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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은 멧돼지와 강제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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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굴러떨어진 백근 무게의 가시 쇠몽둥이 너머로, 흑살마웅의 거구는 서서히 바닥을 향해 꺾이기 시작했다.


쿵!


그가 무릎을 꿇는 순간, 골목길의 굳어 있던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멧돼지 가죽을 걸친 흑호방의 두목, 성수현 뒷골목을 피와 주먹으로 지배해 왔다던 괴력의 소유자 흑살마웅은 이제 한 마리의 순한 양처럼 고개를 땅에 처박고 있었다. 그의 어깨는 사시나무 떨듯 사정없이 흔들렸고, 굵은 눈물방울이 턱끝을 타고 흘러내려 서리 맞은 돌바닥을 적셨다.


“대, 대협……! 이 미련하고 무식한 멧돼지 같은 놈이 눈이 멀어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목숨만은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흑살마웅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사정없이 갈라지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50명의 흑호방 단원들 역시 들고 있던 몽둥이와 밧줄을 허겁지겁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골목길은 순식간에 수십 명의 거구들이 단체로 엎드려 절을 올리는 기이한 대참배의 현장으로 변모했다.


강무혁은 그 황당한 광경을 바라보며 자리에 굳어버렸다.


‘……뭐지? 이 새끼들 진짜 미친 건가?’


무혁은 붉게 충혈된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만성 안구건조증 때문에 눈이 뻑뻑해서 인공눈물을 넣어야 하는데, 하필 주머니 깊숙이 넣어둔 바람에 꺼내기가 귀찮았다. 그는 그저 피곤해 죽을 것 같았고, 밤새도록 이어지는 암살 실패의 스트레스로 인해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흑살마웅의 눈에 비친 무혁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어둠보다 짙은 다크서클을 드리운 사내. 그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붉은 안광이 어둠 속에서 예리하게 번뜩였다. 그것은 수많은 인명을 소리 없이 앗아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생사를 초탈한 ‘진짜 살인귀’의 눈빛이었다. 게다가 검을 뽑지도 않았는데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이 검고 무거운 살기는, 기혈을 얼려버리는 화경(化境) 고수의 무형강기(無形罡氣)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대머리 제조기……!’


흑살마웅은 낮에 들었던 성수현의 흉흉한 소문을 떠올렸다. 일류 살수 독고추를 단 한 번의 눈빛과 기묘한 신법으로 대머리 광인으로 만들어 관아에 넘겨버렸다는 그 가공할 괴물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대장님! 저희는 그저 팽지찬 그 간사한 놈의 꼬임에 넘어가 은전에 눈이 멀었을 뿐입니다! 팽가 소교주를 해치려 했던 죄, 머리를 깨부수어 사죄하겠으니 제발 가문 전체를 멸문시키지만은 말아 주십시오!”


흑살마웅은 쿵쿵 소리가 나도록 이마를 돌바닥에 찧어댔다.


무혁은 머리가 아파왔다. 귀찮은 일이 또 늘어난 것이다. 이 멧돼지 가죽을 쓴 거구가 팽지찬의 사주를 받았다는 사실은 대충 눈치챘지만, 여기서 이들과 엮여 소란을 피웠다간 순찰 중인 팽가의 무사들이 들이닥칠 터였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가문을 지킨 위대한 호위무사’로 칭송받으며 환영 연회가 열릴 것이 뻔했다.


그 지옥 같은 영웅 대접의 순환을 끊으려면, 지금 당장 이 귀찮은 인간들을 눈앞에서 치워버려야 했다.


무혁은 이마에 힘을 주고, 최대한 차갑고 서늘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귀찮게 하지 말고,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라.”


그것은 단지 ‘나 피곤하니까 빨리 꺼져서 잠이나 자게 해라’라는 아주 소박하고 이기적인 본심이었다.


