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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향한 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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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 가면 너머로, 한때 할아버지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던 그 잔혹한 눈동자가 오직 나만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강태윤. 서지훈의 수석 비서이자 내 모든 비극의 시작점인 사내가 묵직한 구두 굽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구리선과 흑요석으로 조립된 기이한 오컬트 주파수 탐지 장치가 미세하게 떨릴 때마다, 내 왼손 가운뎃손가락에 끼워진 발렌시아의 푸른 눈물 반지가 살을 태울 듯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은색 가면의 주술적 보호 결계가 아드리안의 영력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강태윤과의 거리는 이제 겨우 네 걸음 남짓이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세차게 요동쳤다. 옆에 선 강준의 신형 슈트 어깨가 팽팽하게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품 안의 삼단봉으로 손을 뻗으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댕- 댕- 댕-


경매장의 시작을 알리는 육중한 청동 종소리가 지하실 전체를 강타했다. 동시에 메인 홀을 밝히던 수백 개의 은색 촛대 불꽃들이 일제히 보랏빛에서 짙은 붉은색으로 변하며 가라앉았다. 시야가 붉은 어둠 속으로 침잠하는 순간, 무대 중앙의 붉은 스포트라이트가 단상을 강렬하게 비추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밤, ‘심연’의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세기의 유물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면을 쓴 경매사의 매끄러운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지자, 홀을 가득 채우고 있던 바이어들의 탐욕스러운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코앞까지 다가왔던 강태윤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그의 손에 들린 탐지기의 붉은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무대 중앙을 향해 일직선으로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강태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려 무대를 응시했다. 아드리안의 영혼 파동이 무대 위로 등장할 유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있었다.


검은색 실크 장갑을 낀 조수가 조심스럽게 무대 중앙으로 다가와 붉은 벨벳 상자를 내려놓았다. 경매사가 상자의 뚜껑을 여는 순간, 지하실 전체의 공기가 얼어붙을 듯한 기이하고 차가운 서리 내림 한기가 휘몰아쳤다.


“윽……”


VIP 석에 앉아 있던 바이어들이 일제히 나직한 신음을 뱉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테이블 위에 놓인 샴페인 잔과 유리 식기 표면 위로 하얗고 정교한 눈꽃 모양의 서리가 순식간에 피어올랐고, 천장의 전등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입을 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인간의 탐욕으로 가득했던 후끈한 경매장이 단숨에 시베리아의 설원처럼 싸늘하게 식어 내렸다.


벨벳 상자 안에서 공개된 것은 찢어진 가슴 부위 조각의 행방을 쫓던 내 눈앞에 나타난, 아드리안 초상화의 유실된 가슴(심장) 부위 캔버스 파편이었다. 300년 전의 마 섬유 격자 구조와 그 위에 칠해진 독특한 사파이어 빛 벨벳 의복의 잔해. 비록 한 뼘 크기에 불과한 조각이었지만, 그것이 내뿜는 영적 한기는 아틀리에에 있는 오리지널 액자 전체보다도 강력했다.


[설아…… 내 심장이다. 저 조각이…… 내 잃어버린 영혼의 핵이 저곳에서 울부짖고 있다.]


머릿속을 서늘하게 파고드는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뇌파를 타고 실시간으로 연결되었다. 그의 음성은 평소보다 훨씬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고, 내 왼손목의 은빛 카테터 흉터 자국들이 그의 고통에 반응해 붉게 아릿한 통증을 내뿜었다. 나는 이빨을 악물며 가방 속 백영호의 무기한 펀딩 자금인 블랙카드를 손가락 끝으로 움켜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심장을 서지훈의 손에 넘겨줄 수는 없었다.


“시작가는 5억 원입니다!”


경매사의 선언과 동시에, VIP 2층 발코니 석에서 비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10억!”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설 사채업체 ‘영철 캐피탈’의 회장이자 불법 미술품 수집가인 최영철이었다. 비단 가운을 걸치고 손가락마다 굵은 보석 반지를 낀 비대한 체구의 대머리 사내가 거만하게 패들을 들어 올렸다. 시작가의 두 배를 단숨에 부르는 그의 공세에 장내가 술렁였다. 최영철은 서지훈의 자금을 뒤에 업고 이 경매를 독점하려는 심산이 분명했다.


나는 가슴이 터질 듯한 긴장 속에서 테이블 위의 디지털 입찰 터미널에 백영호의 블랙카드를 태그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입력했다.


“12억.”


은색 가면 너머 내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리자, 최영철의 시선이 매섭게 아래층 내 자리로 내리꽂혔. 그는 코웃음을 치며 즉각 패들을 다시 들었다.


“20억!”


장내에 바이어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 20억 원. 캔버스 조각 하나에 매겨지기엔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였다. 빈혈로 인해 머리가 핑 돌고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처음에 소극적으로 1억 단위로 올리려 했던 내 전략은 최영철의 폭발적인 호가 템포에 밀려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이대로 페이스를 잃으면 낙찰은커녕 적들의 기세에 짓눌려 무너질 판이었다.


[설아, 두려워하지 마라. 저 조각과 내 영혼이 지금 너의 피와 깊게 공명하고 있다. 느껴지지 않느냐. 내가 네 등 뒤에 서 있다.]


