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 전수와 엇나간 깨달음
아침 햇살이 하북팽가 제1연무장의 붉은 흙먼지를 곱게 물들였다.
전날 밤, 지하 비고에서 전설의 도적 귀면도를 제압하고 실전된 가문의 비급 ‘하북십삼검(河北十三劍) 진본’을 찾아낸 위대한 구세주. 하북팽가의 수석 호위무사이자 차기 태상호법으로 추대된 강무혁은 온몸의 뼈마디가 삐걱거리는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끼며 연무장 단상 위에 우뚝 섰다.
그의 눈 밑에는 어김없이 짙은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었고, 얼굴은 밤새 도망칠 계획이 완전히 파탄 난 것에 대한 깊은 슬픔과 분노로 인해 차갑게 굳어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어둡고 서늘한 살기. 하지만 연무장에 모인 백여 명의 팽가 무사들에게 그 기운은 ‘가문의 영광을 되찾고 무학의 극의에 도달한 고결한 고수의 성스러운 패기’로 보일 뿐이었다.
“대장님! 아니, 태상호법 님! 가문의 비급을 전수해 주실 준비를 마쳤습니다!”
호위 1조 조장 김 대장이 맨 앞줄에서 횃불보다 뜨거운 눈빛을 번뜩이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 옆에는 가문의 방계 천재 무사라 불리는 청년, 팽지민이 등에 청풍명월(靑風明月) 쌍검을 찬 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무혁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무혁은 속으로 이마를 짚으며 피눈물을 흘렸다.
‘은퇴 자금 오백 냥만 챙겨서 조용히 만두 가게나 차리려고 했는데…… 어쩌다 내가 이 명문가 무사놈들 앞에서 검법을 가르치는 교관 노릇을 하고 있는 거지?’
이 모든 것은 사악한 암살 계획을 세울 때마다 그것을 강제로 선행으로 치환해 버리는 ‘천도 인과 보정 법칙’의 저주 때문이었다. 심지어 훔치려던 비급마저 가주 팽자천의 대성통곡과 함께 가문의 대보(大寶)로 세탁되어 강제로 기증하게 되었으니, 이제 무혁에게 남은 길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역이용하는 것뿐이었다.
‘그래. 정통 하북십삼검을 그대로 가르쳤다간 이 가문 놈들의 무공이 강해질 뿐이다. 그렇게 되면 내 은퇴와 도망은 영원히 불가능해져.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이 하북십삼검의 초식을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비틀어 전수하는 거야. 급소를 완전히 노출하고, 비겁하게 도망치는 보법을 검법에 섞어서 가문 무사들의 무공 체계를 아래에서부터 무너뜨려 주마.’
무혁의 눈동자에 음흉하고 서늘한 살수 고유의 이채가 스쳤다. 그는 천천히 연무대 중앙에 놓인 평범한 목검을 집어 들었다. 가볍게 목검을 휘두르자, 붕 하고 바람을 가르는 둔탁한 파공음이 울렸다. 무사들은 숨을 죽였다.
“하북십삼검의 제1초식, ‘매화토포(梅花吐蕊)’다.”
무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원래 매화토포는 정면의 적을 향해 매화 꽃잎처럼 화려하고 예리한 검기를 일격에 뿜어내며 기선을 제압하는 강력한 공격 초식이었다.
하지만 무혁은 검을 앞으로 뻗는 척하다가, 갑자기 왼쪽 옆구리를 훤히 비워두며 몸을 기괴하게 뒤로 꺾었다. 그리고 다리가 풀린 것처럼 흙바닥 위로 비겁하게 자빠지며 한 바퀴 굴렀다. 살수들이 밤중에 기습을 당했을 때,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치기 위해 쓰는 비겁한 ‘은신 도망 보법’의 전형적인 몸짓이었다.
스르륵, 쿵.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무혁은 일부러 목검 끝을 바닥에 처박으며 엉성하게 일어섰다. 이 정도면 명문 팽가의 무사들이 ‘이게 무슨 해괴하고 형편없는 삼류 검술이냐’며 야유를 보내고, 자신을 교관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연무장에는 찬물을 끼얹은 듯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무혁이 흙을 털며 고개를 들었을 때, 단상 아래의 풍경은 그의 예상과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방계 천재 무사 팽지민은 마치 머리를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지민은 자신의 청풍명월 쌍검을 꽉 쥐며 부르르 떨었다.
‘저…… 저것은……!’
