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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이 찾아낸 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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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 째깍, 째깍.


침묵을 깨는 불길한 기계음이 강무혁의 귓가를 차갑게 파고들었다.


하북팽가 본저의 동편, 수석 호위무사에게 특별히 하사된 호화로운 별채의 침실 안. 무혁은 자신의 처소 침상 위에서 기산선생의 방으로부터 훔쳐온 붉은 비단 보물 상자를 열어젖힌 채 그대로 돌처럼 굳어 있었다.


원래 계획은 완벽했다. 스스로 탐욕스러운 악당이 되어 가문의 귀빈인 유학의 거두 기산선생의 보물 상자를 대낮에 대놓고 훔치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다. 그리하여 가주 팽자천의 분노를 유발해 수석 호위무사 직위에서 불명예스럽게 파직당하고 장원 밖으로 쫓겨난다. 그것이 무혁이 설계한, 황실 사신이 도착하기 전 하북팽가를 탈출할 유일무이한 은퇴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열려버린 상자 내부를 마주한 순간, 무혁의 뇌리는 하얗게 탈색되었다.


상자 안쪽 벽면에는 붉은색 마기가 서린 기이한 혈린교의 비밀 표식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표식 아래로 수십 개의 정교한 톱니바퀴와 은빛으로 빛나는 시한식 독침 격발 장치가 째깍거리며 최후의 격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왜 유학자의 보물 상자에서 마교의 암살 장치가 튀어나오는 거냐고, 이 미친 우주의 억까 시스템아!’


무혁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천도(Heavenly Dao)의 보이지 않는 신성한 농간에 치를 떨었다. 그가 품은 사악한 살의와 범죄 공작을 강제로 정화하여 세상을 구하는 기적으로 치환해 버리는 이 지긋지긋한 저주가, 이번에는 절도 행각마저 대형 테러 예방 공작으로 세탁하려 시동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들의 오해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째깍거리는 태엽의 속도로 보아, 앞으로 단 10초 뒤면 상자 내부에 장전된 수십 발의 치명적인 독침이 사방으로 폭발하듯 격발될 터였다.


이 독침의 정체는 흑월루 살수 시절 교육받았던 혈린교의 비전 암기, ‘혈우칠야침(血雨七夜針)’이 분명했다. 한 번 격발되면 반경 10보 이내의 모든 생명체의 기혈을 녹여버리는 유독성 연기와 독침 폭풍이 몰아친다. 만약 이 방에서 이것이 터진다면, 무혁의 처소는 물론이고 별채 전체가 오염되어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판이었다. 게다가 살수계의 제1철칙인 ‘무고한 가솔들을 다치게 하지 말라’는 규율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해체해야 한다. 내 손으로 직접!’


무혁의 일류 살수(은패)로서의 본능이 매섭게 깨어났다. 정종 무공의 화려한 강기를 내뿜으며 상자를 통째로 박살 내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미세한 충격만으로도 독침이 사방으로 비산할 터였기에, 철저히 물리적인 해체 기술만을 사용해야 했다.


스사삿!


무혁은 소매 속에서 흑철 단검을 꺼내 자물쇠 틈새의 미세한 구리 판막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극도로 미세하게 움직이며, 격발 장치의 메인 태엽 스프링을 누르고 있는 걸쇠를 찾아 들어갔다.


째깍, 째깍. 태엽이 돌아가는 진동이 단검의 칼날을 타고 그의 손목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려 붉게 충혈된 눈가로 스며들었지만, 무혁은 안구건조증의 통증마저 잊은 채 기계 장치의 중심부를 노려보았다.


‘왼쪽 톱니를 고정하고, 아래쪽 판막을 반 치만 들어 올리면…….’


그러나 천도의 억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전날 밤, 팽지혁을 죽이기 위해 정원에 정교한 가시 그물망과 와이어를 매설하느라 무혁의 검지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찢어지고 닳아 지문이 닳아 없어진 상태였다.


