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안료의 결속
뺨에서 흐른 붉은 피가 손등을 적시는 순간, 설아는 망설임 없이 아드리안의 심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암흑이 지배하는 한강 빌라 지하 아틀리에는 쏟아지는 폭우 소리와 이성을 잃은 유령의 비명으로 가득했다.
정전으로 인해 온습도 제어 장치와 제습기가 모두 멈춰버린 방 안은 순식간에 습도 90%를 돌파하며 눅눅하고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찼다. 천장의 낡은 환기구에서는 여전히 더러운 흙탕물이 뚝뚝 떨어져 대리석 바닥을 적셨고, 구석에서는 길고양이 나비가 젖은 털을 세운 채 날카롭게 울부짖고 있었다. 허공에 떠올라 광포하게 회전하던 철제 메스들과 유리 시약병들이 설아의 뺨에서 흘러내린 피 한 방울의 정화력에 반응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손전등의 백색 광선이 비추는 캔버스 중앙, 아드리안의 심장 부근에는 살아 숨 쉬는 핏줄 같은 검붉은 곰팡이가 꿈틀대며 그의 은빛 옷자락을 무서운 기세로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캔버스 천이 썩어 들어갈 때마다 아드리안의 영체는 가슴을 쥐어짜며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은 무음의 대화 주파수를 타고 설아의 뇌파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설아 역시 심장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동조 통증에 숨을 들이켜며 비틀거렸다.
이대로 두면 300년 전의 초상화가 완전히 박리되어 아드리안의 영혼 자체가 영구 소멸할 터였다. 설아는 뺨에서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거칠게 닦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단순히 표면을 세척하는 것만으로는 이 저주받은 주술적 곰팡이를 정화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할아버지 윤창현의 가죽 일지 속에 숨겨진 비전, '수호자의 피만이 저주의 사슬을 녹인다'는 연금술 조항을 실행해야만 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력을 직접 물감에 섞어 유령을 살려내야 하는 금기된 의식의 시작이었다.
설아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엉망진창이 된 작업 테이블로 향했다. 깨진 유리 파편을 밟으며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 조상 윤서진이 남긴 '조선 연금술사의 인장함'을 열었다. 칠흑 같은 오동나무 상자의 뚜껑을 열자, 외부의 사악한 기운을 차단하는 은은한 향취가 흘러나왔다. 설아는 그 안에서 순은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은제 미세 카테터 주사기'를 꺼냈다. 침 끝이 차갑고 예리하게 빛났다.
설아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하얀 왼쪽 손목 정맥 위로 은침을 조심스럽게 조준했다. 지난밤 아드리안의 냉기 폭주로 동상을 입었던 오른손 검지 끝이 여전히 아릿하게 떨려왔지만, 설아는 왼손목의 핏줄을 깊숙이 찔렀다. 차가운 금속이 살결을 뚫고 정맥에 안착하는 서늘한 감각과 함께, 짙고 붉은 혈액이 주사기 실린더를 채우기 시작했다. 머리가 핑 돌며 극심한 빈혈의 전조가 엄습했으나 설아는 붓을 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정제된 혈액이 공기 중에 산화되기 전, 인장함의 옹기 그릇에 '천연 라피스 라줄리 메디치' 안료 가루를 쏟아부었다. 17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극소량만 정제되었던 최고급 청색 광물 가루가 백색 광선 아래에서 사파이어처럼 반짝였다. 설아는 그 위에 천연 가죽 아교를 떨어뜨리고, 방금 채혈한 자신의 피 세 방울을 가미했다. 은 막대로 용액을 젓는 순간, 놀라운 연금술적 반응이 일어났다.
붉은 피가 청색 광물 가루를 머금으며 꿈틀거리더니, 이내 영롱하기 그지없는 사파이어 빛 액체로 변모했다. 미세하고 은은한 푸른빛 아지랑이가 비커 위로 피어오르며 약품 냄새를 덮는 신비로운 향취가 진동했다. '피의 안료 조제 공식'이 완벽하게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붓을 든 설아가 초상화 앞으로 다가서자, 캔버스 속 곰팡이가 피의 정화력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려 검은 독기를 뿜어내며 저항했다. 아드리안의 비명이 다시 아틀리에를 뒤흔들었다. 설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피가 묻은 왼손을 초상화의 심장 부위에 지긋이 얹으며 '심장 박동 동기화 의식'을 실행했다.
"아드리안, 제 목소리를 들으세요. 호흡을 맞추어야 합니다. 저를 믿으세요."
설아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아드리안의 불안정한 영적 고동에 동기화했다. 쿵, 쿵, 쿵. 불규칙하게 요동치던 두 존재의 파동이 어느 순간 완벽한 주파수로 겹쳐졌다. 검은 독기가 힘없이 가라앉았고, 아드리안의 광포했던 눈빛에 미세한 이성이 돌아왔다.
설아는 세필 붓에 사파이어 안료를 듬뿍 묻혔다. 빈혈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붓을 쥔 손끝만큼은 기계처럼 고정되었다. 그녀는 '흔들림 없는 극미세 붓질'로 찢어진 아드리안의 옷자락 경계면에 첫 붓질을 가했다.
붓끝이 캔버스에 닿는 순간, 붉은 혈류 같은 빛줄기가 그림 전체로 퍼져나가며 곰팡이들을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칠해진 부위는 영롱한 금빛과 푸른빛으로 정착되었고, 마침내 '복원율 15% - 피의 계약 결속'이 이루어졌다.
돌풍이 멈추고 아틀리에에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 아드리안의 영체가 이전보다 훨씬 선명한 은빛 실루엣을 띠며 설아의 눈앞에 구체화되었다. 그의 반투명한 손이 천천히 뻗어 나와 설아의 떨리는 손목을 잡았다. 얼음장 같던 그의 손끝에서, 처음으로 미세하게 맥치는 미온(微溫)의 따스함이 설아의 살결로 스며들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