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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질린 시기꾼과 최후의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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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본저의 서쪽 별채, 음침한 어둠이 깔린 서재 안에서 팽지찬은 미칠 것 같은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사시나무 떨듯 사정없이 흔들렸고, 그 손에 쥐어진 붓끝에서는 먹물이 뚝뚝 떨어져 백지를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머리…… 머리가 또 빠지는구나.”


지찬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손가락 사이에 덥석 잡혀 나오는 머리카락 뭉치를 보며 그는 신음했다. 원형 탈모였다. 가문의 방계 천재 무사라 불리며 가주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그의 빛나던 기세는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거울 속의 사내는 눈 밑에 거무죽죽한 그늘이 지고 피골이 상접한, 영락없는 도망자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단 한 사람, 강무혁 때문이었다.


“괴물…… 인간의 탈을 쓴 염라대왕 같은 놈.”


지찬은 이빨을 부득부득 갈았으나, 그 소리조차 누군가 들을까 두려워 얼른 소매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가 가주 자천을 몰아내고 소교주 팽지혁을 제거하기 위해 은밀히 고용했던 성수현 뒷골목의 지배자, 흑호방. 백근 무게의 가시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하북의 밤을 피로 물들이던 그 무지막지한 거구 흑살마웅과 그의 정예 단원 50명이 단 하룻밤 사이에 완벽하게 붕괴했다.


그것조차 비무 한 번, 칼싸움 한 번 없이 오직 강무혁의 서늘한 눈빛 한 번과 피로에 찌든 한숨 소리 한 자락에 압도당해 제 발로 팽가 정문으로 걸어와 자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팽지찬은 자신의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흑호방 놈들은 이제 가문의 푸른 경비대 옷을 입고 무혁의 충직한 사냥개가 되어 장원 외곽을 24시간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었다.


‘강무혁…… 그자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지찬은 극도의 피해망상에 휩싸여 책상을 쾅 쳤다.


‘내가 사천당가와 결탁해 독약을 밀수하려 했던 장부도, 흑호방을 매수해 소교주를 납치하려 했던 음모도, 그 귀신같은 살수는 이미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독고추가 대머리가 되어 체포당하고, 우물이 황금빛 영천수로 정화되며, 흑호방이 하루아침에 자수를 하러 올 리가 없지 않은가!’


무혁이 보여준 기상천외한 ‘선제 방어’와 귀신도 울고 갈 적발력은 지찬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지찬은 무혁이 자신을 당장 처단하지 않는 이유가, 고양이가 쥐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천천히 말려 죽이려는 잔인한 유희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라 확신했다.


‘이대로 앉아서 삼족이 멸문당할 수는 없다. 내가 살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지찬은 번뜩이는 광기를 띠며 품속에서 양가죽으로 된 정교한 지도를 꺼냈다. 하북팽가의 시조 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문 내부에서 오직 가주와 직계 핵심 인물들만 알고 있는 비밀 지하 수로와 연결된 도주로 지도였다.


그는 붓을 들어 떨리는 손으로 지도의 복사본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신을 써 내려갔다. 수신인은 혈린교 하북분타주 야율극이었다.


[야율극 분타주 보아라. 본가의 방계 팽지찬이다. 지금 가문 내부에는 강무혁이라는 정체불명의 괴물이 수석 호위무사로 들어와 우리 사파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대로 두면 하북성 전체가 놈의 손에 정화될 것이다. 내가 동봉하는 가문의 비밀 지하 통로 지도를 개방할 테니, 오늘 밤 정예 마도 군대를 이끌고 기습하여 가문을 혼란에 빠뜨려라. 그 틈에 나는 탈출할 것이며, 성공 시 가문의 모든 철광산 지분을 넘기겠다.]


지찬은 서신을 단단히 밀봉하여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이것은 가문을 팔아넘기는 최악의 반역 서신이자, 그의 목숨을 건 최후의 도박이었다.


***


같은 시각, 가주가 하사한 초호화 ‘호위무사 별채’의 아늑한 집무실.


정작 지찬이 ‘인간의 탈을 쓴 염라대왕’이라 부르며 두려워 떨던 강무혁은,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촛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 밑에는 여전히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고,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는 지독한 피로와 허탈함이 가득했다.


“아…… 안구건조증약이 어디 갔더라.”


