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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의 늪, 망자늪으로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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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마차의 진동이 등뼈를 타고 뇌수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황실 비전의 방어 결계가 사방에 쳐진 초호화 황금 마차 내부. 비단 시트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강무혁은 이마를 짚은 채 신음을 흘렸다.


“으윽…….”


허리와 골반을 강타하는 요통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전날 밤, 팽가 장원에서 벌어졌던 그 지옥 같은 대소동의 흔적이었다. 기산선생의 서재에서 날아오는 혈린교 밀정의 무음 독침들을 피하기 위해 몸을 기괴하게 이리저리 꺾었던 대가는 혹독했다. 하지만 무혁의 머릿속은 육체적 통증 따위보다 훨씬 더 거대한 위기감으로 터질 것 같았다.


‘이대로 경도(Capital)에 도착하는 순간, 내 살수 인생은 영구히 종말이다.’


창밖을 보니 마차는 이미 하북성의 북쪽 경계를 넘어 산동성과의 접경지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황실 수석 경호원 겸 어의라는 번지르르한 쇠사슬에 묶여 평생 황태자 이환의 노예로 썩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사신 조태강의 감시망을 뚫고 도망쳐야 했다.


그때, 마차 창문 너머로 기괴하고 음산한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기괴한 고목들, 그리고 그 사이를 가득 메운 짙은 황색의 안개. 코를 찌르는 지독한 유황 냄새가 마차의 미세한 틈새를 뚫고 들어왔다.


하북성 최악의 금지구역이자, 한 번 발을 들이면 뼈도 추리지 못한다는 죽음의 늪.


‘망자늪(亡者沼)이다.’


무혁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번뜩였다. 일반 무인들이라면 기겁을 하며 피해 갈 독안개의 늪이었지만, 그에게는 이보다 더 완벽한 도주로가 없었다. 만독곡의 온갖 독초를 처먹고 ‘만독불침의 성체’를 완성한 그에게 늪의 독가스 따위는 상쾌한 아침 공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면, 황실 수비대원들은 그가 중독되어 비참하게 수장당했다고 믿을 터였다. 완벽한 ‘위장 사망’ 시나리오였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무혁은 전신의 내력을 끌어올려 뒤틀린 허리 근육을 강제로 고정했다. 욱신거리는 격통이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는 소매 속에서 살수 시절 쓰던 미세한 해체용 강선을 꺼내 마차 문고리 안쪽의 복잡한 황실 방어 결계 장치 틈새로 밀어 넣었다.


지리릭, 째깍.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결계의 흐름이 일시적으로 뒤틀렸다. 흑월루 은패 살수로서 다져진 정교한 기계 해체술 앞에서는 황실의 결계 마차도 결국 쇠붙이에 불과했다.


철컥.


문고리가 풀리는 가벼운 소리와 동시에, 무혁은 망설임 없이 마차 문을 열고 몸을 던졌다. 그의 신형이 낙엽처럼 가볍게 허공을 날아 늪지대의 초입으로 미끄러져 들어갔.


“흑야보법(黑夜疾風步)!”


바람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고 빠른 신법이 전개되었다. 무혁은 발끝에 내력을 집중해 마찰 소음을 완벽히 지우며, 늪지대 특유의 썩은 고목 둥치들을 딛고 소리 없이 날아올랐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 잔상만을 남긴 채, 그의 신형은 순식간에 짙은 황색 독안개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러나 탈출의 기쁨은 단 3초를 가지 못했다.


“대장님————!!!”


저 멀리 뒤편에서 고막이 찢어질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마구간지기 소년 삼식의 목소리였다.


“적의 기습이다! 대장님께서 적의 침투 경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홀로 망자늪의 독안개 속으로 몸을 던지셨다! 전원, 대장님을 엄호하라!”


“뭐, 뭐라고?!”


무혁은 하마터면 발을 헛디뎌 썩은 진흙탕에 처박힐 뻔했다. 뒤를 돌아보니, 삼식이 밤낮으로 대기시켜 두었던 가문 최고의 명마의 고삐를 당기며 늪지대 초입을 향해 폭풍처럼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 뒤로는 하얀 의원 도포를 펄럭이는 설아가 은침 주머니를 거머쥔 채 날렵한 경공으로 쫓아오고 있었다.


‘이 미친 새끼들아! 정찰 아니라고! 난 도망치는 거라고!’