그러나 흑살마웅의 충성스러운 뇌 필터는 무혁의 이 짧은 독설을 상상을 초월하는 깊은 뜻으로 해독해 냈다.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라……? 아! 더러운 뒷골목 사파의 삶을 당장 청산하고, 내 눈앞에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라는 말씀이시구나! 우리를 죽이는 대신, 가문의 의로운 방패가 되어 속죄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흑살마웅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는 무혁의 이 차가운 거절 속에서 대협의 무한한 자비심과 개과천선의 기회를 엿보았다.


“아아…… 대장님의 깊고 숭고한 뜻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더러운 사파 짓을 청산하고, 가문의 의로운 개가 되겠습니다! 흑호방을 이 시간부로 해체하고, 저희 50명 단원 모두 대장님의 발아래 뼈를 묻겠습니다!”


“……어?”


무혁이 황당하여 입을 벌리기도 전에, 흑살마웅은 벌떡 일어나 뒤에 서 있는 단원들에게 사자후를 토했다.


“모두 들었느냐! 대장님께서 우리에게 새 삶을 주셨다! 당장 흑호방의 깃발을 불태우고, 팽가 정문으로 가 자수하여 가문의 충직한 사설 경비대로 입대한다! 대장님의 명령이다, 움직여라!”


“오오오!”


50명의 거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챙겨 들고 팽가 정문을 향해 폭풍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골목길에 홀로 남겨진 무혁은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는 길 한복판에서 굳어버렸다. 품속에 든 특별 호위비 1만 냥짜리 수표가 무겁게 느껴졌다.


‘아니…… 내 말은 그냥 집에 가라는 뜻이었는데…… 왜 저 새끼들이 팽가 정문으로 뛰어가는 거지?’


무혁은 극심한 두통에 관자놀이를 짚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50마리의 멧돼지 같은 사내들이 팽가 정문으로 돌진하는 소리가 한밤중의 성수현 고요를 깨우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하북팽가 본저의 대연무장.


가주 팽자천은 호탕한 웃음소리로 장원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하하하하! 무혁아! 네가 또 가문의 위세를 천하에 떨쳤구나! 내 평생 성수현 뒷골목을 지배하던 그 골칫덩이 흑호방 놈들이 제 발로 찾아와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연무장 마당에는 멧돼지 가죽 대신 팽가의 푸른색 외곽 경비대 의복을 억지로 껴입은 50명의 거구들이 오와 열을 맞춰 늠름하게 서 있었다. 옷이 몸에 너무 끼어 군데군데 실밥이 터져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만큼은 나라를 구하러 가는 결사대처럼 비장했다.


그들의 맨 앞에는 흑살마웅이 팽자천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고 있었다.


“가주님! 저희는 강무혁 대장님의 압도적인 패기와 의로운 가르침에 감화되어 새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하북팽가의 외곽 경비를 철통같이 서며, 대장님의 손발이 되어 뼈를 묻겠습니다!”


“좋다! 아주 좋아! 무혁이 너의 카리스마는 진정 화경의 신선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구나. 비무 한 번 없이 뒷골목의 지배자들을 굴복시키다니!”


팽자천은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며 무혁의 어깨를 퍽퍽 내리쳤다. 무혁은 어깨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는 이미 피눈물이 강을 이루고 있었다.


‘망했다. 완전히 망했어.’


무혁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원래 팽가의 경비대원은 약 30명 수준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야반도주할 타이밍을 잡기가 까다로웠는데, 이제는 일류 극성의 외공을 익힌 흑호방 건달들 50명이 추가되었다. 그것도 자신을 신처럼 숭배하며 밤낮으로 눈을 부릅뜨고 경계를 서는 미친 사설 경비대원들이 장원 외곽을 촘촘히 에워싸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경비 보강이 아니었다. 무혁에게는 영원히 탈출할 수 없는 ‘신뢰의 감옥’이자 쇠사슬이었다.


무혁은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미리 파두었던 ‘비장의 카드’를 떠올렸다.


장원 후방의 울창한 대나무 숲 구석, 아무도 보지 않는 담벼락 밑에 밤마다 손톱에 흙을 묻혀가며 정교하게 파놓았던 비밀 도망로, 바로 ‘개구멍 탈출술’의 현장이었다. 좁은 구덩이지만 몸을 누이고 기어 나가면 가솔들의 눈을 피해 산동성 경계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그래, 오늘 밤 모두가 잠든 사이에 그 개구멍을 통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거야. 50명이 늘어났든 100명이 늘어났든, 보이지 않는 구멍으로 도망치면 그만이다.’


