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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을 돕는 보디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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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그랑! 테라스의 거대한 유리창이 박살 나며 침실의 공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비산하는 유리 파편들이 달빛을 받아 은빛 은하수처럼 휘날리는 복판에서, 진짜 자객 철호와 가짜 자객 강무희가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비수를 겨눈 채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병풍 뒤 어둠 속에서 야반도주용 짐보따리를 등에 멘 채 숨어 있던 강무혁은 머리 뒤로 식은땀이 차갑게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허리와 골반에서는 전날 비무의 여파로 생긴 극심한 요통이 찌릿찌릿한 통증을 유발하며 그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었다.


‘아니, 왜 진짜 자객이 이 타이밍에 여기서 튀어나오는 거냐고!’


무혁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그의 계획은 완벽했었다. 여동생 무희가 사파 자객으로 위장해 소교주 팽지혁을 ‘가짜 납치’하고, 자신은 호위 실패의 책임을 지고 가문에서 평화롭게 파직당해 쫓겨나는 것. 그리하여 은퇴 자금 오백 냥을 챙겨 남쪽 시골로 내려가 평화롭게 만두 가게를 차리는 것.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철호 일당은 혈린교의 사주를 받은 진짜배기 살수들이었다. 저 무식한 놈들이 팽지혁을 진짜로 데려가 가문을 멸문시키거나 해를 가한다면, 가문의 수호신으로 묶여 있는 자신 역시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게다가 팽지혁을 합법적으로(?) 죽이거나 빼돌리는 것은 오직 자신과 무희의 몫이어야 했다.


“이 비열한 팽가의 개새끼들! 자객을 미리 매복시켜 우리를 낚으려 하다니!”


철호가 살기를 폭발시키며 도검을 휘둘렀다. 검은 장포를 휘날리며 그가 노린 것은 팽지혁의 침대 옆에 서 있던 무희였다. 진짜 자객의 무시무시한 내공이 실린 도검이 허공을 가르며 무희의 어깨를 향해 사납게 쇄도했다.


“흥, 감히 누구 앞에서 칼을 휘두르는 거냐?”


무희 역시 살수 가문의 자존심이 발동했는지, 소매 속에서 수십 자루의 암영비도를 꺼내 들며 철호의 도검을 맞받아쳤다.


캉! 카아앙!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치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두 사람의 격렬한 비무로 인해 침실 내부의 가구들이 산산조각 나며 엄청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병풍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무혁은 대가리가 깨질 것 같은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


‘무희야! 제발 그만 싸워라! 저 자객 놈들이 팽지혁을 포대자루에 담아 빨리 도망쳐야 내가 파직을 당하든 쫓겨나든 할 것 아니냐! 왜 진짜 자객이랑 목숨 걸고 비무를 벌이고 있는 건데!’


이대로 소란이 커지면 장원 전체의 호위무사들이 들이닥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면 납치극은커녕 또다시 ‘침실에서 자객을 격퇴한 수석 호위무사’로 칭송받으며 평생 황실 경호 노예로 썩어야 할 판이었다.


무혁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진짜 자객 철호 일당이 팽지혁을 무사히 ‘보쌈’해서 도망칠 수 있도록, 자신이 직접 나서서 가문의 호위무사들을 교란하고 자객들의 도주를 도와야만 했다.


‘그래, 자객을 돕는 보디가드가 되는 거다! 저놈들이 지혁이를 데리고 장원 밖으로 나갈 수 있게 길을 열어주마!’


무혁은 뻣뻣하게 굳은 허리를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소매 속을 뒤적였다. 그의 손끝에 닿은 것은 지난번 백년약방에서 독약을 조제하다 남은 실패작 가루들을 뭉쳐 만든 개인용 ‘불량 연막탄’이었다. 원래는 자신이 도망칠 때 시야를 가리기 위해 만든 물건이었으나, 지금 진짜 자객들의 도주를 돕기 위한 교란용으로 쓰기에 가장 완벽한 도구였다.


무혁은 기척을 숨긴 채, 비무에 열중하고 있는 철호와 무희의 발끝을 향해 연막탄을 힘껏 던졌다.


툭. 콰아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연막탄이 터졌다. 하지만 무혁이 미처 계산하지 못한 치명적인 변수가 있었다. 그가 던진 연막탄은 평범한 연기를 뿜는 물건이 아니었다. 만독칠야산(萬毒七夜針)의 독약 성분 조제 실패작과 온갖 유독한 독초 가루가 배합된, 그야말로 마비성과 최루성이 극대화된 ‘지옥의 가스탄’이었던 것이다.


쉬이이이익————!


순식간에 침실 내부가 짙은 은색과 녹색이 뒤섞인 기이한 독연개로 가득 찼다. 연기가 퍼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컥! 이, 이 연기는……!”


무희와 격돌하던 철호가 갑자기 목을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연막탄에서 뿜어져 나온 유독 가스가 그의 호흡기로 가차 없이 침투한 것이다. 철호뿐만이 아니었다. 테라스 창문 틈새로 대기하고 있던 그의 부하 자객 세 명 역시 연기를 들이마시는 즉시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기, 기혈이…… 잠긴다……! 으윽!”


철호는 온몸의 내공이 동결되는 듯한 극심한 마비 증세를 느끼며 거구를 지탱하지 못하고 침대 옆 바닥으로 쿵 하고 쓰러졌다. 그의 부하들 역시 단 한 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줄줄이 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렸다.