무혁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흑야보법의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삼식이 조련한 명마는 늪지대의 험난한 지형 속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빠른 기동력을 자랑하며 무혁의 등 뒤를 바짝 추격해 왔다. 설아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품속에서 신비한 약초 탐지 은침을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슝! 슝!


은침들이 공기 중에 남아있는 무혁의 체취와 미세한 독기 성분을 정밀하게 분석하며, 황색 안개 속에서도 그의 이동 경로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천재 의원다운 귀신같은 추적술이었다.


‘젠장, 끈질기게 쫓아오는군. 이대로 가다간 독안개가 옅은 구역에서 덜미를 잡히고 말 것이다.’


무혁은 추격자들을 강제로 멈춰 세울 극단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그들이 감히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하도록, 늪지대의 독성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강화해야 했다.


그는 품속을 뒤적여 마지막 남은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은빛 광택이 도는 미세한 가루가 담긴 가죽 주머니. 바로 일곱 밤 동안 장기를 부식시켜 죽이는 그의 비전 극독, ‘만독칠야산(萬毒七夜散)’의 마지막 실패작 잔량이었다.


‘이 독가루를 늪지대의 유독한 안개 속에 뿌려버리겠다. 치명적인 마비 가스가 사방으로 퍼지면, 제아무리 천재 의원이라 해도 감히 한 걸음도 더 들어오지 못하겠지!’


무혁은 차갑고 음산한 살수 특유의 이채를 번뜩이며, 늪지대 중앙의 거대한 황토 진흙 구덩이를 향해 가죽 주머니를 통째로 터뜨려 살포했다.


“받아라! 지옥의 독무를!”


쉬이이이익!


은빛 가루가 허공으로 비산하며 황색의 안개와 뒤섞였다. 무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마비 가스가 폭발적으로 퍼져나가 그들의 시야를 완벽히 차단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우주의 거대한 천도 억까 시스템은, 그의 이 사악한 살의를 고스란히 정화의 촉매로 뒤틀어버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파아아앗————!!!


만독칠야산의 독약 분자가 늪지대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던 천연 황화수소 가스 및 유독성 황 안개와 충돌하는 순간, 기이한 물리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독성이 증폭되기는커녕, 은빛 가루가 황색 가스의 황 성분을 급속도로 흡착하여 바닥으로 침전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극독과 천연 독소가 만나 서로를 완벽하게 상쇄하는, 기적의 ‘극독무해화 공식’의 대폭발이었다.


쿠구구구궁!


지하 영맥이 진동하며, 검은 늪지대 한복판에서 눈부신 은색 신광이 뿜어져 나왔다. 상상을 초월하는 상쾌하고 상큼한 매화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수백 년 동안 망자늪을 지배하던 황색의 독안개가 순식간에 걷히기 시작했다.


“……어?”


무혁은 허공에 뜬 채 멍하니 입을 벌렸다.


눈앞의 풍경은 실시간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썩은 냄새를 풍기던 검은 진흙탕이 물이 빠지며 단단하고 비옥한 황토(黃土)로 빠르게 굳어갔고, 독안개가 완전히 사라진 자리에는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늪지대 바닥에서 푸른 풀잎들이 무서운 속도로 싹을 틔우며, 죽음의 금지구역이 단 10초 만에 아름답고 평화로운 초원으로 개간되고 있었다.


‘왜 안개가 개는 건데……? 왜 땅이 굳는 거냐고 이 미친 저주받은 세상아!’


무혁은 기가 막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이 독에 중독되어 수장당한 척하기 위해, 단단해져 가는 진흙 바닥으로 몸을 던져 허우적거리는 연기를 펼치려 했다.


스슥, 쿵!


그러나 이미 완벽하게 정화된 황토 바닥은 대리석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몸을 던진 무혁은 진흙에 빠지기는커녕, 맑고 푸른 초원 한복판의 맨땅 위에 아주 늠름하고 당당하게 대자로 자빠진 꼴이 되고 말았다.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상쾌한 매화 향기 속에서, 독안개가 완전히 걷혀 대낮처럼 밝아진 초원 한복판에 검은 야행복을 입은 강무혁의 위치가 너무나 투명하고 완벽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저 멀리 숲속에서 추적을 포기하려던 설아와 삼식이 정화된 초원을 바라보며 굳어버렸고, 이내 초원 한복판에 누워 있는 무혁을 발견하고는 감격에 겨운 얼굴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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