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약이 살린 늪지대의 기적
머리 위로 쏟아지는 새벽녘의 푸른 달빛이 이토록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하북성과 산동성의 경계에 위치한 망자늪. 불과 반각 전까지만 해도 수백 년 동안 쌓인 원혼들의 원령처럼 가득 차 있던 황색의 독안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코끝을 스치는 것은 지독한 유황 냄새가 아니라, 온몸의 기혈을 맑게 깨우는 싱그러운 매화 향기와 달콤한 벌꿀 향이었다.
바닥은 단단했다. 한 번 빠지면 영원히 기어 나올 수 없다던 죽음의 진흙탕은 대리석처럼 단단하고 매끄러운 황토(黃土)로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 위에 대자로 자빠진 강무혁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왜 땅이 굳은 거지?’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는 기분이었다. 무혁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바닥의 흙을 쓸어내렸다. 질척이던 진흙의 감촉은 간데없고, 손끝에 닿는 것은 따스한 온기를 품은 채 보송보송하게 말라 있는 비옥한 황토뿐이었다.
자신의 은퇴 계획, 그러니까 치명적인 독무를 퍼뜨려 스스로 늪 속에 수장당한 것으로 위장하려던 눈물겨운 실종 시나리오는 단 10초 만에 완벽하게 붕괴했다. 독안개가 완전히 걷혀 사방이 대낮처럼 맑아진 초원 한복판에, 검은 야행복을 입은 일류 살수 강무혁의 신형이 너무나도 정직하고 투명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저 멀리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하얀 의원 도포를 휘날리며 늪지대의 정화된 황토밭을 미친 듯이 달려오는 여인이 있었다. 팽가의 천재 의원 설아였다. 그녀의 뒤로는 마구간지기 소년 삼식이 땀 범벅이 된 명마의 고삐를 잡고 눈물을 흘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무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다시 어둠 속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비무의 부작용으로 뒤틀린 허리 근육이 기이한 각도로 굳어지며 척추를 타고 찌릿한 격통을 내뿜었다.
“아으윽……!”
허리를 부여잡고 다시 황토 바닥 위로 풀썩 쓰러지는 무혁의 눈앞으로, 설아의 다급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녀는 무혁의 옆에 무릎을 꿇자마자,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목을 낚아채 맥을 짚었다.
“대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대체 왜 홀로 이런 죽음의 늪으로 뛰어드신 겁니까!”
설아의 눈동자에는 깊은 감격과 애통함이 가득 차 있었다. 무혁은 이를 악물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억울함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갈라진 목소리로 쥐어짜듯 속삭였다.
“독…… 독을…… 버렸을…… 뿐이다…….”
그것은 진짜 본심이었다. 자신은 그저 추격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마지막 남은 극독 만독칠야산 주머니를 늪에 던져 버렸을 뿐이라는, 지극히 정직한 살수의 고백이었다.
그러나 설아의 천재적인 의학적 뇌 필터는 무혁의 이 피맺힌 자백을 상상을 초월하는 깊은 뜻으로 해독해 냈다.
“……독을 버렸을 뿐이라니요?”
설아의 눈동자가 일순간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무혁의 손끝에 묻은 백색 가루의 미세한 잔량을 코끝에 대고 냄새를 맡더니, 이내 깨달음을 얻은 듯 탄성을 질렀.
“아! 대장님! 설마…… 이 늪지대의 천연 황화수소 가스와 유독성 산성 안개를 중화하기 위해, 대장님이 밤새 조제하셨던 그 비방인 ‘만독칠야산’의 성분을 역으로 이용하신 겁니까!”
“……예?”
무혁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붉게 충혈된 눈을 깜빡였다.
설아는 대단한 의학적 발견이라도 한 듯, 자신의 은침을 황토 바닥에 찔러 넣으며 열정적으로 설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망자늪의 독기는 강한 산성을 띠는 유황 성분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대장님이 조제하신 만독칠야산의 비소와 극양(極陽)의 약초 성분들이 물에 녹아드는 순간, 늪의 황 성분을 급속도로 흡착하여 바닥으로 침전시키는 화학적 대폭발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독으로 독을 다스려 무해하게 만든다는 독문의 극의, ‘극독무해화 공식’의 완벽한 실현입니다!”
