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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감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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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지하 아틀리에의 차갑고 눅눅한 공기 속에는 여전히 맵싸한 라벤더 향과 비릿한 피비린내가 섞여 감돌고 있었다. 강동현이 억지로 꽂아두고 간 영양 수액 주머니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윤설아는 하얗게 질린 입술을 깨물며 팔에 꽂혀 있던 바늘을 스스로 뽑아냈다. 툭, 하고 떨어진 주사 바늘 끝에서 붉은 피 한 방울이 배어나왔지만, 그녀는 지혈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왼쪽 손목을 움켜쥐었다. 얇고 가녀린 피부 위로, 은제 미세 카테터 주사기를 반복해서 찌른 탓에 생긴 은빛 주사 자국과 미세한 흉터들이 낙인처럼 촘촘히 박혀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침대 옆 거치대 위에 놓인 ‘아드리안의 잔혹한 초상화’에 닿았다. 은 가루 봉인선 결계 덕분에 붉은 주술 곰팡이는 정화되었지만, 지난밤 마동필 일당의 습격과 급격한 온습도 변화로 인해 캔버스 뒷면의 마 섬유 지지층이 미세하게 뒤틀려 있었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아드리안의 영혼을 현세에 묶어두는 캔버스의 물리적 구조 자체가 완전히 붕괴할 터였다.


“아드리안…….”


설아가 신음하듯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초상화는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대낮의 잔인한 햇살 아래에서 영력을 과다 소모한 아드리안은 캔버스 깊은 곳으로 강제 회수되어 잠들어 있었다. 그를 다시 안정시키고 뒤틀린 캔버스를 고정하기 위해선 박물관 지하 2층 보존처리실에만 보관되어 있는 특수 정제 가죽 아교와 고순도 유기용제가 절실히 필요했다.


설아는 아직 머리가 핑 도는 빈혈의 한기를 떨쳐내며 낡은 작업용 앞치마를 걸치고 가방을 챙겼다. 최강준이 문 밖에 백성 재단의 경호원들을 배치해 두었지만, 그녀는 그들의 눈을 피해 은밀히 움직여야 했다. 지금 박물관으로 돌아가는 것은 호랑이 굴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 * *


국립중앙박물관의 거대한 화강암 건물은 오늘따라 유난히 차갑고 위압적으로 서 있었다. 수장고 화재 사건 이후 경비는 한층 더 삼엄해져 있었다. 설아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직원 전용 지하 입구로 향했다. 주머니 속에서 사원증 카드를 꺼내 게이트 센서에 대는 순간, 삑 하는 날카로운 비프음과 함께 적색 경고등이 번쩍였다.


[권한이 제한된 카드입니다. 보안실로 문의하십시오.]


‘김성태 과장…… 벌써 손을 썼군.’


설아의 이가 악물렸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위조 반출 허가서를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렸으나, 시스템 자체에서 마스터 권한을 정지시켜 놓은 상태라면 이 서류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설아는 심호흡을 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가 향한 곳은 일반 직원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박물관 뒤편의 폐기물 수송용 엘리베이터 통로였다. 화재 잔해와 폐기 화학 약품을 실어 나르는 이 어둡고 퀴퀴한 통로는 보안 센서의 사각지대였다. 예전에 행정원 박은지가 가르쳐 준 비밀 경로가 아니었다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길이었다.


어둡고 긴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가자, 마침내 지하 2층 보존처리실의 차가운 철문이 나타났다. 소독약과 아세톤, 그리고 묵은 먼지 냄새가 가득한 복도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설아는 소리 없이 문을 밀고 ‘지하 2층 보존처리 제3실’ 내부로 스며들었다.


내부는 자외선 램프의 푸르스름한 광선과 정밀 현미경들이 자아내는 기계적인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설아는 신속하게 방 구석에 위치한 약품 보관함으로 다가갔다. 유리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갈색 시약병들이 정렬해 있었다. 그녀는 아드리안의 캔버스를 보강할 정제 가죽 아교 통과 세척용 유기용제를 꺼내 가방 깊숙이 밀어 넣었다. 목표물을 확보한 순간,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평화는 지독하게도 짧았다.


또각, 또각, 또각.


폐쇄된 지하 복도 저편에서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리석 바닥을 때리는 그 소리는 너무도 익숙해서 설아의 등등한 척추를 얼려버릴 것만 같았다.


‘장수진……!’


설아는 급히 약품 보관함 문을 닫고 캐비닛 뒤편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구두 굽 소리는 제3실의 문 앞에서 딱 멈추었고, 이내 철문이 거칠게 열렸다.


“어머, 윤설아 씨 아니야?”


