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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은빛 거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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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집어삼킨 어둠은 장막처럼 무겁고 깊었다. 하북성 성수현의 명문 무가, 하북팽가의 대장원은 겉보기에는 고요했으나 그 이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후원 깊숙한 곳, 평소라면 삼엄하게 횃불을 밝히고 순찰을 돌았을 팽가의 무사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낮에 새로 제정된 ‘팽가 호위 수칙 제1조’ 때문이었다.


‘소교주의 안전을 위해, 산책로 반경 10보 이내에는 나를 제외한 그 어떤 경비병의 접근도 금지한다.’


이 해괴하고도 독단적인 명령은 가솔들에게 ‘스스로를 미끼로 삼아 사파의 침투를 몸소 막아내려는 수석대장님의 숭고한 결단’으로 세탁되어 완벽하게 이행 중이었다. 덕분에 정원은 무혁에게 가장 은밀하고 완벽한 ‘암살 실험실’이 되어 있었다.


“오백 냥…… 오직 오백 냥만 있으면 이 지옥 같은 영웅 놀음도 끝이다.”


어둠 속에서 나풀거리는 회색 야행복을 입은 강무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는 밤바람보다 서늘했고, 눈 밑에는 며칠간의 밤샘 작업으로 인해 짙은 다크서클이 그림자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흑야보법(Black Night Steps)을 전개했다. 발끝이 지면에서 한 치 가량 떠오른 듯 소리 없이 미끄러지는 신법이었다. 보통의 무인들이 보았다면 공간을 축지하는 신화경의 경공이라며 침을 흘렸겠지만, 실상은 그저 정원에 매설해 둔 덫의 인장선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몸뚱이를 기괴하게 꺾어가며 도망치는 생존용 발걸음에 불과했다.


무혁은 정원 한구석의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에 멈춰 섰다. 낮에 아강의 눈물겨운 도움을 받아 매설해 둔 강철 ‘가시 그물망’의 고정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300근짜리 청강석 바위에 단단히 고정된 스프링 장치는 밤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팽지혁이 아침에 숙취를 흘리며 이 길을 걸어오다 와이어를 밟는 순간, 가시 그물이 솟구쳐 그의 목을 얽어매고 마독을 주입할 터였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그 망나니 새끼는 운이 비정상적으로 좋다. 만에 하나 가시 그물을 피할 경우를 대비해야 해.’


무혁은 소매 안쪽의 비밀 주머니에서 흑랑사(Black Wolf Thread)를 꺼냈다. 북해의 극한 지대에 서식하는 흑랑의 가죽 힘줄과 백한철 강선을 교묘하게 꼬아 만든 초고장력 와이어였다. 일반 도검으로는 끊을 수 없고, 어둠 속에서는 육안으로 식별이 거의 불가능한 초고가의 암살 실선이었다. 흑월루 살수 시절 특별 보급품으로 받았던 이 실선을 아낌없이 꺼내 든 무혁의 눈빛에 지독한 살의가 서렸다.


그는 흑랑와이어의 한쪽 끝을 소나무 밑동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반대편 대나무 숲을 향해 소리 없이 도약했다. 공중에서 신형을 가볍게 회전시키며, 나뭇가지와 바위 돌출부 사이에 와이어를 격자무늬로 촘촘하게 얽어매기 시작했다.


스스슥. 서걱.


보이지 않는 은빛 실선들이 어둠 속에서 거미줄처럼 뻗어나갔다. 무혁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낮에 가시 그물을 매설하다 긁힌 검지 손가락의 상처가 와이어의 팽팽한 장력을 조율할 때마다 따끔거리는 통증을 유발했다. 지문이 미세하게 닳아 없어지는 육체적 마모를 겪으면서도, 그의 머릿속은 오직 기하학적인 살상 궤적의 계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팽지혁의 키는 다섯 자 일 치. 걸음걸이는 다소 가볍고 상체가 앞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이 높이에 와이어 포박 결계를 쳐두면, 가시 그물을 피해 뒤로 도망치려다 목이 정확히 걸려 사지가 절단되거나 질식사할 것이다.’


무혁은 입가에 비열하고도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완벽했다. 물리 법칙과 타겟의 신체적 특성을 완벽히 조화시킨 일류 살수의 최고 걸작이었다. 가시 그물망과 와이어 결계의 이중 살상 지대. 이 지옥 같은 정원에서 팽지혁은 절대로 살아나갈 수 없으리라.


