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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밤의 고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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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밤은 고요했으나, 호위무사 별채의 내부만큼은 폭풍 전야의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강무혁은 침상 위에 야반도주용 짐보따리를 내려놓으며 깊은 신음을 내뱉었다. 허리에서부터 골반까지 찌릿하게 타고 올라오는 요통 때문이었다. 전날 밤, 기산선생의 처소에서 날아오는 무음 독침을 피하기 위해 몸을 기괴하게 꺾었던 부작용이 이제야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일류 살수로서 뼈를 깎는 훈련을 버텨왔던 그였지만, 우주의 온갖 기이한 억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누적된 육체적 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아으으…….”


무혁은 허리를 짚으며 침상에 간신히 걸터앉았다. 그의 품속에는 가주 팽자천이 하사한 일만 냥짜리 수표와, 팽지혁이 눈물을 흘리며 건넨 백옥 은장도가 묵직하게 들어있었다. 남들은 천하를 뒤흔드는 대가문의 태상호법 후보이자 황실의 구세주라며 그를 우러러보았지만, 무혁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단 하나의 갈망은 변하지 않았다.


‘만두 가게…… 따뜻한 남쪽 시골에 온돌방을 들이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고기만두를 빚으며 조용히 은퇴하는 것.’


그 소박한 꿈을 위해 필요한 은퇴 자금은 오직 오백 냥이었다. 그 하찮은 오백 냥을 벌기 위해 수락했던 소교주 암살 의뢰가 천도의 지독한 저주와 얽히며 이 지경까지 꼬여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일 아침이면 황실에서 보낸 화려한 황금 마차에 강제로 태워져 경도로 압송당할 터였다. 황궁이라는 더 거대하고 삼엄한 감시망에 갇히기 전, 탈출할 기회는 오직 오늘 밤 삼경뿐이었다.


“하지만 그냥 도망치면 팽가와 황실이 온 천하에 추격령을 내리겠지.”


무혁은 충혈된 눈을 번뜩이며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가문에서 완벽하게 파직당하고, 더 나아가 팽가가 자신을 추적하기 위해 살수들을 보내게 만들 기막힌 묘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밝히는 ‘자폭성 고백록’을 남기는 것이었다.


무혁은 책상 위에 하얀 서화지를 펼치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검은 먹물이 벼루 위에서 소리 없이 개어질 때마다, 그의 눈빛은 일류 살수로서의 서늘한 살기로 가득 찼다. 그는 붓을 쥐고, 한 자 한 자 영혼을 담아 차갑고 엄숙하게 고백 편지를 써 내려갔다.


[팽지혁 보아라.

나는 네가 믿고 의지하던 의형제 강무혁이 아니다. 내 진짜 정체는 천하제일의 암살 길드, 흑월루의 은패 살수다.

처음부터 나는 너의 목숨을 앗아 가기 위해 이 가문에 위장 잠입했다.


네 침실 천장에 설치해 두었던 낙석은 사실 자객 사독이 아니라 너의 머리를 깨부수기 위해 내가 설치해 둔 살인 덫이었다.

청풍루에서 대접했던 백화꿀 차에 들어있던 무색무취의 가루 역시 너의 만성 위염을 치료하기 위한 영약이 아니라, 일주일 동안 장기를 부식시켜 죽이려 했던 치명적인 극독 만독칠야산이었다.


너를 구했던 모든 기적은 오직 기막힌 우연이 만들어낸 끔찍한 오해일 뿐이다. 나는 단 한 순간도 너를 수호하려 한 적이 없으며, 오직 너의 심장에 비수를 꽂기 위해 살의를 불태웠을 뿐이다.


이제 내 정체를 알았으니, 당장 가문의 무사들을 풀어 나를 추적해라. 기필코 나를 찾아내어 목을 베려 들란 말이다.]


글을 마친 무혁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단단히 접었다. 완벽했다. 이 편지를 읽는 순간, 팽지혁은 배신감에 피를 토할 것이고, 가주 팽자천은 대성통곡을 하며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신을 죽이려 살수들을 파견할 터였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황실 경호원 임명은 무산될 것이고, 자신은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남쪽으로 도망쳐 완벽하게 신분을 세탁할 수 있었다.


무혁은 편지를 품에 품고, 기척차단술(氣岾遮斷術)을 극성으로 전개하며 별채를 빠져나갔다. 그의 신형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아지랑이처럼 소리 없이 흔들리더니, 이내 팽지혁의 침실이 있는 서편 전각으로 향했다.


***


깊은 밤 삼경(오전 12시~2시 사이), 팽지혁의 침실 내부는 은은한 촛불만이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지혁은 낮의 소동과 수면제 기운에 취해 침대 위에서 깊은 단잠에 빠져 있었다.


스스슥.


문틈을 타고 소리 없이 스며든 무혁은, 깊이 잠든 팽지혁의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뱃속의 모든 독소와 위염이 완치되어 뽀얗고 건강한 안색으로 코를 골고 있는 타겟의 모습을 보니, 가슴속 깊은 곳에서 다시금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죽이고 싶었다, 진심으로…….’


무혁은 마음속 살의를 억누르며, 품속에서 접어둔 고백 편지를 꺼내 팽지혁의 머리맡 탁자 정중앙에 정중하게 올려두었다. 촛대 바로 옆이었으니, 내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보게 될 터였다.


“잘 있거라, 못난 아우야. 다시는 보지 말자.”


무혁은 속삭이듯 나직하게 읊조린 뒤, 창문을 열고 바람처럼 소리 없이 밖으로 빠져나갔.


