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광, 실전된 비급을 찾다
청동문이 부서지듯 열리며, 가주 팽자천의 붉은 장포가 지하 비고의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횃불의 붉은 불꽃이 어두컴컴한 지하 석실을 사정없이 집어삼켰다. 그 뒤로 철검을 치켜든 팽가의 정예 무사 수십 명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그들의 눈에는 가문의 심장부를 침범당했다는 분노와 살기가 가득했다.
그 소란스러운 기세 한가운데, 강무혁은 굳건한 돌부처처럼 서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장에서 떨어진 하얀 석회 가루를 뒤집어써 마치 지옥에서 갓 걸어 나온 백색의 귀신 같은 몰골이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는 흑철 단검이 쥐어져 있었고, 왼손에는 방금 바닥의 깨진 타일 틈새에서 파내어 먼지를 툭툭 털어낸 해진 가죽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무혁의 발치에는, 기문진식의 오작동으로 내려앉은 강철 철창에 목과 어깨가 기이하게 끼인 대도 귀면도가 옴짝달싹 못 한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 이 도적놈들이 감히 가문의 비고를……!”
가주 팽자천이 사자후를 토하며 도검을 뽑아 들려던 찰나, 그의 호랑이 같은 눈동자가 석실 내부의 기묘한 구도를 포착했다.
침입자로 보이는 귀신 가면의 거구(귀면도)는 철창에 목이 끼여 검을 떨어뜨린 채 흐느끼고 있었고, 가문의 수석 호위무사인 강무혁은 그 도적의 목덜미에 흑철 단검의 서늘한 칼날을 정확히 겨눈 채 매서운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침묵 속에서 무혁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광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망했다. 완전히 망했어.’
무혁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보물고의 자물쇠를 해체하려다 허리의 타박상 통증 때문에 실수로 경보 장치를 건드렸다는 사실, 그리고 그 오작동의 여파로 엉뚱하게 벽을 뚫고 들어오던 귀면도가 철창에 끼어버렸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자신의 등 뒤에는 야반도주를 위해 바리바리 싸 놓은 짐보따리가 단단히 메여 있었다. 이 상황에서 ‘저도 훔치러 왔습니다’라고 자백했다간, 현경(玄境) 초입의 괴물인 팽자천의 손에 뼈도 못 추리고 가루가 될 것이 뻔했다.
살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길뿐이었다.
일류 살수로서 다져진 임기응변의 극의를 발휘하는 것.
무혁은 천천히 단검을 거두지 않은 채, 팽자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짙은 다크서클과 만성 피로, 그리고 도망 계획이 완전히 파탄 난 것에 대한 깊은 슬픔과 분노로 인해 기이할 정도로 깊고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팽자천의 눈에는 그 처절한 눈빛이 ‘가문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고뇌하는 충신의 숭고한 안광’으로 보였다.
무혁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왼손에 든 가죽 책을 공손히 받쳐 들며, 뼛속까지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주님…… 소직, 가문의 부름을 받은 이래 밤낮으로 비고의 안전을 염려해 왔습니다. 최근 사파의 움직임이 수상쩍어, 필시 가문의 지하 통로를 노리는 쥐새끼가 있을 것이라 예견하고 이 어두운 비고에서 홀로 매복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피곤함이 가득했으나, 석실 내부의 웅장한 반향을 타고 묘한 설득력을 발휘했다.
“과연 제 예측대로, 이 흉악한 도적 귀면도가 비밀 통로를 뚫고 침입하더군요. 소직이 한발 앞서 기문진식을 역으로 가동하여 놈을 이 철창에 가두고, 놈이 노리던 가문의 가장 소중한 유산을 지켜냈습니다.”
무혁은 손에 든 가죽 책을 팽자천의 앞으로 내밀었다. 사실 그것은 보물고 바닥을 파헤치다가 우연히 발견한 낡은 책자에 불과했다. 영삼을 훔치려다 바닥 타일이 덜컹거리기에 뜯어보았더니 웬 먼지투성이 책이 나오기에 품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철창에 목이 낀 채 숨을 헐떡이던 귀면도가 그 황당한 거짓말에 기가 막혀 비명을 질렀다.
“이, 이 사기꾼 녀석! 네가 먼저 들어와서 장치를 고장 낸 거잖아! 내가 벽을 뚫고 나오자마자 네가 기계를 부수고 나를 가뒀단 말이다! 가주님, 저놈도 도적입니다! 저놈 등 뒤의 보따리를 보십시오! 저게 도망치려던 증거입니다!”
