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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과 암살자, 그리고 엇갈린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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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지하 비고는 지독하리만큼 차갑고 습했다.


두꺼운 청동문 앞에 몸을 웅크린 강무혁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의 전신은 완벽한 기척차단술(氣岾遮斷術)에 의해 주변의 석벽과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다. 복면 틈새로 보이는 눈동자 아래에는 며칠 동안 쌓인 피로로 인해 거무죽죽한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칠두, 그 머저리 같은 녀석…….’


무혁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북쪽 담벼락을 가볍게 넘어 장원 외곽의 도주로를 점검하고, 유유히 하북성을 빠져나갈 준비를 마쳤어야 했다. 하지만 칠두가 자신의 지시를 어떻게 왜곡했는지, 북쪽 담벼락은 밟는 순간 사방에 요란한 소리를 퍼뜨릴 청동 방울과 날카로운 강철 가시 철조망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살수로서의 기민한 감각이 아니었다면, 무혁 본인이 자신이 설계한 도주로에서 사지가 찢기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터였다.


결국 도주로가 막힌 무혁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수석 호위무사’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기 위해, 가문의 보물고를 털어 대역죄인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장물들을 처분해 당초 목표였던 ‘은퇴 자금 오백 냥’을 챙겨 영원히 실종되는 것이었다.


무혁의 시선이 청동문 중앙에 정교하게 배치된 톱니바퀴 모양의 자물쇠로 향했다.


이것은 하북팽가의 시조가 설계했다는 전설적인 기문진식(奇門陣式)의 일종이었다. 일반적인 열쇠 구멍 대신, 내부의 복잡한 기계식 톱니들이 서로 얽혀 있어 미세한 장력의 차이만으로도 경보가 울리게 되어 있었다.


무혁은 소매 안쪽에서 가늘고 유연한 해체용 철사를 꺼냈다. 그의 손가락 끝은 와이어 장력으로 인해 미세한 생채기가 가득했지만, 도구를 쥐는 순간만큼은 살수 특유의 정밀함이 되살아났다.


사각, 사각.


철사 끝이 청동 자물쇠 내부의 구리 판막을 건드릴 때마다, 무혁의 귀에는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 미세한 마찰음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그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려 복면을 적셨다. 정종 무공의 화려한 검기를 뿜어내며 문을 부수는 것은 쉬웠으나, 그렇게 했다간 장원 전체에 경보 종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 뻔했다. 철저히 물리적인 해체 기술만을 사용해야 했다.


‘왼쪽으로 세 번, 그리고 아래로 반 치…….’


딸깍.


마침내 묵직한 청동문 내부에서 빗장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틈을 아주 미세하게 벌리고 안으로 스며들었다.


비고 내부에는 하북팽가가 수백 년 동안 모아온 온갖 기이한 보물들이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 눈이 멀 것 같은 황금 궤짝들과 영험한 기운을 뿜어내는 도검들이 가득했지만, 무혁의 눈길은 오직 한 곳으로 향했다.


비고 중앙, 정교한 옥함 속에 담긴 푸른빛의 약초.


‘팽가 비고의 천년영삼(千年靈蔘)……!’


한 뿌리만 먹어도 내공이 백 년은 증진된다는 강호 최고의 영약이자, 암시장에 내놓으면 오백 냥은커녕 수천 냥도 가볍게 호가할 전설적인 보물이었다. 무혁은 침을 삼키며 옥함을 향해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


‘이것만 손에 넣으면 끝이다. 팽지혁이고 뭐고, 당장 내일 아침에 남쪽 시골로 내려가 뜨끈한 온돌방을 짓고 만두를 빚으며 살 수 있어.’


무혁의 손이 옥함의 뚜껑에 닿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뿔싸.


북쪽 담벼락에서 기괴하게 몸을 꺾어 피하느라 발생했던 허리와 엉덩이의 가벼운 타박상이 일순간 찌릿한 통증을 유발했다. 무혁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고, 그가 쥐고 있던 해체용 철사의 끝부분이 옥함 아래쪽에 숨겨져 있던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리 실선을 툭 건드렸다.


탁.


지극히 가벼운 마찰음이었지만, 무혁의 심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소리는 기문진식의 핵심 제어 장치가 격발되는 소리였다.


쿠구구구구!


갑자기 지하 석실 전체가 거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비고 천장에서 미세한 석회 가루가 폭풍처럼 쏟아져 내렸고, 청동문 내부의 톱니바퀴들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굉음을 내뿜었다.


“경보 장치가…… 오작동했다!”


무혁은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비고의 유일한 출구인 거대한 청동문이 무서운 속도로 닫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대로 문이 닫히면 철저히 고립되어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 꼴이 될 터였다.


