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살의와 만독칠야산
“대장님! 역시 대장님이십니다! 자객 사독의 그 귀신같은 무음보법을 미리 간파하시고, 천장에 그런 거대한 낙석 진식을 배치해 두셨다니요! 저희 금위영 무사들 모두 대장님의 신산귀모(神算鬼謀)한 지략에 온몸으로 전율했습니다!”
하북팽가 본저의 소교주 침실 앞. 호위 1조 조장 김 대장이 횃불을 높이 치켜든 채, 목이 터져라 감격의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 뒤에 늘어선 팽가의 정예 무사들 역시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경외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들의 중심에는 흙먼지와 거미줄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굳어버린 석상처럼 서 있는 사내가 있었다. 바로 강무혁이었다.
무혁은 이마의 힘줄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바닥에 으스러져 있는 묵영각의 일류 자객 사독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300근짜리 청강석 바위 아래로 흘러나온 선혈이 카펫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니야…….’
무혁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저 돌은 팽지혁 저 망나니 새끼 대가리를 깨부수려고 내가 사흘 밤낮을 잠도 못 자고 천장에 매달아 둔 거란 말이다! 왜 엄한 묵영각 자객 놈이 기어들어 와서 내 소중한 덫을 대신 밟고 뒈지는 건데!’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다 못해 재가 될 지경이었으나, 겉으로 내뿜는 그의 기운은 차갑고 엄숙하기 그지없었다. 며칠 동안 함정을 설계하느라 잠을 자지 못해 턱밑까지 내려온 짙은 다크서클과,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진 분노로 인해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주변인들의 눈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냉혹한 고수의 기품’으로 보였다.
“대장님, 이 자객의 시체와 독단검은 저희가 즉시 관아로 이송하겠습니다. 소교주님의 안위를 위해 밤낮으로 고뇌하시는 대장님의 그 숭고한 헌신, 이 김 대장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해라.”
무혁은 차마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욕설을 뱉지 못하고, 극도로 피곤한 음성으로 짧게 답했다. 그 과묵하고 츤데레 같은 태도에 무사들은 다시 한번 감격하며 사독의 시체를 신속하게 수습해 나갔.
침실 한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사르르 떨고 있던 팽지혁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무혁을 향한 맹목적인 신뢰와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형님! 아니, 대장님! 낮에 천장 먼지를 터시던 모습이 실은 이 사독의 기습을 대비한 진식의 조율이었다니…… 제 무지함을 용서하십시오! 이 팽지혁, 오늘부로 형님을 평생의 은인이자 유일한 의형제로 모시겠습니다!”
지혁이 왈칵 눈물을 쏟으며 무혁의 장포 자락을 붙잡으려 하자, 무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한 보 뒤로 물려 피했다. 더러운 망나니의 콧물이 묻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으나, 지혁은 이마저도 ‘공을 내세우지 않는 고결한 고수의 겸양’으로 해석하며 더욱 서럽게 울부짖었다.
무혁은 이 지옥 같은 오해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낙석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번엔 독이다.’
물리적인 함정은 사독 같은 멍청한 외부 자객들이 대신 밟아 망가뜨릴 위험이 너무 컸다. 그렇다면 타겟의 입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치명적인 극독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확실했다.
무혁은 품속에 숨겨둔 살수 주머니를 매만졌다. 그 안에는 만독곡 깊은 곳에서 목숨을 걸고 채굴해 온 백색의 극독, ‘만독곡의 비소 가루’가 들어있었다. 이 가루를 바탕으로 일곱 밤 동안 장기를 서서히 부식시켜 가장 고통스러운 사고사를 유발하는 무색무취의 극독, ‘만독칠야산’을 조제할 생각이었다.