그 미세한 육체적 마모가 결정적인 순간에 화근이 되었다.


찌릿!


손가락 끝의 상처가 따끔거리며 기혈이 순간적으로 뒤틀렸다. 찰나의 순간, 단검 끝이 구리 실선 옆의 낡은 철제 고정 핀을 툭 건드리고 말았다.


탁.


“……망했다.”


무혁의 입술 사이로 절망적인 단마디가 새어 나옴과 동시에, 상자 내부의 태엽이 무서운 속도로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스르르르릉! 콰콰쾅!


장전되어 있던 수십 발의 검은 독침들이 사방을 향해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무혁에게는 기공 방어막인 호신강기가 없었다. 오직 일류 살수로서 다져진 극한의 신체 유연성과 회피술만이 유일한 방패였다.


“흐읍!”


무혁은 본능적으로 흑야보법을 역으로 전개하며 몸을 기괴하게 비틀었다.


파파파파팍!


서늘한 파공음과 함께 검은 독침들이 무혁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침상 벽면과 기둥에 무수히 박혀 들어갔다. 무혁은 날아오는 독침의 궤적을 억지로 피하기 위해 전신을 종이접기처럼 구부렸다.


척추를 뒤로 90도 꺾어 활처럼 몸을 젖히는 순간, 코끝을 스치며 독침 세 발이 허공을 갈랐다. 이어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뒹굴며 책상 다리를 걷어차 쓰러뜨렸고, 쓰러지는 책상 판때기를 방패 삼아 날아오는 독침 열 발을 차단했다.


그것은 절대로 우아한 무공의 초식이 아니었다.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비참하고 해괴한 도망자의 몸짓이었다. 허리가 꺾이고 골반이 비틀려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이빨을 악물고 참아내며, 무혁은 마지막 독침 세 발이 날아오는 순간 허공을 딛고 옆으로 자빠지며 바닥을 굴렀.


쿵! 콰당탕!


침실 내부의 찻상과 의자가 사방으로 부서지며 요란한 소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째깍거리던 기계음이 완전히 정지했다.


“하아…… 하아…….”


무혁은 부서진 책상 잔해 더미 아래에 깔린 채, 엉덩이와 허리의 극심한 타박상을 느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전신이 먼지와 석회 가루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부서진 붉은 비단 상자의 이중 바닥이 덜컹거리며 열리더니 그 안에서 검은색 가죽 주머니가 밖으로 툭 떨어졌다. 주머니의 입구가 벌어지며, 혈린교의 붉은 밀서와 가문 지하 수로의 상세 지도가 방바닥 위로 쏟아져 나왔다.


그 밀서의 겉면에는 붉은 글씨로 똑똑히 적혀 있었다.


[기산선생의 셋째 제자, 밀정(密偵) 야율도 드림.]


“……!!”


무혁이 그 밀서를 집어 들고 굳어버린 바로 그 순간.


쾅!


굳게 잠겨 있던 집무실의 청동문이 가공할 만한 내력에 의해 통째로 부서져 나가며 열렸다.


“무혁아! 무슨 일이냐!”


우렁찬 호통 소리와 함께 하북팽가의 가주 팽자천이 붉은 장포를 휘날리며 처소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의 뒤로는 유학의 거두 기산선생과 김 대장을 비롯한 수십 명의 정예 호위무사들이 횃불을 밝히며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석실 안은 그야말로 참혹한 전장의 흔적 그 자체였다.


부서진 가구들, 벽면과 기둥에 고슴도치처럼 빽빽하게 박혀 있는 시커먼 독침들, 그리고 먼지 구덩이 속에서 흑철 단검을 쥔 채 헐떡이고 있는 강무혁.


무혁은 횃불의 붉은 빛 아래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들을 확인하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벅찬 기쁨을 느꼈다.


‘됐다! 드디어 해냈어!’


