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삼키는 독배
안개골짜기의 아침은 밤보다 더 지독한 한기를 품고 있었다. 일 년 내내 걷히지 않는 짙은 안개는 안개별장의 석조 외벽을 축축하게 적셨고, 깨진 기와 틈새로는 서늘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닥쳤다.
송무현은 이른 새벽녘에 눈을 떴다. 자매들의 침실이 있는 안채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숨소리를 확인한 후에야,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가슴팍에서 찌르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어젯밤, 장녀 백설화가 원망을 담아 찔러 넣었던 비수의 상처였다. 스승 백무진 대장군의 가죽 편지갑이 심장 관통은 막아주었으나, 은랑기사급의 날카로운 빙결 검기는 그의 가슴팍에 깊은 외상과 함께 얼어붙는 듯한 내상을 남겼다.
"으윽……."
무현은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려던 신음을 이빨로 짓눌렀다. 그는 곧바로 내면의 기공을 운용해 머릿속의 특정 혈도를 자극했다.
[고통 억제] 기예의 가동.
뇌신경을 타고 흐르던 치명적인 통증이 순식간에 차단되며, 그의 전신이 기계처럼 차갑게 식어 내렸다.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몸속 어딘가에 고여 있었으나,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무현은 피로 물든 어제의 옷을 벗어던지고, 거친 삼베 붕대로 가슴의 상처를 단단히 동여맸다. 거울 대신 대야에 담긴 물을 바라보았다. 스승의 처형 소식을 듣고 하얗게 세어버린 백발이, 서늘한 새벽빛을 받아 쓸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방 한구석에 놓인 낡은 대나무 빗자루와 연장을 챙겨 마당으로 나섰다. 별장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엉망진창이었다. 기와는 깨져 비가 새기 일쑤였고, 외곽의 목책은 야수들의 습격에 무너져 내려 있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흐릿한 시야를 심안(心眼)의 감각으로 보완하며, 무현은 묵묵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뚝, 뚝.
무거운 목재를 어깨에 짊어지고 무너진 담벼락을 보수할 때마다, 가슴의 상처가 벌어지며 하얀 붕대 위로 붉은 선혈이 배어 나왔다. 하지만 무현은 단 한 번도 이마를 찌푸리지 않았다. 기와를 갈아 끼우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가 썩은 목재를 걷어내고, 새 짚을 얹는 그의 손길은 지독하리만치 정교하고 묵묵했다. 자신을 원망하는 아가씨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그는 자신의 찢어진 육체를 돌보지 않고 가사에 전념했다.
"도련님…… 제발 그만두십시오. 제발……."
그때, 마당 구석에서 땔감을 정리하던 늙은 집사 노가가 참지 못하고 달려와 무현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노가의 주름진 눈가에는 이미 피눈물 같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어찌하여 혼자서 이 모든 고통을 짊어지려 하십니까? 아가씨들이 도련님을 원수로 오해해 칼을 꽂았는데, 왜 한마디 변명도 없이 몸으로 다 받아내시는 겁니까? 이 늙은이의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노가는 무현의 가슴팍에 스며든 붉은 피를 보며 손을 떨었다. 무현은 조용히 지붕에서 내려와 노가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그의 목소리는 안개보다 더 고요했다.
"노가, 목소리가 큽니다. 아가씨들이 깹니다."
"도련님!"
"진실은 아가씨들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무현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 아가씨들이 지금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들이 원수로 오해하고 나를 찌르고 독을 탔다는 사실에 지독한 죄책감을 느낄 겁니다. 그 죄책감은 가뜩이나 무너진 그녀들의 영혼을 완전히 파멸시킬 겁니다. 차라리 나라는 명확한 원수가 존재하는 편이, 그녀들이 복수라는 독기를 품고 살아갈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하지만 도련님의 몸은 이미……."
"제 몸은 상관없습니다. 스승님의 마지막 유언은 아가씨들을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사로서의 맹세는 목숨보다 무겁습니다. 그러니 노가, 절대 입을 열지 마십시오. 이것은 제 마지막 간청입니다."
무현의 단호하고도 애절한 안광에 노가는 결국 마른 세수를 하며 소리 없는 오열을 터뜨렸다. 무현은 그런 노가를 뒤로한 채, 다시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 마당의 낙엽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한편, 별장의 서늘한 복도 뒤편에서는 또 다른 시선이 무현을 감시하고 있었다.
둘째 백유리였다. 그녀는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푸른빛 도는 흑발을 매만지며, 안경 너머의 차가운 눈빛으로 무현의 헌신적인 뒷모습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는 지하 흑시장에서 은밀히 구한 보랏빛 백유리의 마도 독병이 쥐어져 있었다.
'위선자 같으니라고.'
유리는 속으로 차갑게 읊조렸다. 아버님을 밀고하고 가문을 멸문시킨 원수가, 이제 와서 충직한 머슴처럼 가사를 돌보며 환자 행세를 하는 모습이 극도로 가증스러웠다. 그녀는 무현이 자신들의 감시를 피해 본색을 드러내거나, 가문의 비전서를 훔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네놈의 그 단단한 가면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보겠다.'
유리는 주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거친 산바람을 맞아 차갑게 식은 무현을 위해 차를 끓이는 척하며, 찻잔에 미량의 마비성 정제독을 떨어뜨렸다. 보랏빛 독액은 뜨거운 찻물에 녹아들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도학의 극의로 정제된 이 독소는 금사기사급 고수라도 한 방울이면 온몸의 경락을 마비시키고 피를 토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유리는 독이 든 찻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마당으로 걸어 나갔.
사박, 사박.
흙바닥을 밟는 가벼운 발소리에 무현이 빗질을 멈추고 돌아섰다. 비록 눈이 멀어가는 흐릿한 시야였으나, 그의 심안(心眼)은 유리의 움직임과 그녀가 들고 있는 찻잔에서 풍겨 나오는 미세하고 치명적인 독소의 기운을 완벽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배신자 기사님."
유리의 목소리는 차가우면서도 뱀처럼 부드러웠다. 그녀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찻잔을 무현의 앞으로 내밀었다.
"하루 종일 피를 흘리며 별장을 고치시는 걸 보니, 우리 아버님을 팔아넘긴 대가로 얻은 그 비열한 목숨이 꽤나 아까우신 모양입니다. 목이 타실 텐데, 이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드시지요."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뼈아픈 증오와 함께, 무현이 이 차를 거부하거나 의심하여 본색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영악한 시험의 빛이 서려 있었다.
무현은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심안의 영역 속에서, 찻잔은 이미 치명적인 보랏빛 살기로 일렁이고 있었다. 마시면 자신의 괴사해 가는 심장 경락에 가혹한 과부하가 걸릴 것이고, 정화 혈맥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덧나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될 터였다.
하지만 무현은 유리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안경 너머에 숨겨진,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겨진 소녀의 찢어질 듯한 슬픔과 깊은 상처가 보였다. 그녀는 자신을 해치지 않으면 이 지독한 세상에서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너의 증오라면, 내가 기꺼이 받아들이마.'
무현은 낡은 가죽으로 감싸인 손을 뻗어 찻잔을 잡았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눈빛만큼은 한없이 온화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유리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왜요, 독이라도 들었을까 봐 두려우신가요?"
무현은 대답 대신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유리의 조롱 섞인 눈빛을 똑바로 마주하며, 뜨겁고 치명적인 독배를 단숨에 목구멍 안으로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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