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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이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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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본저의 아침은 지옥과도 같았다.


강무혁은 처소의 침상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눈 밑의 다크서클은 이미 턱밑까지 내려앉아 검푸른 그늘을 드리웠고, 만성 불면증으로 충혈된 눈동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하수구 물살에 쓸려 다녔던 충격으로 비명을 질러댔지만, 육체의 고통 따위는 내면을 잠식한 거대한 절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관절…… 왜 내가 부순 밸브가 사파의 제단을 날려버리는 거냔 말이다.”


무혁은 마른침을 삼키며 낮게 신음했다.


그는 진짜 일류 살수였다. 그의 유일한 열망은 팽지혁을 죽이고 의뢰금 오백 냥을 받아 따뜻한 남쪽 시골에 만두 가게를 차려 조용히 은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천도(Heavenly Dao)의 저주받은 억까 시스템은 그가 품은 사악한 살의를 매번 기적의 구원 행위로 뒤틀어버렸다. 이제 하북성 전체가 그를 ‘가문을 구한 대전략가’라 부르며 칭송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도착할 황실 사신의 손에 이끌려 황궁의 수석 경호원으로 강제 징집당할 판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하녀 복장을 한 의동생 강무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소매에 손을 넣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무혁을 내려다보았다.


“오빠, 축하해. 하북의 구세주이자 수호신장이라며? 아주 대단한 영웅 나셨어. 이럴 거면 살수 패는 왜 들고 다녀? 그냥 평생 보디가드나 하지 그래?”


무희의 뼈 때리는 조언에 무혁은 가슴을 쥐어뜯었다.


“닥쳐라, 무희야. 나도 죽고 싶어서 지하 수로로 기어 들어간 게 아니다. 그 빌어먹을 수압 장치가 고장 나는 바람에…….”


“이유가 어찌 됐든 결과는 영웅이잖아. 황실 사신이 도착하면 오빠는 평생 황태자의 그림자가 되어 감시당할 거야. 은퇴? 만두 가게? 꿈 깨셔.”


무희는 코방귀를 뀌며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만두 모양으로 깎아둔 나무 조각을 쿡 찔렀다. 무혁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황실의 감시망에 갇히는 순간, 살수로서의 자유는 영원히 종말을 고한다. 어떻게든 황실 사신이 도착하기 전에 이 하북팽가에서 불명예 퇴출을 당해야만 했다.


“파직(Banishment)이야. 가문에서 나를 스스로 쫓아내게 만들어야 해.”


무혁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러려면?”


“악당이 되는 거다. 그것도 아주 비열하고, 탐욕스럽고, 도덕성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천하의 개쌍놈이 되는 거지. 가주가 나를 보면 치를 떨며 당장 장원 밖으로 내던지고 싶을 만큼 말이다.”


무희는 오빠의 뜬금없는 선언에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거 괜찮네. 살수의 기본은 은밀함이지만, 은퇴를 위해선 대놓고 쓰레기가 될 필요도 있지. 그럼 뭐부터 시작할 건데?”


“가장 먼저 돈이다. 탐욕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마.”


무혁은 이빨을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신을 감싸는 욱신거리는 통증마저 그의 굳은 결의를 꺾을 수는 없었다.


***


하북팽가의 재정관 팽만금의 집무실은 주판 튕기는 소리로 가득했다. 통통한 체구에 황금 반지를 주렁주렁 낀 팽만금은 가문의 돈줄을 쥐고 있는 철저한 실용주의 상인이었다.


쾅!


문이 거칠게 열리며 강무혁이 걸어 들어왔다. 무혁은 일부러 장포 자락을 거칠게 걷어붙이고, 다리를 건들거리며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는 밤샘 소동으로 인한 피로와 억울함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것이 팽만금의 눈에는 가공할 만한 ‘성스러운 패기’와 ‘무언의 압박’으로 보였다.


“태상호법 후보…… 아니, 강 대장님! 이 아침에 어쩐 일이십니까?”


팽만금이 움찔하며 주판을 내려놓았다.


무혁은 책상을 탁 치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팽만금을 째려보며, 가래 끓는 듯한 거친 목소리로 내뱉었다.