이 삼엄한 현장. 대낮에 기산선생의 보물 상자를 훔쳐 달아난 도둑놈이, 자신의 처소에서 몰래 상자를 부수다 함정이 터져 엉망진창이 된 이 완벽한 범죄의 현장! 아무리 하북의 구세주라 한들, 귀빈의 물건을 훔쳐 사리사욕을 채우려다 들통난 도둑놈을 가문에서 계속 살려둘 리가 없었다.


무혁은 일부러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서진 책상 더미에서 기어 나와 팽자천의 앞에 섰다. 그리고 짐짓 뻔뻔한 목소리로 외쳤다.


“가주님! 소직이 가문의 특별 호위비에 만족하지 못하고, 기산선생님의 방에서 값비싼 보물을 훔쳐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습니다! 이 상자를 강제로 열려다 함정이 터진 것이니, 저를 당장 대역죄인으로 다스려 장원 밖으로 내던져 주십시오! 파직해 주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당당했고, 스스로 죄를 자백하는 태도는 거침이 없었다. 무혁은 이제야말로 이 지긋지긋한 호위무사 생활을 청산하고 평화로운 만두 가게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침묵이 석실 안을 무겁게 채웠다.


가주 팽자천의 호랑이 같은 수염이 부르르 떨렸고, 그의 눈동자는 분노가 아닌 깊은 충격과 전율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옆에 서 있던 기산선생은 벽에 박힌 검은 독침들의 형태와, 바닥에 쏟아진 혈린교의 밀서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갑자기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기산선생이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노안 가득 왈칵 눈물이 고여 흘러내렸다.


“강 대장…… 자네, 나를 위해…… 이 늙은이를 위해 목숨을 바쳤단 말인가!”


“예? 아니, 제가 왜 선생님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까? 저 이거 훔친 건데요?”


무혁이 황당하여 반박했으나, 기산선생의 귀에는 그 반박이 들리지 않았다. 유학자의 머릿속 지혜의 주판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오해의 궤적을 완성해 나갔다.


“아니네! 숨기지 말게! 이 상자는 내 서재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것이 맞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내 제자가 가져다 놓은 고서 상자인 줄로만 알고 있었지! 그런데 알고 보니…… 내 가장 아끼던 셋째 제자가 사파의 밀정이었고, 나를 암살하기 위해 이 무시무시한 시한식 독침 장치를 내 방에 심어두었던 것이 아닌가!”


기산선생이 바닥에 떨어진 밀서를 가리키며 통곡했다.


“강 대장 자네는 이미 그 밀정의 존재와 독침의 음모를 사전에 간파하고 있었던 게야! 하지만 가문 내부에 밀정이 숨어 있으니 비밀리에 움직여야 했을 터. 대낮에 일부러 ‘도둑’의 오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내 방에서 이 죽음의 상자를 탈취해 간 것이지! 자신의 방에서 홀로 목숨을 걸고 이 독침을 해체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아니라니까요! 저 진짜 돈독이 올라서 훔친 겁니다! 팽만금에게 돈 뜯어낸 거 보셨잖아요!”


무혁이 가슴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옆에 서 있던 가주 팽자천이 갑자기 큰 손으로 무혁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그의 눈가에도 뜨거운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혁아……! 너의 그 깊고 숭고한 우국충정을 내가 어찌 몰라봤단 말이냐! 팽만금에게 억지로 돈을 요구했던 것도, 기산선생의 처소 주변 경비병들을 물리기 위해 일부러 소란을 피운 고도의 반간계였구나! 자신의 명예를 진흙탕에 처박아가면서까지 가문의 귀빈을 구하고 혈린교의 밀정을 적발해 내다니……!”


[천도(Heavenly Dao)의 억까 시스템이 작동하여 무혁의 절도 행위가 ‘목숨을 건 예방 수색 및 밀정 적발 공작’으로 강제 세탁되었습니다.]


