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매달린 혈린교
칭————!
달빛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흑랑사의 실선들이 팽팽한 탄성을 이기지 못하고 기이한 진동음을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그 소리는 밤의 정적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비명과도 같았다.
공중에서 신형을 날려 장원 안마당의 무성한 수풀 쪽으로 낙하하던 혈린교 호법 야율명의 안색이 급변한 것은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의 발끝이 수풀에 닿기도 전에, 허공을 가르던 그의 정강이에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지극히 가늘고 단단한 실선이 걸려들었다.
“음……?!”
야율명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허공에서 신형을 비틀려 했다. 절정 초입의 고수다운 기민한 신체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가 몸을 비틀기 위해 내력을 폭발시키려던 순간, 그가 딛고 서려 했던 수풀 아래의 흙바닥에서 기이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팅, 팅, 팅, 티딩!
그것은 무혁이 낮에 아강을 혹사하며 정교하게 묻어두었던 스프링식 가시 그물망의 인장 와이어가 격발되는 소리였다. 수풀 속에 똬리를 틀고 숨겨져 있던 거대한 강철 가시 그물이, 양끝에 매달린 무거운 청강석의 반동과 강력한 철제 스프링의 탄성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폭발적으로 솟구쳐 올랐다.
스사사사삭!
“우왓?!”
“이, 이게 무슨……!”
야율명의 뒤를 따라 그림자처럼 낙하하던 스무 명의 정예 사파 자객들은 허공에서 피할 길을 찾지 못했다. 하늘을 덮치듯 솟구쳐 오른 거대한 강철 그물망은 마치 살아있는 괴수의 아가리처럼 공중에 떠 있는 자객들을 통째로 집어삼키며 사방을 조여들었다.
그물망 곳곳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가시들에는 무혁이 만독곡에서 정성스럽게 채취해 온 지독한 마비독이 듬뿍 발라져 있었다. 자객들이 그물망의 포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칠 때마다, 예리한 강철 가시들이 그들의 붉은 혈포를 찢고 살결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컥! 독…… 독이다!”
“기혈이…… 기혈이 잠긴다!”
하지만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황한 자객들이 그물망을 찢기 위해 검을 휘두르거나 신형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려던 바로 그 순간, 정원 전체에 격자무늬로 촘촘하게 쳐져 있던 흑랑와이어 결계가 진정한 지옥의 문을 열었다.
파스스슥!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려던 자객들의 발목과 손목, 그리고 목덜미에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한 은빛 실선들이 뱀처럼 감겨들었다. 북해 흑랑의 힘줄과 백한철을 꼬아 만든 와이어는 절정 고수의 도검으로도 쉽게 끊을 수 없는 미친 장력을 자랑했다. 자객들이 허둥지둥 뒤로 도망치려 힘을 줄 때마다, 와이어는 탄성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이내 무서운 속도로 되튕기며 그들의 신형을 공중으로 쏘아 올렸다.
우지끈! 파각!
“아아아악!”
“내, 내 다리!”
기이한 물리적 도미노 현상이었다. 그물에 갇힌 채 와이어에 걸려든 자객들은, 자신들이 가한 힘의 반동에 의해 역으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꼴이 되었다. 흑랑사의 미친 탄성은 자객 스무 명의 무게를 가볍게 버텨내며, 그들을 정원 소나무와 대나무 숲 사이의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다. 마치 거미줄에 걸려 비명을 지르는 붉은 나방 떼와 같은 형국이었다.
그 처참하고도 기괴한 광경을, 정원 구석의 어두운 소나무 그늘 뒤에 숨어 지켜보던 강무혁은 완전히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의 오른손에는 팽가에서 하사받은 특별 호위비 일만 냥짜리 태환권 수표와, 은퇴 후 만두 가게를 차릴 때 쓸 소박한 가재도구들을 바리바리 싸 놓은 보따리가 굳게 쥐어져 있었다. 담을 넘어 하북성을 영원히 떠나려던 그의 야반도주 계획은 단 10초를 남겨두고 완벽하게 정지했다.
‘……왜 저 새끼들이 거기서 떨어지는 건데?’
무혁의 뇌리가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는 눈을 부릅뜬 채, 공중에 은빛 실선에 묶여 대롱대롱 매달린 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 혈린교 자객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몸을 옭아매고 있는 가시 그물망과 와이어는, 원래 내일 아침 팽지혁이 숙취에 찌든 몸을 이끌고 산책을 나올 때 그의 목을 깔끔하게 잘라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무혁이 밤새 피땀 흘려 설치한 ‘최고의 암살 예술품’이었다.
그 정교한 기하학적 살상 궤적을 계산하느라 손가락 끝의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는데, 웬 붉은 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도적 떼가 하늘에서 떨어져 제 발로 그 덫을 다 밟아 터뜨려 버린 것이다.
‘내…… 내 완벽한 암살 덫이…….’
무혁의 가슴속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극심한 분노와 빡침이 끓어올랐다. 오백 냥의 은퇴 자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암살 계획이, 저 이름 모를 침입자 새끼들의 무식한 기습 때문에 완전히 망가졌다. 덫이 한 번 격발되었으니 내일 아침 팽지혁을 죽일 방법은 완전히 사라진 셈이었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굵게 솟아올랐고, 눈 밑의 짙은 다크서클이 어둠 속에서 마도의 문양처럼 험악하게 뒤틀렸다. 무혁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殺氣)는 너무도 생생하고 차가워서, 주변의 풀잎들이 서리를 맞은 듯 파르르 떨며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 차가운 오라의 직격을 받은 것은,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내력을 쥐어짜며 와이어를 끊으려 발버둥 치던 혈린교 호법 야율명이었다.
야율명은 마비독이 퍼져가는 와중에도 고개를 억지로 돌려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들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는 한 사내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회색 야행복을 입고, 한 손에는 정체불명의 가방(사실은 도망용 보따리)을 든 채, 천하를 얼려버릴 듯한 가공할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사내.
“끄윽…… 네놈이…… 네놈이 강무혁이냐……!”
야율명은 이가 깨질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온몸에 공포 섞인 전율이 흘렀다. 정원에 경비병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은 방심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기습 침로와 낙하 궤적, 심지어 공중에서 활공하는 속도와 무게까지 완벽하게 계산하여 소수점 단위의 오차도 없이 ‘하늘의 그물’을 쳐놓은 괴물이 어둠 속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우리의 움직임을 사전에 다 읽고 있었다니…… 괴물 같은 놈……!”
야율명은 절망 어린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 소리가 장원 전체를 요란하게 울려 퍼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 멀리서 수십 개의 횃불 불빛이 무서운 속도로 후원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혁은 도망치기 위해 담벼락을 보았으나, 이미 늦었다. 가주 팽자천의 호랑이 같은 고함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어떤 놈이 감히 하북팽가의 후원을 침범하느냐!”
타타타탁!
김 대장과 정예 호위무사들이 횃불을 높이 든 채 정원 산책로로 들이닥쳤고, 그 뒤를 이어 붉은 장포를 휘날리는 가주 팽자천이 거구의 신형을 날려 착지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가문 역사상 가장 기괴하고도 장엄한 광경이 펼쳐졌다.
혈린교의 악명 높은 호법 야율명을 비롯한 정예 자객 스무 명이, 보이지 않는 은빛 실선에 옭아매어져 허공에 주렁주렁 매달린 채 신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사파 무리들의 발아래에는, 수석 호위무사 강무혁이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운 패기’를 사방에 방출한 채 엄숙하게 서 있었다.
팽자천과 호위무사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들의 눈동자가 경악과 감격으로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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