“팽 재정관.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 월급을 기존의 스무 배로 올려라.”


“예, 예?! 스무 배요?!”


팽만금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아무리 가문을 구한 영웅이라지만, 하루아침에 녹봉을 스무 배나 올려달라는 요구는 상인의 상식으로 용납할 수 없는 폭거였다.


무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당황했지? 화가 나겠지! 어서 나를 탐욕에 찌든 쓰레기라 부르며 가주에게 고발해라!’


그는 기세를 몰아 품속에서 가주가 내린 특별 호위비 일만 냥짜리 수표를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이따위 푼돈 일만 냥으로는 내 목숨값을 대신할 수 없다! 하북을 구한 대가치고는 너무 시시하지 않은가? 당장 가문의 비고를 열어 추가 자금을 내놓아라. 주지 않는다면 오늘 밤 당장 가문의 방어선을 해체하고 떠나겠다!”


협박이었다. 그것도 주군을 상대로 한 가장 비열한 갈취 행위였다. 무혁은 자신의 완벽한 악당 연기에 스스로 감탄하며 팽만금의 안색이 분노로 붉어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팽만금의 주름진 얼굴은 분노가 아닌, 깊은 사색과 전율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기존 월급의 스무 배…… 그리고 가문의 비고를 열어 추가 자금을 요구하신다? 게다가 방어선을 해체하겠다는 협박까지…….’


팽만금의 머릿속 장부가 무서운 속도로 굴러갔다.


‘아! 그렇구나! 강 대장님은 사비로 가문의 방어 자재를 사들이던 분이시다. 이번에 혈린교 분타를 날려버리셨으니, 필시 사파의 거대한 보복이 따를 터. 대장님께서는 이미 그 보복을 예견하시고, 가문 내부의 삼엄한 눈을 피해 비밀리에 대규모 성벽 방어 기어와 특수 와이어를 대량 구매하려 하시는구나! 하지만 가문의 공식 예산 절차를 거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스스로 ‘탐욕스러운 악당’의 누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급전을 확보하려 하시는 것이다!’


팽만금의 눈가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


자신은 단지 돈 계산이나 하는 속물 상인이었거늘, 눈앞의 이 위대한 충신은 가문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명예마저 진흙탕에 처박고 있었다. 저 충혈된 눈과 다크서클을 보라. 얼마나 밤낮으로 방어 전술을 고민했으면 저토록 처절한 몰골이란 말인가!


“강 대장님…….”


팽만금이 떨리는 손으로 무혁의 거친 손을 꽉 쥐었다.


“이 팽만금, 대장님의 깊은 뜻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대장님의 그 고결한 우국충정을 몰라보고 잠시나마 의심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예?”


무혁이 굳어버린 순간, 팽만금은 신속하게 금고를 열어 황금 태환권 뭉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요청하신 특별 자금은 가문의 ‘비밀 방어 설비 투자금’ 명목으로 즉시 결제하겠습니다! 스무 배가 아니라 서른 배라도 내어드려야지요! 가주님께는 제가 알아서 청렴한 예산 관리자의 자존심을 걸고 대장님의 명예를 지켜드릴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가문의 방어선을 구축해 주십시오!”


[천도(Heavenly Dao)의 억까 시스템이 작동하여 무혁의 갈취 행위가 ‘비밀 방어 자금 확보’로 강제 세탁되었습니다.]


무혁은 책상 위에 쌓인 눈부신 황금 수표 뭉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이 미친 주판쟁이 새끼야…… 나 진짜 내 사리사욕 채우려고 협박한 건데…….’


그는 황금 수표를 들고 집무실을 걸어 나오며 깊은 현타에 빠졌다. 돈을 뜯어내려 했더니 오히려 합법적인 거액의 자금과 충신이라는 명성만 더 얹어졌다. 탐욕 연기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직접적인 범죄 행위, 즉 ‘절도(Theft)’뿐이었다.