“안 돼! 내 만두 가게가!”


무혁은 본능적으로 청동문 쪽으로 몸을 던졌다. 어떻게든 닫히는 문을 막기 위해 주변에 있던 무거운 청동 장식물을 톱니바퀴 사이에 끼워 넣으려 했다.


콰직! 퍼석!


하지만 기문진식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혁이 던진 청동 장식물은 회전하는 거대한 철제 기어에 끼이자마자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짓눌려 버렸다. 오히려 그 충격으로 인해 제어 기어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어긋나며, 비고 내부의 방어 기계 장치들이 완전히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슈슈슈슉!


석벽 틈새에서 침입자를 단죄하기 위한 강철 화살들이 무작위로 사방에 빗발치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가법 같으니라고!”


무혁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날아오는 화살들을 피하기 위해 몸을 기괴하게 꺾으며 품속에서 ‘흑철 단검’을 뽑아 들었다. 서늘한 흑철의 칼날이 어둠 속에서 은빛 잔상을 남기며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냈다.


바로 그때였다.


콰아앙!


비고 반대편, 아무것도 없어야 할 오래된 석벽 한구석이 거대한 폭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기이한 귀신 가면을 쓰고 붉은 도검을 찬 거구의 사내가 튀어나왔다.


그는 강호에서 악명 높은 흉악한 도적, ‘귀면도(鬼面刀)’였다.


귀면도는 팽가의 보물을 훔치기 위해 수개월 동안 지하 비밀 통로를 파고 들어왔다가, 마침내 오늘 밤 비고의 벽을 뚫는 데 성공한 참이었다. 하지만 그가 기세 좋게 비고 안으로 도약한 바로 그 순간, 무혁이 유발한 기계 장치의 오작동이 최악의 타이밍으로 그를 덮쳤다.


철컹!


천장에 매달려 있던 거대한 강철 철창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수직 낙하했다.


“어……? 컥?!”


귀면도는 미처 대처할 시간도 없이, 낙하한 철창의 두꺼운 창살 사이에 머리와 어깨가 기이한 각도로 끼여 버렸다. 동시에 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회전 톱니바퀴 기어가 그의 붉은 도검을 집어삼키며 콰드득 소리를 냈다.


“아아아악! 내 칼! 내 다리! 이게 왜 작동해!”


귀면도는 철창에 끼인 채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렸다. 회전하는 기어의 강력한 장력이 그의 바지자락을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무혁은 화살 비가 멈춘 틈을 타 흑철 단검을 쥔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동자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인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머리에는 석회 가루를 뒤집어써 마치 지옥에서 걸어 나온 귀신 같은 몰골이었다.


무혁은 자신을 방해한 정체불명의 귀신 가면을 매섭게 노려보며, 품속에서 끓어오르는 살기를 사방으로 방출했다.


“……너는 또 어떤 미친 자객이냐?”


서늘하다 못해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일류 살수의 진짜 살기가 비고 내부를 가득 채웠다.


철창에 끼어 비명을 지르던 귀면도는, 흙먼지 속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는 무혁의 모습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검은 야행복, 눈 밑의 음침한 다크서클, 그리고 자신을 당장이라도 찢어발길 듯한 압도적인 살기.


귀면도의 머릿속 필터가 공포로 인해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이 자는…… 하북팽가의 숨겨진 수호신이자 수석 호위무사 강무혁이다! 내 침투 경로와 타이밍을 미리 다 알고, 이 지하 비고에서 덫을 놓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로구나!’


귀면도는 무혁의 살기 어린 눈빛 앞에서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그는 붉은 도검을 쥘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철창에 낀 채로 바들바들 떨며 울부짖었다.


“가, 강 대협! 살려주시오! 내가 잘못했소! 다시는 팽가의 보물에 손을 대지 않겠소!”


무혁은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덫을 놓은 게 아니라, 내가 고장 낸 장치에 네가 낀 거라고, 이 멍청한 새끼야!’


하지만 진실을 밝힐 시간은 없었다.


우우웅————!


비고 전체를 울리는 장엄한 경보 종소리가 지상으로 향하는 수로를 타고 장원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지하 통로 계단 위쪽에서, 수십 개의 횃불 기운과 함께 거친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비고 내부에서 경보가 울렸다! 당장 지하로 출격하라!”


“소교주님과 가주님을 엄호하라!”


가주 팽자천과 호위무사들이 횃불을 밝히며 지하 비고로 무서운 속도로 들이닥치는 소리였다.


무혁은 흑철 단검을 쥔 채, 철창에 갇혀 우는 도적 귀면도와 닫혀버린 청동문 사이에서 절망적인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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