귀면도의 필사적인 폭로였다. 도적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진실을 밝히려는 외침이었다.
하지만 가주 팽자천은 귀면도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무혁이 받쳐 든 해진 가죽 책의 표지에 고정되어 있었다. 거칠게 쓰여진 세 글자.
[河北十三劍]
“이…… 이것은……!”
팽자천의 거구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무혁의 손에서 책을 건네받았다.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기는 그의 손길이 눈에 띄게 격렬해졌다. 구결의 첫 구절을 읽어 내리는 그의 호랑이 같은 눈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
“하북십삼검(河北十三劍)……! 우리 팽가의 시조께서 남기셨으나, 수백 년 전 유실되어 가문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진짜 비전 검법의 진본이 아니더냐!”
“예? 가문 비급이라고요?”
무혁은 속으로 경악했다.
그저 바닥 타일 밑에서 나온 낡은 땔감용 책인 줄 알았는데, 그게 가문의 실전된 전설의 비급이었다니. 천도가 자신을 억지로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보물고 바닥의 균열 속에 숨겨져 있던 시조의 유산을 기어코 제 손끝으로 파내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아아, 천도 이 미친 저주가 또……!’
무혁이 내면의 절규를 삼키며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하자, 팽자천은 그 침묵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했다.
“무혁아…… 너는 이 비급의 가치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로구나. 가문의 시조께서 지하 영맥의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비고 바닥 깊은 곳에 이 비급을 숨겨두셨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거늘, 그 누구도 찾지 못했던 것을 네가 기어이 찾아냈어! 그것도 가문을 노리는 흉악한 도적을 완벽하게 제압하면서 말이다!”
“가, 가주님! 제 말을 믿으십시오! 저놈이 먼저 장치를 고장 냈다니까요!”
귀면도가 억울함에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팽자천은 차가운 눈빛으로 귀면도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몸에서 현경 초입의 가공할 내력이 뿜어져 나왔다.
“닥쳐라, 이 비열한 도적놈아! 감히 가문의 모든 경비망을 홀로 책임지며 밤낮으로 헌신하는 우리 수석 호위무사 강무혁 대장을 모함하려 드느냐! 무혁이가 메고 있는 보따리는 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르는 장기 수색전을 대비해 비상 식량과 방어 무구를 챙겨둔 ‘수호의 보따리’이거늘, 네놈의 얄팍한 머리로는 그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없겠지!”
“……예?”
귀면도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수호의 보따리라니, 저건 아무리 봐도 야반도주용 이불과 만두 빚는 도구들이 들어있는 보따리였다. 하지만 팽자천의 맹목적인 신뢰와 내력의 압박 앞에서 귀면도의 진실된 고발은 비열한 모함으로 전락해 버렸다.
팽자천은 붉은 장포를 휘날리며 귀면도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짝!
“저 비열한 도적놈을 당장 지하 감옥 깊은 곳에 가두고 엄히 심문하라! 그리고 무혁이가 지켜낸 이 시조의 비급을 가문의 사당에 안치할 준비를 하라!”
“존명!”
무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석실이 떠나가라 소리쳤. 그들은 무혁을 바라보며 경외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연호하기 시작했다.
“강 대장님 만세! 가문의 보물고를 지키신 수호신이시여!”
“역시 우리 대장님이십니다! 도적의 침투를 미리 예견하시다니, 귀신도 울고 갈 선제 방어입니다!”
무혁은 단검을 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도망치기 위해 훔치려던 천하 최고의 비급을 자신의 손으로 가주에게 공짜로 바치게 되었고, 은퇴 자금 오백 냥은커녕 가문의 영예라는 보이지 않는 사슬에 목이 한층 더 단단히 조여 버렸다. 그의 슬프고 억울한 눈빛은, 횃불 아래에서 ‘가문의 보물을 되찾아준 고결한 무사의 깊은 숨결’로 미화되어 무사들의 가슴을 뜨겁게 적셨다.
팽자천은 눈물을 훔치며 무혁의 먼지투성이 어깨를 꽉 쥐었다.
“무혁아, 너의 이 충의를 내 어찌 말로 다 갚겠느냐. 내 기필코 장로회를 소집하여, 너를 가문 역사상 최연소 ‘태상호법(太上護法)’으로 추대할 것이다!”
태상호법. 가문에서 가주 다음가는 최고의 명예이자, 평생 가문에 뼈를 묻어야 하는 절대적인 족쇄의 직위였다.
그 우렁찬 선언이 지하 석실을 뒤흔드는 순간, 무혁은 등 뒤로 차갑게 흘러내리는 식은땀과 함께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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