이제 남은 것은 가문 장원을 탈출하는 일뿐이었다. 무혁은 짐보따리를 어깨에 고쳐 매고 후원 담벼락을 향해 신속하게 기동했다. 그러나 장원 외곽에 도달한 순간, 무혁은 수풀 뒤에 숨어 눈을 크게 떴다.


“대장님의 안전을 위해 한 치의 경계도 늦추지 마라!”


새로 팽가의 사설 경비대로 자원 입대한 흑호방 단원 수십 명이 횃불을 밝힌 채 담벼락 주변을 촘촘하게 순찰하고 있었다. 무혁이 도망치려 했던 뒷문 근처에는 심지어 멧돼지 같은 덩치의 흑살마웅이 버티고 서서 “대장님의 마지막 밤을 철통같이 수호해야 한다!”며 부하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미친 뒷골목 양아치 새끼들, 왜 이렇게 충성스러운 건데!’


무혁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발걸음을 돌렸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요통 때문에 높은 담벼락을 단숨에 뛰어넘는 경공을 펼치기도 무리였다.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도주로는, 과거 밤마다 눈물겹게 파놓았던 담벼락 밑의 좁고 축축한 개구멍뿐이었다.


무혁은 바닥에 바짝 엎드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개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가문 최고의 호위무사라는 자가 도둑처럼 기어 나가는 꼴이 처량하기 짝이 없었으나, 은퇴를 향한 그의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흙더미를 헤치며 마침내 장원 밖 대나무 숲으로 빠져나온 무혁은, 어둠 속에서 옷을 털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탈출 성공이다. 이제 내일 아침 편지가 읽히면 모든 상황은 끝난다.’


***


그러나 무혁이 장원을 빠져나간 직후, 팽지혁의 침실 내부에서 인과율의 보이지 않는 푸른 실선들이 은은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스락.


침대 밑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누런 털을 가진 사냥개 ‘덕구’가 소리 없이 고개를 내밀었다. 과거 무혁이 자신을 독살하려 버렸던 쥐약 만두를 주워 먹고 기생충이 완치된 이래, 덕구는 영물급 후각과 비정상적으로 명석한 두뇌를 가지게 된 기이한 사냥개였다.


덕구는 코를 킁킁거리며 방 안의 냄새를 맡았다. 공기 중에 아주 미세하지만, 자신을 치료해 준 은인이자 진짜 주인이라 믿고 있는 강무혁의 체취가 묻어 있었다. 덕구는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왔다.


킁, 킁.


덕구의 예민한 후각이 촛대 옆 탁자 위에 놓인 하얀 종이 편지를 향했다.


편지지 표면에는 무혁이 편지를 쓸 때 손끝에 묻어 있던 미세한 돼지고기 만두 기름 냄새와 밀가루 가루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만두 가게 창업에 집착하던 무혁이 밤마다 만두 모형을 깎고 빚던 손으로 편지를 만졌기 때문이었다.


덕구에게 그것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맛있는 ‘고기만두 향기가 나는 특급 간식’이었다.


“헥, 헥…….”


덕구는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탁자 위로 앞발을 올렸다. 그리고 이빨을 드러내어 무혁이 평생의 살의를 담아 작성한 고백 편지를 덥석 물어 내렸다.


서걱! 쩝쩝!


덕구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편지지를 맛있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거친 이빨이 종이를 갈갈이 찢어발겼고, 입안에서 흘러나온 흥건한 침이 서화지 위에 쓰인 먹물들을 사정없이 흐려놓았다.


기묘하게도, 덕구의 이빨은 편지지의 가장 무섭고 사악한 단어들만을 골라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나는 흑월루의 살수 강무혁이 아니다. 내 진짜 정체는……] 부분은 덕구의 침에 젖어 완벽하게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검은 얼룩으로 변해버렸다.


[너를 죽이기 위해 이 가문에 위장 잠입했다]에서 ‘너를 죽이기 위해’와 ‘위장 잠입’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은 덕구의 목구멍 속으로 맛있게 넘어가 버렸다.


[낙석은 사실 너의 머리를 깨부수기 위해 내가 설치해 둔 살인 덫이었다]와 [극독 만독칠야산]이라는 문장 역시, 덕구가 앞발로 종이를 박박 긁어 찢어발기는 과정에서 허공으로 날아가 조각조각 분쇄당했다.


결국, 덕구의 엄청난 식탐과 침 흘리기 공작이 끝난 뒤, 탁자 아래 바닥에는 춤을 추듯 찢어지고 훼손된 편지지의 아주 일부분만이 기적적으로 남게 되었다.


침에 젖어 흐려진 먹물 자국과 찢겨 나간 종이 조각들의 경계선이 교묘하게 맞물리며, 남아있는 문장들은 원래의 사악한 살의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오직 장엄하고도 눈물겨운 하나의 문장만이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었다.


[나는…… 평생…… 팽지혁을 위해…… 목숨을 바쳐…… 수호하겠다…….]


덕구는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듯 트림을 한 번 내뱉고는, 침 묻은 편지 조각 옆에 엎드려 꼬리를 바닥에 툭툭 치며 잠을 청했다.


고요한 침실 내부, 촛불이 일렁이며 바닥에 남겨진 기적의 ‘충성 유서’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하북성 경계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을 도망자 강무혁의 머리 위로, 우주의 거대한 천도 억까 시스템이 비웃듯이 푸른 실선을 번뜩이는 밤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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