독약을 조제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약재 배합이 가능한 장소와 도구들이 필요했다. 무혁은 팽가 내부에서 합법적으로 약재를 주무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 ‘백년약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깊은 밤, 백년약방 내부에는 매캐하면서도 쌉싸름한 약초 향기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무혁은 약방 구석의 어두운 조명 아래 자리를 잡고, 소매 속에서 조심스럽게 비소 가루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약사발에 가루를 털어 넣은 뒤, 흑철 약절구를 쥐고 은밀하게 갈아내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약절구가 사발 바닥을 긁는 소리가 고요한 약방에 울려 퍼졌다. 무혁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진지했다. 500냥을 받아 남쪽 시골에 따뜻한 온돌방을 들인 만두 가게를 차리겠다는 그의 소박한 꿈이 이 하얀 가루의 정밀한 배합 끝에 걸려 있었다.
그가 독충의 즙을 미량 떨어뜨려 비소 가루와 배합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혁 대장님? 이 깊은 밤에 약방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단아하면서도 맑은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무혁의 전신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는 내력을 은밀히 운기해 약사발 위의 독기를 소매 안으로 빨아들이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얀 의원 도포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은침 통을 허리에 찬 여인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팽가의 약방을 책임지는 천재 의원, 설아였다. 그녀의 맑고 깊은 눈동자가 무혁이 쥐고 있는 약절구와 사발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무혁은 침착하게 기척을 지우며, 겉으로는 한없이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소교주님의 건강을 위해, 개인적으로 비방(秘方)을 조제하던 중이었소.”
설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한 보 다가왔다. 그녀의 예민한 후각이 공기 중에 미세하게 잔존하는 비소의 매캐한 냄새를 잡아낸 것이다.
“음? 그런데 이 약사발에서 풍기는 냄새는…… 일반적인 보약의 성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주 차갑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대장님, 사발 내부의 이 하얀 가루는 대체 무엇입니까?”
설아가 약사발을 직접 들어 분석하려 손을 뻗었다.
무혁의 등 뒤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설아는 신의(神醫)의 경지에 이른 천재 의원이었다. 만약 그녀가 이 가루가 만독곡의 비소 가루라는 것을 알아챈다면, 그의 암살 계획은 물론이고 살수 신분까지 단숨에 폭로될 판이었다.
무혁은 뇌를 풀가동했다. 살수계의 규율을 지키고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고도의 의학적 기만술이 필요했다.
“이것은 만독곡의 차가운 바위 틈새에서 자라는 특수한 광물 가루요.”
무혁은 차가운 음성으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소교주님께서는 평소 만취와 폭식을 일삼아 위장에 극심한 열독(熱毒)이 쌓여 있소. 역류하는 신물과 만성적인 위장 통증은 모두 그 열독 때문이지. 이 차가운 성질의 비소 가루를 극소량 희석하여 위장의 열기를 강제로 눌러 끄려는 것이오. 독으로 독을 다스리는 법이지.”
설아의 손길이 공중에서 멈추었다. 그녀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흔들렸다.
“독으로 독을 다스린다……? 설마, 소교주님의 그 고질적인 위장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극소량의 독초 성분을 희석하는 비법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열이 극에 달하면 차가움으로 다스리고, 독이 극에 달하면 약이 되는 법. 일반적인 의원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비방이지.”
무혁은 일부러 거만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설아를 쏘아보았다. 살의를 머금은 그의 매서운 눈빛은, 설아의 눈에는 ‘의학의 한계를 초월한 절대 고수의 엄숙한 확신’으로 필터링되어 전달되었다.
“아……!”
설아는 깊은 탄성을 지르며 약사발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얼굴에 경외심과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사물의 극에 달하면 반대로 변한다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의학적 극의를 이리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계시다니요! 대장님은 단순한 무인이 아니라, 독과 약의 본질을 꿰뚫어 보시는 진정한 약선(藥仙)이십니다!”
‘아니야, 이 미친 의원 년아…….’
무혁은 속으로 이마를 짚으며 피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냥 저 새끼 내장을 일주일 동안 녹여 죽이려고 비소를 가는 중이라고! 왜 네가 감동을 처먹고 난리인데!’
하지만 설아의 오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열의에 찬 눈빛으로 무혁의 약사발을 다정하게 들여다보며 조언을 건넸다.