무혁은 주머니를 뒤적여 서역에서 건너온 눈물약을 꺼내 눈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 시큰한 통증과 함께 눈물이 흐르자, 그는 겨우 숨을 쉬며 책상 위에 펼쳐진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종이에는 기하학적인 선들과 복잡한 기호들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팽가의 학문을 지도하는 기산선생이나 책사 제갈명이 보았다면 ‘천지의 이치와 주역의 8괘를 조합한 위대한 방어 진법서’라며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도면이었다. 하지만 그 도면의 정체는 지극히 소박하고 평화로운 것이었다.


[강씨 가문 만두 가게 내부 인테리어 설계안]


종이 중앙에는 ‘만두 찜기 배치 구역’이라는 글씨가 삐뚤빼뚤하게 적혀 있었고, 그 옆에는 ‘손님이 돈을 안 내고 도망칠 때를 대비한 퇴로 차단용 문틀 각도’가 기하학적인 수치로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무혁은 숯펜을 쥐고 중얼거렸다.


“만두 피는 얇고 쫄깃하게 빚어야 하고, 속은 고기로 꽉 채워야 단골이 늘어난다. 마진율을 생각하면 오백 냥의 은퇴 자금으로 가게를 차린 뒤 하루에 만두 백 개씩은 팔아야 하는데…….”


무혁은 은퇴 후 차릴 만두 가게의 구조를 상상하며 오랜만에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 귤을 까먹으며 만두 솥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일상. 그것이 일류 살수 강무혁이 목숨을 걸고 추구하는 유일한 이상향이자 천명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그가 도망치려고 파놓았던 마당 구석의 비밀 개구멍마저, 새로 가입한 흑호방의 소방주 마영이 ‘대장님의 비상 기습로’로 오해하고 24시간 철통 경비를 서기 시작했다. 장원 외곽에는 50명의 거구들이 푸른 경비복을 입고 눈을 부릅뜬 채 “대장님을 위해!”를 연호하며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이제 물리적인 탈출은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결국 팽지혁 그 망나니 새끼를 내 손으로 확실하게 죽여서, 가문에서 불명예스럽게 쫓겨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어떻게 죽여야 천도의 억까 시스템에 걸리지 않고 완벽한 사고사로 위장할 수 있지?’


무혁은 머리가 아파왔다. 그가 살의를 품을수록 주변의 물리 법칙이 왜곡되어 타겟을 구하는 이 기이한 저주를 깨부수려면, 아주 정교하고 흠집 없는 암살 덫을 새로 설계해야 했다.


그는 가슴속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고 뻑뻑한 눈에 바람을 쐬어주기 위해 숯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벼운 회색 장포만을 걸친 채,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


장원 내부의 호젓한 인공 호숫가 산책로.


무혁은 뒷짐을 진 채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만두 가게 주방 동선’과 ‘팽지혁 독살각’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만성 불면증으로 인해 극도로 차갑고 무표정하게 굳어 있었다.


그때, 맞은편 모퉁이에서 황급히 걸어 나오던 사내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품속에 무언가를 소중히 움켜쥔 채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오던 방계 시기꾼, 팽지찬이었다.


탁.


두 사람의 거리는 불과 다섯 보.


무혁은 지찬을 발견하고 속으로 혀를 찼다.


‘아, 저 옹졸해 보이는 녀석은 또 왜 기어 나오는 거야. 피곤해 죽겠는데 귀찮게 시비나 걸지 않았으면 좋겠군.’


무혁은 번거로운 대화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상황을 넘기고자 했다. 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지찬을 가만히 응시하며, 피곤함이 가득 담긴 서늘한 눈빛으로 아주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슥.


그저 ‘귀찮으니까 아는 척만 하고 빨리 지나가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그러나 그 순간, 팽지찬의 머릿속에서는 단장(斷腸)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


지찬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의 시선에 비친 무혁의 가벼운 목례는, 목례가 아니라 사형 집행인의 무자비한 단두대 칼날처럼 보였다.


특히 무혁의 붉게 충혈된 눈빛과 그 밑의 짙은 다크서클은 ‘네가 품속에 숨긴 반역의 서신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라는 고도의 심리적 압박으로 해석되었다. 무혁의 장포 자락에서 풍기는 서늘한 바람마저 지찬의 목덜미를 베어버릴 듯한 무형의 검기처럼 느껴졌다.


