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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얼룩진 종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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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내내 걷히지 않는 자욱한 마도 안개가 골짜기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주신제국 남부 국경 지대의 천혜의 요새, 안개골짜기(Misty Valley). 그 험준한 절벽 틈새를 뚫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안개별장(Misty Villa)은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이끼와 먼지로 가득 찬 석조 폐허에 불과했다.


"하아…… 하아……."


송무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거운 목재 대문을 밀어 열었다. 수백 리에 달하는 황실 추격대의 삼엄한 포위망을 단신으로 돌파해 온 대가였다. 그의 어깨와 옆구리에는 적혈기사단의 칼날에 찢긴 상처가 붉은 선혈을 끊임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낡은 회색 망토는 이미 피로 검붉게 물들었고, 스승의 죽음과 죄책감으로 인해 하얗게 세어버린 그의 은빛 백발이 밤바람에 쓸쓸히 흩날렸다.


그의 등 뒤에는 멸문지화의 참변 속에서 겨우 목숨만 건진 대장군 백무진의 세 딸이 서 있었다.


첫째 백설화는 얼음조각처럼 차갑고 눈부신 미모를 지녔으나, 그 눈빛만큼은 무현을 향해 지독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둘째 백유리는 지적인 푸른빛 도는 흑발을 늘어뜨린 채 안경 너머로 무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차갑게 쏘아보았고, 막내 백여진은 가문이 도륙당하던 날의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채 무현의 거대한 그림자만 보아도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언니들의 뒤로 숨었다.


그녀들에게 송무현은 구원자가 아니었다.

아버님을 밀고하고 백씨 가문을 피바다로 만든 더러운 배신자이자, 제국 최악의 낙인이 찍힌 역적일 뿐이었다.


"위선 떨지 마라, 송무현."


안개별장의 먼지 쌓인 대청마루에 발을 들이는 순간, 백설화의 서늘한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그녀의 백금발이 분노로 가볍게 떨렸다.


"황실의 사냥개가 되어 우리 아버님을 밀고한 더러운 역적 놈이, 이제 와서 우리를 구하는 척 연기를 하는 이유가 뭐지? 아버님이 남기신 가문의 비전서라도 빼앗기 위함인가?"


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허리를 숙여 그녀들이 머물 방의 먼지를 쓸어내고, 품속에서 저당 잡힌 검을 팔아 겨우 마련한 마른 빵 몇 조각을 탁자 위에 올려놓을 뿐이었다. 그의 과묵함은 자매들에게 더 큰 모욕이자 위선으로 다가왔다.


"말해! 왜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왔지? 차라리 그곳에서 우리를 죽이게 두지 그랬느냐!"


설화의 감정이 폭발했다. 그녀는 가슴팍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단검을 뽑아 들었다. 아버님 백무진 대장군이 그녀의 성인식 날 하사했던, 가문의 긍지가 담긴 백설화의 비수였다. 비수 끝에서 서늘한 빙결의 검기가 파르르 피어오르며 별장 내부의 공기를 차갑게 얼려버렸다.


유리는 그 모습을 차가운 방관자의 눈으로 지켜보았고, 여진은 두려움에 귀를 막고 구석으로 웅크려 들었다.


무현은 빗자루를 내려놓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초점을 잃은 듯 슬픔으로 가득 찬 그의 은회색 눈동자가 설화의 칼날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는 단 한마디의 변명도, 억울하다는 호소도 하지 않았다. 스승 백무진이 처형당하기 직전 자신에게 남겼던 피 묻은 서신의 구절만이 그의 심장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내 딸들을 부탁하네, 무현아. 세상의 모든 증오를 자네가 짊어지더라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은 기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괴물이 되어야 했다.


"……아버님의 유언이었다."


무현의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이 그가 건넨 유일한 대답이었다.


"닥쳐라! 네놈의 더러운 입으로 감히 아버님을 입에 담지 마라!"


설화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신형을 날렸다. 은랑기사급에 달하는 그녀의 매서운 신법이 허공을 가르며, 백설화의 비수가 무현의 무방비한 심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왔. 무현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고, 자신의 적혈기사급 내공을 가동해 그녀를 제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력을 방어용으로 쓰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서서, 가문의 원한을 담은 그녀의 칼날을 자신의 맨몸으로 받아내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그가 택한 첫 번째 속죄의 방식이었다.


서늘한 칼날이 무현의 가슴팍 가죽 갑옷을 찢고 살점을 파고들었다. 콰득, 비정한 소리와 함께 붉은 선혈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와 설화의 하얀 손과 얼굴을 적셨다. 설화의 눈동자가 광기 어린 승리감과 알 수 없는 충격으로 크게 흔들렸다. 정말로 피하지 않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칼끝이 그의 심장을 관통하기 직전 단단한 무언가에 가로막히며 깡! 하는 날카로운 쇠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현의 가슴팍 안쪽 주머니에 소중히 품겨 있던, 스승 백무진의 피 묻은 가죽 편지갑이었다. 질긴 가죽과 그 안에 깃든 스승의 미량의 잔류 영력이 방패가 되어 예리한 비수의 진격을 기적적으로 막아세운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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