그가 마지막 와이어의 텐션을 고정하기 위해 바위에 릴 장치를 장착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스스.


대나무 숲의 거센 칼바람 소리 너머로, 아주 미세하지만 이질적인 파공음이 무혁의 고막을 때렸다. 나뭇잎이 부딪히는 자연스러운 소리가 아니었다. 옷자락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내력을 극한으로 억누른 채 도약하는 무인들의 은밀한 발걸음 소리였다.


‘순찰대인가? 아니, 김 대장 놈들은 분명 내가 외곽으로 보냈을 텐데?’


무혁은 즉시 흑랑와이어를 쥔 채 나무 그늘 뒤로 신형을 감추고 기척차단술을 극성으로 전개했다. 그의 호흡과 심장박동이 순식간에 정원의 밤공기와 완벽하게 동화되었다. 존재감 자체가 소멸한 상태에서, 무혁은 붉게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담벼락 위를 째려보았다.


장원의 높은 담벼락 위로, 검은 그림자들이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무려 스무 명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그들의 몸에는 피비린내 나는 붉은 혈포가 둘러져 있었고, 선두에 선 거구의 사내는 얼굴에 기괴한 뱀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 하북팽가를 잔혹하게 멸문시키기 위해 침투한 혈린교의 호법, 야율명(夜律明)이었다.


야율명은 담벼락 그늘에 밀착한 채, 팽가 내부를 날카롭게 주시했다. 그의 손에는 마기가 서린 검붉은 도검, 혈린도가 쥐어져 있었다.


“호오…….”


야율명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팽자천이 늙더니 노망이 났구나. 장원의 후방 정원 구역에 경비병이 단 한 명도 없다니. 우리 혈린교의 기습을 대비해 삼엄하게 지키고 있을 줄 알았거늘, 이토록 허술할 줄이야.”


그는 팽가의 정규 경비 노선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왔으나, 무혁이 제정한 ‘호위 수칙 제1조’ 때문에 이 구역의 경비가 완전히 비어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야율명은 그저 가문이 자신들의 침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해 방심한 것이라 확신하며 자신만만해했다.


“수석 호위무사라는 강무혁인가 하는 애송이가 들어왔다더니, 경비 배치를 이따위로 해놓다니 실소만 나오는군. 오늘 밤 하북팽가의 대를 끊어놓겠다.”


야율명은 나지막하게 속삭이며 뒤쪽의 정예 사파 자객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의 잔혹한 살기가 정원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무혁은 나무 뒤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저 미친 새끼들은 또 뭐야?! 왜 하필 오늘 밤에, 하필 내가 함정을 깔아둔 이 정원으로 기어들어 오는 건데?!’


무혁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저들은 분명 팽가를 멸문하러 온 혈린교의 살수들이었다. 만약 저들이 정원으로 뛰어내린다면, 무혁이 팽지혁을 죽이기 위해 밤새 피땀 흘려 설치해 둔 소중한 가시 그물망과 와이어 결계를 밟아 망가뜨릴 것이 자명했다.


‘안 돼! 내 일만 냥…… 아니, 내 오백 냥짜리 완벽한 암살 덫이란 말이다! 저 멍청한 자객 놈들이 밟아 터뜨리게 놔둘 순 없어!’


무혁은 어떻게든 저들의 진입을 막거나 다른 곳으로 유인해야 했다. 하지만 기척차단술을 풀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에는 수적 열세가 너무 심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살수 무공이 가솔들에게 들통날 위험이 있었다.


야율명이 검을 비스듬히 눕히며 신형을 날릴 준비를 마쳤다. 그의 발끝에 붉은 마기가 은밀하게 응축되었다.


“가자. 소교주의 침실로 침투한다.”


야율명이 선두에 서서 신형을 번개처럼 날려 장원 안마당의 무성한 수풀 쪽으로 몸을 던졌다. 그의 뒤를 따라 스무 명의 사파 자객들이 일제히 허공을 가르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정원의 차가운 밤공기를 찢는 가느다란 쇠 마찰음이 허공에서 예리하게 울려 퍼졌다.


칭————!


달빛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흑랑사의 실선들이 팽팽한 탄성을 이기지 못하고 기이한 진동음을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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