‘알고 있다! 그자는 이미 내가 이 주머니에 가문의 지하 수로 지도를 넣고 혈린교에 편지를 보내려 한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고 있어! 방금 그 목례는…… 네 목을 벨 준비가 끝났으니 어디 한번 발악해 보라는 잔인한 경고다!’


“으, 으윽…….”


지찬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비명을 억누르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을 뻔했으나, 마지막 남은 생존 본능으로 겨우 버텨냈다. 그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아하하…… 태상호법 대장님, 야간 순찰 중이십니까? 소, 소제는 그저…… 밤바람이 좋아서 산책을……”


무혁은 지찬의 땀투성이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은 왜 밤중에 혼자 땀을 흘리고 난리야? 필시 사파 놈들과 밀수를 하다가 들킬까 봐 똥줄이 타는 모양이군. 귀찮은 놈, 엮이지 말고 빨리 꺼지자.’


무혁은 대답조차 귀찮아, 더욱 차갑고 매서운 눈빛으로 지찬을 한번 슥 째려본 뒤, 어깨를 스쳐 지나쳐 유유히 걸어갔.


그 차가운 무시와 스쳐 지나감에 지찬은 등 뒤가 완전히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


‘살려주신 것인가? 아니, 가문의 법도에 따라 대중 앞에서 내 죄를 공식적으로 폭로해 처형하려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 오늘 밤 당장 혈린교의 대군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지찬은 무혁의 등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마자, 미친 듯이 자신의 서재로 달려갔다. 그는 서재 구석에 숨겨두었던 충직한 밀사(밀사)를 불러내어 서신 가방을 거칠게 건넸다.


“당장! 당장 이 서신을 혈린교 하북분타주 야율극 님께 전달해라! 팽가 내부의 모든 경비망을 뚫고 가장 빠른 길로 가야 한다! 내 목숨이 이 서신 한 장에 걸려 있다!”


“넷! 도련님, 목숨을 바쳐 전하겠습니다!”


가죽 가면을 쓴 밀사는 비장한 표정으로 서신 가방을 품에 안고 창문을 뛰어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같은 시각, 하북팽가 장원 외곽의 북쪽 담벼락 아래.


새로 가입한 흑호방의 소방주 마영과 단원 열 명은 횃불을 높이 든 채 삼엄한 야간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들의 경비복은 팽가의 푸른 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덩치가 워낙 커서 겨드랑이 부분이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가문을 지키겠다는 숭고한 사명감이 가득했다.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경계해라! 대장님께서 우리에게 새 삶을 주셨으니, 쥐새끼 한 마리라도 이 담을 넘게 해서는 안 된다!”


마영이 쇠주먹 낭아선을 쾅쾅 부딪치며 소리쳤다.


“넷! 부대장님!”


단원들이 비장하게 복창했다.


바로 그때, 담벼락 위 대나무 가지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기척이 포착되었다. 지찬의 특명을 받고 가문을 탈출하려던 혈린교의 밀사였다.


밀사는 담장을 넘어 밖으로 뛰어내리려다, 담벼락 아래를 횃불로 가득 메운 채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멧돼지 같은 사내 50명의 실루엣을 보고 기겁했다.


‘……!!! 뭐, 뭐야 저 괴물들은?! 북쪽 담벼락은 경비가 비어 있는 공백 구역이라고 들었는데, 왜 저런 무지막지한 놈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거지?!’


밀사는 공포에 질려 발을 헛디뎠다. 하필 그가 밟은 지점은, 과거 무혁의 부하 마당쇠 칠두가 ‘대장님의 유인책을 보좌하겠다’며 촘촘하게 깔아둔 가시 철조망과 청동 방울 장치 구역이었다.


딸랑! 딸랑! 딸랑!


고요한 한밤중의 장원에 청동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침입자다! 대장님의 비밀 기습로를 노리는 쥐새끼다! 잡아라!”


마영이 사자후를 토하며 쇠주먹을 치켜들었다. 50명의 거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밀사가 서 있는 담벼락을 향해 폭풍처럼 돌진했다.


“으아악! 살려줘!”


밀사는 가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아니라, 성수현 뒷골목을 지배하던 무자비한 건달들이 군복을 입고 달려드는 광경에 영혼이 가출하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그는 서신을 전하기도 전에 뼈가 가루가 될 것 같다는 직감을 느끼고, 품에 안고 있던 서신 가방을 마당 구석 수풀 속에 팽개쳐 둔 채, 담벽 너머로 죽을힘을 다해 뛰어내려 도망쳤다.