무희는 오빠가 던진 연막탄의 궤적을 미리 눈치채고 본능적으로 소매로 코와 입을 막은 채 창문 밖으로 몸을 던져 탈출했다.


침실 내부의 연기가 조금씩 가라앉자, 방 안에는 오직 우렁차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팽지혁과, 그 옆에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진짜 자객 철호 일당만이 남았다. 팽지혁은 무혁이 먹인 마취제 덕분에 깊은 수면 상태였던 데다, 무혁이 미리 덮어씌워 둔 두꺼운 비단 이불이 유독 가스를 완벽하게 차단해 준 덕분에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했다.


병풍 뒤에서 기척을 지우고 있던 무혁은 텅 빈 주전자를 든 채 완전히 돌처럼 굳어버렸다.


‘……아니, 왜 너희가 쓰러지는 건데?!’


무혁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진 철호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 진짜 자객들이 소교주를 납치해 가야 자신이 파직당하는데, 도주를 돕겠다고 던진 연막탄이 자객들을 한 번에 몰살시켜 버린 것이다.


그때, 장원 저편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횃불의 불빛들이 침실 창문을 비추기 시작했다.


“대장님! 침실에서 폭음이 들렸습니다! 자객의 습격입니다!”


호위 1조 조장 김 대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무혁은 극심한 요통을 참아가며 필사적으로 두뇌를 회전시켰다. 이대로 무사들이 방 안으로 들이닥치면 모든 상황이 들통난다. 기절한 자객들을 어떻게든 방 밖으로 내보내거나, 최소한 자신이 자객들을 잡은 것이 아니라는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 아직 기회가 있어! 이 침실로 연결되는 안마당의 철문을 걸어 잠그는 거다! 문을 잠그면 무사들이 들어오는 시간이 지체될 테니, 그사이에 이 기절한 자객 놈들을 담벼락 너머로 던져버려 납치극을 완성하면 돼!’


무혁은 신형을 날려 침실 밖 안마당으로 뛰어내렸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은퇴를 향한 집념이 고통을 이겨냈다. 그는 안마당의 거대한 철문 앞으로 달려가, 벽에 걸려 있던 굵은 쇠사슬을 가져와 문고리를 단단히 감아쥐고 자물쇠를 채워버렸다.


철컥! 철커덕!


“오오, 문을 완전히 잠갔다! 이제 무사들은 이 안마당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고, 나는 시간을 벌 수 있어!”


무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의 뇌리를 다시 한번 하얗게 탈색시켰다.


안마당 한구석에는 기절한 철호 일당이 오물 더미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는…… 무혁이 오늘 낮에 가문에서 탈출할 때 추격자들을 걸러내기 위해 정원 나무와 석등 사이에 촘촘하게 쳐두었던 보이지 않는 암살 실선, ‘흑랑와이어’가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혁이 자객들의 도주로를 열어주기 위해 철문을 잠근 행동은, 역으로 기절한 자객들을 이 좁은 안마당 내부에 완벽하게 가두어버리는 대참사를 낳았다. 게다가 자객들이 쓰러진 위치는 정확히 무혁이 쳐놓은 흑랑와이어 장막의 한복판이었다.


사방이 꽉 막힌 철문과, 그 안에 갇힌 기절한 자객들, 그리고 그들을 그물처럼 둘러싸고 있는 은빛 와이어 장막.


그것은 누가 봐도 고도의 진법가가 설계한 완벽한 ‘가두리 양식 포획 진식’의 형국이었다.


“대장님! 문이 잠겨 있습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철문 밖에서 김 대장과 수십 명의 호위무사들이 횃불을 든 채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철문을 부수어라! 대장님과 소교주님을 구해야 한다!”


쾅! 쾅! 우지끈!


무사들의 거친 내력이 실린 도검과 어깨가 철문을 강타하자, 무혁이 채워둔 자물쇠가 부서지며 거대한 철문이 양옆으로 활짝 열렸다.


안마당 내부로 수십 자루의 횃불 불빛이 폭풍처럼 들이쳤다. 자욱한 은색 연막이 바람을 타고 밖으로 흘러나가는 복판에서, 김 대장과 호위무사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들의 눈앞에는, 오물 가루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짐보따리를 등에 멘 강무혁이 차갑고 서늘한 표정(계획이 망가져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으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아래에는, 혈린교의 악명 높은 자객 철호와 단원들이 거품을 문 채 흑랑와이어 장막에 옭아매어져 굴비 엮이듯 기절해 있었다.


김 대장의 눈동자가 경악과 감격으로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이것은……!”


김 대장은 무릎을 꿇으며 울부짖었다.


“적들의 침투 경로를 미리 간파하시고, 일부러 침실에 연막을 피워 시야를 가린 뒤, 철문을 잠가 적들의 퇴로를 완벽히 차단하고, 보이지 않는 은빛 실선으로 옭아매어 생포하신…… 천재적인 ‘가두리 양식 호위 전술’이 아니십니까! 대장님! 진정 가문의 신이십니다!”


무혁은 자신을 연호하는 무사들의 함성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향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니라고, 이 멍청한 자식들아! 난 저놈들을 도망치게 도와주려 한 거란 말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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