“하지만 대장님, 순수한 비소 가루만 사용하시면 그 차가운 독성이 너무 강해 소교주님의 약한 위벽이 먼저 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위를 보호하고 쓴맛을 가려줄 수 있는 따뜻한 성질의 백야봉 약초 가루와 천연 벌꿀 성분을 아주 미량 섞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하면 독성이 완벽하게 조율되어 기적의 위장약이 될 것입니다!”
설아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약방 선반에서 몸에 좋은 귀한 약초 가루들을 가져와 무혁의 약사발에 대뜸 섞어버렸다.
“자, 대장님! 어서 갈아내십시오! 저도 대장님의 이 위대한 약선 비법이 완성되는 순간을 곁에서 돕고 싶습니다!”
무혁은 섞여버린 하얀 가루와 초록색 약초 가루들을 보며 넋이 나갔다.
‘내 치명적인 극독에 왜 몸에 좋은 약초를 섞는 건데…….’
그는 거절하고 싶었으나, 설아의 저 초롱초롱하고 날카로운 의원의 눈빛을 거스르다간 정체가 탄로 날 것이 뻔했다. 결국 무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약절구를 쥐고 설아가 섞어준 약초 가루와 비소 가루를 함께 갈아내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서걱.*
약방의 매캐한 약초 연기와 독기가 섞여 올라오자 무혁의 눈에서 매운 눈물이 찔끔 흘러내렸다. 손가락 끝은 독기를 만지다 보니 저릿하게 마비되는 것 같았고, 마음은 억울함과 인지부조화로 찢어질 것 같았다.
그 눈물을 본 설아는 속으로 더욱 감격했다.
‘아, 무혁 대장님은 소교주님을 구하기 위해 본인의 몸이 독기에 상하는 것조차 개의치 않으시고 눈물을 흘리며 약을 짓고 계시는구나. 이 얼마나 숭고한 충성심인가!’
마침내 약사발 내부의 가루들이 완벽하게 배합되어 미세한 은빛 광택을 내는 백색의 독가루, ‘만독칠야산’이 완성되었다. 설아의 약초 배합 덕분에 냄새는 기가 막히게 향긋하고 달콤해져 있었다.
무혁은 완성된 만독칠야산 가루를 조심스럽게 청동 주전자에 담았다. 이 주전자는 찻물이나 술에 독을 은밀히 희석해 투입하기 위해 그가 특별히 개조한 ‘독약 희석용 청동 주전자’였다.
“대장님, 정말 위대한 비방입니다. 이 약이 소교주님의 만성 위염을 치료하게 된다면, 강호 의학계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설아가 두 손을 모으고 경건하게 말하자, 무혁은 주전자를 소매 속에 숨기며 차갑게 뒤를 돌았다.
“과찬이오. 오늘 밤, 이 비방의 효능을 확실하게 시험해 볼 생각이오.”
그의 음성에는 팽지혁을 기필코 죽이겠다는 서늘한 살의가 가득 실려 있었다. 하지만 설아는 그 차가운 살의를 ‘환자를 기필코 살려내겠다는 신의(神醫)의 비장한 결의’로 받아들이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약방을 걸어 나오는 무혁의 손에는,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치명적인 독주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그때, 장원 정문 쪽에서 칠두가 빗자루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와 무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대장님! 대장님! 방금 청풍루의 정보 거지 진영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소교주님께서 오늘 밤 기루 청풍루에서 경도의 귀빈들과 함께 대규모 술자리를 가지실 예정이랍니다! 어서 호위 채비를 서두르셔야 합니다!”
무혁의 입가에 밤바람보다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청풍루의 술자리라…….’
수많은 취객과 시끄러운 소란 속, 그리고 팽지혁이 만취해 방심하는 바로 그 순간.
그곳이야말로 이 달콤한 만독칠야산 독주를 팽지혁의 목구멍 속으로 쏟아붓기에 가장 완벽한 암살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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