 탄성을 벽 삼아, 체내로 밀고 들어온 구철의 잔여 충격 에너지를 억지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기경팔맥의 역방향 경로를 향해 기의 흐름을 강제로 비틀어 역류시키기 시작했다. 기혈 반류(氣血 反流)의 시도였다.
구철이 소운의 멱살을 잡으려 다시 한번 왼손 정권을 날렸다. 이번에는 소운의 턱을 날려버릴 기세였다.
퍼억!
주먹이 소운의 어깨와 목덜미 사이에 꽂히는 순간, 소운의 전신이 은은하게 붉은빛으로 상기되었다. 피부 표면 아래에 가두어 두었던 구철의 첫 번째 타격 에너지가, 역천경법의 호흡을 타고 구철의 두 번째 주먹이 가하는 충격과 결합했다.
웅웅웅!
소운의 뼈마디에서 미세한 쇠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류한 기류가 소운의 삼베 붕대를 타고 구철의 주먹으로 역방향으로 뿜어졌다. 아주 미세하고 투명한 은빛 파동이었다.
“윽?!”
구철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소운의 몸을 강타한 그의 왼손 주먹 끝에서 기괴한 역반동이 일어난 것이다. 마치 단단한 무쇠 모루를 전속력으로 내리친 듯한 충격이 구철의 손목 관절을 타고 역류했다.
우두둑.
구철의 손목뼈가 미세하게 뒤틀리며 기괴한 마찰음이 났다. 구철은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뒤로 대여섯 걸음 물러섰다. 그의 왼손 주먹이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 이 기분 나쁜 놈이 무슨 짓을 한 거냐? 사술을 부린 게냐!”
구철이 자신의 손목을 움켜쥐며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관중석의 환호성도 일시적으로 뚝 끊겼다. 스스로 공격할 수 없는 샌드백 노예를 때렸는데, 때린 자의 손목이 꺾인 기이한 광경에 도박꾼들은 침묵했다.
하지만 역천경력의 초입 단계인 소운의 육체는 그 미세한 반사조차 감당하기에 너무도 나약했다. 적의 힘을 역류시키는 순간, 뒤틀린 경맥이 마찰열로 인해 불타는 듯한 작열통을 일으켰다. 전신의 모공이 한계를 버티지 못하고 미세하게 열리며 붉은 핏방울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저, 저놈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간수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소운의 전신에서 핏방울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며 그의 낡은 무명옷을 붉게 물들였다. 시야가 흐려지고, 심장이 터질 듯이 고동쳤다. 육체의 충격 허용 한계를 완전히 초과한 상태였다.
스르륵.
소운의 무릎이 힘없이 바닥으로 꺾였다. 피막과 골격 속에 누적된 충격의 피로가 뇌를 마비시켰다. 소운은 붉게 물든 투기장 모래바닥 위로 쓰러지며 의식을 잃어갔다.
“흥, 사술은 무슨. 맷집이 조금 특이해서 튕겨 나간 모양이군. 결국 한계를 넘지 못하고 뒈진 게지.”
링 아래에서 채찍을 굴리던 악랄한 교관 마독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 그는 장화 끝으로 소운의 갈비뼈 부위를 툭툭 걷어찼다. 소운의 몸은 아무런 반응 없이 인형처럼 흔들릴 뿐이었다.
“쓸모없는 고기덩어리가 되었군. 이대로 링 위에 방치하면 도박판 흥이 깨지니 치워라. 의무실로 끌고 가 상태를 보고, 가망이 없으면 뒤편 절벽 아래로 던져버려.”
마독의 차가운 명령에 간수 둘이 쇠사슬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소운의 양 발목에 묶인 쇠사슬이 차가운 돌바닥을 쓸며 쓸쓸한 마찰음을 냈다. 모공에서 뿜어져 나온 피로 붉게 물든 소운의 몸이 차가운 돌바닥 위로 쓸쓸히 끌려갔다. 그의 숨결이 꺼져가는 것을 본 간수들의 비웃음 소리가 멀어지는 순간, 의무실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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