그것도 가문의 귀빈이자 유학의 거두인 기산선생(기산선생)의 물건을 대놓고 훔치는 대담한 절도극을 벌여야 했다. 학자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의 방을 털었다면, 아무리 팽자천이라 해도 자신을 감싸주지 못하고 당장 장원에서 쫓아낼 터였다.


***


기산선생의 귀빈 처소는 장원 동편의 가장 고결하고 한적한 대나무 숲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은은한 묵향과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려오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무혁은 야행복도 입지 않은 채, 대낮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기산선생의 처소 마당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 일부러 경비병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발걸음 소리도 크게 냈다.


“거기 누구냐?”


처소를 지키던 하급 무사 두 명이 무혁을 보고 검자루를 잡았다가, 이내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급히 허리를 숙였다.


“아! 강 대장님! 태상호법님을 뵙습니다!”


“기산선생은 어디 계시나?”


“선생님께서는 가주님과 학문을 토론하러 본당으로 가셨습니다.”


“그래? 잘됐군.”


무혁은 비열하게 웃으며 무사들을 밀쳐내고 기산선생의 방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대, 대장님? 기산선생님의 방에는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되는데…….”


무사들이 당황하여 소리쳤지만, 무혁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방 안으로 난입했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기산선생이 평소 목숨처럼 아끼며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고가의 붉은 비단 보물 상자였다.


무혁은 대놓고 그 붉은 보물 상자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밖으로 걸어 나와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무사들의 얼굴 앞에 상자를 흔들어 보였다.


“내가 이 상자를 가져가겠다. 기산선생에게 전해라. 이 아름다운 보물은 이제 내 것이다!”


“대, 대장님! 그 상자는 선생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고서와 유품들이 들어있는……!”


“시끄럽다! 하북의 영웅인 내가 이 정도 기념품도 챙기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하하!”


무혁은 미친놈처럼 억지 웃음을 터뜨리며 보물 상자를 품에 안고 유유히 장원 마당을 가로질렀다. 주변의 하녀들과 순찰 무사들이 일제히 가던 길을 멈추고 무혁의 대담한 절도 행각을 목격했다.


‘좋아! 완벽하다! 대낮에 가문의 귀빈 물건을 훔치는 호위대장이라니! 이보다 더 확실한 쓰레기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 기산선생이 돌아와 소리를 지르고 가주가 대노하여 나를 파직하겠지!’


무혁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처소로 돌아와 문을 걸어 잠갔.


그는 침상 위에 붉은 비단 보물 상자를 올려놓았다. 상자는 정교한 황동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다. 무혁은 품속에서 흑철 단검을 꺼내 자물쇠 틈새에 밀어 넣었다.


“어디 기산선생이 감춰둔 대단한 보물이 뭔지 구경이나 해볼까. 이걸 부수고 내용물을 사방에 흩뿌려 가문에 똥칠을 해주마.”


무혁이 단검 끝에 내력을 실어 자물쇠를 강하게 비틀어 꺾었다.


딸깍! 쩌적!


황동 자물쇠가 부러지며 붉은 비단 상자의 뚜껑이 천천히 위로 열렸다.


그러나 상자 내부를 확인한 순간, 무혁의 비열한 미소는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버렸다.


상자 안에는 금은보화나 고결한 유학의 고서 따위는 단 한 권도 들어있지 않았다. 대신 상자의 안쪽 벽면에는 붉은색 마기가 서린 기이한 혈린교(血鱗教)의 비밀 표식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표식 아래로 촘촘하게 얽힌 태엽 기어들과 수십 발의 시한식 독침 장치가 째깍거리는 불길한 소리를 내며 충전되어 있었다.


“……어?”


무혁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것은 기산선생의 물건이 아니었다. 선생의 제자로 위장해 침투한 혈린교의 밀정이, 선생을 암살하고 가문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서재 책상 위에 몰래 올려둔 시한식 폭발 독침 장치였던 것이다.


그리고 무혁이 자물쇠를 강제로 부수며 상자를 여는 순간, 장치 내부의 고정 핀이 빠지며 시한식 독침 격발 장치가 허공을 향해 서서히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째깍, 째깍, 째깍.


침묵을 깨는 불길한 기계음이 무혁의 귓가를 차갑게 파고들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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