무혁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야간 순찰을 도는 척 슬금슬금 장원 후원의 대나무 숲으로 향했다. 발소리를 완전히 지우는 흑야보법을 전개해 은밀하게 숲길을 헤치고 들어갔다.


마침내 비밀 개구멍이 숨겨진 낡은 담벼락 모퉁이에 도달한 무혁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그대로 뇌수가 정지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어?”


무혁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이 낙엽과 흙으로 교묘하게 덮어두었던 비밀 개구멍 바로 옆에, 기이한 나무 초소 하나가 뚝딱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초소 앞에는 호랑이 가죽 장포를 걸치고 굵은 금목걸이를 찬 험악한 인상의 청년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흑호방의 소방주이자 천재 주먹이라 불리던 ‘마영’이었다.


마영은 가시가 촘촘히 박힌 쇠주먹 낭아선을 허리에 찬 채, 매서운 눈빛으로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다 대나무 숲의 미세한 흔들림을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누구냐!”


마영이 주먹을 쥐며 경계 태세를 취하다가, 숲 사이로 걸어 나오는 무혁의 회색 장포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즉시 무릎을 꿇었다.


“앗! 대장님! 소방주 마영, 대장님을 뵙습니다!”


무혁은 초소와 마영, 그리고 그 아래에 훤히 드러나 있는 개구멍을 번갈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너…… 거기서 뭐 하냐?”


무혁의 갈라진 목소리에 마영은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우러러보며 답했다.


“대장님! 역시 대장님의 안목은 귀신도 울고 갈 지경이십니다! 저희가 가문에 들어온 첫날, 장원 외곽의 방어선을 점검하던 중 이 담벼락 밑의 기이한 구덩이를 발견했습니다!”


마영은 자신이 발견한 개구멍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사파 자객들이 파놓은 침투로인 줄 알았으나, 구덩이 내부의 흙이 아주 정교하게 다져져 있고 퇴로의 각도가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대장님께서 유사시 가문을 수호하기 위해 적들의 뒤통수를 치려고 직접 설계해 두신 ‘비상 전략적 기습 퇴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니야, 이 미친 새끼야…… 내 도망로라고…….’


무혁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손톱이 부러져라 흙을 파내며 완성한 도망로가, 흑호방 소방주의 눈에는 ‘천재적인 비상 전략로’로 미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저 마영이 대장님의 깊은 뜻을 받들어, 이 신성한 기습로를 사파 자객들이 절대 눈치채지 못하도록 주야간 밀착 보초를 서기로 결심했습니다! 24시간 내내 흑호방의 정예 주먹들이 교대로 이곳을 지킬 터이니, 대장님께서는 안심하고 장원 내부에서 대업을 구상하십시오!”


마영은 눈물을 글썽이며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무혁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이제 자신이 파놓은 개구멍은 가문에서 가장 삼엄하게 감시받는 ‘특별 초소’가 되어버렸다. 밤에 도망치려 구멍으로 대가리를 밀어 넣는 순간, 자신을 숭배하는 흑호방 단원들의 뜨거운 환영 인사와 함께 횃불 세례를 받게 될 처지였다.


“대장님? 혹시 제 예방 경비 대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부족한 점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 보완하겠습니다!”


마영이 무혁의 피곤한 침묵을 보고 긴장하여 침을 삼켰다.


무혁은 먼 산을 바라보며 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에는 달빛조차 흐려져 있었고, 그의 등 뒤로 천도의 푸른 인과율 실선들이 비웃듯이 차갑게 일렁이고 있었다.


“……아니다. 아주 잘했다. 계속 지켜라.”


“넷! 목숨을 바쳐 지키겠습니다!”


마영의 비장한 외침이 대나무 숲을 뒤흔들었고, 무혁은 영원히 도망칠 수 없는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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