아드리안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내 귓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의 영적 한기가 내 전신의 기혈 순환을 자극하며 현기증을 단숨에 몰아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2층 발코니의 최영철을 응시했다.


‘거짓말 감별 및 진품 판정’ 능력이 내 시야를 붉은색 격자로 채웠다. 최영철의 뺨 부근 미세한 근육의 떨림, 그리고 그가 비서와 다급하게 귓속말을 나누며 전화를 붙잡고 있는 손가락의 초조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 방울이 붉게 강조되어 보였다.


‘저자는 지금 한계에 부딪혔어. 서지훈이 저자에게 부여한 최대 예산 가이드라인은 30억 원 부근이다.’


상대의 패를 읽어낸 순간, 내 이성이 차갑고 날카롭게 제자리를 찾았다.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귀에 꽂힌 초소형 무선 인이어를 가볍게 두드렸다. 성북동 영빈관에 대기 중인 백영호의 수석 비서 김정훈의 목소리가 들려왔.


“윤설아 씨, 백성 재단의 한도는 무제한입니다. 이사장님의 명령대로 끝까지 가십시오. 원격 승인 코드는 이미 개방되어 있습니다.”


최영철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단상 바닥을 지팡이로 쾅 내리쳤다.


“30억!”


경매장의 공기가 팽팽하다 못해 찢어질 듯한 침묵으로 가득 찼다. 30억 원. 서지훈의 거대 자본이 뿜어낼 수 있는 최후의 통첩이었다. 경매사가 침을 삼키며 붉은 목槌을 들어 올렸다.


“30억 원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30억 원, Going once…… Going twice……”


최영철이 승리를 확신한 듯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비웃었다. 강태윤 역시 내 은색 가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경호원들에게 은밀한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낙찰이 선언되는 순간 내 신원을 강제로 확인하려는 수작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단호하게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은색 가면 너머로 차갑고 맑은 목소리를 경매장에 울려 퍼뜨렸다.


“35억.”


탁!


단상을 내리치려던 경매사의 목槌이 허공에서 멈췄다. 경매장 전체가 물을 끼얹은 듯 찬물을 끼얹은 침묵에 휩싸였다. 최영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하더니, 이내 보라색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는 들고 있던 패들을 바닥에 던지며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


“35억?! 저 기집애 신원 조사해! 저게 진짜 돈이 있어서 지르는 건지 당장 확인하란 말이야!”


“35억 원, 더 없으십니까? 35억 원, Going once, Going twice…… 낙찰! 은색 가면 번호 7번 바이어에게 최종 낙찰되었습니다!”


탕! 탕! 탕!


경매사의 세 번의 타격음이 지하실 벽을 타고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마침내 아드리안의 심장이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여운을 만끽할 시간은 없었다. 최영철의 수신호를 받은 거구의 조폭 경호원 세 명이 험악한 기세로 내 VIP 테이블 주변을 포위하며 다가왔다. 그들의 품 안에서 묵직한 쇠파이프와 삼단봉의 윤곽이 드러났다.


“가면 벗겨. 어떤 년인지 면상 좀 보자고.”


최영철이 이빨을 갈며 명령했다.


그때, 내 옆에 서 있던 강준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가볍게 터치했다. 백성 재단의 사설 경호팀에게 보내는 호출 신호였다.


스윽-


경매장 VIP 구역 입구의 붉은 벨벳 커튼이 젖혀지며, 검은색 맞춤 정장을 입고 이어폰을 낀 백성 재단 소속의 엘리트 보디가드 여덟 명이 순식간에 무대 앞을 장악했다. 그들은 차가운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최영철의 조폭들을 피지컬과 숫자로 압도하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경비원들 사이에 팽팽한 물리적 대치 구도가 형성되자, 최영철은 이를 갈며 부하들을 뒤로 물러서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쯧, 백영호 영감탱이의 개들이었군.”


최영철이 침을 뱉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대치 상황을 수습하는 사이, 내 스마트폰 화면 위로 불길한 경고 메시지가 깜빡였다. 35억 원의 천문학적인 금융 거래가 발생하면서, 무제한 펀딩 카드의 보안 데이터 송출 로그가 경매장 전체 네트워크에 유출된 것이었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오컬트 탐지기를 만지작거리던 강태윤 비서가 자신의 태블릿 화면을 확인하더니, 안경 너머의 차가운 눈동자를 번뜩이며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백성 재단의 자금이 움직인 경로를 추적해 내 은색 가면 너머의 진짜 신원이 복원가 ‘윤설아’임을 완벽하게 간파해 낸 눈빛이었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설아, 조각 인도실로 가야 한다. 적들이 네 신원을 확보하기 전에 서둘러라.]


아드리안의 다급한 텔레파시가 머릿속을 때렸다. 나는 강준의 부축을 받으며 낙찰 물품 인도실이 위치한 어둡고 좁은 복도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복도 모퉁이를 도는 순간, 저 멀리 철문 앞 어둠 속에서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든 황도현의 행동대장 배창두와 조폭 일당이 길목을 차단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살기 어린 미소가 붉은 비상등 불빛 아래에서 기괴하게 일렁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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