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동생의 꾸중과 천도의 저주
하북성 성수현 관아가 이토록 황금빛으로 번쩍였던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하북의 은밀한 구원자이자, 팽가의 위대한 수호신이시여! 이 패를 받아주십시오!”
성수현령이 직접 들고 온 황동 감사패는 어찌나 크고 무거운지, 장정 셋이 겨우 들고 서 있을 정도였다. 패의 표면에는 ‘위국헌신 수호천사 강무혁(爲國獻身 守護天使 姜武赫)’이라는 글자가 눈이 부시도록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관아의 포졸들과 성수현 주민 수백 명이 하북팽가 장원 앞마당에 가득 모여 꽃가루를 뿌려댔다. 어제 새벽, 혈린교의 정예 습격대 스무 명을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그것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아 생포해 버린 ‘천재적인 선제 방어 진식’에 대한 찬사였다.
하지만 정작 그 감사패를 받아 든 강무혁의 표정은 썩은 동태눈깔보다도 흐리멍덩했다.
‘나는…… 나는 단지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다.’
무혁은 품속에 숨겨진 은퇴 자금 오백 냥에 대한 집착을 떠올리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그의 오른손은 밤새 흑랑와이어를 팽팽하게 조율하느라 지문이 다 닳아 없어져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 고통스러운 밤샘 노역의 결과가 겨우 ‘하북의 은밀한 구원자’라는 기괴한 평판과, 도망칠 구멍을 완벽하게 틀어막는 명성의 감옥이라니.
게다가 가주 팽자천은 무혁의 닳아버린 손가락 끝을 보며 또 한 번 대성통곡을 했다.
“무혁아! 네가 가문을 지키기 위해 밤새도록 보이지 않는 실선을 조율하느라 손끝이 이 지경이 되다니! 이 팽자천, 네 숭고한 희생을 평생 잊지 않으마!”
“…….”
무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여기서 “실은 소교주 목을 따려다 실패해서 빡쳐서 뿜은 살기입니다”라고 진실을 말하는 순간, 현경 초입의 가주가 휘두르는 적룡도에 대가리가 깨질 터였다. 결국 무혁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침묵뿐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주변인들의 뇌내 필터를 거쳐 ‘공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성인의 묵언’으로 완벽하게 세탁되었다.
***
그날 밤, 사경(오전 3시 경).
가주가 하사한 초호화 ‘호위무사 별채’의 집무실 안. 무혁은 어두컴컴한 방 한구석에서 촛불 하나만을 켠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성수현 관아에서 준 황동 감사패와, 팽자천이 보낸 일만 냥짜리 특별 포상 수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무혁은 턱을 괸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 밑의 짙은 다크서클이 어둠 속에서 유난히 음침하게 빛났다.
‘은퇴 자금 오백 냥만 있으면 강호 변방에 작은 만두 가게를 차려서 평화롭게 살 수 있었는데. 왜 일을 하면 할수록 돈은 늘어나고 은퇴는 멀어지는가.’
이것이 바로 우주의 거대한 장난이자, 그의 영혼에 얽힌 ‘천도 인과 보정 법칙’의 저주였다. 그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악한 살의를 품고 치밀한 암살 계획을 세울수록, 천도의 억까 시스템은 그 물리적 우연을 비틀어 세상을 구하는 기적으로 치환해 버렸다. 착한 마음을 먹으면 오히려 덫이 고장 나 자신이 다치니, 기적을 일으켜 생존하려면 평생 마음속으로 지독한 살의를 억지로 유지해야만 하는 정신 분열적 형벌이었다.
그때였다.
방 문밖에서 지극히 미세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일반 무사라면 바람 소리로 치부했을 소리였으나, 일류 살수인 무혁의 귀에는 뼈를 깎는 듯한 긴장감으로 다가왔.
스슥. 서걱.
문걸쇠가 안쪽에서 소리 없이 밀려 열리더니, 야간 찻상을 들고 들어오는 하녀 복장의 인영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머리를 단정하게 땋아 내리고 하얀 앞치마를 두른 가냘픈 체형의 소녀.
하지만 그녀가 문을 잠그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일순간에 얼어붙었다.
스아앗!
하녀의 소매 속에서 서늘한 은빛 칼날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무혁의 목덜미를 정확히 겨누었다. 깃털처럼 가볍고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살수 특유의 조준각이었다.
“움직이지 마.”
달빛을 받은 하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장난기 가득하지만 칼날처럼 예리한 고양이 눈망울. 무혁의 진짜 의동생이자, 흑월루의 일류 살수인 강무희(姜武姬)였다.
무혁은 목에 닿은 차가운 검날을 느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 피로가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희냐. 문은 제대로 잠갔어?”
“흥, 여전히 눈치는 빠르네, 오빠.”
무희는 코방귀를 뀌며 검을 거두고 소매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녀는 방 한구석에 놓인 황동 감사패와 일만 냥짜리 수표를 째려보더니, 이마에 힘을 주며 매섭게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오빠, 진짜 미친 거야? 아니면 팽가의 고기만두에 영혼이라도 팔아넘긴 거야?!”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 같은 소리 하네! 지금 성수현 저잣거리에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지 알아? ‘하북의 은밀한 구원자 강무혁 대협’이 밤마다 잠도 안 자고 가문을 지키기 위해 하늘의 그물을 쳤대! 흑월루의 자랑스러운 일류 살수가, 졸지에 망나니 소교주의 보디가드로 추앙받으면서 떵떵거리고 있다니! 조상님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뺨을 때릴 일이야!”
