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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폭풍의 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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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아틀리에를 가득 채운 공기가 일순간 비현실적일 만큼 차갑게 얼어붙었다.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허연 입김이 눈보라처럼 흩날렸고, 사방의 벽면과 바닥에 깨진 유리 시약병 잔해 위로 서늘한 성에가 무서운 속도로 피어올랐다. 영하 10도까지 급강하한 실내 기온은 현실의 물리 법칙을 비웃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던 거구의 행동대장 배창두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은빛 실루엣, 300년 전의 벨벳 코트를 걸친 아드리안의 형상을 마주하자 이내 조폭 특유의 야수 같은 악착함이 되살아났다. 그는 손에 쥔 거대한 쇠파이프를 고쳐 잡고 허공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


“귀신이든 뭐든 대가리를 깨부수면 그만이야! 죽어라!”


쇠파이프가 공기를 가르며 웅장한 파열음을 냈다. 설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쇠파이프가 설아의 머리에 닿기 직전, 초상화 속 아드리안이 쥐고 있던 보검 손잡이의 루비 보석이 피처럼 붉은 빛을 폭발시키며 지하실 전체를 뒤흔들었다.


복원율 35%에 도달한 아드리안의 ‘물리적 수호’ 능력이 각성한 순간이었다.


콰아앙!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검풍(劍風)이 캔버스 밖으로 휘몰아쳤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영적 방어막에 가로막힌 배창두의 쇠파이프는 설아의 머리 위 10센티미터 허공에서 멈춰 섰고, 이내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강한 반동으로 인해 배창두의 거구는 지하실 벽면까지 날아가 처참하게 처박혔다.


“커흑……!”


배창두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마동필은 금이빨을 드러내며 뒤로 자빠졌다.


“이, 이년이 진짜 요술을 부리는구나! 얘들아, 저 기집애 잡아! 저 액자를 부숴버려!”


마동필의 절규에 주춤하던 조폭 3명이 품에서 칼과 둔기를 꺼내 들고 설아를 향해 돌진했다. 쓰러진 설아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었지만, 이미 빈혈로 인해 몸을 움직일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아드리안의 은빛 눈동자가 분노로 타올랐다. 그의 반신 형상이 허공에서 요동치며, 아틀리에 내부에 도사린 모든 철제 기물들과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했다.


스으으으-


기이한 진동음과 함께 지하실 전체가 울부짖듯 흔들렸다.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수십 개의 복원 도구들이 중력을 거스르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할아버지의 독일제 빈티지 메스, 날카로운 정밀 핀셋, 무거운 철제 프레스기, 그리고 깨진 유리 시약병 파편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군대처럼 허공에 정렬했다.


아드리안의 ‘폴터가이스트 유도(Poltergeist)’ 능력이 아틀리에를 완전히 지배했다.


[나의 수호자에게 손을 댄 대가다. 심연의 불길 속에서 영원히 울부짖어라.]


아드리안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지하실 벽을 타고 공명하는 순간, 허공에 떠 있던 철제 도구들이 사채업자들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날아가 박히기 시작했다.


슈우욱! 콰직! 서걱!


“으아아악! 살려줘!”


날카로운 메스와 유리 파편들이 조폭들의 팔다리와 어깨를 정확히 스치며 옷자락을 찢고 살점을 베어냈다. 무거운 철제 프레스기가 허공에서 떨어져 조폭 한 명의 발등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아틀리에를 가득 채웠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드리안의 은빛 눈동자에서 방출된 영적 에너지가 마동필과 조폭들의 뇌파를 직접 타격했다. 그들의 눈앞에 아틀리에의 낡은 벽면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17세기 유럽의 피비린내 나는 단두대와 불타오르는 처형장의 환영이 펼쳐졌다. 사방에서 검은 해골들과 악마의 손길이 자신들의 목을 죄어오는 기괴한 오컬트적 공포에 마동필은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자지러졌다.


“히익! 귀, 귀신이다! 지옥이야!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마동필은 위조된 연대보증서 서류 뭉치마저 바닥에 내팽개친 채, 머리를 감싸 쥐고 완파된 철문 밖으로 기어 나갔다. 피투성이가 된 배창두와 조폭 일당 역시 무기를 버리고 비명을 지르며 어두운 지하 계단을 허겁지겁 도망쳐 올라갔다. 그들의 비참한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아틀리에에는 오직 얼어붙은 냉기만이 가득했다.