“놓쳤다! 추격해라!”


마영과 단원들이 담을 넘어 숲속으로 요란하게 사라지자, 소란스럽던 북쪽 담벼락 아래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


***


몇 분 뒤, 무혁의 처소 청소를 담당하는 전담 시녀 ‘춘자’가 빗자루와 걸레를 든 채 야간 정리를 위해 후원 산책로를 걸어오고 있었다.


춘자는 가문 내부에서 매우 조용하고 꼼꼼한 성격의 시녀로 통했지만, 실상은 무혁의 엄청난 비밀 추종자였다. 그녀는 밤마다 무혁이 괴로워하며 찢어 버린 ‘암살 대상 살해 계획서’들을 몰래 주워 모아, 그것을 ‘소교주를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고뇌하며 적은 호위 일기’라 믿고 비밀 일기장에 소중히 보관하는 기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도 우리 대장님은 가문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셨을까.”


춘자는 뺨을 붉히며 수풀 사이를 청소하던 중, 발끝에 무언가 단단한 가죽 주머니가 걸리는 것을 느꼈다.


“어? 이것은 무엇이지?”


그녀가 빗자루로 수풀을 헤치고 주머니를 집어 올렸다. 붉은 비단 실로 혈린교의 기이한 문양이 수놓아진 고급 가죽 주머니였다.


춘자는 호기심에 주머니의 끈을 풀고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기하학적인 복잡한 선들로 가득 찬 가문의 지하 수로 지도와 함께, 알 수 없는 암호 기호들이 가득 적힌 계약서 서신이 들어있었다.


춘자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영특하게 반짝였다.


‘……!!! 이 복잡하고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과 비밀스러운 기호들…… 이것은 필시 우리 대장님께서 가문의 지하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하시던 그 위대한 ‘암살 도면’의 연장선이 분명해! 대장님께서 야간 순찰 중에 실수로 떨어뜨리신 것이로구나!’


춘자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위대한 서신이 가솔들의 발에 밟혀 훼손되기 전에 자신이 구조해 낸 것에 깊은 성취감을 느꼈다.


“역시 대장님은 가문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완벽하게 지키고 계셨어. 이 소중한 도면을 얼른 대장님의 책상 위에 올려두어야겠어.”


춘자는 서신 주머니를 품에 소중히 안고, 무혁의 처소 별채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잠시 후, 머리를 식히고 별채 집무실로 돌아온 강무혁은 여전히 피곤한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눈을 비비며 책상 위에 펼쳐진 자신의 ‘만두 가게 인테리어 설계도’를 다시 응시했다.


“역시 만두 찜기 옆에는 보조 환풍구를 설치해야 연기가 밖으로 잘 빠질 텐데…….”


그가 숯펜을 들어 설계도의 오른쪽 모퉁이에 환풍구의 공기 흐름을 뜻하는 둥근 소용돌이 기호와 화살표들을 끄적였다. 그리고 지쳐서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책상 위에 엎드렸다.


바로 그 순간, 똑똑 하는 조용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시녀 춘자가 살며시 안으로 들어왔.


“대장님, 야간 청소 중에 마당에서 대장님께서 떨어뜨리신 위대한 도면을 발견하여 가져왔습니다.”


춘자는 엎드려 있는 무혁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다가와, 품속에서 꺼낸 팽지찬의 비밀 반역 서신과 지하 수로 지도를 무혁의 책상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하필이면, 춘자가 내려놓은 그 붉은 가죽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가문의 지하 수로 지도와 혈린교의 계약서 서신이, 무혁이 끄적여 둔 ‘만두 가게 인테리어 설계도’ 바로 옆에 나란히 겹쳐지듯 놓이게 되었다.


무혁이 만두 찜기의 연기 배출구로 그려둔 둥근 소용돌이 기호와 화살표들의 각도가, 지찬이 붉은 먹물로 표시해 둔 ‘가문 지하 수로의 역류 판막 장치 조작 방향’과 기가 막히게 일치하며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인과율의 보이지 않는 푸른 실선들이 책상 위에서 은은하게 일렁이는 가운데, 두 장의 전혀 다른 도면이 기괴할 정도로 완벽한 하나의 ‘수중 대붕괴 진식’의 형태로 조화롭게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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