그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무혁의 흙 묻은 손을 꽉 쥐었다.
“대장님은 자신을 쫓아오던 저희가 이 죽음의 늪지대에 빠져 중독될까 봐, 평생을 바쳐 모으신 그 귀한 비약을 주저 없이 늪에 쏟아부어 땅을 정화하신 거군요! ‘독을 버렸다’ 하신 말씀은, 사악한 독기를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겠다는 대장님의 숭고한 결의였던 것입니다!”
‘아니야, 이 미친 의원 년아! 난 그냥 너희 오지 말라고 쥐약 뿌린 거야!’
무혁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허리의 극심한 통증 때문에 그저 쉭쉭거리는 거친 숨소리로만 새어 나왔다.
그때, 삼식이 명마에서 내려 무혁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소년의 얼굴은 이미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대장님! 저를 용서하십시오! 대장님께서 저희의 안전한 통행로를 개척하기 위해 홀로 독무 속으로 뛰어드신 줄도 모르고, 경솔하게 추격하여 대장님의 기력을 소모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삼식, 대장님의 저 장엄한 수호 의지 앞에 평생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삼식이 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어대자, 정화된 황토 바닥이 기분 좋은 맑은 소리를 내며 울렸다.
무혁은 허망한 눈빛으로 자신의 텅 빈 가죽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일곱 밤 동안 장기를 부식시켜 가장 고통스러운 사고사를 유발한다던 나의 자랑스러운 만독칠야산. 밤낮으로 유독 가스를 마셔가며 지문이 닳아 없어지도록 정밀하게 조제했던 살수 인생 최고의 걸작이, 지금 이 순간 제국의 국경을 기름지게 만드는 최고급 친환경 농사용 비료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살수로서의 자존심에 대한 지독한 모욕이었고, 우주가 자신을 향해 던지는 가장 잔인한 비웃음이었다.
‘내가 품은 살의가 강할수록 왜곡 보정이 일어난다는 천도의 저주가…… 기어코 내 독약마저 대지의 영양분으로 세탁해 버렸구나.’
무혁의 머리 뒤로 보이지 않는 천도의 푸른 인과율 실선들이 비웃듯이 은은하게 일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무혁의 옆에서 굳어버린 황토의 성분을 분석하던 설아가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아앗! 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무혁이 누워 있던 자리 바로 옆, 황토의 틈새였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맑게 정화된 지하 영맥의 기운을 받아 순식간에 진흙을 뚫고 솟아오른 은은한 황금빛 줄기가 자라나고 있었다. 다섯 개의 잎사귀가 부채처럼 펼쳐진 채, 영롱한 신광(神光)을 뿜어내는 신비로운 약초.
“이, 이것은…… 만년삼(萬年參)의 줄기가 아닙니까! 천년에 한 번 피어난다는 전설의 영약이, 대장님이 정화하신 이 황금빛 황토의 영양분을 먹고 대지 위로 싹을 틔운 것입니다!”
설아는 조심스럽게 흙을 파내어 붉은 뿌리의 끝부분을 들어 올렸다. 은은한 영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무혁의 코끝을 찔렀.
“대장님! 대장님은 단순히 저희를 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죽음의 늪지대를 천하 최고의 약초 재배지이자 황금의 땅으로 개간하신 것입니다! 이제 하북의 백성들은 대장님을 영원히 풍요를 가져다준 ‘농신(農神)’으로 모시며 사당을 짓게 될 것입니다!”
설아가 눈부시게 빛나는 천년삼의 줄기를 무혁의 코앞에 들이밀며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
그 눈부신 황금빛 영약을 바라보는 강무혁의 충혈된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머리 뒤를 강타하는 극심한 현타와 요통 속에서, 그는 자신이 평생 동안 조용히 만두를 빚으며 은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예감에 휩싸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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