차가운 조롱이 섞인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단발머리에 세련된 안경을 쓴 장수진이 팔짱을 낀 채 문가에 서 있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은 이미 캐비닛 옆에 서 있는 설아의 가방을 집요하게 꿰뚫고 있었다.


“며칠째 무단결근에 연락도 안 받더니, 이 야심한 대낮에 여기 숨어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설마 수장고 화재 때 유실된 유물을 몰래 빼돌리러 온 건 아니겠지?”


수진이 한 걸음씩 다가오며 설아를 압박했다. 그녀의 차가운 안경 너머로 승리감에 도취된 열등감과 질투가 번뜩였다.


“가방 속이 참 묵직해 보이네. 당장 그 가방 열어봐. 김성태 과장님께 보고하기 전에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어.”


“개인 물품일 뿐입니다. 장수진 선임님께서 제 사생활을 검사할 권한은 없을 텐데요.”


설아는 가방끈을 더 세게 움켜쥐며 냉정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떨려오는 손끝은 숨길 수 없었다. 빈혈로 인해 시야가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정면으로 부딪치기엔 육체적 한계가 너무 컸다.


“권한? 수장고 화재 당시 유물 무단 반출 의혹을 받는 용의자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수진이 비열하게 웃으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보안팀을 불러야겠어. 오동식 팀장님이 아주 기뻐하시겠네.”


수진이 액정을 터치해 전화를 걸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설아의 왼쪽 손목에 새겨진 은빛 흉터 자국들이 미세하게 뜨거워지며, 머릿속에서 아드리안의 낮고 서늘한 텔레파시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저 여자의 목소리가 시끄럽군. 전파를 차단하겠다.]*


치이이익-!


갑자기 장수진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고주파의 기괴한 노이즈와 정전기 소음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전파가 완전히 왜곡되며 화면이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로 가득 찼다.


“악! 이게 왜 이래? 왜 전화가 안 걸려?”


당황한 수진이 폰을 흔들며 신경질을 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설아를 쏘아보았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가방에 뭘 숨겼길래 전파 방해 장치까지 들고 다녀? 당장 내놔!”


수진이 격분하여 설아의 가방을 강제로 빼앗으려 몸을 날렸다. 설아는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빈혈로 인해 다리가 휘청이며 바닥으로 고꾸라질 위기에 처했다. 가방이 수진의 손에 잡히기 직전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와장창-! 콰당탕탕!


보존처리실 반대편 구석에서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지하실 전체를 뒤흔들었다. 거대한 철제 선반이 넘어지며 그 위에 올려져 있던 수십 개의 청색 안료 통과 시약병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시커먼 인도산 먹물과 독한 화학 안료들이 사방으로 폭포수처럼 튀어 올랐다.


“꺄아아악-!”


장수진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펄쩍 뛰어올랐다. 검은 먹물과 푸른 화학 액체들이 그녀가 입고 있던 값비싼 화이트 실크 스커트와 명품 구두 위로 사정없이 튀어 엉망진창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다.


“아이고! 선배님! 죄송합니다! 제가 정리를 하다가 발이 미끄러져서……!”


둥근 안경을 쓴 어리바리한 신입 인턴 이민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엉망이 된 바닥 한가운데에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쏟아진 먹물 통이 쥐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시커먼 얼룩이 묻어 있었다. 너무도 작위적이고 어설픈 소동이었지만, 장수진의 시선을 완벽하게 분산시키기엔 충분했다.


“이민우! 너 미쳤어?! 내 옷이 어떤 옷인데 이 멍청한 자식아!”


수진이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지르며 이민우에게 달려들어 소리를 질러댔다. 민우는 연신 허리를 굽히며 설아가 도망칠 수 있도록 몸으로 장수진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 틈을 타, 설아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아드리안의 차갑고 명석한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이다, 설아. 오른쪽 복도 모퉁이의 3번 감시 카메라는 현재 우측으로 회전했다. 뒤돌아보지 말고 폐기물 수송 엘리베이터로 뛰어라.]*


설아는 가방을 품에 안고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이민우가 장수진의 가스라이팅 섞인 꾸중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목소리가 멀어지는 가운데, 그녀는 아드리안이 일러준 카메라의 사각지대를 기계처럼 정확하게 밟으며 복도를 질주했다.


철컥, 폐기물 엘리베이터의 낡은 쇠문이 닫히고 지하 아틀리에로 향하는 어두운 수송로로 몸을 숨기는 순간까지도, 설아의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필요한 약품은 확보했지만, 장수진에게 잠입 흔적을 완벽히 들키고 말았다는 서늘한 현실이 그녀의 목덜미를 죄어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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