무희의 닭똥 같은 잔소리가 귓전을 사정없이 때려 박았다. 무혁은 억울함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책상을 쾅 내려쳤다.
“그게 내 의지였는 줄 알아?! 나도 죽이려고 했다고! 팽지혁 그 망나니 새끼를 산책로에서 목을 따버리려고 밤새 피땀 흘려 와이어를 쳐놓은 거란 말이다!”
“그럼 왜 혈린교 자객 스무 명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데? 그 와이어 각도가 자객들의 하강 궤적과 소수점 단위까지 일치했다던데? 오빠가 자객들 침투 경로를 미리 예견하고 덫을 놓은 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잖아!”
“그건 저 붉은 옷 입은 사파 병신들이 하필 새벽 세 시에 내 덫 위로 떨어진 거야! 내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질 자객들의 타이밍까지 어떻게 계산하냐고!”
무혁은 억울함에 목소리가 커지려다 황급히 주변 눈치를 보며 소리를 낮췄다.
“천도의 저주야, 무희야. 내가 나쁜 짓을 하려고만 하면 우주가 나서서 나를 착한 놈으로 세탁해 버린다고! 내 말을 좀 믿어줘!”
“핑계 대지 마! 진짜 살수라면 천도가 억까를 하든 마도가 억까를 하든, 타겟의 심장에 정확히 칼을 꽂아 넣었어야지! 일만 냥 보너스 받으니까 은퇴고 뭐고 그냥 팽가에 말뼈다귀로 눕고 싶어진 거 아냐?”
무희는 무혁이 내민 일만 냥짜리 수표를 보더니 “이 더러운 호위무사 월급!”이라며 발로 걷어차 버렸다. 수표가 바닥에 나뒹굴자 무혁의 가슴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내 명예는 이미 하북성 오물 바닥에 처박혔어. 오빠가 진짜 살수의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오늘 밤 당장 내 눈앞에서 증명해 봐.”
무희가 차가운 눈빛으로 무혁의 가슴을 콕콕 찔렀.
“뭘 증명하라는 건데?”
“오늘 밤, 팽가의 삼엄한 지하 보물고를 털어. 가문의 잃어버린 역사적 보물이든 영약이든 싹 다 털어서 야반도주하는 거야. 그럼 오빠는 도둑놈이자 배신자가 될 거고, 팽가는 오빠를 추적하겠지. 그 삼엄한 보물고를 터는 실력이야말로 진짜 흑월루 살수의 증거가 아니겠어?”
무혁은 굳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그의 머릿속에서 기막힌 계산기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보물고를 턴다……? 맞다! 보물고를 털어 야반도주하면, 나는 가문의 대역죄인이 되어 합법적으로(?) 쫓겨날 수 있다. 게다가 영약을 훔쳐서 암시장에 팔면 오백 냥 정도는 우습게 벌 수 있지!’
마침내 완벽한 은퇴 시나리오가 그려진 순간이었다. 무혁의 입가에 오랜만에 살수다운 서늘하고 음침한 미소가 번졌다.
“좋아. 오늘 밤, 팽가의 지하 비고를 턴다.”
***
한편, 별채 밖의 어두운 복도.
순찰을 돌던 호위 1조 조장 김 대장과 무사들은, 수석대장 무혁의 방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은밀하고 팽팽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쉿, 조용히 해라. 대장님의 방에서 심상치 않은 대화가 오가고 있다.”
김 대장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문틈으로 눈을 들이밀었다.
방 안에서는 무혁과 새로 들어온 하녀(무희)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서로를 쏘아보며, 손을 떨며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무혁의 몸에서는 실패한 암살 계획에 대한 분노로 인해 검푸른 살기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고, 무희 또한 비장한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김 대장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아…… 저분은 대장님의 숨겨진 여동생이 아니던가! 가문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하녀로 위장 침투한 눈물겨운 오누이였어!’
김 대장의 머릿속 필터링은 이미 광속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오빠…… 진짜 미친 거야? 팽가에 뼈를 묻을 생각인 거야?”라는 무희의 질타는, 김 대장의 귀에는 “오빠, 왜 가문을 지키기 위해 제 목숨까지 바치려 하는 거야! 그러다 오빠가 죽으면 나는 어쩌라고!”라는 눈물겨운 여동생의 만류로 들렸다.
“내 명예는 처박혔어…… 오늘 밤, 지하 비고를 턴다”라는 무혁의 비장한 다짐은, “가문의 안위를 위해, 내 명예가 더러워지더라도 오늘 밤 비밀 보물고의 방어 진식을 직접 점검하여 사파의 침투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숭고한 결의로 세탁되었다.
김 대장은 가슴이 웅장해져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옆에 있던 신참 무사 아강 또한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대장님…… 어찌 저토록 가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단 말인가. 여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홀로 어둠을 짊어지시다니…….”
“우리가 더 열심히 순찰을 돌아 대장님의 짐을 덜어드려야 한다! 오늘 밤, 보물고 주변 경비를 더 삼엄하게 강화하자!”
오누이의 심각한 살수 설전은, 그렇게 가문을 수호하려는 의로운 남매의 눈물겨운 충성맹세로 오해받으며 장원 전체로 소문이 퍼져나갈 준비를 마쳤다.
방 안에서 무혁은 자신의 야간 침투 장비와 검은 복면을 점검하며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다려라, 팽지혁. 내일 아침, 너는 가문 최고의 보물을 잃고 대성통곡하게 될 것이다.”
무혁은 기척을 완전히 차단한 채, 보물고 깊은 곳에 도사린 가주 팽자천과 태상장로의 삼엄한 고대 경보 장치를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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