“하아…… 하아……”


침입자들이 완전히 격퇴되자, 아틀리에를 휘감던 푸른 소용돌이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드리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안도감은 이내 극도의 공포로 변했다.


허공에 서 있던 아드리안의 반투명한 육신이 가슴의 뻥 뚫린 공백 부위부터 시작해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며 갈라지고 있었다. 대낮에 영력을 한계 이상으로 쥐어짜 낸 대가는 참혹했다. 그의 은빛 머리카락과 코트의 끝자락이 푸른 안개와 연기처럼 변해 공기 중으로 기화하기 시작했다.


[윤…… 설아…….]


설아를 바라보는 그의 은빛 눈동자가 급격히 흐려졌다. 목소리조차 형체를 잃고 미세한 노이즈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그의 영혼은 현세에서 흔적도 없이 소멸할 것이 분명했다.


“아드리안! 안 돼! 가지 마!”


설아는 필사적으로 허공을 향해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따뜻한 손가락은 차가운 안개만을 가를 뿐, 그의 실체를 붙잡을 수 없었다. 물리적인 결속력이 완전히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생각해, 윤설아. 머리를 써야 해. 할아버지의 일지에 적혀 있던 결계 공식을 떠올려!’


설아는 빈혈로 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파손된 작업대 위를 훑었다. 흩어진 안료 가루들 사이로, 인사동 고려표구사에서 조달해 두었던 정화용 광물, ‘은 가루 안료(Silver Dust)’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순은을 극미세 입자로 분쇄한 천연 안료. 외부의 오염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내부 영혼의 유출을 막는 이중 결계의 핵심 재료였다.


설아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은 가루 안료를 긁어모아 천연 아교 용액에 급히 섞었다.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려 붓을 제대로 쥘 수 없었지만, 아드리안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절박함이 그녀의 이성을 강제로 각성시켰다.


설아는 세필 붓 끝에 은빛 안료를 듬뿍 묻혔다. 그리고 거치대 위에서 미세하게 바래져 가는 초상화 액자의 가장자리 목재 테두리를 향해 붓을 가져다 대었다.


‘은 가루 봉인선 드로잉(Silver Dust Sealing Line)…… 끊기면 안 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네 모서리를 완벽한 폐곡선으로 연결해야 해.’


설아는 호흡을 멈추고 액자의 첫 번째 모서리부터 은색 선을 그려 나갔다. 붓끝이 지나간 자리마다 영롱한 은빛 장막이 피어오르며 기화하던 아드리안의 영혼을 액자 내부로 강제로 압축하기 시작했다.


- 아윽……!


은빛 결계가 조여들자 아드리안이 캔버스 내부에서 영적 압박감에 신음했다. 하지만 설아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모서리를 연결해 나갈 때마다 설아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고, 시야는 점점 더 어두워졌다.


마지막 네 번째 모서리의 접점을 남겨둔 순간, 체내의 혈액 한계 수치가 임계치에 도달하며 설아의 손목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져 붓대가 바닥으로 떨어지려 했다.


‘조금만 더…… 제발, 마지막 한 선만……!’


설아는 입술을 깨물어 피가 터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왼쪽 손목 정맥 부근, 은빛 카테터 흉터 자국이 가득한 곳을 메스 끝으로 살짝 찔렀다. 흘러내린 붉고 신선한 수호자의 피가 은 가루 안료가 담긴 비커 위로 뚝뚝 떨어졌다.


붉은 피가 은빛 안료와 섞이는 순간, 결계의 정화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폭되었다. 설아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붓대를 쥐고, 액자의 마지막 모서리 접점을 은빛 선으로 강하게 연결했다.


화아아아악!


액자 테두리를 따라 완성된 은 가루 봉인선이 눈부신 은빛 방어막을 형성하며 아틀리에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기화하여 흩어지려던 아드리안의 푸른 영체들이 은빛 장막에 가로막혀 다시 초상화 내부의 캔버스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회귀했다.


쿵, 쿵, 쿵…….


초상화 뒷면에서 터질 듯한 기이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아드리안의 영혼은 무사히 캔버스 내부에 재봉인되어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위기를 넘긴 설아의 손에서 세필 붓이 힘없이 낙하했다. 대량의 혈액 유실과 정서적 탈진으로 인해 그녀의 몸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어두워져 가는 시야 속에서, 설아는 바닥에 떨어진 마동필의 위조 채권 서류 뭉치를 필사적으로 손에 쥐며 의식을 잃어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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