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고를 털어라, 완벽한 은퇴 작전
“조상님들이 묘비에서 덤블링을 하며 뺨을 때릴 일이야!”
여동생 강무희의 카칼칼한 독설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게 울려 퍼지는 듯했다. 강무혁은 어두컴컴한 호위무사 별채의 집무실 한구석에서 검은 야행복의 허리끈을 질끈 동여맸다. 그의 눈 밑에 드리운 다크서클이 촛불 그림자 사이로 유난히 짙고 음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무혁의 꿈은 지극히 소박했다. 강호의 피비린내 나는 은원과 단검을 내려놓고, 남쪽의 한적하고 따뜻한 시골 마을에 온돌방이 뜨끈뜨끈한 작은 만두 가게를 차리는 것. 그것을 위해 필요한 자금은 오직 ‘은퇴 자금 오백 냥’뿐이었다. 가주 팽자천이 하사한 일만 냥짜리 수표는 무혁에게 그저 자신을 팽가에 영원히 묶어두려는 ‘더러운 호위무사 월급’이자 살수로서의 자존심을 짓밟는 모욕에 불과했다.
“내가 팽가의 보물고를 털어 역사적인 영약과 비급을 암시장에 처분하겠다. 내 손으로 직접 훔친 장물로 정당한 은퇴 자금을 마련하고, 대역죄인이 되어 이 지긋지긋한 영웅의 굴레를 벗어던지겠다.”
무혁은 품속에서 은밀히 챙겨둔 도망용 짐보따리를 매만지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번 작전은 완벽해야 했다. 팽가의 지하 보물고는 가주 팽자천과 가문의 대장장들이 철저하게 설계한 고대의 기문진식과 경보 장치가 도사리고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정면으로 침투하다가 경비병들에게 들통나면 살수 신분이 드러나 골치 아파지므로, 수석 호위무사라는 직위를 이용해 합법적으로 보안을 무력화해야 했다.
무혁은 깊은 숨을 들이쉬며 처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복도 모퉁이 어둠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삼류 살수 출신의 마당쇠, 칠두가 빗자루를 든 채 비장한 얼굴로 튀어나왔.
“대장님! 부르셨습니까!”
칠두는 흑월루 시절부터 눈치 없기로 악명 높은 멍청한 부하였다. 하지만 지금 무혁에게는 경비병들의 동선을 흐트러뜨릴 손쉬운 장도리가 필요했다. 무혁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살기 어린 매서운 눈빛으로 칠두를 쏘아보며 속삭였다.
“칠두야. 오늘 밤 자경(오전 11시~오전 1시)부터 사경(오전 3시~오전 5시) 사이에, 장원 북쪽 담벼락과 지하 수로 근처의 경비병들을 완전히 비워라. 단 한 명의 그림자도, 단 한 자루의 횃불도 그 구역에 서 있게 해서는 안 된다. 내 지시가 있을 때까지 북쪽 구역은 완벽한 공백으로 두어라. 알겠느냐?”
무혁의 의도는 명백했다. 북쪽 담벼락을 완벽한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보물고에서 훔친 보따리를 메고 그곳을 통해 유유히 하북성을 빠져나가겠다는 도주로 확보 책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칠두의 멍청한 머릿속 필터가 광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북쪽 담벼락과 지하 수로를 완전히 비우라고……? 아! 대장님께서 적들을 북쪽의 텅 빈 공간으로 유인해 한 번에 일망타진하시려는 고도의 함정 진법을 구상하신 것이로구나! 역시 우리 대장님은 가문의 안위를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되시려는 거야!’
칠두의 눈동자가 감격과 존경심으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는 주먹을 꽉 쥐며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님! 그 깊은 뜻을 전적으로 이해했습니다! 북쪽 구역은 완벽하게…… 제 목숨을 걸고 ‘공백’으로 만들겠습니다!”
“그래, 딴짓하지 말고 내 말대로만 해라.”
무혁은 칠두가 알아들었다고 믿고 가볍게 그의 어깨를 두드린 뒤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무혁의 등이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칠두는 빗자루를 내팽개치고 품속에서 특수 강철 가시 철조망과 소리 나는 청동 방울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대장님의 천재적인 유인책을 완벽하게 보좌해야 한다! 적들이 북쪽 담을 넘어오는 순간,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내가 은밀하게 철벽의 덫을 깔아두겠어!”
칠두는 눈물을 훔치며 밤을 틈타 북쪽 담벼락 수풀 사이에 촘촘하게 가시 철조망을 치고, 미세한 바람에도 쨍그랑 소리를 내는 경보용 청동 방울들을 매설하기 시작했다. 무혁이 확보하려던 도주로는, 칠두의 멍청한 과잉 충성심에 의해 가문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튼튼한 ‘철벽의 경계선’으로 실시간 업그레이드되고 있었다.
***
사경 깊어가는 시각, 장원 전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검은 복면을 쓰고 야행 장비를 완벽하게 갖춘 무혁은 소리 없이 별채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전신의 기혈을 완벽히 잠그고 인기척을 지우는 기척차단술을 극성으로 전개한 상태였다. 그는 발끝에 내력을 집중하여 마찰 소음을 완전히 지우는 ‘흑야보법’을 전개하며 바람처럼 북쪽 담벼락을 향해 질주했다.
‘칠두 그 녀석이 제대로 일을 처리했겠지. 북쪽 담을 가볍게 넘어 도주로를 최종 점검하고 바로 보물고로 진입한다.’
무혁은 가벼운 신형으로 북쪽 담벼락 수풀 위로 낙하하려던 바로 그 찰나, 살수 특유의 기괴할 정도로 예민한 감각이 뇌리를 강타했다.
스스슥. 칭.
달빛에 미세하게 반사되는 날카로운 은빛 가시들과, 수풀 사이에 정교하게 매달린 수십 개의 청동 방울들이 무혁의 안구에 포착되었다.
“……?!”
무혁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낙하 궤도를 그대로 유지했다가는 온몸이 가시 철조망에 찢기고 방울 소리가 온 장원에 울려 퍼질 판이었다. 무혁은 경악하며 허공에서 전신의 관절을 기괴한 각도로 꺾어 궤도를 강제로 비틀었다.
투둑, 퍽!
그는 땅바닥에 엉덩이를 찧으며 아슬아슬하게 철조망 바로 한 치 앞바닥에 착지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을 죽인 무혁은 눈앞에 촘촘하게 깔린 강철 가시 덫들을 보며 이마에 핏대를 세웠.
“이게 왜 여기 있어?! 어떤 미친 새끼가 우리 가문 북쪽 담벼락을 제국군 전방 요새로 만들어 놓은 거야?!”
무혁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도주로를 비워두라던 자신의 지시가 완벽한 철벽의 가두리 양식장으로 변해 있었다. 북쪽 담을 통한 야반도주는 완전히 물 건너간 셈이었다.
하지만 살수로서의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무혁은 흙을 털어내며 보물고 입구가 있는 지하 석실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주로가 막혔다면, 먼저 보물고를 털어 기문진식을 완전히 깨부수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무혁은 복면을 고쳐 쓰고, 굳건한 경비가 도사리는 팽가 지하 비고의 웅장한 청동 입구를 향해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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