팽지민의 천재적인 두뇌 필터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면의 적을 향해 검을 뻗는 척하면서 일부러 왼쪽 갈비뼈의 급소를 완전히 노출했다! 적이 그 빈틈을 보고 검을 찔러오는 순간, 뼈가 없는 뱀처럼 몸을 기괴하게 꺾어 적의 공격 궤도를 완전히 흘려보내는구나! 게다가 뒤로 자빠지며 바닥을 구르는 보법은 단순한 도망이 아니다. 자신의 무게중심을 지면과 완전히 일치시켜 적의 후속 공격 장력을 무력화하고, 역습을 가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각도를 확보하는 기하학적 방어의 극의……!’
지민은 왈칵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팽가의 무공은 오직 강맹함과 패도(覇道)만을 숭상해 왔기에, 적의 기습이나 강력한 일격에 부러지는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강무혁 대장님이 보여준 이 초식은 무공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위대한 가르침이었다.
“아아……! 대장님!”
팽지민이 단상 앞으로 성큼 걸어 나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목소리는 감격과 깨달음의 전율로 가득 차 있었다.
“제 무지함을 용서하십시오! 저는 그동안 검법이란 오직 단단하게 맞서 싸우는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대장님께서는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無爲), 적의 살기를 자연의 흐름으로 흘려보내며 퇴로를 확보하는’ 참된 수호의 검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어찌 일류 방어 대가의 경지가 아니겠습니까!”
“……예?”
무혁은 목검을 쥔 채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내가 방금 한 건 그냥 개처럼 뒹굴며 도망치는 낙법이었는데? 옆구리를 비운 건 그냥 중심을 잃어서 그런 건데? 방어 대가는 또 무슨 소리야?’
무혁이 황당하여 반박하려 입을 열려는 찰나, 호위 1조 조장 김 대장과 백여 명의 무사들이 일제히 팽지민의 뒤를 이어 무릎을 꿇었다. 연무대 바닥이 무사들의 무릎이 부딪히는 소리로 쿵 하고 진동했다.
“대장님의 무위전술(無爲戰術)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희 팽가 호위대는 오늘부로 대장님의 이 깊은 뜻을 뼈에 새기겠습니다!”
“적의 기세를 꺾고 가문을 지키는 진짜 검법이 여기 있었구나!”
무사들의 우렁찬 함성이 연무장을 가득 메웠다. 무혁의 차갑고 피곤한 침묵은 무사들에게 ‘제자들의 깨달음을 묵묵히 지켜보는 위대한 스승의 깊은 자애로움’으로 해석되어 그들의 가슴을 뜨겁게 적셨다.
무혁은 뒷목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천도 이 미친 억까 녀석들이 또 내 엉터리 검술을 기적의 방어술로 세탁해 버렸구나…….’
그때, 팽지민이 품속에서 붓과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의 눈빛은 광신도에 가까울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대장님! 방금 보여주신 그 위대한 방어 기하학적 초식들을 제가 한 자도 빠짐없이 기록하여, 가문 무사들이 평생 익힐 수 있는 새로운 병법서 ‘팽지민의 방어 병법서’로 편찬하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지민은 무혁의 등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의 서 있는 자세, 어깨의 각도, 심지어 피곤해서 다리를 떠는 미세한 움직임까지 ‘적의 심리를 기만하는 고도의 방어 전술적 대기 자세’라며 맹렬하게 받아적기 시작했다.
무혁은 이 지옥 같은 연무장에서 당장 도망치고 싶었지만, 밤새 연무장에 횃불을 밝히고 비급 전수를 요청하는 무사들의 뜨거운 열기 때문에 발목이 단단히 잡혀 버렸다. 그는 엉터리 초식을 몸소 증명하기 위해 하루 종일 흙바닥에 자빠지고 구르느라 전신에 타박상과 근육통을 얻으며 내면으로 절규했다.
‘제발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 난 그냥 만두나 빚고 싶단 말이다!’
한편, 무혁이 연무장에서 엉터리 초식으로 가문 무사들을 골탕 먹이고 있다는 소문은, 팽가 내부를 정탐하던 흑월루의 밀정들의 귀를 거쳐 저잣거리로 퍼져나갔다. 무혁의 부실한 검법 교육 소식을 접한 흑월루의 경쟁 살수 독고추는, 드디어 배신자 강무혁의 진짜 허접한 실체를 밝히고 그를 단죄할 기회가 왔다며 팽가 장원 내부로 다시 한번 은밀한 침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