무혁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인지부조화와 깊은 현타에 빠져 제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아니야…… 나 진짜 만두 가게 차릴 돈이 부족해서 훔친 거라고…… 이 미친 오해의 화신들아…….’


그때, 기산선생이 벽에 박힌 독침들의 흔적을 유심히 살피더니 경탄 섞인 음성으로 소리쳤다.


“가주 자천, 이것을 보게! 이 독침들은 반경 10보 이내를 초토화하는 혈우칠야침이네. 그런데 이 좁은 방에서 수십 발의 독침이 사방으로 격발되었음에도, 강 대장의 몸에는 단 한 줄기의 상처도 없지 않은가!”


팽자천이 눈을 크게 뜨며 무혁의 몸을 수색했다. 과연 그의 옷자락에는 독침이 스쳐 지나간 구멍만 몇 개 뚫려 있을 뿐, 피부에는 긁힌 상처 하나 없었다.


“이럴 수가……! 이 좁은 석실에서 사방으로 뿜어지는 수십 발의 독침 궤적을 맨몸으로 전부 피했단 말인가? 이것은…… 공간의 틈새를 흐르는 물처럼 신형을 비틀어 피하는 도가 최고의 신법, ‘유수허공보(流水虛空步)’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세! 강 대장의 무공은 이미 우리 학자들의 상상을 초월해 신화경(神神境)의 신법에 도달해 있었던 게야!”


기산선생이 감격에 겨워 무혁의 손을 꽉 쥐었다.


무혁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그거 그냥 뒤로 넘어지다가 허리 삐끗해서 바닥에 구른 건데…….’


하지만 그의 피곤에 찌든 침묵과 안구건조증 때문에 찌푸려진 미간은, 주변 무사들에게 ‘자신의 위대한 무공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고수의 깊은 고독’으로 완벽하게 필터링되어 전달되었다.


“김 대장! 당장 기산선생의 셋째 제자 야율도를 체포해라! 가문의 이름으로 삼족을 멸할 것이다!”


팽자천의 서슬 퍼런 명령에 김 대장과 무사들이 기합 소리를 지르며 신속하게 움직였다. 기산선생을 노리던 진짜 혈린교 밀정은 도망치기도 전에 장원 내부에서 굴비 엮이듯 체포되어 끌려 나갔다.


석실 안이 대충 정리되자, 기산선생은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최고급 비단 종이첩과 붓을 꺼내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학자 특유의 광적인 존경심과 결의가 번뜩이고 있었다.


“강 대장, 자네처럼 천재적인 예방 수사 능력과 신화경의 신법을 지닌 인재가 이 하북성 한구석에 묻혀 있는 것은 제국 전체의 거대한 손실이네! 마침 오늘 밤 경도에서 황실 사신이 도착하기로 되어 있지.”


무혁의 등 등뼈를 타고 서늘한 전율이 흘러내렸다.


“……예? 기산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산선생은 무혁의 책상 앞에 정중히 앉아, 먹을 갈기 시작했다. 그의 붓끝이 비단 종이 위를 거침없이 미끄러지며 장엄한 필체를 남기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모든 학문적 명예와 조정의 인맥을 동원하여, 황실 사신에게 보낼 추천서에 자네의 위업을 한 자도 빠짐없이 기록할 걸세! 자네의 그 천재적인 ‘예방 수색’과 가문을 구한 고결한 희생정신을 극찬하여, 황제 폐하의 직속 수석 경호원으로 임명받을 수 있도록 이 기산의 이름을 걸고 강력하게 추천하겠네!”


붓끝이 종이 위를 스칠 때마다, 무혁의 은퇴 계획과 평화로운 만두 가게의 꿈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 너머로 날아가 버리고 있었다.


기산선생은 감격에 겨워 붓을 놀리며, 무혁의 ‘천재적인 예방 수사 능력’을 극찬하는 장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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